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자인계의 빛나는 성취 유영규

일본 월트 디즈니, 핀란드 슈퍼셀 등 그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브랜드가 이메일로 연락하여 이렇게 말했다. “당신 스타일로 해달라.”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갈고 닦아온 시간이 궁금하여 연남동 클라우드앤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 디자인계의 빛나는 성취 유영규
클라우드앤코 사무실 한 켠에 마련한 CMF 라이브러리

하라 겐야는 유영규를 일컬어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고품질의 디자인을 탄생시키는 데 일류인 자가 선보일 수 있는 재능”이라 말했고, 황성걸 홍익대학교 교수는 “한국에서 유일무이하게 클라이언트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디자인한다”라 했다. 과한 상찬이 아닌가 싶었는데 인터뷰를 하고 보니 수긍이 간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한국 디자이너 고유의 언어를 100% 받아들인 사례가 있었던가 생각하면, 유영규를 두고 말한 그들의 표현은 정확하다. 원대한 비전을 가진 부지런한 디자이너가 순간순간 성심을 다하여 기어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 시간이 20여 년 흘렀다. 고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유영규는 한국 디자인계의 빛나는 성취다. 디자이너로서 유영규는 두 가지 직업으로 살았다. 직장인과 독립 스튜디오 대표. 직장인으로서의 마지막 이력은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타임>이 2015년 올해의 제품으로 선정한 홀로렌즈HoloLens와 엑스박스Xbox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 개발에 참여했고 2017년 퇴사했다. 현재는 시애틀과 서울을 오가며 서울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클라우드앤코의 일에 집중한다. 일본 월트 디즈니, 핀란드 슈퍼셀 등 그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브랜드가 이메일로 연락하여 이렇게 말했다. “당신 스타일로 해달라.”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갈고 닦아온 시간이 궁금하여 연남동 클라우드앤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전은경 편집장 / 정리  김만나 기자

유영규
삼성전자, 나이키, LG, 아이리버, MS 등에서 일했다. 2010년부터 클라우드앤코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무인양품, 월트 디즈니, 핀란드 슈퍼셀, 쿠퍼휴잇 디자인 뮤지엄 등과 협업했다. 기술력이 좋은 국내 제조업체, 장인과의 협업으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것은 클라우드앤코의 또 다른 축이다. 저가가 아닌 프리미엄 제품으로 개발, 하이엔드 리테일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cloudand.co.kr

라미×라인 프렌즈 더 블랙 에디션  
귀엽고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던 기존의 컬래버레이션 시리즈와 달리 블랙과 메탈이 조화를 이루는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1998년에 선보인 애니콜 미니폴더가 당신의 첫 번째 디자인이다.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때로, 디자인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확립된 시기는 아니었지만 용도에 적확하게 부합하면서도 장식적이지 않은 미니멀한 디자인에 대한 생각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일명 깍두기폰이라 불리던 미니폴더 a100이 나온 배경이 여럿 존재한다. 당시만 해도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았기에 설계하기 쉽고, 데드 스페이스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군더더기 없는 직사각형의 심플한 형태가 삼성만의 아이코닉한 제품 디자인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휴대폰에 알루미늄 소재를 처음 적용하기도 한 터라 내부적으로 반발도 컸지만 출시 후에는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몇 년 후 리디자인 제품이 나올 정도였다. 장년층이 주 사용자였던 애니콜 브랜드를 젊은 사람들도 선호하게 만든 제품이기도 했다.

