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는 이제 라이프 셰어(Life Share) 기업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일렉트로마트, 노브랜드, 비밀연구소 등 주요 프로젝트를 직접 챙기고 때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까지 하는 그에게 라이프 셰어를 높이는 데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물었다.

이마트는 이제 라이프 셰어(Life Share) 기업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본사 건물이 있는 이마트 성수점에서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에서 5만 3000여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유력한 인플루언서(influencer) 정용진 부회장.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모든 장소와 음식을 기꺼이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그의 SNS를 살피면 피코크로 차린 삼시세끼부터 요즘엔 뭐가 맛있는지, 해외에서는 어떤 음식이 유행인지 식품업계 트렌드까지 알 수 있다. 파인 다이닝부터 길거리 음식까지 섭렵하고 전 세계 식품·유통 관련 박람회를 직접 챙기면서 방향성을 읽어내는 정용진 부회장은 그 어떤 전문가보다도 감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12월 4일 성수동 이마트 본사 집무실에서 만난 이 유통업계의 지존은 인사이트와 아이디어가 넘쳤다. “마켓 셰어가 아니라 소비자의 일상을 점유하는 라이프 셰어를 높이는 데 유통업의 미래가 달렸다”고 말하는 그는 이제 이마트를 비롯해 복합 쇼핑몰, 이마트타운 등을 통해 자체 콘텐츠로 채운 새로운 리테일 플랫폼을 구상 중이었다. 유통업을 넘어 콘텐츠 생산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어딜 가나 똑같은 제품을 살 수 있는 단순한 마트가 아니라, 내 시간을 점유하는 브랜드가 되겠다는 이마트의 야망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렉트로마트, 노브랜드, 비밀연구소 등 주요 프로젝트를 직접 챙기고 때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까지 하는 그에게 라이프 셰어를 높이는 데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물었다. 인터뷰: 이영혜 월간 <디자인> 발행인, 정리: 전은경 편집장, 인물 사진: 이우경 사진

이마트의 리빙 전문 브랜드 더라이프.
전 세계의 마트와 푸드 관련 전시, 박람회를 다양하게 경험하신 걸로 유명합니다. 직접 경험한 식품 산업의 트렌드를 들려주신다면?

세계의 다양한 푸드 박람회, 마트, 레스토랑 등을 다니다 보면 트렌드가 정말 빠르게 변화한다는 것을 느껴요. 암스테르담의 PLMA, 뉴욕 팬시 푸드 쇼, 독일 아누가(Anuga), 시알(SIAL) 등 전 세계 다양한 식품 박람회를 다니는데요, 식품 관련 트렌드와 이슈가 빠르게 바뀌어 매번 가서 확인합니다. 이 중 PLMA는 성격이 좀 다른데, 이곳에 가보면 전 세계 유통업체의 PL(Private Label)이 어떻게 개발되고 변화하는지  살펴볼 수 있어요. 그런 경험으로 보면, 갈수록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다양해진다는 점, 다른 영역의 식품 간 결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 건강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이국적이고 색다른 음식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으로 그 나라의 식문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에스닉 푸드가 강세라는 점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강력한 디자인과 색다른 포장 기술로 먹는 즐거움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하는 제품이 요즘 눈에 많이 띄네요.

그간 세계적인 유통업체를 둘러보셨을 텐데, 특별히 인상적인 곳이 있었나요?

전 세계적으로 브랜딩과 PL 시스템이 우수한 곳은 많지만, 국내 실정을 고려했을 때 인상적인 곳으로는 캐나다의 최대 유통업체인 로브로(Loblaw)를 들 수 있습니다. 국내에 초청해 사례 연구도 했는데, 그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부엌이었습니다. 캐나다의 가장 보편적인 부엌에 있을 법한 오븐이나 전자레인지를 브랜드별로 구비해놓고 테스트할 수 있게끔 꾸려놓았는데요, 보통 전문적인 테스트 키친에서는 센 불로 최적의 조건을 갖춰놓고 조리를 하잖아요? 그런데 마트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집에서 조리할 때는 다양한 변수가 생길 수 있어요. 조리 예가 있어도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선 삼성, LG 등 사용하는 전자레인지의 성능에 따라 맛에 차이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 부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테이스트 키친을 이마트 내에 도입했고요. 그곳에서 피코크를 비롯해 모든 PL 제품의 맛, 세팅까지 결정하고 마무리합니다. 이마트에서 나온 모든 PL 브랜드 제품은 제가 다 먹어봤습니다. 제가 안 먹고 출시된 것은 하나도 없어요(웃음).

