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에 도전하는 영원한 앙팡 테리블 장 폴 고티에

자크 에스테렐(Jacques Esterel), 장 파투(Jean Patou) 등의 전설적인 쿠튀르 하우스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컬렉션을 연 1976년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혁신적인 디자이너로 손꼽히고 있다.

관습에 도전하는 영원한 앙팡 테리블 장 폴 고티에

“장 폴 고티에가 패션계에 남긴 가장 큰 영향은 사회적으로 정의된 여성과 남성 그리고 그에 따른 정체성의 개념을 가지고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패션 사학자 발레리 스틸 (Valerie Steele)이 말한 것처럼 그는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독특한 행보로 주목받았다. 1990년대 마돈나를 패션 아이콘으로 등극시킨 도발적인 콘 브래지어와 2000년대 영화 <제5원소>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의상, 그리고 2012년에 코카콜라 100주년을 맞이해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진행한 코카콜라와의 협업 등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업을 선보이는 프랑스 태생의 장 폴 고티에. 1952년 프랑스 파리 인근에서 태어난 그는 여타의 디자이너들과 달리 패션 학교를 다닌 적이 없지만,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알아본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댕(Pierre Cardin)에 의해 18세에 패션계에 입문했다. 그 뒤 자크 에스테렐(Jacques Esterel), 장 파투(Jean Patou) 등의 전설적인 쿠튀르 하우스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컬렉션을 연 1976년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혁신적인 디자이너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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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호 <i-D> 매거진에 실린 장 폴 고티에의 화보. 사진 데이비드 라샤펠 ©David LaChapelle

1980년대 내내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 즉 악동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파격적인 디자인과 남다른 퍼포먼스를 선보여온 그는 과거의 유산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창조물로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여성성을 재해석한 마돈나의 콘 브래지어와 코르셋 패션, 지금은 여성들이 더 즐겨 입는 고전적인 브레통 피셔맨 스웨터(breton fisherman sweater)처럼 말이다. 마돈나의 월드 투어를 위해 제작한 원추 모양으로 가슴을 강조한 코르셋 형태의 상의는 전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그의 시그너처 아이템이 되었다. 여성성을 과장되게 표현했다는 페미니스트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정작 자신은 어렸을 적 뷔스티에를 입었던 할머니와 텔레비전에 나온 댄서들이 착용한 모습을 통해 코르셋을 강한 여성의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만든 코르셋은 속옷을 겉옷으로 입는 발상의 전환이었을 뿐만 아니라, 속박의 도구에서 여권 신장이라는 사회적 배경을 대변하는 상징물이 기도 했다. 당시 신인이었던 마돈나는 잘 다져진 몸에 콘 브래지어를 입은 채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20세기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고티에는 여성성에 이어 남성성에 대한 부분도 다른 시각으로 해석했다. 다양한 길이의 남성용 스커트를 자신의 런웨이에 선보이는가 하면, 스스로도 거리낌 없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보수적인 풍조가 강했던 1985년 당시 스커트를 입은 남성의 이미지가 오히려 더 남성스러움을 강조하는 효과를 연출했다는 평과 더불어, 한 시즌에 남성 스커트가 3000벌이 넘게 팔려나갈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지금이야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남성 우월주의적 사고가 팽배하던 당시만 해도 엄청난 사건이었다. “지난 20년간 패션계에 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여성이 처음 바지를 입었을 때의 충격만큼이나요!”라는 프랑스 디자이너 다니엘 에스테(Daniel Hechter) 의 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궁극의 패션 디자인이라고 일컫어지는 오트 쿠튀르도 예외는 아니다. 파리에 본거지를 두고 최소 35점을 수작업으로 제작한 컬렉션을 일 년에 두번 이상 선보이며, 15명의 정식 직원을 둬야만 회원이 될 수 있는 배타적인 쿠튀르에서조차 그의 대담한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해야 하는 쿠튀르 의상에 비닐과 깡통, 주방기구를 의상 재료로 사용해 옷을 만든다든가, 전문 모델이 아닌 일반 모델을 기용해 기존 패션계의 상식을 뒤엎는다든가 사회적ㆍ미적 규범에 도전장을 내민 고티에의 작품은 이에 합당하는 기술력에 상상력이 더해져 예술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보였다. 단순히 옷을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라고 하기에 그의 활동 영역은 다방면으로 분포되어 있다. 스스로도 자신의 역할을 세상의 변화를 포착해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만큼 그의 촉수는 다양한 곳에 뻗쳐 있다. 특히 영화는 패션쇼와 다른 방식으로 옷을 만드는 즐거움을 준다고 밝혔듯이, 자신의 첫 번째 패션쇼를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뤼크 베송, 피터 그리너웨이 같은 예술적 감각을 지닌 영화감독과 작업했으며, 2013년 패션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향수를 선보였지만, 1993년에 첫선을 보인 장 폴 고티에 퍼퓸은 코르셋을 입은 여체를 병 모양으로 빚어 출시 당시부터 지금까지 획기적인 패키지와 보틀 디자인으로 단연 눈에 띄는 인정을 받고 있다. 향수, 영화, 공간, 사물 등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예술이지만 그 사이를 잇는 촉매제는 바로 한 가지 영역에 머물지 않는 상상력이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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