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디즈 플래그십 스토어 논현

시디즈가 지난 7월 논현동 가구 거리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시디즈 플래그십 스토어 논현
시디즈 플래그십 스토어 논현.

시디즈가 지난 7월 논현동 가구 거리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2020년 착수한 대대적인 브랜드 리뉴얼의 연장선에 놓인 프로젝트다.

12개의 주력 제품 외에도 공간 양쪽으로 마네, 윈든, 몰티 등 시디즈의 다양한 제품을 전시했다.

바야흐로 플래그십 스토어 전성시대다. 브랜드들은 자신의 철학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공간을 미디어처럼 활용한다. 그런데 플래그십 스토어가 우후죽순 생겨나다 보니 공간이 브랜드의 비전과 정체성을 담기보다 화려한 연출과 눈요깃거리로 채워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탄탄한 브랜드 철학에 기반하지 않은 플래그십 스토어는 빈곤한 경험만 남기는 법.

미디어 월과 버려진 원단을 쌓아 만든 인포데스크.

이에 반해 시디즈 플래그십 스토어는 자사가 추구하는 본질과 방향성을 충실히 담아낸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2020년 브랜드 재정비와 함께 ‘Sitting Experience(앉는 경험)’, 즉 ‘의자 위 다양한 앉는 경험을 통해 더 충만하고 나은 삶을 지지한다’라는 미션을 내건 시디즈는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이를 구체화했다. “앉는다는 행위를 둘러싼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다.” 시디즈 고아라 마케팅팀장의 말이다. 짧은 코멘트이지만 여기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담겨 있다. 앉는 행위는 그 자체로 매우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새로운’이라는 형용사와 대척을 이룰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디즈 플래그십 스토어 논현은 좀처럼 좁히기 어려워 보이는 간극을 일상과 비일상의 직조로 스마트하게 풀어냈다. 비일상으로의 전이를 뜻하는 파사드를 지나 공간에 들어서면 T50, T80, 리니에, 링고 등 12개의 주력 제품이 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대형 미디어 월을 향한 모습이 마치 익숙한 교실 풍경 같기도 하고, 전위적인 설치 작품 같기도 하다. 이런 중앙 집중형 레이아웃은 사용자가 오롯이 앉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시디즈와 협업해 공간 디자인에 참여한 비트윈스페이스는 12개의 의자와 매칭한 고정형 모션 데스크를 특별 제작했는데 독창적인 소재와 디자인이지만 주인공인 의자의 자리만큼은 넘보지 않는다. 오히려 절제된 톤과 조형으로 온전히 의자의 조력자를 자처한다. 이 밖에 모션 데스크에 설치한 스탠드 조명, 12개의 의자 위로 스포트라이트처럼 떨어지는 실링 라이트 또한 몰입을 유도하는데 이 같은 선택과 집중이 시디즈 플래그십 스토어 논현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의 또 다른 특징은 공간의 요소요소가 철저히 의자를 체험하는 개인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의자만큼 개인적인 사물도 드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자들은 의자를 구매할 때 주변의 평판에 좌우되곤 하는데, 이런 문제를 파악한 시디즈는 방문객이 철저히 자신의 체형과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고를 수 있도록 했다. 각 모션 데스크에 비치한 ‘제품별 정보 탐색 콘텐츠’는 이 매력적인 탐구의 여정을 돕는다. 바른 자세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시작으로 제품별 기능, 세밀한 피팅 옵션, 스타일링 팁, 심지어 제품 주문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지는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까지 자연스럽게 늘려 경험의 깊이를 더한다. 촘촘한 사용자 경험 설계,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브랜드의 골격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공간 디자인은 플래그십 스토어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20세기 미국의 산업 디자인을 이끈 제품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는 일찍이 ‘기능이 곧 미의 원천’이라는 말을 남겼다. 합리주의가 안착한 시디즈 플래그십 스토어 논현을 둘러보며 그의 말을 되새기게 됐다.

금속 소재와 투명 아크릴로 이뤄진 모션 데스크. 방문객마다 체형이 다른 것을 고려해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게 했다.

공간 기획 시디즈
공간 디자인 비트윈스페이스(대표 김정곤·오환우),
betwin.kr
미디어 월 영상 TBWA코리아, MASS MESS AGE
주소 서울시 강남구 학동로 126 2층

(왼쪽부터) 오환우·김정곤 비트윈스페이스 공동 대표, 고아라 시디즈 마케팅팀장
“ 앉는다는 행위의 본질로부터 출발했다.”

