페터 춤토르 건축을 매개로 완성된 현대미술가의 전시

보이지 않는 힘을 감각하다, 구정아 개인전 <LAND OF OUSSS [GRAVITTA]>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구정아 작가의 개인전이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5월 25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건축 거장 페터 춤토르가 설계한 공간을 무대로 하며, 작가가 평소 탐구해 온 비가시적 에너지와 지각의 경계를 물질화하여 선보인다.

페터 춤토르 건축을 매개로 완성된 현대미술가의 전시

구정아는 일상의 주변부, 인내심 있는 지각 속에서 비로소 열리는 경험의 가장자리로 시선을 향한다. 보이지 않는 현상들은 소리와 향, 절제된 제스처를 통해 감각된다. 만들어진 것과 발견된 것, 구체적인 것과 붙잡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한 경계 없이 서로 스며든다. 그의 작업은 특별할 만큼의 절제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소수의, 그러나 정확히 배치된 수단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을 형성한다. 이때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는 이상적인 공명 공간이 된다. 건물의 규모와 확장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 것, 섬세하고 겨우 감지되는 요소들을 드러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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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 JEONG A, LAND OF OUSSS [ GRAVITTA ], Ausstellungsansicht Erdgeschoss Kunsthaus Bregenz, 2026 [ GRAVITTA ], 2025 Foto: Markus Tretter © KOO JEONG A, Kunsthaus Bregenz Courtesy of the artist

구정아는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 지상층을 위해 하나의 바닥 오브제를 구상했다. 이는 스케이트 파크의 맥락에서 분리된 단편으로, 인광성 표면이 어둠 속에서 발광한다. 조각은 넓게 펼쳐진 곡선으로 전개되며 전시 공간의 질서를 새롭게 구성한다.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의 건축과의 대화 속에서 물질·빛·움직임을 미학적이고 시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공간이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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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 OF OUSSS [ GRAVITTA ], Ausstellungsansicht Erdgeschoss Kunsthaus Bregenz, 2026, [ GRAVITTA ], 2025
Foto: Markus Tretter © KOO JEONG A, Kunsthaus Bregenz, Courtesy of the artist

베니스 비엔날레 2024, 밀라노 트리엔날레 2019, 그리고 아를·리버풀·상파울루·서울에서의 전시들에서 선보였던 이전 스케이트 파크 작업들처럼,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에서도 트랙의 곡선은 뫼비우스 띠의 형상을 참조한다. 이곳에서는 장소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조각으로 나타나며, 정밀하게 구성되어 공간의 분위기에 맞게 배치된다.

물질의 궤적을 넘어, 공기 속에 새겨진 지각의 문턱

구정아에게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지각의 문턱에 걸쳐 있거나 그 밖에 위치한 현상들에 대한 탐구이다. 상부 층 가운데 한 층에는 자석으로 구성된 벽 오브제들이 벽면의 회전식 지지대에 고정되어 있다. 그것들은 거대한 금속 파라반처럼 공간의 모서리 앞에 떠 있으며, 우리의 시선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힘이 존재함을 감지하게 한다. 또 다른 층은 향에 헌정되어 있다. 2024년 구정아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인 전시 〈ODORAMA CITIES〉를 위해 한국 브랜드 논픽션(NONFICTION)과 함께 향수를 개발했다. 이제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에서도 후각적 지각, 감각을 통해서만 인지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것에 열려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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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 JEONG A im KUB, 2025 Foto: Miro Kuzmanovic © Kunsthaus Bregenz

전시는 건물의 수직 동선을 따라 감각의 층위를 달리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지상층의 곡선형 바닥 조각은 실제 스케이트 파크의 일부를 분리해 놓은 형태지만 물리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으며, 관람자는 작품 위에 올라설 수 없다. 그 대신 시선은 자연스럽게 곡선을 따라 이동하고, 몸은 움직이지 않은 채 가상의 주행을 상상하게 된다. 작품은 주변의 빛을 흡수한 뒤 시간차를 두고 다시 방출하는 인광성 표면을 지니며, 조도가 낮아질수록 녹황색의 빛이 서서히 떠오른다. 이 빛은 조명을 통해 외부에서 투사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 내부에서 발현되는 것으로 보이며, 공간의 분위기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킨다. 움직임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람자는 경사와 속도, 방향 전환을 감각적으로 예측하게 되고, 조각은 물리적 운동 대신 지각의 운동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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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 JEONG A, LAND OF OUSSS [ GRAVITTA ], Ausstellungsansicht Erdgeschoss Kunsthaus Bregenz, 2026 , [ GRAVITTA ], 2025, Foto: Markus Tretter © KOO JEONG A, Kunsthaus Bregenz, Courtesy of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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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 JEONG A, LAND OF OUSSS [ GRAVITTA ], Ausstellungsansicht Erdgeschoss Kunsthaus Bregenz, 2026 , [ GRAVITTA ], 2025 Foto: Markus Tretter © KOO JEONG A, Kunsthaus Bregenz Courtesy of the artist

