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지운 건축, 다이아거날 써츠

한층 더 확장된 의미의 도시 건축으로 의미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이곳에서 다이아거날 써츠가 쌓아온 단단한 개념들을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은 지운 건축, 다이아거날 써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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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의 공간을 통해 크고 작은 인식과 지각 변화의 경험을 탐구하는 건축사 사무소다. 아이디어와 그것을 구체화하는 물질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프로젝트에 따라 다양한 분야의 국내외 전문가와 실험적인 협업을 지향한다. 다이아거날 써츠의 대표 건축가 김사라는 국민대학교에서 공업디자인을,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실내건축과 건축을 공부했으며, 뉴욕의 오브라 아키텍츠Obra Architects와 조병수 건축연구소에서 다양한 실무를 경험했다. 이후 홍익대학교와 덴마크의 아르후스 건축대학(Aarhus School of Architecture), 하와이 건축대학(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인도의 C.A.R.E 건축대학(C.A.R.E School of Architecture) 등 여러 문화권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diagonal-thoughts.com

건축은 구축을 전제로 이어져왔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건축은 재료로 구조물을 쌓아 올린 고정적 형태에 가까웠다. 다이아거날 써츠는 이 오래된 문법에 질문을 던졌다. 건축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 그 결과물이 꼭 공간을 ‘짓는’ 방식에 머물러야 할까? 김사라에게는 사람의 몸과 언어, 사라지는 오브제, 심지어 시간까지도 공간을 설명하는 질료가 된다. “다이아거널diagonal은 ‘사선의’, ‘대각선의’라는 뜻입니다. 저희는 이것을 삐딱선이라고 표현하죠. 세상이 만들어놓은 정의, 사회에서 요구하는 질서에서 벗어나 그와 다른 시선으로 현상을 인식하고 싶었거든요. 다이아거널 써츠의 작업은 그 연장선에 있어요.” 글, 영상, 사진, 안무, 설치 작품 등 다양한 매체로 건축을 표현하고 또 건축을 기꺼이 비틀기에 작업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은 듯 보이지만 그는 ‘사람이 어떻게 공간을 인식하고 경험하게 할 것인가’라는 단순하고 기본적인 질문에서 모든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공간이란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 그 본질에 닿는 과정에서 때로는 작가로 참여하기도 하고, 기획자가 되어 아티스트와 협업하기도 한다.

다이아거널 써츠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세 가지, ‘인식, 불확실성, 물질’이다. “단순히 건축 소재로서의 물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재료의 최소 단위, 물성 본연의 성질이고 나아가 이 세상을 이루는 물질까지 탐구하려고 하죠. 건축가가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그 이변에서 생기는 일을 무심코 내버려둬도 안 된다고 봅니다. 불확실성까지 정면으로 끌어안아야 하죠.” 사람들은 결국 감각, 오감으로 공간을 경험하지만 다이아거널 써츠는 그 이면에 담긴 논리와 이성에 대한 인식을 끌어내기 위해 좀 더 치밀하게 계획한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까지도 집요하게 파고들기에 대부분의 작업이 복합적인 레이어로 얽혀 있다. 그러나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공간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MMCA 과천프로젝트 2021: 예술버스쉼터〉의 최종 당선작인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는 제목만으로도 많은 해석을 낳았다. “디자인, 건축업계 사람들은 무릎을 탁 쳤을 테지만 대중에게는 다소 선언적이고 반항적으로 들렸다고도 해요. 저와 직원들은 위트와 반전이라고 생각했고요. 현장에서 3개월을 살다시피 하며 미술관 시설을 관리하는 선생님들과 굉장히 친해졌는데, 공사가 끝날 무렵 전시 포스터가 걸린 모습을 보고 ‘이게 무슨 일이냐’며 걱정하시더라고요. 제가 지은 이름인데 말이죠.”(웃음) 버스 정류장이자 가구이며 동시에 조각인 이 설치 작업은 장소를 사용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레이어가 발견되는 작업으로 호평받았다.

미술관으로 진입하는 여정에 3곳의 조각적 풍경을 마주하는데 눈여겨봐야 할 것은 모든 버스 정류장에 하나씩 있는 원형 오브제다. 낮에는 단순한 장식처럼 보이는 이것의 진짜 역할은 밤에 알 수 있다. 가로등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불이 꺼지고 버스 정류장의 작은 핀 조명이 켜지는 순간 원형 오브제가 반사판이 되어 이곳을 비추고, 건축은 본연의 모습인 조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양가적인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끼리만 공유하던 유머 코드가 누군가를 관통하면 짜릿한 한편, 쉽게 알아차릴 땐 깊이의 부재가 아닌지 고민하는 것이죠. 이런 성향이 저에게 독인지 약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 과정이 정말 즐겁다는 거예요.” 김사라는 다른 사람이 먼저 발판을 다져놓은 안온한 체계 속에서 행하는 건축은 새로움을 발견할 기회를 잃는 것이라고, 그렇게 살기에는 인생이 아깝다고도 말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너무 많은 공간에 길들여지면서 상상력이 부족해졌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는 바닥과 천장을 전복시켜 공간의 축을 비틀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감각 체계를 가시화하기도 한다. 때로는 잡초가 장소의 주인이 되며, 소멸을 통해 공간을 말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많은 이들이 경험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아직까지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이 없기에 삽질도 많이 한다. 결과물이 담보되지 않은 노동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그 자체가 새로운 경험인 만큼 미리 겁먹지 않는다.

올해 9월부터 열리는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현장 프로젝트전’ 큐레이터를 맡았는데 이 또한 엄청난 노동이 예상된다고. 총감독은 건축가 조병수, 주제는 ‘땅의 도시, 땅의 건축’으로, 전시 개최 이래 처음으로 DDP가 아닌 곳에서 메인 행사가 열리는 것이다. 가장 주목할 점은 금단의 땅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건축 전시라는 것. 일제강점기 이후 110년 동안 닫혀 있던 이곳은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부지를 공개해 2024년까지 시민에게 개방한 뒤 이건희 기증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도심 한복판에 3만 7000㎡ 규모의 땅이 비밀처럼 숨어 있었다는 콘텍스트 자체가 믿기지 않죠.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닫혀 있었기에 어떤 건축 행위도 일어나지 못했던 이 땅을 밟는다는 것만으로 감격스럽기도 해요. 이번에는 전시 참여자가 아니라 큐레이터입니다. 그동안 다이아거날 써츠가 파빌리온을 제안하며 느낀 한시적인 구조물의 한계와 의미,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정리할 기회가 될 듯해요.” 김사라는 이번 ‘현장 프로젝트전’에 ‘체험적 노드: 수집된 감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비현실적인 풍경에 세워질 설치물이 사람들과, 또 도시와 어떻게 만날지에 대해 주체적 해석을 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드러난다. 한층 더 확장된 의미의 도시 건축으로 의미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이곳에서 다이아거날 써츠가 쌓아온 단단한 개념들을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 세 가지

질문, 태도, 과정.

지난해 날 설레게 한 디자인

베를린 쾨니히 갤러리의 〈Tue Greenfort〉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의 〈문신: 우주를 향하여〉전.

올해 꼭 만나고 싶은 클라이언트

자연 속의 리조트, 호텔, 미술관.

자신과 직결되어 있다고 보는 사회적 이슈

표층 생태학과 심층 생태학.

지난해 소비 중 가장 만족하는 것

전기가오리 구독.

디자이너를 건강하게 만드는 습관

독서.

새해 계획

생동과 집중.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35호(2023.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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