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치는 벽, 2026 서펜타인 파빌리온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주목받는 신진 건축가가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고 있다. 올해는 2015년 설립된 멕시코시티 기반 건축 스튜디오 란사 아틀리에가 그 바통을 잇는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어느덧 25회를 맞았다. 서펜타인 갤러리가 주도하는 이 임시 건축 프로젝트는 이제 건축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연례 행사로 자리 잡았다. 자하 하디드를 시작으로 렘 콜하스, 헤어초크 & 드 뫼롱 등 동시대 최고 건축가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2024년에는 매스스터디스 조민석 건축가가 설계를 맡아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프로젝트가 단순히 유명 건축가의 명성에 기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목받는 신진 건축가가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고 있으며 형식 면에서도 서펜타인 갤러리의 실험적·학제적·지역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참여형 공공 예술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올해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주인공은 멕시코의 젊은 건축 스튜디오 ‘란사 아틀리에Lanza Atelier’. 건축가 이사벨 아바스칼Isabel Abascal과 알레산드로 아리엔소Alessandro Arienzo가 2015년에 설립한 멕시코시티 기반의 이 건축 스튜디오는 일상과 비격식에 뿌리를 두고 기술, 공예, 공간 지능이 예상치 못한 조건에서 발현되는 방식에 주목해왔다.
란사 아틀리에는 사용, 조립, 만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며, 대화와 집단적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는 건축 방식을 제안한다. 특히 드로잉과 모형 제작 같은 실습 중심의 디자인 방법론에 중점을 두는데, 이를 재료, 형태, 구조를 사고하는 능동적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펜타인 갤러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란사 아틀리에의 건축은 항상 지역적 맥락, 재료, 삶의 경험과 깊이 교감한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란사 아틀리에는 에너지가 지속될 수 있는 현대적 공간을 창조한다. 이들의 공간은 사람들이 더 연결되고, 자비로우며, 창의적인 미래를 상상하도록 초대한다”라고 평했다.

오는 6월 6일 서펜타인 사우스 갤러리 앞 잔디 마당에서 공개 예정인 파빌리온의 제목은 ‘서펜타인’. 이 이름은 갤러리 인근의 곡선형 인공 호수를 암시하는 동시에 굽이치는 벽을 의미하는 건축 용어이기도 하다.• 실제로 설계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잔디 마당을 가로지르면서 갤러리까지 물결치며 이어지는 벽돌 벽. 다소 완만한 곡선의 맞은편 벽은 인근 나무의 높이를 고려해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두 벽 사이에는 여러 개의 벽돌 기둥을 배치하고 그 위로 반투명 지붕을 설치해 빛과 공기가 자연스럽게 공간에 스며들게 했다. 폐쇄성과 개방성 사이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드는 장치인 셈이다. 특별히 서펜타인 갤러리는 올해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프로젝트의 첫 스타트를 끊었던 자하 하디드 재단과 특별 협력할 예정이다.
• 본래 서펜타인serpentine은 ‘뱀처럼 구불구불한’이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다. 고대 이집트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진 곡선의 벽은 크링클-크랭클crinkle-crankl 벽이라고도 부른다.
Interview
이사벨 아바스칼, 알레산드로 아리엔소 란사 아틀리에 공동대표

어디에서 이번 파빌리온의 영감을 얻었나?
파빌리온 제안서를 작업하던 중 영국의 건축양식인 ‘서펜타인’을 접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구불구불한 형태 덕분에 직선 벽보다 벽돌 사용량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정원사들이 동서 축으로 이 벽을 쌓으면 남향에서 흡수한 열이 밤에 방출되어 과일이 자라기에 적절한 환경이 조성된다. 더 적은 자원을 사용해 더 많은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과소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의적절한 교훈이라고 보았다. 또 같은 단어가 수경 시설, 호수, 장소, 건축 요소인 벽에 쓰일 수 있다는 점이 마법처럼 느껴졌다. 멕시코 주변의 고대 문명권인 메소아메리칸Mesoamerican의 우주관에서 뱀이 차지하는 강력한 위상을 떠올려보면 더더욱 그렇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벽 형태는 드러내기도, 숨기기도 하는 장치로 고안되었다. 또 움직임을 형성하고, 리듬을 조절하며, 근접성, 방향성, 멈춤의 문턱을 구성한다고도 이야기했는데.
많은 전문가들이 파라다이스paradise(낙원)의 어원은 아베스타어Avestan인 ‘파이리다에자pairidaeza’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주변(pairi)’과 ‘담장(daeza)’으로 이뤄져 있다. 즉 담장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뜻한다. 우리는 주변과 담장의 만남 속에서 더욱 매력적인 개념이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건축학적 관점에서 낙원은 인간의 개입과 주변 자연환경 사이의 균형 속에서 탄생한다.

벽돌 기둥의 리드미컬한 반복 구조로 설계한 이번 파빌리온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은유적 다리가 된다고 들었다. 라틴아메리카 건축가로서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일까?
이번 작업은 우리의 배경이기도 한 라틴아메리카의 맥락과 유럽 및 고대 이집트의 건축 유산 사이에 연결 고리를 구축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기회였다. 우리는 이 파빌리온을 계기로 대중이 건축에 주목할 수 있다고 본다. 방문객들이 우리는 모두 건축물에 거주하며, 어떤 식으로든 건축물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공감하기를 바란다. 또한 세계적 생태 위기 속에서 집단적 경험을 중시하는 건축이 무엇인지 함께 성찰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6월에 공개할 파빌리온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돌아가기를 바라나?
이사벨 아바스칼 앉아서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을 일부 마련해두기는 했지만, 우리는 방문객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간과 교감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파크 나이트’, ‘가족의 날’ 등 다양한 라이브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가 크다. 공연자, 음악가, 시인, 예술가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예측할 수 없지만, 바로 그 예측 불가능함을 품을 수 있다는 점이 건축의 가장 큰 미덕이다.
알레산드로 아리엔소 예상치 못한 것을 바라고 있다. 벽돌 소재는 분명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에 벽돌을 활용하는 방식이 매우 특별해서 이로 인한 공감대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