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스마트폰의 미래 설계자, 이철배

23년 동안 LG맨 이었던 이철배 MC 디자인 연구소 소장이다. 과학고와 카이스트를 졸업한 디자이너, 대기업의 제품 디자이너. 그의 인상은 차갑고 날카롭지만 말문을 여니 반전이다. 주변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농담에 능란한 이철배 소장에게 LG전자 모바일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LG전자 스마트폰의 미래 설계자, 이철배
대전과학고를 나와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를 취득했다. 1991년 LG전자에 입사해 TV 디자인과 전략 기획 업무 등을 넘나들며 천천히 영역을 넓혀왔다. 2001년 뉴욕 북미디자인분소장, 2006년 LSR 연구소장 등 LG전자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9년 말부터 LG전자 휴대폰 디자인을 총괄하는 MC 디자인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입사 이후 다른 길로 한 번도 새지 않고 한곳에 몸담아온 충직한 LG맨이다. MC 디자인 연구소에서 프라다 3.0, G, G2, G플렉스 등을 총괄했다. www.lge.co.kr

스마트폰 시장에 뒤늦게 참여해 고전을 면치 못하던 LG전자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 2월 바르셀로나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 2014에서 G프로2가 ‘MWC 최고 제품’으로 선정됐다. 이뿐만 아니라이 행사를 주관하는 GSMA가 뽑은 ‘가장 혁신적인 제조사’도 LG전자였다. iF 디자인 어워드에서는 G플렉스가 금상을 수상했다. ‘곡면 스마트폰’ 경쟁에서 LG전자는 슬며시 웃었다. 2007년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 점유율이 고작 0.2%에 불과했던 LG전자가 지난해에는 4.9%를 기록했다. 독보적인 경주를 펼치고 있는 경쟁사를 따라잡기 위해서 아직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다’는 의지가 내부적으로 득실하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건 23년 동안 LG맨 이었던 이철배 MC 디자인 연구소 소장이다. 과학고와 카이스트를 졸업한 디자이너, 대기업의 제품 디자이너. 그의 인상은 차갑고 날카롭지만 말문을 여니 반전이다. 주변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농담에 능란한 이철배 소장에게 LG전자 모바일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인터뷰: 전은경 편집장, 진행•정리: 임나리 기자, 인물 사진: 김규한 기자, 자료 제공: LG전자

G, 발표 시기: 2012년 11월
옵티머스 G는 초콜릿폰, 프라다폰에 적용한 LG 모바일의 미니멀한 디자인 특징을 이어가는 제품이다. LCD 화면 디스플레이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 앞면은 단순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뒷면은 3D 패턴의 크리스털 반사 효과로 보는 각도마다 느낌이 다르다.
1991년에 입사해 23년 동안 LG전자에만 있었습니다. LG전자 내부에서 어떤 자리를 거쳐 현재 MC(Mobile Communication) 디자인 연구소로 오 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1989년 당시 금성사 디자인 공모전 입상을 계기로 디자인 연구소에서 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후 산학 장학생에 응모해 입사하게 됐습니다. 당시 금성사는 이미 서울 지역에 디자인종합연구소라는 지금의 디자인경영센터 격의 조직을 갖추고 있을 만큼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회사였습니다. 입사 초기에는 TV 디자인을 했는데 미국향 제품이어서 신입임에도 미국 출장을 자주 다닌 기억이 납니다. 1990년대 초는 LG를 비롯한 우리나라 산업 디자인 업계 가 급속도로 세계화의 물결을 탈 무렵이었습니다. 이 무렵 저는 한동안 기획팀에 있었는데, 외국 디자이너와 교류할 일도 많고 영어로 계약할 일도 많았습니다. ‘세계의 디자인 무대는 꽤 넓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98년 무렵 마침 병역 특례도 끝나고 해서 외국에서 공부를 더 하고 픈 마음이 많았는데, 하필 IMF 사태가 터졌어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에 더 있어야 하는 상황 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 잘된 일 같습니다. 그 후 2001년 미국으로 파견돼 북미디자인분소장으로 일했습니다. 그전부터 심도 있는 디자인 리서치를 통해 디자인 결과물을 내는 데 관심이 많았는데, 가전 사업과 휴대폰 사업이 막 태동하고 있던 미국의 상황이 제 관심과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미국 고객의 생활 문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연구해 그들의 음식 문화에 최적화 된 냉장고 구조를 디자인하거나 미국 가옥 구조에 맞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미국의 통신 사업자들과 거의 매달 미팅을 하며 현지 고객의 취향을 반영한 휴대폰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요. 귀국한 뒤로는 2006년부터 LSR(Life Soft Research) 연구소 장으로 2년간 본격적으로 고객 생활 문화 연구를 기반으로 미래지향적인 상품 콘셉트를 개발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후에는 디자인 경영 전략팀이라는 조직을 맡아 디자인센터 전반에 걸친 선행 디자인 연구와 디자인 전략 업무를 했고, 2009년 말부터 MC 디자인 연구소 소장에 부임했지요.

