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뤼 드 라 뻬 13번지 부티크 레노베이션

까르띠에의 역사가 시작된 프랑스 파리 소재 뤼 드 라 뻬 13번지 부티크가 2년여간의 레노베이션을 거쳐 지난 10월 재개장했다.

까르띠에 뤼 드 라 뻬 13번지 부티크 레노베이션

까르띠에의 역사가 시작된 프랑스 파리 소재 뤼 드 라 뻬 13번지 부티크가 2년여간의 레노베이션을 거쳐 지난 10월 재개장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장인의 협업으로 완성한 6개 층, 3000m2 면적의 이 아름다운 공간은 과거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현대성을 보여주고 있다.

모이나르 베타유 건축사무소가 디자인한 아트리움은 공간에 여유를 만들어낸다. 사진 Lucie et Simon ©Cartier

까르띠에 뤼 드 라 뻬 13번지의 시작은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인 부친으로부터 메종을 물려받은 알프레도 까르띠에는 비즈니스 확장을 위해 뤼 드 라 뻬 13번지로 이전하고 장남인 루이 까르띠에에게 이곳을 맡겼다. 또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차남과 막내아들을 뉴욕과 런던으로 진출시켰다. 현재까지도 까르띠에는 파리 뤼 드 라 뻬 13번지, 뉴욕 피브스 애비뉴5th Avenue의 맨션,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를 ‘템플(사원)’이라고 부르면서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기리고 있다. 까르띠에 CEO 시릴 비네론Cyrille Vigneron은 새롭게 부활한 뤼 드 라 뻬 13번지 부티크에 대해 “특정 시대에 속하지 않고 모든 시대를 아우르며 한 가지 스타일만을 선호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스타일을 예찬한다”고 소개했다.

지상층 판매 공간. 사진 Lucie et Simon ©Cartier

이번 레노베이션은 메종과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모이나르 베타유Moinard Bétaille 건축사무소, 스튜디오파리지앵Studioparisien, 디자이너 로라 곤잘레스Laura Gonzalez와의 환상적인 팀워크로 완성됐다. 기존 건물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기 위해 파사드와 몰딩 장식은 그대로 둔 채 현대적 터치를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지상층과 1, 2층의 디자인을 맡은 모이나르 베타유는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 까르띠에 부티크 470여 곳을 디자인해온 베테랑 건축사무소. 이들은 열린 공간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원래 중앙 계단과 방이 있던 자리에 아트리움을 설계해 깊이 있는 공간감이 느껴지도록 했다. 유리 천장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은 따뜻한 환대의 느낌을 증폭시키고, 각 층 테라스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은 천상의 세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자아낸다. 지상층 곳곳에는 까르띠에의 고전적 모티브를 녹여냈다. 희귀본 장서와 고문서가 보관되어 있는 루이 까르띠에의 집무실을 재현한 살롱을 지나면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 학술원에서 헌정한 회원 검을 전시한 시인 장 콕토Jean Cocteau의 살롱이 나타난다.

까르띠에 뤼 드 라 뻬 13번지의 파사드. 사진 Lucie et Simon ©Cartier

1층으로 올라가면 루이 까르띠에의 뒤를 이어 1933년부터 1970년까지 디자인 수장을 맡았던 쟌느 투상의 살롱이 펼쳐진다. 실제 그의 집무실이 있었던 장소로 뤼 드 라 뻬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분위기에서 이곳에서만 공개하는 한정판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한편 스튜디오파리지앵이 디자인한 3, 4층에는 고객 서비스를 위한 공간과 18명의 장인들이 작업하는 아뜰리에가 위치해 있는데 오스만 건축 스타일에 모던한 컬러를 감각적으로 조합해 감도 높은 공간을 연출했다. 메종의 VIP 고객과 예술가들이 머물 수 있는 레지던스가 위치한 최상층은 디자이너 로라 곤잘레스가 맡았다. 다른 층과 차별화한 화려한 모자이크 바닥과 실크 벨벳 벽지를 사용해 고풍스러운 매력이 돋보이는 이 공간은 만남과 교류, 영감이 교차하는 장소다. 한편 까르띠에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인 ‘장인 정신’은 새로운 뤼 드 라 뻬 13번지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수십 명의 프랑스 장인을 포함해 공방 40여 곳이 이번 레노베이션에 수공예적 요소를 더했기 때문이다. 카펫과 유리창에서부터 벽지, 가구, 파티오에 이르기까지 건물 전체에서 섬세하고 정교한 장인의 기량을 감상할 수 있다. 120년 역사를 간직한 오리지널 부티크를 재해석한 디자이너와 장인들과의 협업으로 완성된 이곳에서 까르띠에의 새로운 챕터가 펼쳐질 예정이다.

