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믹에 스민 물감의 잔흔, 이니세라믹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작은 마을에서 보내는 한국인 세라믹 아티스트 마인희 인터뷰

세라믹에 스민 물감의 잔흔, 이니세라믹
ⓒ마인희

최근 국내보다 해외에서 이름을 더 알리고, 진가를 나타내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내심 ‘누군가는 먼 타국에서 자신의 빛을 발하고 있구나’ 싶어 응원의 마음이 떠오르곤 한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리빙 잡지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한국 세라믹 아티스트 마인희 작가와 인터뷰를 나눈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우연히 도예의 세상에 발을 내딛은 뒤로 ‘이니세라믹’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만의 고유한 세라믹 디자인을 빚어왔다. 우리의 눈으로 보던 일반적인 화병이 3D라면 그 입체감을 누르고 2D 평면의 효과를 만들어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눈속임’ 기법이 그의 장르가 된 것이다. 현실 같으면서도 어딘가 그림 속 한 장면 같기도 한. 그래서 공간에 위트를 불어넣는 기분 좋은 눈속임. 그는 오늘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자연을 느끼며 흙을 만진다. 그리고 그 위로는 물감이 스민다.

Interview with

마인희(Inhee Ma) 이니세라믹 작가

프랑스, 세라믹, 평면

마인희 작가 ⓒ마인희
작가님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려요.

저는 1991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졸업 후 예술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로 유학을 오게 되었어요. 이후 10년 째 프랑스에 쭉 거주 중이고 현재는 부르고뉴에서 거주하며 도예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작가가 직접 촬영한 부르고뉴 지방의 자연 풍경 ⓒ마인희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유년시절부터 꾸준히 미술 교육을 받아오다 미술을 보고 이해하고 창작하는 새로운 방식을 탐구할 필요성을 느꼈고, 고등학교 졸업후 자연스럽게 예술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로 유학을 결심하게 됐어요. 프랑스의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예술계뿐만 아니라 언어, 음식,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에도 깊이 매료되었었거든요. 이곳에서 저는 몽펠리에 미술고등학교(Beaux Arts de Montpellier)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고, 여러 뛰어난 예술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어요.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은 제 예술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저만의 독창적인 표현 방식을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봐요.

도예를 시작하기에 앞서 미술을 전공하셨잖아요. 이전에는 어떤 작업을 주로 하셨어요?

제가 다닌 미술 학교는 현대 미술에 특화되어 있었는데요. 당시 저는 주로 ‘시간’ 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여러 예술 설치물을 제작하곤 했어요. 일상 속 사물들을 활용해 어떻게 예술로 재탄생할 수 있는지 등을 탐구했었죠. 이러한 과정에서 재료와 주제의 융합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변화,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표현하려 노력했습니다.

도예 작업을 통해 작가님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형태의 세라믹 화병을 선보이고 있어요. 도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당시 저는 파리에 거주하며 현대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었고, 몇몇 도예 작가들과 함께 작업실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그 해 예정된 전시회들이 모두 취소되었고 자연스럽게 도예 작가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거든요. 그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도자기의 섬세한 매력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도했지만, 곧 그 깊이와 예술적 가능성에 매료되어 더 깊이 탐구하게 되었고요.


마인희의 작업세계

ⓒ마인희
작품 표면의 질감은 일반 세라믹과 사뭇 다르게 거친 편이에요. 이러한 질감 표현을 위해 어떠한 재료를 사용하고, 어떠한 작업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해요.

작품을 만들 때는 ‘샤모트(Chamotte)’라고 불리는 특별한 점토를 사용하고 있어요. 간단히 말해 모래가 섞인 점토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작업 순서는 먼저 샤모트 점토를 평평하게 밀어 일정한 두께의 판으로 만들고, 원하는 모양으로 앞면과 뒷면이 될 점토 판을 잘라요. 그 다음 자른 점토 판들을 서로 붙여 연결 부위를 잘 다듬어 견고하게 만들고요. 형태가 완성된 도자기를 건조 시킨 다음, 표면을 사포질해 점토에 섞인 모래가 표면에 드러나도록 해요. 그 뒤에 두 번의 소성 과정을 거치면 최종적으로 이 독특한 거친 질감을 가진 화병이 완성됩니다.

무엇보다 일반적인 화병의 형태가 아닌, 평평한 형태라는 점이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어떻게 처음 떠올리게 되었나요?

