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단 하나의 아이템만 쇼핑해야 한다면, 클래식 블랙 코트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파)’를 위하여
올드머니 무드를 타고 블랙 코트의 멋이 오랜만에 돌아왔다. 걸치는 순간 살아나는 격식과 고고함, 그 사이를 비집는 은근한 우아함을 선사하는 블랙 코트에 걸맞은 연출법을 알아보자.
몇 년째 뜨거운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올록볼록 패딩과 뽀글뽀글 플리스 코트도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한편으론 이 묵직한 멋이 꽤나 그리웠다. 걸치는 순간 살아나는 격식과 고고함, 그 사이를 비집는 은근한 우아함은 정말이지 따라올 자가 없다. 마침내 돌아왔다. 올겨울, 클래식 블랙 코트 한 벌이면 천하무적이다. 이런 디자인, 이런 연출까지 더하면 스타일리시함도 챙길 수 있다.
타임리스 블랙 코트
잡지사 에디터 시절, 매년 같은 캐시미어 블랙 코트를 입고도 한결같이 근사한 선배가 있었다. 그 코트는 겨울마다 선배의 천군만마처럼 보였고, 많은 이들이 그의 안목과 탐스러운 코트를 칭찬했다. 클래식 패션의 힘을 몸소 느꼈던 후로 겨울 코트만큼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섬유 혼용률을 더 세심히 살폈으며, 그 가치는 잘 차려 입어야 했던 몇몇 순간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었다. 올드머니 무드를 타고 오랜만에 돌아온 블랙 코트의 멋을 마주하니 그때 느꼈던 근사함이 떠오른다. 동시에 이 유행을 제대로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무엇보다 ‘잘’ 고르라는 조언을 하고싶다.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 10년은 거뜬할 블랙 코트가 내 옷장에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더 뿌듯하고 매력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엄격한 편안함.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근사한 블랙 코트의 요건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격식은 잃지 않으면서도 여유로운 감성이 흐르는 디자인. 트렌드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출발선은 늘 여기다. 그 멋의 관건은 실루엣과 소재가 쥐고 있는데, 이번 시즌은 특히 이런 디자인을 눈여겨본다. 넓고 반듯한 어깨선, 무심하게 툭 떨어지는 넉넉한 핏, 손등을 덮는 긴 소매, 종아리 밑으로 길게 내려오는 맥시 기장. 과한 오버사이즈 핏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품이 넉넉하고 기장이 긴 코트가 대세다. 특히 매니시한 더블브레스티드 코트, 라운지웨어 느낌을 내는 드레싱 로브 코트, 유니섹스 무드의 더플 코트가 눈에 띈다. 실루엣이 멋의 승패를 좌우하는 만큼 칼라, 단추, 포켓 등 나머지 디테일은 간결할수록 더 우아하다.
소재는 차분하고 묵직해야 한다. 맥시 실루엣은 원단에 힘이 없으면 금세 후줄근해 보인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도톰한 원단을 고르되 입었을 때 무겁거나 여유 공간의 움직임이 불편하진 않은지 확인한다. 가벼운 공기층이 있어 보온성이 뛰어나고 자연스러운 윤기와 감촉을 자랑하는 캐시미어 및 울 소재의 함량이 높은 코트를 선택하면 값은 올라가지만 그만한 가치를 걸칠 수 있다. 한편 이런 디자인은 피하는 게 좋다. 금장단추가 잔뜩 달린 밀리터리풍 코트, 몸에 들러붙는 너무 얇은 핸드메이드 코트, 무릎이 보이는 애매한 기장의 코트, 어깨선이 꼭 맞는 좁다란 테일러드 코트. 편안함과 우아함을 품지 않은 블랙 코트는 한순간에 그저 시커먼 코트로 전락한다.팔색조 같은 올 블랙 룩
팔색조 같은 올 블랙 룩
멋진 블랙 코트를 사수했다면 아낌없이 즐길 일만 남았다. 같은 코트도 연출에 따라 다른 코트인 척 시치미 떼기 딱 좋은 게 블랙 코트다. 그 팔색조 같은 변신을 이끄는 이번 시즌의 핵심 스타일링 키워드는 다름아닌 올 블랙 룩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으로 통일하기만 해도 멋스러우니 이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을까. 여기에 실루엣의 묘미까지 얹으면 더할 나위 없다. 방법은 둘 중에 고른다. 헐렁하거나 날렵하거나. 면적이 넓은 블랙 코트를 제외하고 눈에 보이는 나머지 아이템으로 강약을 조절하면 끝.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처럼 배기 팬츠와 스니커즈로 코트의 오버핏을 더욱 쿨하게 강조하거나 이리나 샤크처럼 시가렛 팬츠와 빅 토트백으로 대비의 멋을 한껏 살리거나. 한 단계 나아가 가죽의 매끈함을 더한 켄달 제너처럼 소재의 믹스 앤 매치까지 노리면 극강의 올 블랙 룩이 완성된다.
