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셉트는 백의민족…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단복 디자인한 무신사 스탠다드 인터뷰 ②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국가대표 단복 콘셉트는 ‘백의민족’이다. 따뜻한 미색 컬러뿐 아니라 데님 소재의 재킷과 바지로 구성된 단복 형태도 눈에 띄었다. 현재의 단복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을까? 프로젝트를 담당한 무신사 스탠다드의 김지훈 맨즈디자인팀 디자이너, 이나래 마케팅팀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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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는 백의민족…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단복 디자인한 무신사 스탠다드 인터뷰 (1)
같은 단복이라도 실루엣은 각각 다른 이유
— 무신사 스탠다드 팀이 선수촌에 방문해 선수들 체형을 파악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김지훈 보통 선수단의 치수를 잴 때는, 한 사람 한 사람 정확하게 치수를 재서 그에 맞춘 옷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들었다. 우리는 선수들이 좀 더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다. 단복 디자인은 같더라도 선호하는 핏에 따라 커스텀이 가능하게 했다. 평소 옷을 크게 입는 것을 좋아한다면 크게, 딱 맞는 옷을 좋아한다면 딱 맞게 입을 수 있다. 같은 단복이라도 실루엣은 다 다르게 나올 수 있는 거다.
— 한 사람 한 사람의 취향과 선호를 고려하려면, 치수를 재는 일과는 별도로 부가적인 과정이 필요했을 텐데.
김지훈 옷 샘플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가져갔다. 보통 바지 사이즈는 26, 27, 28…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지 않나. 그 사이즈를 모두 준비하는 한편, 바지 길이를 각기 다르게 한 샘플들까지 준비했다. 예를 들어 27 사이즈의 바지를 입는다고 해도, 바지 길이는 보통 27 사이즈 바지의 길이보다 더 긴 것을 선호할 수도 있잖아. 특히 운동선수의 경우, 같은 사이즈를 입는 선수들이라 해도 종목에 따라 체형이 무척 다르기 때문에 더욱 다양하게 준비했다. 샘플만 80벌 이상 만들었다.
— 선수들이 샘플을 입고 나오면 치수를 재고, 선호하는 핏을 반영해 제작하는 방식이었구나. 그 모습을 그려보니 옷 가게의 피팅 룸이 떠오르기도 한다. (웃음)
김지훈 실제로 수많은 샘플을 가져갔기 때문에, 치수를 재는 공간을 매장처럼 만들어 두고 선수들이 삼십 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방문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선수 한 명을 디자인 팀원 한 사람이 일대일 마킹하면서 응대했다. 코치단 중에서는 다소 쑥스러워하는 분도 계셨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았다. 옷을 입어 보는 선수들의 표정이 즐거워 보였다.
이나래 보통 단복 치수를 잴 때 완성된 샘플을 입어 보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들었다. 직접 입어 보며 치수를 정했다는 점이 선수들에게 자그마한 재미 요소가 되어 주었을 수도 있을 듯하다.
김지훈 실제로 피팅 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선수들이 옷을 선택하는 방식도 전부 다른 게 당연하다. 처음 입은 것을 바로 선택하는 선수도 있고, ‘긴 게 나아요? 짧은 게 나아요?’ 물어보며 곰곰이 고민하는 선수도 있었다. 친한 선수와 똑같은 걸로 달라는 선수도 있었고. (웃음)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 그 과정을 끝내는 데는 얼마나 걸렸나?
김지훈 프로젝트 자체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제안부터 단복 생산까지 4~5개월 안에 이뤄져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치수를 재는 과정 역시 1~2주 안에 끝내야만 했다. 당시 선수촌에 여덟 번 정도 방문했다. 선수들이 진천 선수촌에서만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니더라. 종목이나 훈련 내용에 따라 전국 각지, 해외에서 훈련받는 선수도 많다. 팀을 나누어 진천, 파주, 수원, 태릉 등 여러 지역을 방문해 치수를 쟀다. 부득이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지역에 있는 선수들과는 동영상 자료로 정보를 전달하고, 전화로 대화하며 사이즈를 맞춰 나갔다.
새로운 단복을 향한 과감한 도전
— 비교적 친숙한 정장 형태의 단복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의 단복이 탄생했다. 대한체육회 입장에서도 과감한 도전을 한 셈이다. 대한체육회의 반응은 어땠나.