대전과학고를 나와 카이스트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과학도가 아니 라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카이스트에서는 디자인 수업을 어떤 식으로 진행하나요?

중학교 때는 미술학도였는데, 미술과 디자인 분야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 있는 채로 과학고에 진학했습니다. 고2 무렵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학과 설명회가 있었는데, 이때 디자인이란 것이 과학 분야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고, 앞으로의 디자인은 과학 기술적 지식과 통합되는 모습 으로 갈 것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어 선택하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지만, 디 자인과를 택해서 디자인 분야에 몸담게 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이스트에서는 기본적인 스타일링과 관련된 디자인 수업과 공학 분야와 통합된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한 프로세스 기반의 디자인 문제 해결 훈련을 많이 했습니다. 디자인 교육은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므로 좀 더 조형 역량에 중점을 두어 교육을 하든, 리서치와 프로세스 위주로 교육을 하든 각각의 장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연구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다양한 교육적 배경과 역량을 가진 인재를 고루 활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학생 시절 소장님께 영감을 준 디자이너가 있나요?

처음에는 많은 디자인 지망생이 그러하듯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면 좋겠다 싶었어요. 학교 입학 면접 때도 조르제토 주자로(Giorgetto Giugiaro)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결국에는 그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디자인에 미니멀리즘과 기능주의를 정착시킨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디자인 세계에 매료되었습니다. 모더니즘을 논할 때 거론되는 수많은 건축가와 가구 디자이너가 있지만,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 제대로 된 모더니즘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디자이너는 디터 람스라고 생각합니다.

 MC 디자인 연구소는 어떤 일을 하는 곳 인지, LG전자의 디자인센터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는 LG전자에서 나오는 모든 제품의 소프트웨어 디자인과 제 품 디자인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LG전자에서 출시하는 휴대폰과 태블릿 같은 스마트 기기와 냉 장고, 세탁기, 청소기, 에어컨 같은 가전 제품류, TV, 모니터, 홈시어터 같은 홈 엔터테인먼트 제품 들이 모두 이곳에서 디자인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휴대폰 등 스마트 기기의 디자인 개발을 하고 있는 MC 디자인 연구소를 맡고 있고요. 현대의 디자인은 스타일링에 국한되지 않고 사용자의 생활환경과 습관 등을 반영해야 하는 관계로 매우 융합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 디자인경영센터에는 디자인 분야를 전공한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심리학, 경영학, 인류학, 사회학, 공학 등 다양한 전공의 사람이 모여 디자인 개발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프라다 3.0, 발표 시기: 2011년 1월
프라다폰의 세 번째 버전이다. 명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장인 정신’이라는 콘셉트를 스마트폰에 적용해 정교한 디테일로 완성했다. 앞면의 차가운 금속과 뒷면의 부드러운 가죽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삼성전자는 공격적으로 바로 스마트폰에 뛰어든 반면 LG전자는 다소 신중한 행보를 보이며 일반 전화(피처폰)를 고집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이 궁금합니다.

늦었다는 시장의 평가가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은 좋은 방향으 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조금 더 높이 뛰기 위해 조금 더 오래 걸렸다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2009년 MC 디자인 연구소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치열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LG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고민했고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가 오늘날 좋은 모습으로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현재 애플을 제외한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의 최근 시장점유율을 보면 LG 전자가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렌터카 업계에서 헤르츠(Hertz)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아비스(Avis)의 유명한 광고 문구가 “우리는 2등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노력 합니다(We are number 2, but we try harder)” 입니다. 우리는 더 노력하고 더 좋은 디자인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해 드리고자 끊임없이 정진할 겁니다.

