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천국 최지웅

최지웅은 알 만한 디자이너는 다 아는 시네마필이다. 그에게 수집은 일종의 DNA다.

아카이브 천국 최지웅
디자이너이자 아키비스트.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를 운영하며 〈워낭소리〉 〈경주〉 〈최악의 하루〉 〈부산행〉 〈신세계〉 〈최악의 하루〉 등의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출판 브랜드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를 론칭해 〈영화선전도감〉 〈필름타이포그라피〉 〈88서울〉 〈영화카드대전집〉 〈영화간판도감〉 등을 출간했고, 플레인아카이브와 함께 영화 음악 레이블 PPR을 설립했다. 한 달에 한 번 문을 여는 ‘프로파간다 시네마 스토어’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아카이브를 쌓고 있다. propa-ganda.co.kr propagandacinemastore

최지웅은 알 만한 디자이너는 다 아는 시네마필이다. 그에게 수집은 일종의 DNA다. 끌려서 모았고, 모으니 컬렉션이 됐고, 이를 짜임새 있게 정리해 의미 있는 자료로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희소해진 만큼 더욱 가치 있는 수집품이 되었고, 그는 이 옹골찬 아카이브로 자신만의 시네마 천국을 가꿔나간다. 어느덧 ‘수집 인생 40년’이 된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케이팝 포토 카드를 애지중지 모으는 어린 친구를 절대 가벼이 여길 수 없을 것이다.

아카이브의 시작이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가 좋았다. 극장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설레고 크게 걸린 간판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화를 보면서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처음 느낀 것은 1984년 〈E.T.〉가 개봉했을 때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나에게 아버지가 E.T. 인형을 사줬다. 내가 획득한 최초의 영화 굿즈였다. 그때부터 영화를 보면 사운드트랙을 사고 관련 물건을 모았다. ‘영화를 우리 집으로 가져다 놓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비디오테이프가 널리 상용화되지 않았을 때라 더욱 그랬다. 또 지방은 상대적으로 문화적 혜택이 부족했다. 서울의 극장에선 전단도 많이 나눠주고 조조 관객에게 티셔츠 같은 각종 선물도 주지 않나. 원주에 살던 내가 유일하게 모을 수 있는 영화 굿즈는 포스터였다. 쉽게 얻을 수 없으니 시민 게시판에 붙어 있는 것을 몰래 떼어 오기도 했다. 다행히 영화 카드만큼은 잘 나눠주길래 이걸 부지런히 모았다. 갖고 싶은 포스터가 생기면 극장에 가서 졸랐는데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영화관 한편에 부착된 포스터를 뜯다가 영상 기사에게 덜미를 잡힌 적도 있다. 제일 주력으로 수집한 건 영화 전단. 이 아카이브를 모은 책이 〈영화선전도감〉이다.

〈시네마 천국〉 같은 이야기다.

내 인생 영화다. 나도 토토처럼 영사실로 끌려 들어갔다. 내심 엄청 혼날 줄 알았는데, 영사실 옆 창고 책장에 빼곡히 정리해둔 영화 포스터를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고 하더라. 알프레도 아저씨 같았다. 그때 아카데미극장에서 가져온 포스터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시네마 천국〉이 재개봉할 때 포스터 디자인을 맡아서 더욱 특별해졌다.

애호와 소장은 다른 영역이다. 갖고 싶은 욕구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소유욕이 늘 강했다. 영화에 관한 것은 정말 닥치는 대로 모았다. 그리고 정리를 잘했다. 어릴 때부터 서랍에 차곡차곡 전단을 모았고 좀 커서부터는 바인더에 정리했다. 스크랩북도 만들었다. 그때부터 디자인을 좋아했나 보다. 그리고 절대 물건을 버리지 않았다. 유년 시절 무언가를 수집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도움이다.(웃음) 제대하고 보니 물건이 다 사라졌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지 않나. 우리 집안은 대대로 뭘 잘 버리지 못했다. 어른들이 하찮게 여길 법한 물건도 존중받았다. 심지어 군대와 어학연수를 갔을 땐 누나가 전단을 대신 모아주기도 했다.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영화가 큰 몫을 했겠다.

스크랩북 만들기를 좋아할 땐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했는데 고등학생 때 영화 잡지 〈스크린〉에서 포스터 디자이너 특집 기사를 보고 다음 날 미술 학원에 등록했다. 디자이너가 된 이후에도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큰 원동력이 되었다. 수집품의 타이포그래피, 편집 디자인을 보며 자극받을 때도 있고, 어떤 수정 요청이나 간섭 없이 100% 나의 취향과 욕망으로 수집하고 책을 낸 것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또 내가 소싯적 포스터를 좀 훔치지 않았나.(웃음) 그렇게 모은 물건이 귀했기 때문일까. 디자이너로서 목표가 하나 있다면 ‘훔쳐 가고 싶은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

영화는 물론 딱지, 잡지, 책갈피 등 수집의 카테고리가 한두 개가 아니다. 서울올림픽 아카이브도 상당히 방대하다.