이나래 초반에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의를 거쳤다. 콘셉트를 잡는 일부터 디테일까지 세세하게 공유하고 회의를 했기 때문에, 방향을 확정한 후로는 지지해 주셨다.
— 국가대표 5인이 등장하는 단복 화보를 공개했다. 화보를 기획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나래 단복이 아주 멋있게 완성된 만큼, 이 단복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방법을 고민했다. 시각적으로 강렬하면서도 디테일까지 잘 보여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모델 화보를 진행하는 아이디어도 나왔었다. 그렇지만 ‘국가대표 단복’이라는 의미와 진정성은 선수들이 가장 잘 표현하리라고 판단했다. 선수를 직접 섭외하기로 하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 리스트를 확인하며 라인업을 구성했다.
그래, 안 되면 어쩔 수 없어. 근데 할 때까진 해 봐.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 같아요.
펜싱 홍효진 선수, 무신사 스탠다드와의 인터뷰 중에서
스스로를 이기는 싸움을 하다
— 리듬체조 김주원 선수, 브레이킹 김헌우 선수, 태권도 장준 선수, 근대5종 전웅태 선수, 펜싱 홍효진 선수 등 5인이 화보에 참여했다. 이 선수들과 어떤 비주얼을 만들고 싶었나.
이나래 각기 다른 종목의 특성을 확연히 보여주고 싶었다. 팀 코리아의 슬로건은 ‘비욘드 유어셀프Beyond Yourself’다. 다른 선수가 아닌 스스로를 이긴다는 것,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뜻이다.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과 도전 정신을 화보와 인터뷰에 담아내려고 했다.
▲ 항저우 아시안게임 팀 코리아 단복 캠페인 영상
내가 이뤄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정말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훈련하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근대5종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근대5종 전웅태 선수, 무신사 스탠다드와의 인터뷰 중에서
— 참여한 선수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이나래 선수마다 달랐다. 화보 촬영 경험이 있는 선수들도 있고 이번이 처음인 선수들도 있었다. 촬영 경험이 별로 없는 선수들은 초반에는 다소 부끄러워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 본인 종목의 포즈를 취할 때는 눈빛이 달라졌다. 선수만이 낼 수 있는 아우라를 확실히 느꼈다. 장준 선수가 발차기를 할 때, 김헌우 선수가 브레이킹 동작을 취할 때 등 선수들이 동작을 선보일 때마다 촬영장에 감탄사가 이어졌다.
— 뜻깊은 작업에 참여한 소감은.
김지훈 결단식 날 선수단이 단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뭉클했다. 프로젝트 내내 ‘주인공은 국가대표다’라는 생각을 품고 작업했는데, 그 점이 느껴진다면 기쁘겠다.
이나래 새로운 단복이 아무쪼록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좋겠다. 프로젝트의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공들였다. 그 진심이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개막식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웃음)
한국의 패션을 알리는 또 다른 방법
— 대한체육회와는 이번 협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일들을 도모할 계획이라고. 어떤 일들을 예정 중인가?
이나래 우선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잘 마무리하는 한편 내년 파리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파리올림픽 프로젝트 타임라인을 대한체육회와 함께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파리가 패션과 깊이 관련된 도시인만큼, 대한체육회는 한국의 패션이나 문화를 어떻게 알릴지도 고민하고 있다. 관련해 무신사 스탠다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 중이다. 물론 아직은 초기 단계다.
— 파리올림픽 단복에 대해 구상하고 있는 바가 있다면, 공개할 수 있는 선에서 귀띔해 달라.
김지훈 계속 고민하고 있다. 파리올림픽 참가국의 단복에 어떤 디자이너가 참여하는지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팬데믹은 패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패션계에 등장하는 디자인들은 자연스럽고 편안하면서도 럭셔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트렌드의 변화가 어느 정도 반영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Project Info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국가대표 단복 디자인
진행 브랜드 | 무신사 스탠다드
총괄 | 이건오
상품 디자인 및 제작 | 김지훈, 박지은, 정진우, 유소연, 허경구, 민홍일, 조우현
콘텐츠 기획 | 이나래, 강혜민, 이소라, 류솔, 조하늘
사진·영상 | 이재혁, 김범수, 조성환, 홍지표
협력ㅣ대한체육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