LG전자는 전통적으로 생활 가전 제품 강자입니다. 그쪽에서 충분한 수익을 올리고 있고요. 그런 LG전자가 처음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하고 느낀 점이 있나요?

스마트폰 실적에 따라 회사의 주가가 결정된다는 언론 분석이 있을 만큼 휴대폰은 상징성이 큰 사업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LG전자 스마트폰의 경쟁력과 디자인이 분명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고 봅니다. G2는 2013년 대한민국 우수 산업디자인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G플렉스는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국내 휴대폰 업체로는 유일하게 금상을 받았습니다. LG전자는 초콜릿폰과 샤인폰이라는 디자인 중심의 성공 신화를 가진 회사입니다. LG전자 디자이너에게는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어본 DNA 가 있는 거지요. 그만큼 LG전자는 디자인 중심으로 일을 내보자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습니다. 디자인으로 배팅을 한 번 해볼 준비가 되어있고, 기술적으로도 공조가 잘 이뤄지고 있어 여러 가지 좋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G2와 G플렉스 이전의 LG전자 스마트 폰은 사실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제품도 있을 것 같습니다.

2011년 프라다 3.0은 빼어난 디자인에 비해 그 고유의 프리미엄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 하기엔 어느 정도 높은 벽이 있어 아쉬움이 남는 제품입니다. 디자이너에게 있어 좋은 디자인이 더욱 많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죠. 앞면은 기능을 잘 전달한다는 믿음을 주는 차가운 금속 느낌의 마감이었고, 뒷면은 손에 닿는 느낌을 강조한 사피아노 가죽 패턴 마감 의 부드러움을 겸비한 제품이 있었습니다. 2013 년 출시한 G2는 디자인과 기능 관련 좋은 평을 받으며 선전하고 있습니다. “아, LG전자가 휴대폰 디자인을 잘하는 회사였지”라는 인식이 살아난 것은 개인적으로 의미 있고 기쁜 일입니다. LG 전자의 스마트폰 디자인에 대해 세련되고 ‘좋은 디자인’이라고 많은 격려를 해주신 고객과 주변 분들이 제게는 큰 힘이 됐습니다.

G플렉스, 발표 시기: 2013년
LG전자의 곡면 스마트폰 G플렉스. LCD와 배터리 등 주요 내부 구성물을 휜 형태로 개발했다. 휜 형태의 스마트폰은 손에 편안하게 잡히고 통화할 때 얼굴에 자연스럽게 밀착되는 게 장점. 오목한 모양의 디스플레이는 콘텐츠를 볼 때 몰입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내부 디자이너가 외부 평가 때문에 침체되어 있을 때 격려해주는 일도 리더로서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을 때도 있고, 안 좋은 평가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회사의 상황 역 시 상대적으로 좋을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있는 거지요. 제가 디자인 조직의 리더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조직은 크리에이티브 에너지가 넘쳐나야 한다 는 것입니다. 디자인 조직의 리더는 좋은 상황이든 어려운 상황이든 디자이너들이 외부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지속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의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고, 우리 디자이너들이 대단한 재능을 가진 역 량 있는 디자이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난 우리 디자인에 자부심이 있다”라는 저의 생각이 모든 디자이너에게 공유되고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G플렉스는 얼마 전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LG전자의 G플렉스는 세로로 휘어졌는데, 스마트 폰이 휘어져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곡면 스마트폰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온지는 사실 꽤 오래되었고, 실제 양산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는 약 3년 동안 진행했습니다. 우리는 플라스틱 스크린으로 만들 수 있는 궁극의 디자 인을 향해 멀리 보고 길을 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G플렉스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제품입니다. 우리는 G플렉스를 만들면서 100개 이상의 샘플 디자인을 만들어 사용자 테스 트를 진행하고, 그중 가장 의미 있는 형태를 골라 개발을 진행했습니다.

