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호기심을 유발해야 마땅한 디자인, 마탈리 크라세 (Matali Crasset)

지금껏 크라세가 선보인 여느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섹스 디자인은 모든 정형화되고 표준화된 틀을 깬다. 디자이너의 개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사회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그녀는 모든 성적 행위 역시 의례적인 것에서 벗어나 거꾸로 뒤집어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욕망과 호기심을 유발해야 마땅한 디자인, 마탈리 크라세 (Matali Crasset)
여성을 위한 쾌락에 주목해 디자인한 ‘8번째 천국’. ©Florian Kleinefeen, galerie Slott

과연 디자이너의 성별은 디자인에 특별한 의도와 가치를 부여할까. 한 번쯤은 깊게 생각해볼 문제지만 적어도 섹스와 관련한 산업과 디자인에서 여성의 존재감은 미미했고 그로 인해 남성 중심적 사고와 이미지가 주를 이루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성별이 여성인,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마탈리 크라세(Matali Crasset)가 섹스 토이를 디자인한 것은 기존의 벽을 허문 명징한 상징처럼 느껴진다. 더욱이 마탈리 크라세는 ‘인간과 공간, 인간과 사물 간의 의사소통을 자신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는 디자이너가 아닌가. 이런 그녀가 여자(스스로)의 몸과 완벽히 소통하며 디자인한 ‘8번째 천국(8eme ciel)’은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알아갈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다.
크라세 스스로 섹스 토이가 아닌 러브 토이임을 강조하는 이 도구는 가슴과 엉덩이의 풍만함, 여성적인 곡선을 나타내는 우아한 형태로 ‘숫자 8’,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여러 가지외형으로 읽힐 수 있다. “이미지는 우리의 사고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에 남자들은 섹스 토이를 디자인할 때 남근 형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그녀의 말대로 여성이기에 가능했던 디자인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크라세가 ‘8번째 천국’을 페미니즘을 위한 투쟁 도구로 삼은 것은 아니다. 크라세는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호기심이 많은 여성들을 위해, 또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알고 더 과감히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성용 러브 토이를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완성한 ‘8번째 천국’은 부드럽고 유연한 재질로 꽃 모양의 볼록한 표면이 쾌락의 진원지를 자극한다. 또 메탈 볼이 들어 있는 8개의 반구가 바이브레이션을 전달, 말 그대로 천국을 경험하는 듯한 오르가슴의 경지를 느끼게 해준다.
한편 그녀의 또 다른 작품 ‘에쿼리아(Aequorea)’ 는 사람과 공간의 소통을 통해 성적인 욕망이 발현되도록 만들어졌다. 연인과의 은밀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조우의 장소로 디자인한 것이다. 공간 작업을 할 때는 과연 사람들이 그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만큼 크라세는 ‘에쿼리아’를 일상과 단절된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동시에 은밀하면서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흔해빠진 사각형 침대와 정반대인 둥근 형태의 프레임에 밧줄을 늘어뜨리고 내부에는 몽환적인 느낌이 나도록 자외선 램프를 설치했으며 안락하게 놓인 원형 쿠션을 통해 몸을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외부와 단절된 동시에 360도 어디로든 열려 있는 공간은 연인들에게 습관적인 행동이 아닌 다양한 시도를함으로써 일상 속 관능성을 일깨워주는, 어른을 위한 새로운 놀이터인 셈이다.
지금껏 크라세가 선보인 여느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섹스 디자인은 모든 정형화되고 표준화된 틀을 깬다. 디자이너의 개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사회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그녀는 모든 성적 행위 역시 의례적인 것에서 벗어나 거꾸로 뒤집어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천편일률적이고 따분하게 반복되는 특성이 있는 일상을 새롭게 바꿈으로써 삶을 계속 풍요롭게 가꾸는 것, 이것이 디자이너로서 마탈리 크라세가 기꺼이 섹스 디자인을 하는 이유인 셈이다.
www.matalicrasset.com 

마탈리 크라세. ©Tania & Vincent, Alessi

Interview
마탈리 크라세
“섹스 토이는 쓰임새가 분명하며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하나의 제품일 뿐이다.”

섹스 토이를 디자인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 익스퀴즈 디자인(Exquise design)의 디렉터인 파올라 비아링에르(Paola Bjaringer)가 여성 디자이너로서 섹스 토이를 디자인해 볼 것을 권유했다(관련 기사 108p). 섹스는 삶의 일부이고 내 작업 또한 삶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나의 디자인 아이디어는 일단 표면적으로 기존의 섹스 토이와 눈에 띄게 다른데 의도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방식과 다르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나는 제품에 주된 사용법을 적용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제품 자체에 열린 기능을 부여하고 , 사용자 나름대로 적절한 이용법을 고안하도록 하는 디자인도 즐긴다. 쾌락은 갈증의 해소이자 영속적인 연구 대상이며 호기심이야말로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요소다. 섹스 토이와 같은 제품은 늘 호기심을 유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내 작업은 다른 각도에서의 접근을환기시키며 사람들로 하여금 미처 사용하지 않았던 감각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가장 어려웠거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하다.

디자인의 목적은 대개 사용자가 최대한 많은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만 섹스 토이는 그보다 한 단계 더 은밀한 부분까지 거리를 좁혀야 한다. 보다 심오하고 깊숙한 면까지 파고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사용자 개개인의 몸, 각자가 느끼는 쾌감의 정도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는 디자인할 때 늘 이 같은 기조를 지키고 있는데 이번에도 어떻게 하면 이 특수한 상황에서 사용자에게 재미를 전달할 수 있을까, 또 촉매제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까에 주안점을 뒀다. 물론 고상함과 세련됨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연인과의 은밀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 ‘에쿼리아’. ©Florian Kleinefeen, galerie Slott
지극히 개인적이며 사적인 영역을 디자인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유형의 접근을 시도했는데 바로 ‘여성을 위한 쾌락’에 주목하는 것이었다. ‘8번째 천국’은 새로운 타입의 섹스 토이로 기존 장르의 코드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숫자 8의 형상은 남근 모형이라기보다는 마사지 기구와 같은 형태로 무한함을 상징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킨다. 한손에 착 감기는 완전한 형태는 접어서 두 겹으로 사용할 수 있고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볼록한 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무엇보다 ‘8번째 천국’은 스스로(의 욕망을)를 알아가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흥분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손바닥으로 짓이기며 기본 형태에서 그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다. 은밀함과 쾌락, 강렬한 섹스를 부추기는 이 제품은 순전히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꽤 논리적이며 적절하게, 불편한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은근한 흥분을 바라는 파트너를 깜짝 놀라게 할 일도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여느 생활용품과 다르지 않게 말이다.

당신의 디자인이 사람들의 섹스 라이프, 더 나아가 섹스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부분의 섹스 토이는 아무리 화려한 럭셔리 제품처럼 디자인해도 그 기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매우 은밀한 물건임에도 그 외형이 기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섹스 토이와 같은 제품은 사용자들에게 상상력의 여지를 남겨주고 은근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심리적인 자극을 위한 방아쇠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8번째 천국’을 보면 이게 무엇인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당장 알아챌 순 없는데 나는 이러한 미스터리를 매우 즐긴다. 섹스 토이는 더이상 숨기거나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만화 캐릭터를 그려놓고 정체를 위장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물론 거실 벽난로 위에 올려두고 내가 얼마나 열린 마음의 자유로운 영혼인지 보여주려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쓰임새가 분명하며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또 하나의 제품일 뿐이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45호(2015.07)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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