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쇼디치에 스며든 일본의 고요한 미학
우츠로이 철학이 담긴 에토스의 첫 런던 지점
런던 쇼디치의 옛 노부 호텔이 유럽 호스피탈리티 브랜드 에토스의 영국 첫 호텔 ‘에토스 런던 쇼디치’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인테리어를 맡은 아스텟 스튜디오는 일본의 시간 개념인 ‘우츠로이’를 바탕으로 쇼디치 특유의 거친 산업적 분위기에 일본 전통 공예의 섬세함을 더했다.


노부 호텔이 떠난 자리
런던 동부 쇼디치(Shoreditch)의 윌로 스트리트(Willow Street)에 자리한 에토스 런던 쇼디치(Aethos London Shoreditch)는 2017년 노부 호텔 쇼디치(Nobu Hotel Shoreditch)로 문을 열었던 건물을 새로 단장한 호텔이다. 건물은 런던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겸 디자이너 론 아라드(Ron Arad)의 사무소가 설계하고 벤 애덤스 아키텍츠(Ben Adams Architects)가 완성했다. 콘크리트 구조 위로 철골이 건물 바깥까지 길게 뻗어 나오고, 그 사이를 유리 패널이 메운 외관은 한때 공장과 작업장이 모여 있던 쇼디치의 옛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2025년 건물의 주인이 바뀌면서 노부 호텔은 문을 닫았고, 밀라노와 마요르카 등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유럽 호스피탈리티 브랜드 에토스가 이곳을 영국 첫 지점으로 삼았다. 호텔은 2025년 가을 객실 164개로 먼저 문을 열었고, 2026년 1월 회원제 클럽 ‘윌로 룸(The Willow Room)’을, 같은 해 봄 지하 레스토랑 ‘미츠(Mitsu)’를 차례로 선보였다.

‘푸디 아키텍트’가 꺼내 든 일본의 시간 개념
인테리어는 바르셀로나 기반 스튜디오 아스텟(Astet Studio)이 맡았다. 건축가 알라 즈레이가트(Ala Zreigat)와 오스카르 엥그로바(Óscar Engroba)가 함께 세운 곳으로, 스튜디오 이름은 ‘미학’을 뜻하는 스페인어 에스테티카(estética)와 ‘심미가’를 뜻하는 영어 에스테트(aesthete)를 합친 말이다. 두 사람은 레스토랑이야말로 창의성을 펼치기 가장 좋은 무대라며 스스로를 ‘푸디 아키텍트(foodie architects)’라 부른다. 먹고 마시는 공간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건축가라는 뜻이다. 프로젝트마다 가구와 조명을 직접 맞춤 제작하는 것도 이들의 원칙이다. 대표작으로는 스페인 마르베야와 두바이의 레스토랑 레냐(Leña), 포르투갈 에리세이라의 에토스 호텔 등이 있으며, 이번 쇼디치 프로젝트는 스튜디오의 첫 영국 작업이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쇼디치라는 동네였다. 엥그로바는 “공장 지대였던 쇼디치의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지금 이 동네가 지닌 개성에 정교하고 섬세한 일본 전통 공예의 감각을 더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한다. 즈레이가트 역시 쇼디치를 “전통과 반항, 거친 것과 세련된 것이 함께 있는 동네”라고 표현하며, 원래 건물의 대담함을 사람의 온기와 이야기가 느껴지는 디자인으로 다시 해석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중심에는 ‘옮겨 가다’, ‘변해 가다’라는 뜻의 일본어 ‘우츠로이’가 있다. 스튜디오는 이 개념을 바탕으로 ‘건물은 그대로 두되, 머무는 사람은 시간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게 하자’는 원칙을 세우고, 로비와 바, 라운지, 레스토랑까지 호텔 전체에 적용했다.
빛을 머금는 재료로 채운 공간
로비엔 콘크리트와 테라코타, 헤어라인 마감 금속처럼 투박한 재료에 목재와 패브릭을 함께 써서 딱딱한 인상을 누그러뜨렸다. 노부 호텔 시절의 테라코타 벽은 허물지 않고 새로 짠 목재 패널 안에 남겼다. 낮은 소파와 큼직한 러그로 휴식 공간을 나누고, 빈티지 오브제와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곳곳에 놓았다. 조명은 지역 장인들에게 맞춤 제작을 맡겼다. 공간 전반엔 손으로 마감한 목재와 표면이 매끈하지 않고 결이 살아 있는 세라믹, 직조 패브릭을 썼고, 마감은 대부분 무광으로 맞췄다. 반짝임을 줄이고 빛을 머금는 재료를 고른 것이다. 공용 공간은 흙빛 톤으로 맞췄다. 객실은 회색과 번트 오렌지, 검게 그을린 듯한 목재로 차분하게 꾸미고, 콘크리트 천장을 그대로 노출했다. 벽엔 어두운 목재 살을 세로로 촘촘히 댔다. 창에는 미닫이 목재 가림막이 설치돼 있어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회원제 클럽 윌로 룸엔 레스토랑과 바, 서재, 테라스가 함께 들어섰고, 웰니스 층엔 사우나와 냉탕, 온탕이 마련됐다.

지하에 있는 레스토랑 미츠는 1970~80년대 도쿄 동쪽 동네의 이자카야를 모티프로 삼았다. 손님은 일본의 작은 안뜰 정원 ‘츠보니와’를 본뜬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선다. 입구 외벽엔 그을린 나무처럼 보이도록 만든 콘크리트 패널을 둘렀다. 나무 겉면을 불에 그을려 오래 쓰도록 하는 일본 전통 기법 ‘야키스기’를 콘크리트로 표현한 것이다. 식탁 위 천장에는 사케 문양을 손으로 그린 8m 길이의 패브릭이 걸려 있는데, 일본 가게 입구에 거는 천 ‘노렌’에서 착안했다. 일본식 창호지 미닫이인 ‘쇼지’를 닮은 패널 뒤에선 붉은 조명이 은은하게 비친다. 고케시 인형과 레코드, 도자기, 사케 통 같은 소품도 이자카야 분위기를 더한다. 즈레이가트는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바뀌어 온 이자카야처럼, 손때 묻은 따뜻한 공간이길 바랐다”라고 말한다. 엥그로바도 “처음부터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가게처럼, 이자카야 특유의 편안함을 살리는 게 목표였다”라고 덧붙였다.

에토스 런던 쇼디치는 유명 건축가가 남긴 강렬한 건물을 지우지 않고, 그 안에 일본의 시간 개념을 더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테라코타 벽 한 면을 남긴 선택도, 빛을 반사하는 대신 머금는 재료를 고른 선택도 같은 생각에서 나왔다. 덕분에 쇼디치 특유의 거친 분위기는 살아 있으면서도, 공간 곳곳엔 일본의 고요함이 배어 있다. 건물의 뼈대는 그대로지만,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머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다가온다.
제공 Astet Studio, Aethos London
글 최새미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