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 색채로 되살아난 독일의 1920년대 저택

라이트 블루, 크림슨 레드, 머스터드 옐로가 방마다 이어지는 집

1921년 독일 하겐에 지어진 빌라 ‘가든 하우스’가 디자이너 기스베르트 푀플러의 손길로 새롭게 태어났다. 전쟁과 부실한 복구로 본래의 모습을 잃었던 공간에 대담한 색채와 맞춤 가구, 장인들의 디테일을 더했다. 한 세기 전 이곳에 깃들었던 예술과 장인 정신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린 프로젝트다.

대담한 색채로 되살아난 독일의 1920년대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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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lie Tomlinson

산업화에 맞서 세운 예술가 마을의 빌라

독일 하겐의 정원도시 호엔하겐(Gartenstadt Hohenhagen)에 자리한 가든 하우스(Garden House)는 1921년 레오폴트, 하인리히 루트비히 형제(Leopold and Heinrich Ludwig)가 지은 빌라다. ‘정원도시’는 20세기 초 유럽에서 등장한 도시계획 콘셉트 중 하나로, 삭막한 산업도시 대신 녹지와 주거, 공동체 생활을 함께 갖춘 마을을 짓자는 발상이었다. 호엔하겐은 산업가이자 미술 후원자 카를 에른스트 오스트하우스(Karl Ernst Osthaus)가 1909년 이 개념을 빌려 시작한 실험적 프로젝트로, 산업화에 밀려나던 예술과 장인 정신을 다시 하나로 묶겠다는 비전 아래 만든 예술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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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lie Tomlinson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 헨리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 같은 당대 건축가들이 참여해 호엔하겐에 여러 채의 빌라를 남겼고, 가든 하우스 역시 이 비전 안에서 지어진 건물 중 하나다. 안타깝게도 오스트하우스는 이 집이 완공된 1921년 세상을 떠나, 정원도시 프로젝트 자체는 끝내 그의 구상대로 완성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내부가 완전히 파괴됐고, 이후엔 폴리스티렌 몰딩과 금색 매입 조명처럼 할인 매장 카탈로그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한 저렴한 자재로 부실하게 복구되며 원래의 모습을 잃은 상태였다.

전면 복원으로 확장된 프로젝트

이 집의 새 주인은 제약회사를 운영하는 부부로, 집을 주거 공간이자 사업 공간으로 함께 쓰고 싶어 했다. 이들이 찾은 사람이 베를린 기반 디자이너 기스베르트 푀플러(Gisbert Pöppler)다. 푀플러는 독일 브레멘 인근, 베이지와 검정 톤으로 꾸며진 집에서 자랐다. 건축을 공부하던 그는 1980~90년대 건축가들 사이에 유행하던 흰색·회색·노출 콘크리트 같은 무채색 미학에 질리면서, 오히려 색에 끌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색은 벽을 덮는 마감재가 아니라, 공간에 입체감을 더하는 건축적 요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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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lie Tomlinson

1940년대 프랑스 미학과 이탈리아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고전적인 요소를 지금 감각으로 다시 그려내는 게 그의 방식이다. 가든 하우스 프로젝트도 원래는 색채 계획과 가구만 손보는 소규모 의뢰로 시작됐다. 그러나 푀플러는 클라이언트에게 이 집을 제대로 되살리려면 포괄적인 리노베이션이 필요하다고 설득했고, 결국 프로젝트는 전면 복원으로 확장됐다. 그는 가구 역시 기성품을 사들이는 대신,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디자인한 오브제를 채워 넣는 쪽을 택했다. 카시나(Cassina), 피에르 오귀스탱 로즈(Pierre Augustin Rose)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가구들도 이 집 곳곳에 함께 배치됐다.

방마다 다른 색, 손끝에서 완성된 디테일

거실에는 대담한 빨간색 벽을 채웠고, 살롱에는 연한 파란색 벽에 자주색 포인트를 준 테라초 바닥을 깔았다. 계단엔 분홍색 리놀륨을 깔아, 위층으로 올라가는 길목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층 전체를 두른 겨자색 목재 패널은 이 화려한 색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배경 역할을 한다. 부엌엔 레몬색 캐비닛을, 욕실엔 래커 칠 된 빨간 세면대 위에 옅은 파란빛 유약을 입힌 용암석 상판을 올려 완성했다. 이런 색채 계획을 실제 공간으로 옮기는 데는 지역 장인들의 손길이 필요했다. 목수 슈테판 프로이덴베르거(Stefan Freudenberger)가 곳곳의 캐비닛을 맞춤 제작했다. 게스트 화장실 세면대와 벽 패널은 그리스산 대리석 원석을 통째로 깎아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기성 타일로는 낼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결이 살아 있다. 가구는 대부분 푀플러 자신의 컬렉션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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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lie Tomlinson

스벤스크트 텐(Svenskt Tenn)의 플로럴 패브릭을 씌운 주니어 체어(Junior Chair), 파란색과 노란색 톤이 어우러진 바바 체어(Baba Chair), 색을 입힌 유약 상판이 돋보이는 파티오 조식 테이블(Patio breakfast table), 오각형 구조로 만든 루이 조식 테이블(Louis breakfast table)이 방마다 다른 리듬을 만든다. 다이닝룸엔 켈트 태양신의 이름을 딴 벨레누스(Belenus) 오크 테이블을 뒀는데, 테이블에 끼워 넣는 확장판인 ‘라 루나(La Luna)’를 더하면 열여덟 명까지 앉을 수 있는 크기로 늘어난다. 실내를 채운 색채는 정원에서도 이어진다. 조경 디자이너 마누엘 베를레(Manuel Wehrle)는 자연 연못과 채소밭, 넓은 녹지가 있는 정원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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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lie Tomlinson

같은 지붕 아래, 색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

가든 하우스는 방마다 전혀 다른 색을 쓰면서도 집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진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저렴한 자재로 덧발라졌던 이 집을, 푀플러는 방마다 색을 새로 입히고 장인들의 손길로 디테일을 되살려 다시 세웠다. 오스트하우스가 품었던 예술과 장인 정신의 결합이라는 이상이, 한 세기를 건너 현대의 감각으로 온전히 되살아난 셈이다.

글 최새미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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