환상의 짝꿍, 청바지
클래식 아우터를 고루하지 않게 하는 최고의 매칭 아이템을 꼽으라면 언제나 청바지다. 그런데 올겨울 블랙 코트와 만난 청바지는 유난히 더 멋스럽다. 코트가 주인공인 만큼 청바지는 스트레이트 핏 혹은 세미 와이드 핏 정도가 무난하다. 워싱은 중청이 대세다. 너무 밝아서 추워 보이거나 블루가 너무 진해서 코트의 블랙과 강한 대비를 이루면 자칫 촌스러울 수 있다. 너덜너덜한 찢청이나 얼룩덜룩한 더티 워싱도 금물. 블랙 코트도 청바지도 클래식한 결을 유지할 때 비로소 환상의 합이 드러난다.
그렇다고 너무 뻔한 조합은 진부하다. 최근 경탄한 헤일리 비버의 나이트 룩처럼 흥미로운 한 끗이 특별한 멋을 연출한다. 낭창낭창 우아한 실루엣의 블랙 코트에 데님 오버롤 팬츠를 매치하는 대담함이라니. 로퍼나 부츠가 아닌 뾰족한 앞코를 드러낸 힐로 코트의 긴장감을 유지한 점도 무척 인상적이다. 이처럼 블랙 코트에 청바지를 입을 때는 엄격한 멋을 슬쩍 얹는다. 비니에 운동화를 신더라도 허리에는 벨트를 두르거나 각진 가방을 들거나 볼드한 주얼리를 걸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약간의 격식은 블랙 코트와 청바지, 클래식과 트렌드의 간극을 자연스럽게 좁힌다.
블랙에 스며든 컬러들
이너웨어나 액세서리 컬러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블랙 코트는 주연이 되기도 조연이 되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힘을 갖는다. 이번 시즌처럼 클래식 디자인이 유행일 때는 더더욱 다채로운 변신이 가능하다. 우아하고 싶을 땐 차분한 모노톤을, 힙스터 느낌을 내고 싶을 땐 쨍한 팝 컬러를 더하면 효과적인데, 색의 황금비율이 예쁨을 결정짓는다.
먼저 차분한 컬러 조합을 즐기고 싶다면 이번 시즌은 화이트, 크림, 그레이지(그레이와 베이지가 섞인 색) 컬러를 주목한다. 포인트 색의 비율을 30~50% 정도로 두면 중성적인 분위기가 확 살아나면서 올드머니 룩 느낌의 고전미가 감돈다. 블랙 코트도 생기 넘치게 소화하고 싶다면 팝 컬러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다만 비율이 높으면 자칫 촌스러울 수 있다. 그린과 화이트를 섞은 차정원, 핑크와 브라운을 섞은 켄달 제너처럼, 팝 컬러의 비율을 10~30% 정도로 낮추고, 다른 차분한 컬러를 하나 더 조합하면 시선이 분산되면서 스타일리시한 멋이 고조된다.
클래식함을 흔드는 액세서리 하나
클래식 블랙 코트를 가장 색다르게 입기 위한 이번 시즌의 준비물은 예상을 깨는 액세서리 하나다. 매일 치트키 액세서리만 바꿔도 같은 블랙 코트를 일주일 내내 다른 느낌으로 걸칠 수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포인트 액세서리를 제외한 나머지 의상은 클래식한 멋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 그래야 블랙 코트의 엄격함을 살짝 흔드는 반전미가 진가를 드러낸다.
로제의 커다란 실버 뱅글, 헤일리 비버의 흰색 양말, 지지 하디드의 볼캡, 김나영의 비니와 빨강 가방, 리사의 뉴스보이캡 등 보다시피 액세서리 하나가 블랙 코트의 분위기를 180도 바꾼다. 특히 올겨울 유행인 맥시 블랙 코트를 입을 때는 코트의 포스를 반전하는 캐주얼한 액세서리를 더하면 힙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 한두 개면 충분하다. 지나친 반전은 스타일의 전체 흐름을 완전히 흩트릴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본격적인 패딩 코트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서둘러야 하겠다. 이미 근사한 블랙 코트를 가지고 있는 행운아라면 당장 꺼내 입고, 새로 장만할 계획이었다면 지금이 적기다. 다시 왕좌를 차지한 블랙 코트의 고고한 멋이 여기저기 쏟아지고 있다. 올겨울에는 꼭 그 멋을 사수하기를. 모름지기 유행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다. 단언컨대 블랙 코트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