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하우스의 변신, 세계 최대 조명 축제 ‘비비드 시드니’
예술과 첨단 기술의 융합으로 펼쳐지는 비비드 시드니
호주 최대 규모의 축제, 비비드 시드니가 현재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세계 각지의 예술가, 음악가, 전문가들이 모여 예술과 첨단 기술이 융합한 환상적인 라이트쇼를 만들어냈다. 올해로 14회차를 맞이하는 비비드 시드니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호주에서는 각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들을 보다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있다.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역사적인 건축물과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인 랜드마크가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조명 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호주 최대 규모의 축제로 손꼽히는 ‘비비드 시드니(Vivid Sydney)’다. 매년 5월 밤낮으로 시드니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이 축제는 세계 각지의 예술가, 음악가,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예술과 기술이 융합된 환상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다. 비비드 시드니의 대대적인 성공 이후 ‘화이트 나이트 멜버른(White Night Melbourne)’과 ‘인라이튼 캔버라(Enlighten Canberra)’도 생겨났지만 역사로 보나, 규모로 보나 비비드 시드니가 압도적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올해로 14회를 맞이한 비비드 시드니는 오는 5월 24일부터 6월 15일까지 약 3주 동안 ‘Vivid Sydney, Humanity’라는 테마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역대 비비드 시드니 중 가장 긴 라이트워크
축제 기간 동안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멀티미디어 인랙렉티브 작업으로 도시 곳곳은 마법의 빛이 생겨나고 이로 인해 시드니는 만화경 같은 원더랜드로 변한다. 서큘러 선착장(Circular Quay)에서 시작하여 대표 관광지인 달링 하버(Darling Harbour), 록스(The Rocks), 바랑가루(Barangaroo) 등 다양한 랜드마크를 거치며 마무리되는 8km의 ‘라이트 워크(Light Walk)’는 비비드 시드니의 역대 최장 라인을 자랑한다. 이번 라이트 워크에서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윈야드(Wynyard)에서 진행되는 <Dark Spectrum: A New Journey>로 각양각색 조명과 함께 사운드스케이프에 몰입할 수 있는 설치 작업이다. 폐철도 터널에 위치한 1km 길이의 산책로를 변형시킨 것으로 색상과 음악을 달리한 8개의 테마 공간에서 눈부신 빛의 여정을 탐험할 수 있다. 배경 음악으로 활용된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과 300개의 레이저 조명, 500 개의 손전등, 250개의 탐조등 등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빛의 안내를 받으며 유명 예술가들의 놀라운 설치 작품과 함께 감각적인 경험을 하다 보면 이토록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3D 조명 프로젝션이 한 도시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수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비드 시드니의 하이라이트는 시드니의 아이콘, 오페라 하우스(Sydney Opera House)가 매해 어떻게 바뀌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올해는 줄리아 구트만(Julia Gutman)이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나르시스 신화를 재해석한 <Lighting of the Sails: Echo>로 오페라 하우스를 장식했다. 구트만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이기도 한 이 작품은 자투리 천, 담요, 기증받은 옷 등 그녀가 지금까지 각종 패브릭으로 만든 패치워크를 디지털화 한 것이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오래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든 이 작품은 장인 정신과 현대 기술의 컬래버레이션이라 할 수 있다. 패브릭의 질감이 느껴지는 빛의 환영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주인공 소녀의 머리는 어머니의 스카프로, 얼굴은 오래된 자작나무 천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데님으로 이루어진 위험한 강물을 항해해야 하는 소녀는 상상과 현실, 어둠과 빛을 뒤섞으며 오페라 하우스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신화적인 서사, 패브릭의 질감, 심리적 흥미를 모두 결합한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구트만의 영상은 자의식의 역설, 자아를 완전히 보는 능력의 한계, 자아와 타인의 모호한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비비드 시드니의 가장 큰 묘미로 손꼽히는 이 장관을 보기 위해 시드니사이더(Sydneysider)들은 물론 각 지역에서 온 여행자들은 오페라 하우스가 가장 잘 보이는 명당을 찾아 나선다. 오페라 하우스 인근의 하버뷰 호텔은 몇 달 전부터 예약이 꽉 찰 정도로 핫 스폿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새해맞이 불꽃놀이 시즌만큼이나 치열하다.
시드니 비엔날레와 함께하는 비비드 시드니
더욱이 이번 비비드 시드니는 호주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인 ‘시드니 비엔날레(이하 BOS, Biennale of Sydney)’와 맞물려 보다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미술관(이하 AGNSW, Art Gallery of NSW), 시드니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Australia), 아트스페이스(Artspace), 화이트 베이 발전소(White Bay Power Station) 등에서 ‘Ten Thousand Suns’라는 주제로 소수 인종과 문화적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독특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100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되는 화이트 베이 발전소는 매주 수요일마다 ‘Art after Dark’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밤늦도록 발전소를 개방한다.
세계적인 축제인 만큼 비비드 시드니 기간 동안에는 전 세계에서 모인 창의적인 사상가들의 토론과 포럼이 연일 이어진다. 인류와 공동체에 중점을 둔 이번 축제는 여전히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 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주를 이룰 것이다. 국내외 뮤지션들의 음악 공연 또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이벤트다. 음악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혼재하는 호주에서 소속감과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축제 역시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60,000년 넘는 시간 동안 가장 지속적으로 국가와 공동체를 연결시켜온 중요한 노래들을 기념하며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s) 출신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소개하는 데 의의를 둔다. 한편 세계적인 요리사가 제공하는 프리미엄 다이닝, 각종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레스토랑의 비비드 시드니 한정 메뉴, 다문화 사회답게 전 세계 스트리트 푸드가 즐비한 푸드 트럭 등 다양한 맛을 경험하는 것 역시 비비드 시드니를 체험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