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 산토스 창고에서 다시 태어난 네덜란드 포토뮤지엄

커피 향이 머물던 창고, 사진의 미래를 담다

20세기 초 로테르담 부두에 세워진 산토스 창고는 브라질 커피를 보관하던 거대한 벽돌 건물이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이곳은 네덜란드 사진 문화를 상징하는 네덜란드 포토뮤지엄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재탄생했다. 과거의 산업 유산을 현대적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잇는 이 특별한 장소를 소개한다.

로테르담 산토스 창고에서 다시 태어난 네덜란드 포토뮤지엄

로테르담은 오랫동안 바다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어 온 항구 도시다. 배가 닿고, 화물이 쌓이고, 도시가 팽창하던 20세기 초, 카텐드레흐트(Katendrecht) 부두에 한 거대한 벽돌 창고가 세워졌다. 산토스 창고(Santos Pakhuis). 브라질의 커피 수출항인 산토스(Santos)의 이름을 딴 이 건물은 대서양을 건너온 커피 자루들이 머물던 장소였다. 한 세기 후, 이곳은 네덜란드 사진 문화를 대표하는 네덜란드 포토뮤지엄 (Nederlands Fotomuseum)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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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창고를 뮤지엄으로 개조한 네덜란드 포토뮤지엄 외관 © Photo Studio Hans Wilschut

네덜란드 포토뮤지엄은 암스테르담의 라익스뮤지엄(Rijksmuseum), 반 고흐 뮤지엄 (Van Gogh Museum)과 함께 네덜란드 30개 국립 뮤지엄 중 하나다. 아마추어 사진가 하인 베르트하이머(Hein Wertheimer)가 2,200만 길더(약 1,120만 유로)를 유증하며 2003년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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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포토뮤지엄 내부 © Iwan Baan

뮤지엄은 25년 이상에 걸쳐 독보적인 컬렉션을 구축해 왔으며, 2028년까지 소장 이미지 수는 약 750만 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세기 아날로그 및 다큐멘터리 사진에 중점을 두되, 동시대 실험적 작업 역시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설계, 보존과 대비의 균형

기존 로테르담 빌헬미나피어의 라스 팔마스(Las Palmas) 건물에 자리했던 포토뮤지엄은 소장품과 아카이브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졌다. 리노베이션이 진행 중이던 산토스 창고를 2023년 인수하면서, 산업 유산은 문화 공간으로 방향을 틀었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독일 함부르크의 ‘레너 하인케 비르트 치른 아르히텍텐(Renner Hainke Wirth Zirn Architekten)’와 로테르담의 ‘WDJ 아키텍텐(WDJArchitecten)’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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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포토뮤지엄 내부 © Photo Studio Hans Wilsch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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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 스카이라인을 조망할 수 있는 뮤지엄 루프탑 © Walter Herfst

설계의 핵심은 역사적 외관을 보존하면서 내부에 현대적 기능을 이식하는 것이었다. 붉은 벽돌 파사드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내부에는 총 9층 규모의 전시·보존·교육 공간이 새롭게 구성되었다. 650만 점 이상의 사진 자료를 보관하는 공개형 수장고, 사진 전문 도서관, 교육 스튜디오, 커뮤니티 공간, 암실, 카페, 그리고 로테르담 스카이라인을 조망하는 루프톱 레스토랑까지, 이 건물은 과거 물류 창고의 스케일을 문화적 플랫폼으로 전환했다.

사진을 위한 거실

뮤지엄의 그라운드 플로어는 ‘living room for photography’라는 개방형 콘셉트로 설계되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이 공간에는 유럽 최대 규모 중 하나의 사진집 컬렉션을 갖춘 도서관, 뮤지엄 숍, 산토스 커피 바가 자리한다. 방문객이 직접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정통 포토오토마트(Photoautomat)도 만나볼 수 있다. 아날로그 방식의 오리지널 증명사진 부스로, 디지털 사진에 익숙한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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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위한 거실 콘셉트로 설계된 그라운드 층 © Iwan Baan

박물관 1층에 위치한 ‘네덜란드 사진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of Dutch Photography)’은 관람의 출발점이 되는 공간이다. 이 상설 전시는 1839년경 사진 매체의 발명 시기부터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이르기까지, 네덜란드 사진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사회적·예술적 영향력을 기준으로 선정된 99점의 대표 작품이 전시되며, 안톤 코르빈(Anton Corbijn), 다나 릭센버그(Dana Lixenberg), 비올레트 코르넬리우스(Violette Cornelius), 파울 후프(Paul Huf), 리네케 데이크스트라(Rineke Dijkstra), 에르빈 올라프(Erwin Olaf) 등의 걸작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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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1층에 위치한 명예의 전당 © Iwan B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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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의 오픈 아틀리에 © Iwan Baan

건물의 중심부에는 박물관 소장품과 보존 센터를 수용할 최첨단 온·습도 조절 시설이 마련되었다. 방문객들은 유리 벽을 통해 1842년에 제작된 초기의 다게레오타입부터 현대의 디지털 프린트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컬렉션 공간과 작업실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작품 보존을 위한 특수한 온·습도 환경, 신규 소장품, 그리고 박물관이 관리하는 네거티브, 프린트, 사진 앨범, 카메라 등 다양한 유형의 자료와 사진 복원 및 보존 전문가들의 작업 또한 직접 관찰할 수 있다.

2026년 전시 프로그램은?

2026년 전시 라인업은 박물관의 방향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현재 뮤지엄은 개막 전시인 <Rotterdam in Focus: The City in Photographs 1843 – Now>로 1843년부터 현재까지 약 180년에 걸친 로테르담의 변화를 300여 점의 사진으로 조망하고 있다. 항구 도시의 성장과 전쟁, 재건의 과정이 이미지로 축적되며, 사진이 도시의 집단 기억을 어떻게 형성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동시에 진행 중인 <Ontwaken in blauw>는 19세기 인화 기법 시아노타입을 재해석한 전시다. 초기 청사진과 식물 도판에서 출발해, 동시대 작가들이 이 고전적 기술을 어떻게 확장하는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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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오픈 전시인 <Rotterdam in Focus: The City in Photographs 1843 – Now>(위), <Awakening in Blue> (아래) © Iwan Baan

6월에는 지속 가능 농업을 주제로 한 <Good Food>전이 열린다. 식량 생산과 환경 문제를 사진 매체를 통해 탐구하며, 이미지가 사회적 의제를 어떻게 환기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QUICKSCAN NL #3: Photography Now>전은 동시대 네덜란드 사진의 흐름을 점검하는 프로젝트다. 새로운 작가와 경향을 소개하며 현재 사진계의 담론을 압축적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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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포토뮤지엄 © Photo Studio Hans Wilschut

커피 향이 가득했던 항만 창고는 이제 빛과 이미지가 숨 쉬는 공간이 되었다. 산업의 흔적 위에 겹쳐진 사진의 시간은 이곳을 단순한 박물관이 아닌, 사진 애호가들을 설레게 하는 또 하나의 성지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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