풀터치폰 시대 이후로 휴대폰 제조사마다 디자인에 차별을 주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작은 차이만으로 제조사만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디자인을 보여줘야 하지요. LG전자 스마트폰의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다만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웃음) 현재 LG전자의 디자인을 관통하는 가장 큰 아이덴티티 요소는 후면 버튼입니다. 후면 버튼 디자 인과 노트온(화면을 두 번 두드려 폰을 켜고 끄 는 기능)을 통해 휴대폰 사용 방식을 바꾸고 있 습니다. 후면 버튼 덕에 폰의 옆면을 더욱 얇게 만들어 손에 쥐는 느낌이 좋아졌습니다. 왼손, 오른손 모두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전원 버튼을 누르기 위해 엄지를 떼는 순간 전화기를 떨어뜨리는 것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LG전자의 후면 버튼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화, 발전할 예정입니다.

LG전자는 기술에 디자인을 맞추는 게 아닌 디자인에 기술을 맞추는 ‘선행 디자인’ 방식으로 유명했습니다. 현재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어떻게 협업하고 있나요?

디자이너의 제안을 구현하기 위한 엔지니어의 노력을 정말 높이 사고 싶습니다. G2나 G플렉스 같은 모델은 오랜 연구 결과 끝에 나온 제품이지 만, 요즘 선행 디자인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 신없이 디자인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선행 디자인’ 프로젝트를 마치면 바로 제품화해야 할 정 도입니다. 그만큼 기술과 시장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것이지요. 한마디로 호흡이 빨라졌죠. 예전 의 선행 디자인과 달리 휴대폰 영역에서는 디자인과 엔지니어가 같이 붙어 선행 디자인을 공동으 로 진행하고 바로 상품화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상당한 자원을 투입해 새로운 판에 맞는 스마트 디바이스의 미래적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휴대폰은 다른 전자제품에 비해 신기술이 빨리 적용되고 빨리 평준화되는 분야입니다. 급속하게 변하는 기술 정보를 어떻게 따라잡나요?

전 세계적으로 테크 사이트 같은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많은데, 새로운 정보가 하나라 도 올라오면 아무리 귀찮아도 읽습니다. 우리 연구원들 역시 디자인 외에 게임, 자동차, 웹 등 조 금이라도 모바일과 연결돼 컨버전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야의 신기술을 열심히 찾아보고 공유합니다. 휴대폰 사업에서 신기술에 대한 정보는 그냥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이 정보를 모르면 죽습니다. 영양제가 아니라 심장병 약을 먹는 기분으로 정보를 먹고 흡수하고 있습니다. 경쟁사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요. 모바일 사업은 절체절명이란 말이 딱 맞아요. 삐끗 실수했다고 봐주는 경우가 없습니다. 부상과 동시에 사망이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까? 이런 위기감으로 정보를 접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고객이 바라는 휴대폰은 대체 무엇일까’에 대한 선행 연구 역시 놓치지 않습니다. 한시도 고삐를 늦출 수 없습니다.

순수 국내파인데 영어를 잘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영어 공부 비결이 있나요?

디자인 공부를 위해서 해외 서적을 읽고 정보를 입수하는 등 영어가 필요했습니다. ‘이 말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지?’ 같은 고민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영화를 많이 봤는데, 한글 자막, 영어 자막, 자막 없이 이렇게 한 영화를 세 번씩 본 기억이 납니다. 외국 책도 읽고, 여행도 하고, 편리하게 살고 싶어서 영어 공부를 한 건데 회사에 가보니 마침 디자이너도 영어를 활용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한 것 같습니다.

뷰(Vu)2, 발표 시기: 2012년 9월
세계 최초로 5인치 대형 화면과 4:3 비율 화면을 적용한 뷰1의 후속 모델. 가독성이 중요한 콘텐츠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화면 비율이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의 특장점을 고루 갖춘 제품.
디자인계의 저명한 분을 통해 수소문하니 이철배 소장님을 두고 ‘디자인 임원임 에도 학제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다. 전략가, 기획자, 마케터 그 누구와도 이야기가 잘 통할 만큼 배경 지식이 많다’ 라고 평가하셨습니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얻는 방법이 있나요?

