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 구병준이 말하는 앞으로의 공간, 이태원 ‘DOQ’
피피에스 구병준 대표가 이야기하는 앞으로의 공간에 대하여
오늘날 ‘공간’의 의미는 깊고 방대하다. 문화적·사회적 공간을 뛰어넘어 브랜드 비즈니스를 위한 공간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새로운 공간을 빠르게 선보이기 바쁜 요즘의 공간들. 그렇다 보니 브랜드의 새로운 공간 소식이 들려와도 대중은 이미 어디서 본 듯한 공간 기획, 성의 없는 고객 경험에 피로해진지 오래라는 반응이다. 반면 그 가운데서도 트렌드에서 조금 벗어난 뒷단에서 공간이 대중에게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과 가치 연결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고심하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피피에스의 구병준 대표. 그가 지난 4월 새롭게 공개한 공간 이태원 ‘DOQ’ 이야기와 그가 내다보는 앞으로의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 나누었다.
Interview with
구병준 피피에스 대표
피피에스의 새로운 공간을 오픈하기까지
지난해 밀라노 한국공예전 <Shift Craft>을 선보인 이후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대표님 근황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작년까지 정말 많은 일을 맡았던 탓에 밀라노 전시를 끝내고는 일부러 타이트한 일들을 내려놓고 쉬엄쉬엄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트렌드를 분석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죠. 그렇다고 일을 쉰 건 아니고, 양보다는 질이라는 생각으로 만약 세 가지 일을 할 것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제대로 된 한 가지만 진행하려 했어요. 시대가 참 빠르게 흘러가잖아요. 작년 여름부터 현재까지 많은 것들이 바뀌어 왔어요. 디자인, 공예, 트렌드, 리테일 등 모든 분야가 ‘MZ’라는 이슈를 건드리면서 바뀌고 있는데 저는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트렌드 문화가 겪어야 하는 중간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5년~10년을 갈 트렌드가 아니라 잠깐 스쳐가는 것인데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가 놓치지 말고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고요.
전 세계적으로 봐도 우리나라가 비정형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보니 트렌드 소비가 엄청나게 빨라졌잖아요. 그간 주도권이 디자이너, 기획자에게 있었다면 이제는 브랜드나 공간을 소유한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양상으로 바뀌었고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모든 콘텐츠가 ‘소비지향성’으로 흐르고 있어 비유하자면 우리는 풀코스 마라톤을 해야 하는데 100m 달리기를 하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 거죠. 물론 이러한 현상도 경험하는 건 좋지만 결국 남는 건 ‘콘텐츠’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류를 잘 살리면서 디벨롭도 잘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그러한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여전히 보여주기식이 매우 강하다고 해야 할까요?
나름의 휴식기에도 트렌드·콘텐츠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내려놓지 않고 지내셨네요.(웃음)
방금 말한 비즈니스 성격의 콘텐츠도 분명 필요하지만 저처럼 조용히 뒤에서 다음 5년, 10년 뒤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을 버는 것이 삶의 목표라면 그러한 니즈가 있는 곳에서 활발히 활동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는 그쪽보다는 현재 한국 트렌드가 가지지 못한 부족한 부분을 뒤에서 백업하는 것이 저와 더 맞지 않나 생각한 것이고요. 이제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더라도 보다 길게 가고, 시간이 지나도 탄탄하게 남는 모든 것의 베이스가 되는 쪽을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 1년 동안에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앞으로를 내다볼 때 정말 더 많이 바뀔 거라고 봐요. 모쪼록 저는 요즘 이렇게 쉬엄쉬엄 일하면서 트렌드를 분석하고 어느 방향으로 조금 더 나아가야 할지 짚어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네요.(웃음)
가장 최근에는 국가유산청에서 개최한 ‘궁중문화축전’에서 전시 <공생(共生) : 시공간의 중첩> 기획 및 감독을 맡아 선보였습니다.
작년에 제안이 들어왔을 당시 기획안을 보자마자 바로 한다고 했어요. 가장 첫 번째로는 트렌디하지 않아서 좋았고, 두 번째로는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한 번에 오케이 했던 프로젝트였죠. 그 기간에 다른 프로젝트도 여럿 있었지만 어떤 것들보다도 가장 1순위로 두고 진행했던 것 같아요. 지금 전 세계에서 ‘한국’은 엄청 중요한 단어처럼 인식되기 시작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K-팝, K-푸드, K-패션, K-코스메틱 등과 같은 것들은 의식주에 해당하는 소비성에 가까운 키워드에 불과하잖아요. 저는 한국 전통에 대한 깊이를 보여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고요. 전시 감독 제안이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생각했던 건 ‘만약 내가 프랑스나 일본에 간다면 무엇을 보러 갈 것인가’ ‘그 나라를 알려면 나는 어디를 가서 무엇을 봐야 할 것인가’였어요. 궁중문화축전은 내국인도 타깃이지만 외국인 역시 중요한 타깃이었기 때문에 외국인이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이를 전시로 펼쳐 보인다는 부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요. 그래서 결과물은 동적이기보다 정적으로, 전시를 위한 전시가 아닌 전시로 완성하고자 했어요.