국산의 힘 프로젝트. 이 땅의 농부와 어부들이 생산한 좋은 농수축산물을 발굴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마트의 상생 프로젝트. 상품의 핵심 경쟁력인 품질 향상은 물론 농가에서는 직접 하기 어려운 마케팅, 디자인, 브랜딩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본질적인 경쟁력을 높여주는 프로젝트다.
일의 일부이기도 하겠지만 정말 음식을 문화처럼 즐기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파인 다이닝부터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길거리 음식까지 모두 먹어봤어요. 비싸고 저렴한 걸 떠나 분명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포인트가 있기 때문에 그 지점이 무엇인지 항상 들여다보고 고민합니다. 그 포인트를 발견하기까지 모든 장소, 모든 음식이 저에게 선생님 같은 것입니다.

SNS에도 자주 올리는 피코크 간편 가정식이 요즘 인기입니다. 그 성장 요인을 이마트에서는 맛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700여 개의 다양한 상품성을 갖추고, 맛의 특징을 감각적으로 잡아낸 디자인을 들고 있습니다. 개발 과정이 궁금하네요.

정용진도 먹는데 나도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그런 느낌 아닐까요?(웃음) 피코크는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 브랜드로 키워야겠다는 야심으로 시작한 브랜드예요. 시장 진입을 타진한 결과 집에서 해 먹는 간편 가정식(냉동ㆍ냉장 식품)이 가장 취약하다는 데 착안했습니다. 냉동ㆍ냉장 쇼케이스를 살펴보니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지 않더라고요. 이마트에도 냉동ㆍ냉장군이 있었고 품질도 꽤 괜찮았는데 브랜딩이 제대로 안 돼서 잘 안 팔렸어요. 그 제품군을 피코크로 일부 전환했고, 계속해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물론 전담 부서에서는 맛과 디자인에 목숨 걸었고요. 처음 봤을 때 프레스티지를 느낄 수 있도록 감각적으로 디자인하고 신세계푸드, 조선호텔 등 여러 관계사와 순희네 빈대떡, 홍대의 초마짬뽕 등 유명 맛집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저도 일주일에 2회씩 테이스트 키친에 꼭 참석해 디자인과 음식 품평에 참여해요. 그 결과 2015년 1월부터 9월 21일 현재까지 피코크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58.2% 늘었고, 1000억 원 매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피코크가 국내뿐 아니라 한식의 세계화에 첨병 역할을 할 수 있 도록 정성 들여 키워가고 있습니다.

킨텍스 이마트타운의 피코크 키친. 모든 브랜드는 이마트 내부에서 직접 개발했으며, 100% 직영으로 운영한다.
평소 “유통업의 미래는 유통업체 간의 시장점유율인 마켓 셰어보다 소비자의 일 상을 점유하는 라이프 셰어(life share)를 높이는 데 달렸다”고 강조하시던데, 이를 위한 다양한 전략이 있겠지만 디자 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디자인을 옷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사실 언어라고 봅니다. 언어는 뿌리가 있으니 정신인 것이죠. 이마트가 어떤 철학을 갖고 제품을 만들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출시되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해도 고객은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품에 우리의 디자인 철학이 녹아 있으면 접하는 순간 단번에 알아채지요. 옷이라고 여기는 것과 언어로 접근하고 풀어내는 디자인은 다를 수밖에 없지요.

고객의 라이프 셰어를 점유하겠다는 목표가 굉장히 야심 차게 들립니다.

국내 유통업체 시장은 크게 보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마켓 셰어 싸움을 하고 있습니 다. 점유율을 놓고 가격 경쟁을 하다 보면 전체 파이가 줄어드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동종 업체 간의 경쟁에서 벗어나야겠다 는 결심을 했습니다. 온라인, 백화점, 교외 쇼핑몰과도 경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고객의 일상을 점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쉬운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예전엔 이마트에서 빨리 사서 빨리 나가게 하는 것을 고민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더 오랫동안 머무르게 하는 것을 연구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에는 딴 데 안가고 이마트 안에서만 쇼핑을 하실 테니까요.