1층에서는 시각 중심의 경험에서 후각으로 감각의 축이 이동한다. 향의 근원은 노출되지 않으며, 바닥의 이음새나 환기 틈 사이에 삽입된 재료를 통해 공기 흐름에 따라 은은하게 확산된다. 특정 지점을 가리킬 수 없는 상태에서 감각이 작동하기 때문에 관람자는 공간 전체를 하나의 매질로 인식하게 된다. 동시에 바닥에는 서로 다른 표면 처리를 지닌 세 점의 원형 목재 조각이 놓여 있다. 하나는 자연 목재 상태로 남아 있고, 하나는 흰색으로 옅게 마감되어 있으며, 다른 하나는 석고처럼 보이는 표면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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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 JEONG A, LAND OF OUSSS [ GRAVITTA ], Ausstellungsansicht 1. Obergeschoss Kunsthaus Bregenz, 2026
Foto: Markus Tretter © KOO JEONG A, Kunsthaus Bregenz, Courtesy of the artist

각각 약 반 톤의 무게를 지닌 이 고리 형태의 구조물은 닫힌 순환 구조를 이루며, 위층의 곡선과 달리 시작과 끝이 없는 형태를 강조한다. 이 층에는 인광 파스텔로 제작된 회화 ‘SEVEN STARS’가 함께 설치되어 있으며, 희미하게 표현된 별 형태가 주변 빛의 변화에 반응하며 서서히 드러난다. 관람 경험은 대상을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라 공기의 농도, 밝기의 변화, 체류 시간에 의해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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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 JEONG A, LAND OF OUSSS [ GRAVITTA ]
Ausstellungsansicht 1. Obergeschoss Kunsthaus Bregenz, 2026
Foto: Markus Tretter © KOO JEONG A, Kunsthaus Bregenz, Courtesy of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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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 JEONG A, LAND OF OUSSS [ GRAVITTA ], Detailansicht 1. Obergeschoss Kunsthaus Bregenz, 2026, [ OUSSSMIC 7 ], 2025, Foto: Markus Tretter © KOO JEONG A, Kunsthaus Bregenz Courtesy of the artist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장

2층에서는 물질과 힘의 관계가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서로 다른 크기의 직사각형 이미지들이 벽 앞에 설치되어 있으나, 가까이 다가가면 이들이 회화가 아니라 다수의 자석 모듈로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표면은 격자나 픽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은 요소들의 반복적 적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부에는 광택, 얼룩, 미세한 긁힘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작품은 특정 이미지를 재현하지 않지만 물리적 작용을 발생시키며, 자력은 공간 속에서 관람자의 신체 감각뿐 아니라 금속 물체나 전자기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적 힘으로 제시된다. 이 층에서 공간은 단순한 전시장이라기보다 힘이 교차하는 장으로 경험된다. 각각의 작업은 독립된 대상이라기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관람자는 시각적 인식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작용을 의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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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 JEONG A, LAND OF OUSSS [ GRAVITTA ], Ausstellungsansicht 2. Obergeschoss Kunsthaus Bregenz, 2026, Foto: Markus Tretter © KOO JEONG A, Kunsthaus Bregenz Courtesy of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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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 JEONG A, LAND OF OUSSS [ GRAVITTA ], Detailansicht 2. Obergeschoss Kunsthaus Bregenz, 2026 MagnetRB (horizontal), 2025 Foto: Markus Tretter © KOO JEONG A, Kunsthaus Bregenz Courtesy of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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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 JEONG A, LAND OF OUSSS [ GRAVITTA ], Detailansicht 2. Obergeschoss Kunsthaus Bregenz, 2026
MagnetSQ1, 2025 Foto: Markus Tretter, © KOO JEONG A, Kunsthaus Bregenz Courtesy of the artist

최상층에서는 한 편의 영상 작품이 루프로 상영된다. 풀밭 위에 웅크린 채 등을 보인 인물이 앉아 있고, 그 앞에는 빛나는 기체 형태의 존재가 놓여 있다. 땅거미가 내려앉는 가운데 카메라는 장면 안으로 천천히 줌 인했다가 다시 물러난다. 움직임은 극히 미미하며, 서사의 전개나 사건의 발생은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낮과 밤의 구분 역시 분명하지 않아, 시간은 직선적으로 흐르기보다 늘어나거나 되돌아가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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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 JEONG A, LAND OF OUSSS [ GRAVITTA ] Ausstellungsansicht 3. Obergeschoss Kunsthaus Bregenz, 2026
[ EB ] Evocative Burst, 2025 Foto: Markus Tretter © KOO JEONG A, Kunsthaus Bregenz , Courtesy of the artist

관람자는 특정 장면의 의미를 해석하기보다, 시작과 끝이 맞물린 반복 구조 속에서 지속되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변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시선이며, 사건이 되돌아가며 작동할 수 있다는 상상이 미묘하게 개입한다. 이 영상 이미지를 통해 전시의 드라마투르기는 마무리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대상성 없는 현존, 재현보다 효과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의 공간적 동선은 이러한 경험을 구조적으로 강화한다. 어둡게 조정된 지상층과 최상층, 그리고 확산된 빛으로 채워진 중간 층이 대비를 이루며 서로 다른 지각 조건을 형성한다. 건물은 단순한 전시의 외피가 아니라 감각을 매개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각 층은 개별 작품의 배경이 아니라 체험의 리듬을 조율하는 요소가 된다.

구정아의 설치는 무대나 서사를 제시하기보다 투과적인 분위기와 에너지의 이동, 정제된 현상들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작품은 의미의 해석을 요구하기보다 존재감과 조화, 그리고 숨겨져 있으면서도 분명히 감지되는 에너지의 상태로 작동한다. 결과적으로 이 전시는 하나의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기보다, 감각의 변화가 서서히 축적되는 경험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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