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건축 거장 알바루 시자가 포르투에 빚은 공원형 미술관

백색의 건축이 숲을 끌어안은 곳, 세랄베스 미술관

세랄베스 미술관은 건축 거장 알바루 시자의 백색 건축이 광활한 숲을 품은 포르투의 예술 거점이다. 아르데코 빌라부터 현대미술관까지, 자연과 예술이 산책로를 따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걷는 행위가 곧 관람이 되는 이곳은 동시대 예술과 대화하며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감각을 깨우는 특별한 여정을 선사한다.

모더니즘 건축 거장 알바루 시자가 포르투에 빚은 공원형 미술관

포르투갈 포르투의 서쪽, 도시 밀도가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하는 어느 지점에 세랄베스 재단이 자리한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아직 미술관 안에 들어서지 않았음에도 이미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정원의 냄새, 발아래 자갈 소리,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포르투의 햇살. 관람은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시작돼 있다.

0.jpg
Serralv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Fundação de Serralv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Porto, Portugal. Photo © Fernando Guerra | FG+SG

세랄베스 재단은 건축과 자연, 예술과 산책, 지역성과 국제성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공존하는 공원형 미술관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미술관은 목적지가 아닌, 일련의 과정에 자리한다. 재단은 크게 네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Álvaro Siza Vieira)가 설계한 세랄베스 현대미술관은 1999년 개관 이후 동시대 예술의 중심으로 기능해왔다. 또 다른 공간인 카사 드 세랄베스(Casa de Serralves)는 1920~40년대에 지어진 아르데코 양식의 빌라로 미술관보다 훨씬 오래된 건축 유산이다. 포르투갈 영화의 거장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Manoel de Oliveira) 이름을 딴 영화의 집은 영화와 동시대 예술의 접점을 탐구하는 공간이며, 이 모든 공간을 하나로 잇는 것이 약 18헥타르에 달하는 세랄베스 공원이다.

resize 1.jpg
Serralv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Fundação de Serralv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Porto, Portugal. Photo © Fernando Guerra | FG+SG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건축

현대미술관을 설계한 포르투 출신의 건축가 알바루 시자. 1992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그는 화려한 형태보다 장소와 빛, 그리고 건축을 경험하는 사람의 경험을 중심에 두는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미술관에서 그의 건축은 자연을 배경으로 삼기 보다, 오히려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장치로 기능한다.

2 16
3 15
Installation view of Fun Ist ein Stahlbad © João Morgado

백색의 절제된 외관은 주변의 녹지와 경쟁하지 않는다. 건물은 낮게 펼쳐지며 정원과 숲의 흐름 속에 조용히 놓인다. 내부에서는 자연광이 공간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며 시간의 변화를 드러낸다. 전시실은 고요하지만 폐쇄적이지 않고, 창과 틈은 바깥 풍경을 끊임없이 안으로 불러들인다.

resize 4 1
Installation view of Fun Ist ein Stahlbad © nvstudio

1991년 미술관 설계 의뢰를 받으며 시작된 시자와 세랄베스의 인연은 이후 30년 넘게 이어졌다. 그는 미술관에 위치한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영화의 집(2019), 정원사 주택(2021), 카사 드 세랄베스 복원(2021)을 차례로 맡았으며, 2015년에는 자신의 방대한 건축 아카이브 일부를 재단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4년, 그의 이름을 딴 ‘알바루 시자 윙’이 새롭게 개관하며 전시 공간을 44% 확장했다. 확장된 공간은 전시와 건축, 공공 프로그램을 하나로 잇는 중심으로서, 미술관의 역할을 연구와 담론의 장으로 한층 넓히기 위한 시도였다.

5 17
Serralves Álvaro Siza Wing. Fundação de Serralv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Álvaro Siza Wing, Porto, Portugal. Photo © Fernando Guerra | FG+SG
resize 6
Serralves Álvaro Siza Wing. Fundação de Serralv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Álvaro Siza Wing, Porto, Portugal. Photo © Fernando Guerra | FG+SG

지역에서 세계로, 동시대 예술 흐름과 세랄베스

1999년 개관 이후 세랄베스는 포르투갈 현대미술을 중심에 두되, 국제 동시대 예술씬과의 대화를 꾸준히 확장해왔다. 안네 임호프(Anne Imhof), 제니 홀저(Jenny Holzer), 안리 살라(Anri Sala) 등 미술관과 함께 기억되는 작가들의 목록은 이곳의 프로그램이 지역적 뿌리 위에서 얼마나 넓은 세계를 품어왔는지를 보여준다.

resize 7
Installation view of Fun Ist ein Stahlbad © João Morgado

5,600점이 넘는 작품으로 구성된 컬렉션은 시각예술과 퍼포먼스, 건축 사이 관계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며 구축돼 왔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전시는 장소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고, 자연과 환경, 사회적 맥락이 해석의 중요한 틀이 된다.