이 형태는 실용적인 이유에서 발상이 시작되었어요. 제가 도자기를 처음 시작할 당시 이용하던 작업실에는 물레가 없었어요. 그래서 화병을 만들기 위해서 생각한 게 ‘슬랩(Slab) 기법’으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작업 환경에 때문에 생각해낸 기법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제 현재 스타일의 기반이 되었고요. 또한, 그렇게 완성된 백지 상태의 화병 위에 그림을 그려 약간의 ‘Trompe l’oeil(눈속임)’ 효과를 가미해 시각적인 재미와 저만의 독특한 미학을 부여하고 있어요.

ⓒ마인희
점토 위로 붓질을 할 때 과감한 편인가요?

예전에는 그림을 그릴 때 매우 조심스러웠어요. 아마도 비율, 그림자 등 세부 사항에 꼼꼼해야 한다는 학문적인 교육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그리는 것에 있어서 ‘올바른’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죠. 처음엔 약간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표현적인 스타일에서 더 많은 자유를 찾은 것 같고요. 요즘엔 기술이나 기법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롭고 대담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 통해 제 작업이 더욱 생동감 있고 진솔하게 느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한국의 전통 문양을 담은 작품도 있죠.

저는 평소 다양한 요소에서 영감을 받아요. 예를 들어 화가 마티스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을 수도 있고, 이번처럼 전통적인 한국 문양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죠.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어린 시절, 과거, 그리고 전통과 문화의 개념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러한 문양들은 어릴 적부터 제 마음 속 깊이 깃들어 있었고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미를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제 화병에 반영하게 되었어요.

모든 작업을 혼자서 수작업으로 진행하다보면 언제 가장 힘든가요?

작업량이 많은 날 예기치 못한 가마의 고장이나 날씨로 인해 제작이 지연되어 고객을 더 기다리게 해야 할 때, 소성 후 예상과 다른 결과물이 나올 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도자기 작업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많아 그 자체로 도전적이기도 하고, 때론 이러한 예상치 못한 결과가 새로운 창의적 기회를 제공하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이런 어려움이 도자기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저는 가마를 고치는 달인이 되었고요.(웃음)


영감의 원천

ⓒ마인희
작품을 만들기 위한 예술적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발견하나요?

저의 첫 컬렉션은 지금보다 더 미니멀하고 드로잉 그림이 없는 작업들로 주로 화병의 모양에 초점을 맞춰 제작했었어요. 하지만 프랑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여러 훌륭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점차 영감의 시각이 넓어지더라고요.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고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창의성을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도 제가 어렸을 때부터 많은 관심을 가진 건 전통적인 문양과 장인 정신이었는데요. 프랑스로 넘어와서는 고대 장식에서 모티브를 얻어 저만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고대 장식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품에 반영한지는 이제 1년째인데 그 사이 꽤나 큰 인기를 얻었어요. 사람들의 반응이 저에겐 또 다른 계기가 되어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조금 더 창의적으로 나아가는 데 큰 동기부여가 됐고요.

마인희 작가가 거주하는 부르고뉴 마을 풍경 ⓒ마인희
현재 작가님이 거주 중인 부르고뉴(Bourgogne)라는 동네는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해요.

부르고뉴는 정말 아름다운 지역이에요. 숲, 오래된 산, 호수 등 화려한 자연을 품고 있어요. 이런 멋진 풍경에 둘러싸인 곳에 살면서 매일 집 앞 숲으로 산책을 가고 주말에는 가까운 산에서 하이킹을 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자연이 직접적으로 작품에 영감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삶에서 얻어지는 자연의 에너지와 현재 저에게 주어진 환경은 창작 활동을 자극하며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인희
작업실 사진을 보니 곳곳에 식물이 자리하더라고요. 식물 가꾸는 일을 좋아하나요?

특정한 물건은 아니지만 식물을 정말 좋아해요. 제 작업실에는 창문이 많은 편이라 처음 이사 왔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식물 모으기였어요. 식물은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능력이 있어서 작업실의 전체적인 미적인 면에 큰 몫을 하는것 같아요.

자연을 맞댄 작업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비 오는 오후 작업실에서 홀로 작업하는 순간을 가장 좋아해요. 지붕과 창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마당의 젖은 흙냄새는 차분하고 평화로운 에너지를 가져다 주거든요. 앞서 언급한 식물, 도자기, 그리고 다른 모든 것과 함께 창의적이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좋은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마인희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작품이 사람들의 공간에 놓였을 때 어떤 존재감을 가지길 바라나요?

사람들의 일상에 기쁨과 신선함을 주길 바라고, 또 힘든 시기에는 작은 위안을 줄 수 있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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