외부 행사 및 전시 기획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 지난 4월 오랜만에 피피에스의 자체 공간인 ‘DOQ’ 오픈 소식을 전했습니다. 챕터원 다음으로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어요.
‘DOQ’는 2019년부터 준비했던 공간이에요. 그동안 챕터원에서 ‘갤러리 도큐먼트’라는 이름으로 스무 번의 전시를 진행했었는데 이 ‘갤러리 도큐먼트’는 저평가된 작가나 브랜드를 발굴해 소개하고 이를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는 목표로 진행된 전시로 수준 높은 깊이감으로 소개해온 저희의 정체성과도 같은 프로젝트였죠.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전시를 개최하고, 또 보러 오는 일상이 스톱되다 보니 잠시 중단을 하게 됐었죠. 그런 과정에서 저희는 이 전시를 통해 추구하는 가치를 굉장히 중요시하게 생각하다 보니 그러면 조금 더 탄탄한 프로젝트로 디벨롭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러려면 이 전시를 위한 단독 공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고, 자연스레 공간 ‘DOQ’를 구상하기 시작했던 거죠. 기존에는 갤러리 성향을 담아 ‘갤러리 도큐먼트’로 진행했다면 이제는 갤러리라는 의미 자체가 필요 없어졌다고 생각해 온전한 ‘DOQ’만을 남겼죠.
원오원아키텍츠 최욱 건축가의 손길 닿은 ‘DOQ’
그렇게 탄생한 공간 DOQ는 원오원아키텍츠 최욱 건축가와 함께 지하 1층부터 2층까지는 전시복합문화공간으로, 3층부터 4층까지는 대표님의 주거 공간이 공존하는 하나의 건축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태원에 자리를 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이제 챕터원도 10주년을 맞이하다 보니 제대로 된 공간을 하나 갖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태원 부지 일부를 매입했어요. 땅을 사서 저희 입맛에 맞는 건물을 지은 거죠. 처음 동네를 알아볼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최대한 조용한 동네였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너무 화려한 동네는 피하고 싶었죠. 사실 이제는 교통편이 중요한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교통편이 좋고, 유명한 동네에 있지 않고 도심 안에서도 한적하고 나무가 많은 곳을 바랐죠. 제가 이전에 이태원이라는 동네에서 오랜 시간 살다가 다른 동네 아파트로 이사를 해 살아보니 마음 한 편에 계속 이태원이라는 동네가 어렴풋이 자리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이태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이 동네를 집중적으로 알아보다가 지금의 자리를 만나게 되었어요.
공사 최종 단계에서 콘크리트 벽면의 질감만 매끈하게 마무리했을 뿐,
그 어떤 인테리어도 가미하지 않음으로써 중립적 공간을 완성하고자 했다. ⓒ원오원아키텍츠
건축가를 선정하는 일도 꽤나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이번 공간 작업을 최욱 건축가와 함께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건물을 짓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딱 한 가지. ‘H 모양의 집을 짓겠다’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해외 어디를 가봐도 H 형태의 내부 공간이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죠. 함께 할 건축사사무소를 찾기 위해 몇 군데 미팅을 진행했지만 그중 제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분이 최욱 선생님이셨어요. 개인적으로 평소에도 최욱 선생님의 건축물이 세련됐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두 차례의 미팅을 통해 자신의 건축 스타일을 앞세우기 보다 사람 중심의 건축을 우선시한다는 게 느껴져 마음이 더욱 동했던 것 같아요. 보통 건축가들은 유명해질수록 자신의 건축 스타일을 앞세우려고 하는데 선생님은 그렇지 않으셔서 더 신뢰가 갔던 부분도 있었죠.
구병준·김가언 대표의 주거 공간으로 가구와 집기는 챕터원 제품을,
공간 곳곳에는 최욱 건축가의 시그니처 수납장과 파이어 플레이스 등을 배치했다. ⓒ원오원아키텍츠
지금 해당 건물에서 직접 살고 있잖아요. 직접 살아보니 만족도는 어떠한가요?