브루노 모이나르Bruno Moinard & 클레어 베타유Claire Bétaille
모이나르 베타유 건축사무소 대표
“ 모든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고 메종의 역사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공간 디자인이 필요했다.”

평소 럭셔리 브랜드 매장을 디자인할 때 고려하는 점이 있다면?

환대받고 있다는 느낌, 오래 머물고 싶고 다시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럭셔리란 복잡함 속에서 단순함을 찾도록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감동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장의 바닥, 벽, 디테일 등 디자인에 관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고객에게 내용을 전부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보통은 첫 방문 때 매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느낀 다음, 공간 속 디테일은 나중에, 혹은 여러 번 방문했을 때 알아차리게 된다. 매장의 주인공은 인테리어가 아니라 판매 제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극 무대의 주인공처럼 제품이 공간에서 빛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번 뤼 드 라 뻬 13번지 부티크를 디자인할 때 주안점을 둔 부분은?

매장에 들어선 고객이 어디로든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접근이 편한 지상층으로 고객이 가장 많이 유입되지만 자칫 공간이 너무 폐쇄적이거나 위압적이면 입구 근처에 머물다가 나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모든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고 메종의 역사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공간 디자인이 필요했다. 이에 입구 바닥의 태양빛 대리석 모자이크의 문양이 넓게 퍼지면서 아트리움 쪽으로 번져나가도록 설계하고, 우측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다. 따뜻하고 개방적인 느낌을 주는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유입하고자 뒤쪽 공간을 확장해 아트리움을 만든 것도 이러한 연유다.

현재까지 까르띠에 매장 약 470여 곳을 디자인했다. 첫 번째 매장부터 가장 최근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는 디자인 요소가 있다면?

2000년 무렵 첫 까르띠에 프로젝트를 의뢰받고 메종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 뤼 드 라 뻬 13번지 부티크를 방문했는데 명확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당시 부티크에서 사용하던 밝은 톤의 나무와 샴페인 컬러의 콘크리트를 베이스로 가구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곡선을 살린 부드러운 분위기의 공간 디자인은 그때부터 까르띠에 부티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20년 전과 지금의 작업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각 나라의 매장에 지역성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디자인뿐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나는 특별한 소재와 장인 정신을 도입해 새로운 문화에 경의를 표하는 일은 전통 공예를 존중하는 까르띠에의 정신을 알리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지난 10월 서울에 다시 문을 연 까르띠에 메종 청담 레노베이션에도 참여했다.

출장 중에 항상 개인 시간을 할애해 그 나라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사진과 그림으로 기록한다. 우리가 다음 작업을 위한 영감을 얻는 방법이다. 한번은 한국 출장 마지막 날 도자기에 흥미를 보이자 클라이언트가 우리를 무작정 도자기 공방에 데려간 적이 있다. 바로 다음 날이 출국이라서 밤늦은 시각에 차로 30km 떨어진 공방을 급히 찾아갔다가 작업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달항아리와 장인의 정성에 매료돼 한 점을 프랑스로 가져왔다(브루노의 사무실에는 1m가 넘는 거대한 달항아리가 놓여 있다). 이런 추억이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평소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한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쌓인 추억과 기록이 메종 청담 프로젝트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까지 글로벌 럭셔리 그룹들과 일했고, 엘리제궁 레노베이션에도 참여했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

자주 생각해보는 질문이기도 한데 어떤 프로젝트인지보다 어떤 클라이언트를 만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100%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클라이언트를 만난 덕분에 건축은 물론 요트와 비행기 디자인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 모델의 자동차 내부 레노베이션을 해보고 싶다. 메종의 초기 역사를 간직한 뤼 드 라 뻬 13번지의 레노베이션처럼 말이다.

글 양윤정 통신원 담당 서민경 기자
자료 제공 까르띠에, cartier.com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