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오가 도전한 스마트 링 시장

헬스케어 기기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카시오가 헬스케어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 반지 시계 'CRW-H001'을 선보였다. 기존의 획일적인 스마트 링 디자인에서 벗어나 디지털시계 감성을 결합해 웨어러블 기기가 패션 아이템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카시오가 도전한 스마트 링 시장

최근 몇 년 사이에 카시오, 아디다스, 타이맥스, 코치, 파슬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반지 형태의 시계를 선보이며 시계의 크기를 줄이고 있다. 시계가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를 넘어서 장식적인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트렌드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만 보고 작은 크기의 시계가 이제 막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주얼리 및 하이엔드 워치 메이커들은 수백 년 전부터 반지 형태의 시계를 선보여왔기 때문이다.

시계에 반지를 더하다, 수백 년 동안 계속된 유행

반지 시계의 역사는 15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각가이자 금세공인이었던 피에르 워이리오(Pierre Woeiriot)가 반지에 시계를 더한 디자인을 선보인 것이 최초의 시도로 여겨지고 있다. 이후 반지 시계는 아르데코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며, 영국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A Museum)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등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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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for a Ring Watch, Plate 32 from Livre d’Aneaux d’Orfevrerie 출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홈페이지

시계의 크기가 현재처럼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일상적인 사용을 넘어서 야외활동과 군사적인 목적에 적합한 방수 기능, 야광 인덱스와 회전 베젤 등 다양한 요소들이 시계에 추가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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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g, Fishberg Nathan, 1925 출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홈페이지

기능과 성능에 대한 요구로 시계의 크기가 커지긴 했지만, 반지 시계는 전성기였던 아르데코 시대 이후에도 꾸준히 패션 아이템으로 사랑받아왔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도 독특한 액세서리로 주목받았던 것을 보면, 반지 시계는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을 입증하는 아이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손가락에 끼울 수 있는 시계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정교한 아름다움과 독특한 형태, 그리고 장신구와 시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성에 있다. 국내에서는 블랙핑크 제니가 뮤직비디오 ‘만트라(Mantra)’와 무대에서 반지 시계를 착용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브랜드가 협업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반지 시계를 출시하며 새로운 부흥을 이끌었다. 타이맥스는 MM6 메종 마르지엘라와의 협업을 통해 디지털시계와 액세서리의 경계를 탐험했으며, 카시오는 브랜드 50주년을 기념해 반지 시계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이를 통해 시계가 반드시 손목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반지 시계에 스마트 기능을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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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카시오

반지 시계를 선보이며 화제의 중심에 섰던 카시오가 이번에는 헬스케어 기능을 더한 반지 시계를 선보여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CRW-H001’은 앞서 선보인 반지 시계와 유사한 형태와 소재를 유지하면서도, 내부에 건강 모니터링 모듈을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이 반지는 일일 걸음 수와 칼로리 소모량은 물론이고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의 활동량을 기록할 수 있다. 여기에 심박수, 혈중 산소 농도, 체온, 수면 및 운동 후 회복 상태도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여느 웨어러블 기기처럼 스마트폰과 연동하면 수신 전화와 메시지, 알람, 사용자가 선택한 건강 관련 알림을 햅틱 피드백으로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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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카시오

스마트워치의 다양한 기능을 반지 크기에 담기 위해 카시오는 기존의 설계 및 제조 방식을 한층 발전시켰다. 금속 사출 성형(MIM) 기술을 활용하여 시계 케이스의 복잡한 기하학적 구조를 훨씬 작은 크기로 구현했으며, 이를 통해 디지털시계의 시각적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체형 금속 본체를 완성했다. 여기에 증착 방식의 미러 마감 처리를 적용해 새겨진 글자에 금속성 광택을 더했으며, 초소형 전자 부품을 활용하여 디지털 디스플레이와 센서 역시 반지 형태 안에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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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카시오

사이즈 조절을 위해 스페이서를 사용하던 기존 모델과 달리 CRW-H001은 소형, 중형, 대형의 세 가지 사이즈로 출시된다. 무게 또한 16g에서 19g으로 약간 더 늘어났다. 한 번 충전으로 약 6일 동안 사용할 수 있고 대기 모드에서는 최대 25일까지 사용 가능하다. 배터리 평균 수명은 약 2년이며 이후에는 교체가 필요하다. 중국에서 1,990위안(약 41만 원)에 판매되고 있는 이 모델의 글로벌 출시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모델은 반지 시계가 시간을 확인하는 작은 시계를 넘어, 건강과 일상적인 활동까지 관리하는 웨어러블 기기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웨어러블 시대에 주목받는 스마트 링, 과거에 영감을 받다

그렇다면 카시오는 왜 스마트 기능을 더한 반지 시계를 출시했을까? 그 배경에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웨어러블 시장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상의 다양한 활동을 기록하고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스마트 워치는 이제 선택을 넘어 일상적인 필수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덕분에 스마트폰을 잇는 차세대 스마트 기기 시장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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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성전자

이러한 흐름 속에서 스마트 링은 스마트 워치보다 작고 가벼운 데다 손가락에 밀착해 착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앞세워 새로운 웨어러블 기기로 주목받고 있다. 손가락에 밀착되는 특성은 수면 품질 및 심박수 등의 건강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측정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특히 별도의 화면이나 조작 없이 장시간 착용할 수 있어 건강 관리에 관심이 높은 소비자에게 중요한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자, 오우라(Oura), 브링(b.ring), 링콘(RingConn) 등 다양한 브랜드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관련 시장도 서서히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처럼 스마트 링의 입지가 넓어지면서, 이제는 기능을 넘어 디자인에서도 또다른 가능성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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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우라

이런 상황에서 카시오의 도전은 기존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이번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모델이 기존의 스마트 링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단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기능뿐 아니라 디자인의 가능성을 넓혔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동안 스마트 링은 건강 데이터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기능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외형적으로는 비교적 단순하고 비슷한 디자인을 보여왔다. 반면 카시오는 디지털시계의 디자인 언어를 반지 형태에 적용함으로써 스마트 링 역시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중국에서만 출시된 제품임에도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스마트 링도 스마트 워치처럼 기능만으로 경쟁하는 웨어러블 기기를 넘어서 사용자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액세서리로 진화할 수 있다는 기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부터 사랑받아온 반지 시계의 형태가 최신 기술과 만나 다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를 통해 새로 선보이는 기술이 반드시 낯선 형태로 등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형태와 소재, 장식적인 요소를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는 것만으로도 제품은 전혀 다른 매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기능이 제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면, 디자인은 그 기능을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선택하고 즐기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스마트 링이 점차 시장의 규모를 확장하고 있는 가운데 카시오의 스마트 반지 시계는 이 시장이 나아갈 방향에 하나의 이정표를 던진 셈이다. 스마트 링이 건강을 관리하는 기능을 넘어서 사용자의 취향과 개성까지 담는다면, 단순한 웨어러블 기기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 주목받는 웨어러블 기기가 주얼리와 기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액세서리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기대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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