가장 일상적인 사물인 의자를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비트윈스페이스(이하 B) 영국 심리학자 데니스 브롬리에 따르면 인간의 수명을 80세로 봤을 때 일하는 시간이 무려 26년에 달한다고 한다. 사무직 직원이 의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26년인 셈이다. 의자가 우리 삶에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색다르게 보여줄지 고민했다. 공간에 들어섰을 때 메탈릭한 매장의 룩앤필은 비일상적이지만, 동선은 매우 익숙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치 교실 뒷문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무의식 속에 있는 과거의 기억을 동선에 녹인 것이다.
고아라(이하 고) 체험과 경험은 엄연히 다르지 않나. 우리는 제품 구매라는 단순 체험을 넘어 경험을 선사하는 데 방점을 두었다. 브랜드가 각인되고 이 공간에서 한 행동이 기억에 남기를 바랐기에 이 공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제품별 정보 탐색 콘텐츠. 모션 데스크에 설치한 아이패드로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2020년을 기점으로 한 단계 진화한 시디즈의 브랜딩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고 예전에는 국내 B2C 시장에서 의자를 브랜드로 인식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의자에 대한 관여도 자체가 미미하다 보니 왜 수십만 원씩이나 지불해가며 의자를 구매해야 하는지 설득이 되지 않았다. 당시 우리의 미션은 무관심과 싸우는 것이었다. 독립 브랜드로 출범한 시디즈가 2016년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 캠페인을 진행한 배경이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브랜드 입장에서는 새로운 미션이 생겼다. 의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 도출한 것이 핵심 키워드인 ‘Sitting Experience(앉는 경험)’였다. 앉는 행위를 탐구해 사람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지게끔 기여하는 것이 브랜드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 것이다.

시디즈의 기술력과 전문성, 정제된 디자인 감성이 공간 전반에 묻어난다.

B 의도적으로 감성을 배제하고 래셔널리즘rationalism, 즉 합리주의를 강조했다. 보통 가구 브랜드들이 ‘의자=라이프스타일’이라는 생각으로 감성적인 연출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지만, 전문성이 강점인 시디즈는 불필요한 요소는 배제하고 최대한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봤다. 천장에 설치한 조명은 투명 아크릴을 이용해 광원을 그대로 노출했다. 이는 은유적으로 기능과 이성에 주목한 공간임을 드러낸 장치다.

메탈릭한 마감과 수직을 강조한 스트라이프 패턴이 인상적인 파사드.
‘Sitting Experience(앉는 경험)’라는 핵심 키워드가 어떻게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발현됐나?

고 앉는다는 행위의 본질로부터 출발했다. 결국 핵심은 편안함이다. 시디즈는 편안함을 위해 많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문제는 온라인에 떠도는 파편적인 정보, 특히 누군가의 구매 후기만으로는 이런 장점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분한 경험이 전제되지 않으면 제아무리 고급 가구라도 불편할 수 있다. 따라서 진짜 경험과 올바른 정보가 필요한데 이것을 해결해줄 공간이 부재했다. 기성 가구 매장을 떠올려보라. 보통 최대한 많은 제품을 나열해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제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고 해도 현장 스태프의 개인적인 경험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존의 이러한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B 기존 매장은 판매자 관점으로 설계되어 있어 소비자가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의자를 둘러싼 경험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무엇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을 늘릴 필요가 있었다.
고 제품별 정보 탐색 콘텐츠에 주력한 이유다. 이 기능은 올바른 자세로 앉았는지 점검하는 화면으로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바르게 앉는 방식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데스크에 얹은 양팔이 직각이 되어야 자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이를 위해 모션 데스크도 별도로 제작했다. 공간의 지리적 특성상 구매를 목적으로 한 방문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소비자들이 천천히 제품을 경험하고 탐구하고 비교해가며 자신에게 맞는 의자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미디어 월 역시 통합적 경험을 끌어내는 중요한 요소다.

고 앞서 앉는 행위의 본질이 편안함에 있다고 말했는데 미디어 월의 영상에서는 본질 너머의 행위, 즉 의자에 앉았을 때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를 드러내고자 했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 일하고, 공부하고, 게임도 하고, 휴식을 취한다. 능률을 높이고 몰입도를 높이는 의자의 역할과 가치를 모두 앉는 경험으로 수렴해 시각화했다. 모호한 아트 필름은 지양했지만, 그렇다고 제품의 기능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영상도 피했다. 결국 공간의 분위기에 최적화된 영상미와 BGM을 완성했다.
B 중앙 집중형 구조가 영상의 몰입을 돕는다. 흔히 교회나 교실에 활용하는 배치인데 의자가 미디어 월을 향해 놓인 것만으로도 영상의 주목도를 높인다. 미디어 홍수 시대에 과연 콘텐츠만으로 눈길을 끌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공간은 권력을 부여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상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B 모션 데스크를 만들 때 시디즈를 만족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웃음) 아무래도 가구 분야의 전문가이다 보니 마감의 디테일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 목업만 세 번 제작했다. 확실히 전문가를 뛰어넘는 게 쉽지 않더라. 인포데스크는 시디즈 공장에서 의자를 만들다 버려지는 패브릭을 재활용해 완성했다. 투명 아크릴 안에 컬러 조합을 고려해 현장에서 한층 한층 쌓아 만든 것이다.

공간 디자인 외에도 사용자 경험을 완성하기 위해 각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고 경험의 상향 평준화를 위해 마련한 공간인 만큼 스태프의 가운 등에도 전문적인 룩앤필을 강조했다. 운영 시간에는 2~3명 정도 안내 직원이 상주하는데 이들의 역할은 영업이 아니라 도슨트다. MZ세대의 특징이 오롯이 ‘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제품별 탐색 기능을 강조한 것도 홀로 집중해 의자를 탐구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기에, 방문객이 원하지 않는데 먼저 다가가 몰입을 방해하기보다 꼭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고객 응대 서비스를 마련했다.
글 최명환 편집장 사진 이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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