1000%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웃음) 앞서 말한 것처럼 저는 선생님께 H 구조였으면 좋겠다는 것만 요청드리고 그 외에 어느 것도 요청사항을 드리지 않았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하나하나 관여를 했다면 지금보다 만족하는 결과물을 만들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건물 외관의 자재와 컬러 정도만 함께 의논하고 그 밖의 사항은 원오원 아키텍츠를 신뢰하려 했고, 그 덕분에 제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공간들까지 마주할 수 있었고요. 또 단순 상업공간이 아니라 전시공간이자 저희가 실제로 거주하는 공간이다 보니 직접 살면서 느끼는 부분들이 많아요. 아침에 일어나 건물의 모서리를 보고, 계단을 오르면서 코너를 바라보는 시간을 조금 더 밀접하게 가지다 보니 이 공간이 얼마나 잘 완성되었는지 피부로 더욱더 와닿는 것 같아요. 태어나서 집을 몇 번이나 지어보겠어요. 최욱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웃음)
구병준이 제안하는 앞으로의 공간
트렌드만을 위한 팝업 공간이 아닌 프라이빗 한 공간으로 운영하며 숨은 가치를 형성해 갈 예정이라고요. DOQ를 앞으로 어떠한 공간으로 운영해 나갈 예정인가요?
지금도 DOQ 공간 사용 관련해서 문의가 엄청 들어오고 있어요. 여러 분야의 브랜드에서 팝업 공간을 물색하는 거죠. 저는 현재의 팝업 트렌드가 많이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불특정 다수를 초대해 입장객 수로 그 지수를 평가하는 트렌드는 이제 바뀌지 않을까요? 저희 DOQ 공간은 불특정 다수가 찾는 공간이 아닌, 저희가 지향하는 공간 성향에 맞게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길게 내다봤을 때도 저희를 찾아온 브랜드가 이 공간에서 팝업 및 행사를 진행한 게 후회되지 않게끔 만들어 줄 수 있는 프라이빗하고 감도 높은 공간으로 운영해 나갈 예정이에요.
지하 공간의 개방감과 공간의 연결성을 가미했다. ⓒ원오원아키텍츠
약 10년 이상 다양한 전시 기획을 진행하며 고유한 미감의 척도를 쌓아 왔어요. 대표님이 의도한 DOQ의 공간 미감은 무엇인가요?
막연하게 들릴 수 있지만 ‘누군가의 집이 아닌 중립적인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항상 해외 사례를 레퍼런스로 자주 삼거든요. 유럽, 미국, 일본에서 제가 몸소 느꼈던 경험을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정형화된 공간보다는 굉장히 중립적인 공간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는 했더라고요. 예를 들면,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지은 집에서 진행하는 전시나 일본에 가면 구마 켄고(Kuma Kengo)가 지은 건축물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전시 같은 것들이요.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에서는 최욱 건축가의 손길이 닿은 중립적인 건물에 다양한 콘텐츠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더불어 주택가라는 동네 특성을 고려해 주변 환경 분위기에도 어우러지게끔 흡수시키고자 했고요.
중립적인 공간으로 완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있다면요?
‘건축이라는 베이스 위에 아무것도 덧대지 않는 것’. 르 코르뷔지에의 집도 100년의 세월을 머금었다고 해서 꾸미거나 하지 않잖아요. 단지 유지 보수 정도만 할 뿐이죠. 이 공간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DOQ 공간에 와보면 아시겠지만 건축물을 완공하고 난 뒤의 모습 그대로에요. 재료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죠. 화려한 걸 덧붙여 멋있어 보이는 건물보다는 단단한 건축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지향하는 바가 느껴지도록 한 거예요.
대표님이 평소 전시 및 공간을 기획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가치 및 요소는 무엇인지 궁금하며, 또 공간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요소(매력)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작품보다 좌대가 더 멋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전시 공간의 경우 작품을 우선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공간이 작품 보다 한 레벨 밑에 숨죽이고 있어야 해요. 그렇다 보니 전시를 기획하더라도 공간은 언제나 덤덤하고 탄탄한 느낌을 베이스로 가져가려고 하는 편이죠. 요즘의 트렌드는 포토존 위주로 작품을 바라보려 하지만, 그것보다도 마음의 안정감이 드는 공간 전시 기획을 위해서 힘을 조금 더 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힘을 빼고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끔 해야 하는 거죠.
최근 서울에서는 많은 공간과 팝업이 빠르게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있어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지금보다 유의미한 ‘공간’을 많이 만들어 가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게 한국의 진짜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이 이렇게까지 성장한 데에는 유행을 타고, 유행이 죽기를 반복하면서 그 사이에 발생한 변수들이라든지 핵심을 캐치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행위 자체가 없는 나라도 많아요. 좋고 나쁨을 떠나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또 다른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하는 거죠. 그래서 결국엔 정답이 없다는 거예요. 가로수길이 아무리 유명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동네(공간)이 생기고, 또 다른 동네(공간)에 가서 도전해도 또 인기가 죽으면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죠. 이런 식으로 돌고 돌면서 성장한다고 보거든요. 처음부터 성인이 되지는 않잖아요.(웃음) 비유하자면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고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는 그런 개념인 거죠. 점차 나아가면서 다양한 걸 경험하게 되듯요.