8 13
Installation view of Fun Ist ein Stahlbad © nvstudio

미술관의 이 같은 철학은 매년 개최되는 대표 프로그램인 ‘퍼포먼스로서 미술관(The Museum as Performance)’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제 퍼포먼스 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하고 동시대 미술 안에서 그 의미를 조명하는 이 프로그램은 학제 간 실험을 이끌어온 세랄베스의 정체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다.

산책이 곧 관람이 되는 곳

9.jpg
Serralves Park 02. Fundação de Serralves, Serralves Park, Porto, Portugal. Photo © Fernando Guerra | FG+SG

약 18헥타르에 달하는 세랄베스 미술관 공원은 1930년대 프랑스 조경가 자크 그레베르(Jacques Gréber)가 설계했으며, 1997년 헨리 포드 환경 보존상을 수상한 공간이다. 정형식 정원과 울창한 숲, 고즈넉한 농가, 그리고 나무 위 산책로까지 품는 이 공원에는 1만 그루 이상의 나무와 관목, 230종 이상의 식물이 자란다.

10 23

그 사이사이에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등 거장들의 작업들이 풍경 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2019년 개장한 나무 위 산책로는 이 경험을 극대화한다. 방문객은 나무 사이를 걷고, 빛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풍경을 전혀 다른 높이에서 마주한다.

유산을 품은 빌라, 카사 드 세랄베스

세랄베스가 동시대 예술의 언어로 말하는 미술관이라면, ‘카사 드 세랄베스’는 그 언어가 뿌리를 두고 있는 토양으로 볼 수 있다. 1925년부터 1944년 사이에 건설된 빌라는 비젤라의 제2대 백작 카를루스 알베르투 카브랄(Carlos Alberto Cabral)의 의뢰로 조성됐다.

resize 11 1
Serralves VIlla 01. Fundação de Serralves, Serralves Villa, Porto, Portugal. Photo © Fernando Guerra | FG+SG

프랑스 건축가 샤를 시클리스(Charles Siclis)와 포르투갈 디자이너 조제 마르케스 다 실바(José Marques da Silva)가 외형을 빚었고, 내부는 당대 유럽 최고의 장인들이 채웠다. 에밀 자크 뤼만(Émile-Jacques Ruhlmann)이 설계한 살롱과 식당, 르네 랄리크(René Lalique)가 제작한 유리 천창, 에드가 브랑트(Edgar Brandt)의 단철 문까지 공간 하나하나가 20세기 초 아르데코 장식 예술의 정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987년 포르투갈 정부가 이 부지를 인수하면서 빌라는 사적인 기억의 공간에서 공공의 유산으로 전환됐다. 1999년 시자가 설계한 현대미술관이 개관하기 전까지 이곳은 포르투의 동시대 예술이 처음으로 숨을 쉬던 임시 전시 공간이기도 했다.

resize 12.jpg
Serralves VIlla 02. Fundação de Serralves, Serralves Villa, Porto, Portugal. Photo © Fernando Guerra | FG+SG

그리고 2004년 시자는 다시 이 빌라 앞에 섰다. 복원을 맡은 그는 건축적 완전성을 세심하게 지키면서도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을 더했다. 아르데코의 장식성과 그의 절제된 모더니즘은 충돌하지 않고 병치하며, 각자의 시간을 조용히 드러냈다.

현대미술관과 아르데코 빌라, 18헥타르의 공원, 그리고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영화의 집. 세랄베스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캠퍼스 안에서 각자의 언어로 존재하는 곳이다. 현대미술과 건축, 영화, 환경이 서로를 가로지르며 비판적 담론과 새로운 감각을 동시에 열어놓는다. 정원과 숲을 내부로 끌어들이며 숨 쉬는 백색의 건축, 방대한 컬렉션 위에서 세계와 대화하는 프로그램, 걸으며 느끼고 숨 쉬며 바라보는 경험의 공간. 이 세 층위가 만나는 지점에서 세랄베스는 비로소 완성된다.

resize 15.jpg
Serralv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05. Fundação de Serralv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Porto, Portugal. Photo © Fernando Guerra | FG+SG

포르투에 간다면, 근처 빵집에서 에그타르트 하나를 사 들고 세랄베스 공원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갓 구운 커스터드의 온기가 남아 있는 채로, 자크 그레베르가 설계한 정원의 자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이 나무 사이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에그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물고, 잠시 그 앞에 멈춰 서 보이는 모든 대상과 공기 감촉을 느껴보는 것. 세랄베스는 그런 순간들을 위해 존재한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