어릴 때 총 60권이 완결인 백과사전이 한 달에 한 권씩 집으로 배달됐는데, 올 때마다 호기심에 차서 한 권씩 읽었습니다. 이걸 다 읽고 나니 세계는 넓기도 하거니와 너무 신기하고 재미난 게 많아서 대체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후로 백과사전 같은 잡다한 지식을 계속 받아 들였어요. 재미있더라고요. 네이버가 없던 시절에 친구들 사이에서 인간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요즘 와서 생각해보니 디자인 분야야말로 소위 이런 학제적 지식이 유용한 융합적인 분야란 생각이 듭니다. 주변기술을 이해한다든지,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할 땐 광범위한 지식 체계가 도움이 됩니다. 물론 현 업과 관련한 학제적인 접근은 개인 역량에 의존하기보다 조직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 궁금한 정보는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기만 하면 주르륵 알려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위키피디아를 보는 순간 굉장히 허무했죠. 광범위한 지식이란 것의 가치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은 거예요. 근데 그 뒤로는 ‘사람 마음’이 궁금해지더라고요. 동일한 물리적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 요즘에는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정보와 지식을 폭넓게 습득하시는 걸 좋아하는 분이 갑자기 사람 마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게 재미나네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깨달으신 게 있나요?

렌터카 하루 대여료가 경차는 1만 5000원, 대형차는 3만 원이라고 쳐요. 근데 안내 표지판에 이 렇게 적혀 있어요. ‘당신은 가족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번 주말에는 좀 더 편안한 차로 가족과 함께하세요.’ 원래 예산 1만 5000원을 넘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차를 빌리러 간 사람이 아무 주저 없이 마음이 변해서 카드로 긁어 대형 차를 빌립니다. 이성적으로 1만 5000원짜리 차 를 빌리기로 한 사람이 3만 원짜리 차를 빌리는 건 잘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인간 의 마음은 무엇일까 궁금해졌어요. 누군가의 마음에 눈높이를 맞추는 ‘공감력’이 ‘이해력’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감성, 공감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소설류를 많이 읽었 습니다. 특히 연애 소설이요.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소설을 읽으니 많은 경영 서적에서 다루는 이 야기들이 그 안에 다 들어 있더라고요. 소설에는 사랑과 신념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 은데, 경영서에는 인간의 마음을 유도하고 움직여서 경영을 더 잘하는 법 같은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아쉽게도 현재는 연구소 일이 워낙 바빠 책 읽고 생각할 시간이 예전만큼 없습니다.

뷰(Vu)2, 발표 시기: 2012년 9월
세계 최초로 5인치 대형 화면과 4:3 비율 화면을 적용한 뷰1의 후속 모델. 가독성이 중요한 콘텐츠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화면 비율이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의 특장점을 고루 갖춘 제품.
읽었던 연애 소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한강의 단편소설 <몽고반점>에서는 사람의 살 갗 위에 보디페인팅을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눈앞에서 그림이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총천연색 꿈을 꾸는 것처럼 말이죠. 우 리말을 정말 훌륭하게 다루는 김훈의 단편소설 <화장>을 보면 여자가 얼굴에 화장하는 과정을 부인이 화장되는 과정과 대비해 묘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속눈썹에 칠하는 마스카라 끝에서 검은 분진이 살짝 튀는 게 눈앞에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훌륭한 작가의 글을 읽 고 있으면 등장인물의 고뇌와 슬픔과 희열이 그 대로 내 것인 양 척추 끝을 타고 찡하게 전달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문학 작가가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감성을 다루고 독자에게 이미지 하 나 없는 책장 너머로 전달하는 방식에 깊은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사람의 마 음을 다루고 움직이는 것의 반만큼만이라도 우리 제품이 고객의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LG전자에 계시면서 회사의 희로애락을 함께했습니다. 성장과 실패 역시 모두 겪었습니다. 리더로서 이런 경험이 어떤 도움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회사에서의 희로애락은 대개 사람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많아요. 어딜 가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돌이켜보니 그분들을 통해서 ‘내가 세상의 평균이 아니구나’라는, 어찌 보 면 당연한 사실을 배웠습니다. 나는 내 나름의 방향으로 편향된 사람이라는 걸 알았죠. 사람들의 평균과 나의 위치를 비교적 정확하게 제3자적 시각에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보기엔 부족해 보이지만 세상의 평균을 넘어서면 일단 격려하고, 나의 수준까지 끌어 올리려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자세입니다. 우리 디자이너들과도 이런 방향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누곤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 분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듭니다. 언제 어디서든 감사할 일은 항상 존재하고, 항상 감사할 거리를 찾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요.(웃음)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30호(2014.04)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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