한국이 그러한 면에서는 엄청 능숙하게 시류를 잘 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빠르게 생겨나고 빠르게 사라지는 것 또한 장점이라고 생각하고요. 트렌드가 죽었다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살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한 거죠. 또 한 발 나아가 거기서 포착한 문제점을 다른 사람이 끌어올려서 다르게 전개해 보이는 식으로 꼬리 물기로 이어져서 결국 그래프가 올라가는 것이고요. 팝업 공간이 많아지고 이슈화되는 것에 대해 저는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마땅히 거쳐야 하는 과정인 거죠.
그렇게 완성한 공간 DOQ에서 첫 번째 전시로 메산 분재(Mesan Bunjae)와의 협업 전시 <Botanical Collection>를 선보였습니다. 메산 분재와의 식물 전시를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2018년 챕터원을 오픈할 당시 공간의 요소를 크게 ‘분재’ ‘수석’ ‘박제’ 이 세 가지로 채웠었어요. 공간 전면에 내세우진 않지만 구석구석 은은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장치로 두어 점차 사람들이 익숙하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랐었죠. 그런데 그 당시 저도 분재를 제대로 키워본 경험이 없다 보니 잘 키우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요. 최근 식물을 반려 식물로 바라보는 이들이 늘어났고, 각자의 식물 취향이 견고하게 자리 잡아가는 중이잖아요.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집에 들어갈 때 꽃을 사서 들어가는 행위 또한 ‘돈이 많아서’가 아닌, ‘소비의 개념이 넓어진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고요. 식물이든 나무든 수형이 예쁜 걸 찾는 문화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과거에는 플라타너스 나무, 은행나무 같은 길거리 가로수가 우리 일상 속 유일한 조경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직접 자연의 멋있는 형태 미감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거죠.
딱 지금 시기가 사람들의 관심이 식물에서 나무로 넘어가는 때라고 생각했고요. 그러다 보니 각자의 거실에 들일 수 있는 ‘작은 정원’이라는 개념으로 분재를 전시 주제로 선보이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사유원 조경에 참여하셨던 유수형 교수님의 분재 브랜드 ‘메산 분재’와 함께 전시를 기획하게 됐죠. 분재는 각각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해서 마치 작품을 구매하는 것과도 비슷해요. 그래서 한번 집에 들일 때 정말 신중하게 고르게 되는 매력이 있죠. 이번 전시는 어떻게 보면 판매를 위한 전시라기보다, 사람들이 이러한 문화를 보다 가까이에서 접할 타이밍이 되지 않았나 하는 취지가 더 컸고요.
다가오는 6월에 새로운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고요. 어떤 전시인지 살짝 공개해 줄 수 있나요?
늘 그랬듯 DOQ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작가 우선보다는 어떠한 주제를 잡고 주제가 우선이 되는 기획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 주제가 이야기하는 방향성과 그에 맞춰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식이죠. 다음 전시는 ‘샴(Siamese)’을 주제로 준비 중이에요. 사람으로 치면 두 사람이 붙어있고, 물건으로 치면 두 사물이 붙어있는 것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 혹은 가상과 현실을 샴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낼 예정이에요. 이번 전시도 꽤 오래 준비한 전시에요. 3년 전부터 준비한 전시라 건물을 지을 당시에는 우리 첫 전시로 선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요. 이 전시는 제대로 선보이고 싶어 꽤나 오랜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단순 재미로 선보이는 전시는 아니고요. 예술과 공예 그 경계에 있는 전시가 될 예정이에요. 최근 기능주의에 초점을 맞춘 작가들이 늘어났는데 어떻게 보면 작가는 기능할 수 있는 물건만 만드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이제는 기능보다는 어떠한 철학적인 개념을 녹여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는 저의 바람도 담겨있고요.
피피에스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저는 챕터원을 만들 때부터 생각했어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왔을 때 ‘한국에 왔으면 여기는 가봐야 해’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는 것 같고요. 그렇다 보니 남들이 다 하는 정체불명의 트렌드를 쫓기보다는 저희는 한 스텝 앞서서 먼저 제시하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앞으로도 쭉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무언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저희가 트렌드를 리드하겠다는 말은 아니고요. 그런 것보다는 그래도 이 일을 10년 넘게 했는데 ‘진짜’는 되어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인 거죠. 그러한 관점에서 전면에 나서서 트렌드를 주도하는 곳들이 있는가 하면, 저희처럼 숨어서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