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듣다, 포트넘앤메이슨의 ‘바 오브 초콜릿’

포트넘앤메이슨은 뉴로가스트로놈에 주목해, 청각을 활용한 새로운 초콜릿 바 패키지를 내놓았다. 음악가들과 함께 16가지 맛에 맞춰 16곡의 피아노 곡을 새롭게 작곡했고, 이 음악의 악보를 패키지에 인쇄했다.

맛을 듣다, 포트넘앤메이슨의 ‘바 오브 초콜릿’

온라인 상거래가 일상화됐어도 여전히 마트 진열대는 디자인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장소다.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고 즉각적인 구매를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콜릿 바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초콜릿 브랜드가 패키지 실험을 거듭한다.

영국의 유서 깊은 백화점 식료품 브랜드 포트넘앤메이슨Fortnum & Mason 역시 이 치열한 시장 안에서 새로운 답을 모색해왔다.(국내에서 포트넘앤메이슨은 주로 티로 알려졌지만, 19세기부터 초콜릿 페이스트를 판매할 정도로 초콜릿 분야에도 유서가 깊다.) 그리고 최근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아더웨이Otherway와 함께 새로운 패키지 디자인을 입힌 컬렉션 ‘바 오브 초콜릿Bars of Chocolate’을 내놓았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뉴로가스트로노미neurogastronomy•에 주목했다는 것. 초콜릿이 매우 감각적인 제품이라는 점에 착안해 맛을 환기시키는 장치로 지금까지 충분히 활용되지 않았던 청각을 활용하기로 했다. 음악 프로덕션 회사 매카소Mcasso, 작곡가 네이선 브리튼과 자스민 미든과 함께 16가지 맛에 맞춰 16곡의 피아노 곡을 새롭게 작곡했고, 이 음악의 악보를 패키지 안쪽에 인쇄했다.

작업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각 음악이 고객에게 하나의 경험으로 인식될 만큼 충분한 표현력을 갖추는 동시에 한정된 패키지 면적에 들어갈 정도로 간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패키지 앞면에 인쇄한 오리지널 일러스트레이션은 컬렉션의 이러한 감각적 지향점을 시각화한 것이다. 일러스트로 참여한 러시아 출신의 아티스트 빅토리아 세미키나Victoria Semykina는 제공한 음악과 초콜릿의 풍미 양쪽에서 영감을 얻었다. 예를 들어 ‘과일과 견과류의 판당고(The Fruit & Nut Fandango)’에는 정장을 입은 커플이 밀착해 춤추는 장면을, ‘마지막 에스프레스(The Last Espresso)’에는 앞면에 커피를 쏟은 흔적이 남은 이미지를 배치해 앞으로 펼쳐질 감각적 경험을 은근히 예고한다.

프로젝트에서 가장 유념한 것은 ‘설명하고 싶은 유혹을 참는 것’, 즉 지나친 스토리텔링을 피하는 일이었다. 소리와 맛은 본질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기에 이를 노골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암시하는 디자인에 집중했다. 동시에 포트넘앤메이슨의 헤리티지를 존중하며, 영국 특유의 기지와 장인 정신, 그리고 즐거운 럭셔리 감각을 정제된 타이포그래피와 세심한 디테일을 이용해 유지하고자 했다. 또한 과도하게 장식적이고 무겁거나, 배타적·엘리트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오래된 럭셔리의 문법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포트넘앤메이슨의 이본 이셔우드 제품 & 패키징 디자인 총괄은 “우리는 초콜릿을 먹는 경험이 첫 한 입을 베어 물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길 바랐다. 패키지는 고객을 작은 ‘발견의 순간’으로 초대한다. 각 바는 일러스트와 질감, 그리고 장난기 있는 디테일을 통해 저마다 작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디자인이 즐거움을 불러일으켜, 혼자 먹는 초콜릿조차도 마치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처럼 느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3호(2026.03)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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