킨텍스 이마트타운의 일렉트로마트. 생활 밀접형 아이템이 주류를 이루는 기존 전자 제품 코너와 달리 성인 남성을 타깃으로 이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는 남자들의 놀이터 같은 공간으로 브랜딩했다.
일명 체류형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네요. 그런데 딴 곳을 못 가게 하려면 시간을 책임져줘야 하니 시간도 디자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죠. 우리가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려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요, 그렇게 해서 기획하게 된 것이 이마트타운입니다. 또 한 국산의 힘 프로젝트, 노브랜드, 일렉트로마트, 비밀연구소 등 지난해부터 시작한 이마트의 프로젝트들을 라이프 셰어 전략의 일환으로 보시면 됩니다.

킨텍스의 이마트타운은 규모 면에서도 놀랐지만 단순한 마트가 아닌 체험 공간으로 느껴집니다. 그로서런트 (grocerant)를 내세운 피코크 키친, 트레이더스, 일렉트로마트, 더라이프 등을 흥미롭게 둘러봤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마트타운에서 역점을 둔 것은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려는 전략이었습니다. 이마트타운은 사실 매출을 일으킨 것보다는 다른 업종에 끼친 영향이 더 컸다고 봐요. 평균적 으로 마트에서는 1시간 남짓 머무르는 데 반해 이마트타운에서는 3시간가량 머뭅니다. 이마트에서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보내죠. 일단 오시면 피코크 키친이나 식당가에서 꼭 밥을 먹게 되고, 새로운 게 많으니까 다 둘러보다 보면 보통 3~4시간이 걸려요. 물론 매출을 올리는 효과도 있지만 고객이 다른 곳에 가지 않도록 꽉 잡아두는 역할도 하지요. 특히 피코크 키친은 지금 우리가 가진 자산 중 제일 잘하는 것에 집중한 결과입니다. 아시겠지만 마트의 푸드 코트 하면 우울하고 맛도 별로 없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요. 그곳에서 밥을 먹는 내 모습이 그다지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한 끼 때우는 느낌. 그래서 마트에 와서 즐겁게 밥을 먹고 가게 하자, 푸드 코트의 패러다임을 바꿔보자 해서 시작한 게 피코크 키친이에요. 100% 직영으로 운영하는데 직접 1년간 개발했습니다.

피코크 키친이나 노브랜드, 일렉트로마트 등의 전개를 보면 이마트는 유통 회사로 시작했지만 이제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변모하는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자체 콘텐츠를 많이 가진 회사가 되는 게 목표예요. 기존의 유통업으로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에게 ‘와야 할 이유’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업을 더 이상 유통에 국한시켜 생각하지 않습니다. 플랫폼을 만들고 고객들이 기꺼이 와야 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마트타운을 이러한 역량이 총집약된 새로운 포맷의 쇼핑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마트타운에 그동안 준비해온 새로운 실험을 많이 시도했습니다. 이마트와 트레이더스를 동시 입점시켰고, 처음 선보이는 리빙 브랜드 더라이프, 가전 매장 일렉트로마트, 식음 공간 피코크 키친 등을 오픈했고요, 한식 뷔페 올반, 중식당 초마와 같은 맛집을 입점시켜 F&B의 변화도 추구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키즈스포츠클럽과 애견 전문점 몰리스도 있습니다. 분야별로 전문 매장과 대형 리테일이 결합된 새로운 개념의 리테일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렉트로마트는 기존 전자 제품 마트와 다른 콘셉트, 슈퍼 히어로를 내세운 브랜딩도 눈길을 끕니다. 실질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이마트에서 독립적인 전자 제품 브랜딩을 시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반적인 가전 매장과 달리 차별화된 경험을 주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브랜드로 론칭해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지금의 일렉트로마트 형태를 두고 팀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초기 안은 포근한 집이 콘셉트였는데, 그렇게 하면 기존의 다른 매장과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매장과 집은 달라야지, 집과 똑같다면 누가 이곳을 오고 싶어 할까요? 일렉트로마트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물건이 새롭게 느껴져 약속 시간도 잊을 정도로 몰입해야 한다고 본 거죠. ‘모든 사람이 타깃’이라는 것은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성인 남자를 타깃으로 하고 그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브랜딩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인 남성이 좋아할 만한 제품과 서비스만으로는 감성적인 연결 고리가 약해 이들을 잇는 연결 고리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히어로가 떠올렸고, 일렉트로맨이라는 캐릭터를 디자인했습니다. 한마디로 성인 남자의 놀이터를 만든거죠.

