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나인
레벨나인은 2016년 김선혁 디렉터가 설립한 문화 예술 리소스 큐레이션 컴퍼니다.
레벨나인은 2016년 김선혁 디렉터가 설립한 문화 예술 리소스 큐레이션 컴퍼니다. 경영학과 문화기술을 공부한 김선혁은 2014년 ‘이화동 마을 박물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을 계기로 디자이너 김정욱을 만났다. 이후 뜻이 맞는 기획자, 독립 큐레이터, 디자이너, 개발자, 연구자들이 레벨나인에 모여들었다. 현재 여러 문화 예술 기관, 미술관, 기업과 협업하며 아카이브를 디지털 형식으로 큐레이션하는 프로젝트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전시장에 방문해서 작품을 관람하는 일조차 쉽지 않은 이 시기에 VR 전시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전시장을 똑같이 옮겨온 가상 공간에서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여 디지털화된 작품을 감상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VR 전시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사용자와 충분히 인터랙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2016년 카이스트에서 문화기술을 공부한 김선혁이 창업한 레벨나인은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서 사용자 경험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문화 예술 리소스 큐레이션 컴퍼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김정욱을 비롯해 개발자, 연구자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이곳에서는 문화 예술 분야의 아카이브를 디지털로 보여주는 획기적인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매해 미술관과 기관에서는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아카이빙하지만 정보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디지털 데이터로 가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레벨나인은 국립현대미술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서울공예박물관 등의 기관에서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3D 데이터를 제공받아 이를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재가공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했다. 보통 전시장에서는 미디어월 같은 키오스크의 디지털 화면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지만 레벨나인은 그런 단순한 해법에 만족하지 않는다. 디지털 인터페이스 속에서 헤맬 때 쌓이는 피로도는 결국 콘텐츠에 대한 흥미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레벨나인이 제시하는 솔루션은 사람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태의 매개체를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제시해 디지털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흥미가 생기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일례로 2017년 서울시립박물관이 창신동 백남준 생가 터에 조성한 백남준기념관은 거장의 작품이 단 하나도 없는 버추얼 뮤지엄으로 문을 열어 화제가 되었다. 레벨나인은 총 782건의 백남준에 대한 자료 정보와 425장의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고민했고 브라운관 TV의 다이얼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TV는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에서 자주 등장하는 매체였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백남준의 거의 모든 것: 백남준 버츄얼 뮤지엄’은 TV 다이얼을 돌리면 채널에 따라 10년 단위로 분할된 백남준의 연대기를 담은 영상이 스크린에 펼쳐지도록 기획한 작업이다. 2018년에는 경기문화재단의 의뢰로 ‘경기도 메모리, 기억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고려 시대 고서에 ‘경기’라는 이름이 등장한 지 1000년을 기념해 경기도의 기록을 담은 1003개의 이야기 카드를 보여주는 전시가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레벨나인은 서가에서 책을 꺼내는 아날로그적인 행위와 디지털 방식의 정보 전달을 결합한 형태로 프로젝트를 풀어갔다. ‘기억의 서가’에서 시대별, 키워드별로 분류된 이야기 카드를 꺼낸 다음 ‘지혜의 책상’ 앞에 올려두면 센서가 카드에 숨겨진 NFC 칩과 손 동작을 인식해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처럼 공간 속에서 정보가 펼쳐진다. 레벨나인이 기획한 ‘APAP 아카이브 미디어’, 스튜디오 씨오엠과 협업해 제작한 ‘문화역서울 284 공간 투어’ 도슨트 미디어,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 P)에 설치한 ‘독립 서점 아카이브 미디어’ 모두 사용자가 물건을 움직여 디지털 정보에 접속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AR·VR 기술의 발전으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레벨나인은 아날로그적 행위를 통해 디지털 환경으로 거부감 없이 접속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UX 디자인은 새로운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MZ세대에게 어쩌면 재미없을 법한 아카이브 중심의 데이터를 흥미로운 콘텐츠로 인식시키는 솔루션인 셈이다. 글 서민경 기자
백남준기념관 인스털레이션 작품 ‘백남준의 거의 모든 것_백남준 버츄얼 뮤지엄’(2017). 브라운관 TV의 다이얼을 돌리면 백남준의 생애, 작품, 전시, 어록이 시간순으로 정면 스크린에 투사된다.
경기도의 문화, 인물, 유산, 사건 등 시대와 키워드별로 정리된 아카이브를 열람할 수 있는 ‘경기도 메모리, 기억의 도서관’(2018). 이야기 카드를 매개로 사용자와의 인터랙션을 통해 서가와 책상 위로 디지털 정보가 펼쳐진다. 책상 위 스탠드 조명에도 OCR 카메라 센서가 달려 있어 손 동작을 인식해 정보를 열람하도록 돕는다.
문화역서울 284: 공간 투어’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한 ‘가을역 산책 카트’(2018). 구 서울역사에 얽힌 143개의 기록을 언제든지 열람하고 공간 투어를 예약할 수 있는 상설프로그램 형태로 운영한다. 아카이브 카드와 공간을 본뜬 사물을 골라서 마치 체스 게임을 하듯이 테이블 위 특정한 위치에 올려놓으면 관련된 정보가 화면에 나타난다. 가구는 스튜디오 씨오엠에서 디자인했다. 사진 제공 문화역서울 284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의 일환으로 진행한 ‘APAP 아카이브 미디어’(2020). 2005년부터 2019년까지 APAP에 참여한 300여 점의 작품 정보, 그리고 3500여 개의 이미지와 동영상 자료, 행사 연혁 등을 정리한 방대한 아카이브가 담겼다. 사용자가 직접 아크릴 카드와 조이스틱을 움직여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와 협업한 ‘독립 서점 아카이브 미디어’(2020). 독립 서점 15곳과 그곳에서 판매하는 940개의 도서를 나열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각 서점의 로고가 부착된 아크릴 육면체를 하나 집어서 테이블 위 특정 위치에 놓으면 해당 서점의 추천 도서가 스크린을 통해 안내되는 방식이다. 프린트 버튼을 누르면 서점 위치가 표시된 종이가 인쇄되어 나온다. 사진 제공 Platform-P ©타별사진관 조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