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디자인진흥원 신임 원장, 강윤주
지난 1월, 강윤주 전 계원예술대학교 교수가 제18대 한국디자인진흥원장에 취임했다.

한국 디자인의 성장과 진화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궤를 함께한다. 1970년에 설립한 한국디자인포장센터를 전신으로 하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은 그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다시 한번 맞이한 시대의 변곡점에서 취임한 강윤주 한국디자인진흥원장에게 앞으로 이 기관과 한국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먼저 한국디자인진흥원장으로 취임한 소감을 듣고 싶다.
사실 이상하리만치 특별한 감회가 없다.(웃음) 다만 공기관이라 그런지 막중한 공적 책임감은 느낀다. 기업에서 업무, 학교에서 학생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 나라의 디자인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이를 어떻게 정의하고 질문을 던질지 생각이 많다.
앞서 이야기했듯 오랫동안 대학 강단에 섰다. 학생들을 지켜보며 느낀 세대의 변화도 있을 것 같은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습득 능력이 무척 빠르다는 것이다. 생성형 AI가 대중화된 것이 2022년이었고 이듬해부터 학생들과 이 기술을 수업에 활용했는데 매우 신속하고 유연하게 수용하더라. 지속 가능성이나 유니버설 디자인 등 디자인의 공적 영역에 대한 생각이 깨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개발도상국의 패러다임에 갇힌 기성세대와 확실히 차이가 난다. 더러 젊은 세대를 폄하하는 기성세대도 있는데 오히려 나는 이들에게 배울 게 많다고 본다.
참 얄궂은 시대에 취임했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생성형 AI를 바라보는 디자인계의 복잡한 심경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실제로 자료를 살펴보니 최근 2~3년간 기업체에서 디자이너를 채용하는 비중이 근소하지만 감소했더라. 생성형 AI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술이 모든 디자이너를 대체한다고 볼 수도 없다. 결국 생성형 AI에 밀려나는 건 기능공처럼 일하는 디자이너가 아닐까? 생성형 AI를 경쟁 상대로 보는 발상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 퍼스널 컴퓨터가 그랬고, PC 통신이 그랬던 것처럼 AI는 결국 도구일 뿐이다. AI에 대체되지 않기 위해 오늘날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소양은 예술적 지능(artistic intelligence)이라고 본다. 공감, 감성, 도덕과 윤리 등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을 훈련한다면 오히려 디자인계의 황금기가 도래하지 않을까? 그래서 AI 리터러시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런데 생성형 AI에 대한 불안감이 단순히 일자리 때문만은 아니다. 저작권 침해 논란도 꾸준히 제기되지 않나?
물론 저작권 침해 등 현실적 문제를 간과할 순 없다. 3개월 단위로 급격히 기술이 진화하는 만큼 예상치 못한 문제는 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기술을 폐기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진짜 집중해야 하는 것은 이를 잘 활용하고 보완해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AI를 하나의 협업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AI가 생성하는 이미지는 어디서 본 듯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디자인이다. 창의적인 개인의 고유한 아이디어까지 훔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모두가 창의성을 발현할 순 없는 일 아닌가?
글쎄, 내가 오랫동안 학교에 머물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우리의 외모가 모두 다르듯 저마다 고유의 창의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낼 자신감이 부족한 것뿐이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을 때 누군가 그것은 틀렸다고 지적할까 봐 위축되는 것이다. 그러면 창의성은 자신의 머릿속이나 작업 컴퓨터 폴더 안에만 머물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믿을 때 다른 사람도 나를 믿어주기 마련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을 중심으로 교육 혁명이 일어났다. 그중 독일이 기치를 내건 목표가 강한 자아를 만드는 것이었다. 강한 자아야말로 고유의 창의력, 예술적 지능을 개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생성형 AI의 도래가 위기 의식을 고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K-콘텐츠 열풍으로 우리 사회는 유례없는 주목을 받고 있다. 이것은 국내 디자인 생태계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디자인 정체성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지난 2월에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누가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이탈리아다움이 느껴지지 않나? 독일, 이탈리아, 일본…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어도 막연하게나마 어떤 인상이 전달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디자인은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 디자인계에서 이러한 고민의 시간이 부족했던 것 아닐까? 각자 너무 바쁘게 살아왔다. 덕분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여기에 대해 돌이켜볼 시간이다. 한국 디자인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취임 후 디자인계 외부 전문가 여섯 분을 앰배서더로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데 디자인이 일조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선 좀 더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렇다. K-팝, K-푸드, K-뷰티 등이 세계적 관심을 받으며 국내외에서 관련 박람회, 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각 아이템이 훌륭해도 전체적인 아이덴티티가 부실하다 보니 미숙한 이미지가 연출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심이 한때의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하게 되려면 공공 영역에서 국가 디자인 정책과 국가 브랜딩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금은 디자인 분야에 따라 정부 조직으로 나뉘어 있어 협업이 쉽지 않고, 때로 중복되기도 한다. 중앙 행정부서 중 정부 정책을 브랜딩하고 홍보하는 일을 안 하는 곳이 없는 만큼 모든 디자인 관련 업무를 하나의 조직으로 아우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의 외연 확대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지난 1월 취임사에서도 디자인이 전문가 중심의 담론을 넘어 시민의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설립 취지를 보면 첫째가 산업 증진, 둘째가 국민 행복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산업 증진보다 국민 행복이 우선 아닐까?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공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 지속 가능한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 안전 디자인이 중요하다. 안전한 출퇴근길, 고령자도 당황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 UI, 신체 조건에 상관없이 사용이 편리한 문고리…. 친절하고 다정한 디자인이 필요한 시대다. 이런 것들이 결국 선진국의 지표가 된다.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진행할 일에 관해 묻고 싶다.
조만간 디자인계 인사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또 한 가지는 교육이다. 지금 디자인계에 도사리고 있는 AI에 대한 불안은 대부분 무지에 기인한다고 본다. 따라서 관련 교육을 통해 이를 경감시키려고 한다. 사실 해당 자격증이나 인증 마크를 마련하는 일도 검토 중인데 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또한 안전 디자인이나 유니버설 디자인 등 일반 기업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아카데미와 인증 체계 마련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