그런가 하면 최소의 디자인으로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품질을 높인 ‘노브랜드’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통 PL 프로그램은 프리미엄, 스탠더드, 저가형 3단계로 전략을 짭니다. 이마트의 경우는 피코크 (프리미엄), 이마트 베스트(스탠더드), 노브랜드(저가형)로 구성됩니다. 사실 노브랜드는 단순한 저가형 제품군이 아니라 이마트가 유통 회사를 넘어 국내외에서 직접 소싱하고 제품을 개발해 자체적인 브랜드 생태계를 만드는 데 목적을 둔 프로젝트입니다. 유통만 하던 우리의 체질 개선 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무조건 싸다는 것만 강조하다 보면 값만 싸고 품질이 안 좋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서, 노브랜드가 잘못하면 그렇게 인식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잠재력이 많은 브랜드인데 싸구려로 전락하면 큰 기회를 놓치게 되겠다는. 이마트의 저가 브랜드로 시작했지 만 합리적이고 스마트한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으로 기획했습니다. 노브랜드가 의식 있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큰 힘을 실어주는 게 바로 디자인마저도 하지 않는 디자인입니다. 제품 패키지에 브랜드의 존재 이유를 밝히고 일관된 옐로 패키지에, 제품의 장점을 해시태그로 표기했고요. 비밀연구소에서 진짜 비밀스럽게 제품을 개발하고 작전을 짜는 중입니다.(웃음)

노브랜드. 품질을 높이면서도 최소의 디자인으로 비용을 한 번 더 절감했다. 스마트한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으로 기획했다.
자주 언급하시는 비밀연구소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진짜 있는 것 같긴 한데, 어떤 걸 연구하나요?

이미 비밀이 아니고요, 비밀이 아닌 걸 비밀이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리려는 거죠(웃음). 말해도 되는 비밀을 말씀드리면, 원래 없던 새로운 조직은 아니고요, 어떤 서비스나 상품 개발을 저희가 모여서 비밀리에 연구한다는 뜻입니다. 여기 제 사무실도 비밀연구소이고 바이어 사무실도 비밀연구소니까 이마트 전체가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제대로, 잘 만들기 전까진 이 비밀연구소에서 탈출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요즘 제가 인스타그램에서 비밀연구소라고 많이 올리는 곳은 테이스트 키친을 말합니다.

농가에서 직접 하기 어려운 마케팅, 디자인, 브랜딩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본질적인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이마트의 상생 프로그램 ‘국산의 힘 프로젝트’는 고객들의 반응과 농민들의 성과 모두 좋았다고요.

국산의 힘 프로젝트는 이 땅의 농부와 어부들이 생산한 좋은 농수축산물을 발굴해 더욱 성장할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마트의 상생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판로나 매입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품질 향상은 물론, 농가에서는 직접 하기 어려운 마케팅, 디자인, 브랜딩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핵심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미예요. 품질이 우수하지만 디자인과 브랜딩이 안 돼 제 값을 받지 못하고 할인 판매하거나 폐기하는 일이 없도록, 좋은 제품을 제 가격에 팔 수 있게 하겠다는 겁니다. 국산의 힘 프로젝트는 사실 이미 하고 있었던 일인데 그것을 브랜드로 만들고 캠페인화한 거예요.

얘기를 듣다 보니 부회장님이 얘기하신 라이프 셰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갑니다. 그렇다면 새로 출시하는 브랜드 외에 기존의 이마트는 어떤 변화를 모색하고 있나요?

‘프리덤 인 프레임워크(Freedom in Framework)’. 어떤 큰 프레임을 가지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형태를 의미하는 말이지요. 이마트는 현재 전국에 150여 개가 있는데 과거에는 외관부터 상품까지 통일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했지만 이제부터는 지역에 따라 특화된 외관으로 디자인하고 상품 구성을 다르게 하려고 합니다. 똑같은 물건을 파는 경쟁에서는 가격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데, 판매하는 콘텐츠가 달라진다면 다른 마트에 가던 사람도 이마트에 한 번 더 들를 수 있는 거고, 그 도시에 살지 않는 사람들까지 올 수 있으니까 상권을 늘리는 효과도 있습니다.