온 나라가 집중해서 예쁜 로고나 마스코트, 굿즈 같은 것을 만드는 게 좋았다. TV만 틀면 서울올림픽 공식 제품 광고가 나오고, 호돌이가 그려진 물건이 쏟아져 나왔다. 축제 분위기, 그리고 그 열기와 어우러진 디자인이 나를 들뜨게 했다. 당시에는 작은 배지, 우표, 학교 앞이나 동네 가로등에 붙어 있는 스포츠 종목별 포스터를 모았고 크면서 점차 수집 규모를 늘려나갔다. 〈88 서울〉을 출간할 무렵에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서울올림픽이 어떤 모습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1988년도에 찍은 서울올림픽 사진, 추억을 모집합니다’라고 소셜 미디어에 공유했더니 옛 앨범을 들춰본 사람들이 라디오 사연 보내듯 글과 사진을 보내줬다. 아버지가 운동선수였다거나 할머니가 애드벌룬 사업을 했다는 식의 다양한 이야기가 모였다. 선수증이나 티켓을 고스란히 보관한 사람들도 있었다. 호돌이를 탄생시킨 디자인파크 설립자 김현과의 인터뷰도 담았다. 슬라이드 필름으로 보관한 오래된 사진 자료도 협찬받았다. 〈88 서울〉 표지에 실린 인형이 호돌이 프로토타입 1호다.

표지에 담긴 호돌이는 김현 디자이너의 프로토타입 1호다.
수집이 하나의 독립된 문화 장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취향을 향유하면서 하나의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1990년대에 PC 통신의 발달로 인터넷 동호회가 생기면서 수집이 부쩍 활발해진 것을 기억한다. 영화 카드 동호회도 있었다. 갔더니 내가 제일 막내더라. 하나의 작품에도 여러 종류의 영화 카드가 있다는 사실을 거기서 알게 됐다. 〈영화카드대전집〉을 만들 때 동호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제는 각종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아카이브를 공유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기에 수집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듯하다.

문화가 생성된 곳에는 사람이 모인다. 수집을 통해 어떤 인연을 만났나?

책을 준비하면서 과거 한국에 근무했던 미군 몇몇이 슬라이드 필름으로 극장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알음알음 그 사람들을 만나서 사진을 받았고 독특한 인연이 이어졌다. 〈영화간판도감〉 편집이 끝날 때쯤엔 1980년대부터 주말마다 서울 시내 극장 간판을 찍는 사람을 알게 됐다. 인쇄를 넘기려는 시점이었는데 그의 도움으로 책이 더 풍성해졌다. 본업이 디자이너이기에 수집 활동이 일을 의뢰받는 계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 무엇보다 김현 디자이너나 간판 화백처럼 평소 선망하던 사람을 만난 것이 제일 값지다. 1980년대 극장 간판을 그린 화백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직업의식 이상의 사명감이 느껴졌다. “영화 개봉일은 내 전시회 개막일이다”라는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수집품의 공통 분모를 추려보면 대체로 기억 한편으로 사라져가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을 붙잡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앨범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추억을 잘 모아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올가을에는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생일 이야기와 사진을 엮은 책 〈생일 축하합니다〉가 나온다. 과거 사진을 통해 당시 유행한 의상이나 집 안 풍경, 소위 ‘K-디자인’으로 묶이는 것의 변천사도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라이프 아카이빙 북’이라고 표현한다. 지극히 사적인 장면들이 모여서 하나의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물건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의 기억까지 모으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근대사 물건을 좋아하는 것도 크게 작용한다. 박물관에 놓여 있을 법한 사물을 끄집어내 곁에 두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즐겁다. 1900년대에 발행한 잡지의 창간호 표지만 모은 〈20세기 레트로 아카이브 시리즈〉 1호를 만든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시리즈의 2호로 ‘과자 포장지 아카이브’를 준비 중이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아이템이 꽤 많은데 제일 만들고 싶은 아카이브 북은 ‘엄마의 물건’이다. 부엌만 보아도 우리 엄마의 수집품 또한 만만치 않다.(웃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어느 시점에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

무조건 1980년대다. 영화, 패션, 음악, 자동차, 모든 게 과하게 넘쳤다. 풍요로운 시기인 만큼 화려하고 컬러풀한 디자인도 많이 탄생했다. 디자이너로서 할 일이 제일 많았을 것 같다. 별다른 기술이 없더라도 과감한 디자인을 시도해보고 싶다.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토요일에 예약제로 문을 여는 프로파간다 시네마 스토어. 공간과 가구 디자인은 COM이 맡았다.
한 달에 한 번 ‘프로프간다 시네마 스토어’를 오픈해 수집품을 소개한다. 앞으로 또 어떤 방식으로 아카이브를 향유하고 싶나?

해외에 갈 때마다 그 도시의 영화 포스터나 굿즈를 파는 숍을 꼭 찾아가는 편이다. 한국에는 그런 공간이 없다. 분명 1990년대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동숭아트센터 지하의 ‘키노’나 종로의 ‘깐느’ 같은 숍. 영화를 디자인 상품으로 만드는 문화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직접 공간을 만들었다. 어느덧 5년이 됐다. 숍을 운영하면서 제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나 같은 사람을 만날 때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무언가를 갖고자 하고, 자신이 모은 것을 보여주고 이야기하며 즐거워하는,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계속 꾸리고 싶다. 평소 한국영상자료원과 일을 많이 하는데, 거기서 아키비스트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단순히 무언가를 발굴하고 수집하는 것을 넘어서 그 기록을 체계화해 널리 알리며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아키비스트의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 또한 아키비스트라고 생각한다. 수집품을 혼자 보면서 즐기기보단 정리하고, 책으로 만들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글 정인호 기자 사진 신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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