회사 내에 뛰어난 디자이너가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는 경영인의 안목도 중요하지요. 부회장님은 디자인과 브랜딩 과정에서 어디까지 관여하나요?

디자인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요. 피코크나 노브랜드 등 상당수 주요 제품을 최종 컨펌까지 합니다. 물론 본질은 품질이지만 디자인으로 승부가 갈리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품질이 나쁘면 예선전에서 탈락이고 디자인은 결승전 같은 거죠. 디자이너들에게도 컴퓨터 앞에서만 일할게 아니라 직접 가서 만나는 현장의 중요성과 시장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합니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계속해서 새로운 인풋이 들어와야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말처럼 쉽지 않으니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합니다.

이마트의 프리미엄 PL 브랜드 피코크 간편 가정식. 유명 맛집, 신세계푸드, 조선호텔 등과 협력해 맛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700여 개의 다양한 상품성, 맛의 특징을 감각적으로 잡아낸 디자인 등을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해외의 주요 디자인 회사를 직접 방문하셨다고요. 해외 디자이너들을 만나면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곳을 방문했는지는 기업 비밀이라 말씀 못드리고요(웃음). 지난 10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의 여러 디자인 회사에서 얻은 디자인과 브랜딩에 대한 인사이트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 다. 제가 만난 몇몇 디자인 회사는 디자인 철학을 세우는 데에서부터 디자인을 시작하더라고요. 디자인 결과물만 멋지게 만드는 게 아니라 철학을 완성하고 그에 맞춘 최종 결과물이 디자인으로 나오는 거죠. 이렇게 철학부터 시작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은 회사도 있어서 이를 적절히 조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지 않고 체계적인 전략에 창의성을 더하는 그들의 디자인 방식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좌뇌와 우뇌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창의적이지만 그안에는 단단한 논리가 자리 잡고 있는 디자인의 역할의 중요성을 공감했습니다.

디자인은 언어라고 하셨는데, 그건 생각과 뿌리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해외 디자이너들이 아무리 잘해도 이런 측면에서 잘 넘지 못하는 벽이라는 게 분명 있습니다. 디자이너들도 국산의 힘을 더 많이 활용해주면 좋겠네요.

네, 이미 그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노브랜드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국내 디자이너들과도 함께 해보려고요.

현재 신세계그룹은 현대카드에서 디자인한 사원증을 패용하고 있고, 함께 개발한 주방용품 브랜드 오이스터를 이마트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컬래버레이션하게 되었나요?

현대카드는 비록 영역은 다르지만 세상과 소비 자를 바라보는 시각과 철학의 코드가 우리와 잘 맞고 도움이 되는 기업입니다. 현대카드는 정말 남다른 철학이 있는 회사이고, 정태영 부회장님의 디자인 안목과 취향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저는 그분을 뵈면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인스피레이션을 얻곤 해요. 분기별로 한 번씩 같이 식사하면서 뵈면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막 올라와요. 아이디어가 떨어졌거나 고갈되었을 때 뵙고 싶은 분이기도 합니다. 사원증을 부탁드렸을 때는 저희가 디자인 역량이 거의 없었을 때였는데 흔쾌히 현대카드가 디자인 기부를 해주신 거였고요. 감사하고 의미 있는 선물이었죠. 이마트와 현대카드가 함께 만든 오이스터 덕분에 우리 이미지도 많이 개선됐고, 그로 인해 이마트 내부의 디자인 역량을 키워야겠다는 자극을 받는 계기가 되었죠. 그렇게 해서 지금은 디자인 역량을 키워가고 있지만 작년 이맘때만 해도 그렇지 못했어요.

전 세계를 많이 다니셨는데 특히 아이디어를 얻는 장소나 물건이 있다면 귀띔 좀 해주세요.

저는 윌리엄 소노마(Williams Sonoma)에서 항상 힌트를 얻어요. 같은 계열의 포터리 반 (Pottery Barn), 웨스트엘름(Westelm) 등도 좋아하는데 제품과 디자인의 연관성이나 시즌 디스 플레이를 살피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51호(2016.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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