M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홀로렌즈를 선보인 것이 글로벌 디자이너로 불리게 된 계기라 할 수 있는데 MS로 이직했던 당시가 궁금하다. 그 즈음에는 아이리버에서 총괄 디렉터를 맡으며 다소 침체됐던 브랜드를 새롭게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처음 아이리버를 갔을 때 양덕준 대표와 뜻이 잘 맞았고, 제품 개발부터 국내외 전시, 리테일까지 대부분을 전적으로 맡겨주어서 정말 치열하게 일한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다양한 회사를 경험했지만 이직할 때가 왔다고 결정하게 되는 순간은 동일하다. 내 나름대로 목표했던 성과를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하면,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대상을 선택한다. 당시 MS에서 내부 기밀 사항이었던 홀로렌즈 개발이 시작되어 처음 시연을 했을 때 기대 이상의 기술에 대해 크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런 기술이 제품화되어 세상에 나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일이라 생각했다. 혁신적인 기술과 좋은 디자인을 접목해 최상의 제품을 만드는 일이었기에 디자이너로서 평생 한 번은 참여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혼합 현실 기기 홀로렌즈는 당시 세상에 없던 제품이었기 때문에 개발 당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당시 시장에 많은 VR 제품이 나와 있었지만 시스루see-through가 가능한 MR 제품은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 환경을 인식하는 센서가 6개 달려 있어 현실 세계가 고스란히 보이는 상태에서 그 위에 3차원 가상의 디지털 스토리를 홀로그래픽 방식으로 덧입힐 수 있다. 개발 초기 MS에서는 홀로렌즈가 혁명적인 신기술을 갖춘 미래 제품이기 때문에 BMW i8과 같이 역동적이고 미래적인 느낌으로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언어를 보여줘야 한다는 기대가 있었다. 반면 디자이너 입장인 나는 제품을 매일 사용할 소비자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했다. 머리에 쓰는 헤드마운트 제품이지만 일상에서 사용할 때 튀지 않으며, 제품의 디테일속에서 신기술이 주는 놀라움을 순간순간 경험하길 바랐다. 외형이 도드라지는 제품은 순간적으로 어필할 수 있지만 사용자의 환경에 녹아 생명력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물론 길고 긴 설득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 또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제품 디자이너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MS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디자인 언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홀로렌즈 이후 엑스박스까지 디자인 언어가 잘 정착되었고 이후에 발표되는 제품들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 마케팅을 위한 제품의 사진 콘셉트나 웹사이트도 아트 디렉팅했는데, 개인적인 디자이너 커리어 측면에서도 좋은 경험이었다. 엑스박스를 진행했을 때 설득의 대상은 MS의 소비자가 아니라 기존 디자인에 오랫동안 익숙한 팀 내부의 디자인 최종 결정권자들이었다. 앤드류 킴, 송영덕 등의 팀원들과 나는 엄청난 양의 고품질 목업을 한국에서 제작, 눈앞에 등장시키며 외관과 CMF(Color, Material, Finishing)의 변화까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CMF는 제품의 품격을 결정짓는 디자인의 핵심 요소다. 기능적 만족감을 넘어 다양한 감각에 영향을 받은 제품 디자인이 필요한 요즘, 디자이너에게 CMF 선택의 통찰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홀로렌즈
미래의 신기술을 탑재한 제품이지만 조형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완벽한 디테일로 완성도를 높인 디자인이다. 
목업이나 양산을 한국에서 진행했다. 

한 달에 한 번은 한국에 왔던 것 같다. 예산이 많이 들어도 이후 MS 제품에 영향을 미칠 원형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 회사 차원에서도 투자를 아끼지 않은 셈이다. 목업 과정을 거쳐 양산을 위한 CMF 타깃 작업을 하는데 여기서는 정교하게 만든 최종 목업의 품질이 중요했다. 이 기준에 맞춰 각 부서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수준이 높은 만큼 좋은 결과물이 나오고 부서 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난항을 거듭했던 홀로렌즈의 케이스도 빠른 시간에 좋은 퀄리티를 내는 한국에서 만들었을 정도로 국내에는 아직 제조 기술이 뛰어난 중소기업이 많다. 지금은 중국과 베트남에 자리를 넘겨주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제조 분야에서 우수한 나라였다.

MS에서 자사의 디자인 미래를 이끌 차세대 4인 중 한 명으로 유영규를 꼽고, 아시아 디자인 철학을 MS 디자인에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아시아 디자인 철학을 반영했다’는 말을 스스로 해석한다면? 

제품에 여백이 있고 그 안에 섬세한 디테일이 숨겨진 것을 좋아한다. 겉으로는 소박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품격과 감동이 느껴지는. 섬세한 디테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뛰어난 기술력, 장인 정신을 갖춘 사람들이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다. 홀로렌즈는 기계적 복잡함에도 최대한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게끔 단순하면서 솔리드한 느낌을 부여했고 조형에는 끊김 없이 매끄러운 흐름을 반영했다. 엑스박스를 디자인하면서 기존의 복잡한 쿨링 벤트cooling vent를 심플한 원형 패턴으로 바꾸었을 때 초기에는 ‘너무 동양적’이라는 반발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패턴을 다른 제품에까지 적용하고 있다. 미니멀이라는 단어를 동서양은 물론이고 디자이너마다 각각 다르게 생각하기에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절제된 디자인에 숨겨진 디테일 등의 요소를 미니멀로 여기는 나의 정서가 그들에게는 생소했던 것 같다. 그런 다름을 ‘아시아적인, 한국적인’ 디자인 철학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시간을 다시 거슬러 올라, 포틀랜드 나이키에서 일했던 시절이 궁금하다.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었던 나이키는 내게 한번 일해보고 싶은 꿈의 직장이었다. 나이키에서 아이팟을 연동시킨 아이팟 슈즈가 나왔으니 휴대폰과 연관된 제품도 나올 듯해 덜컥 지원 메일을 보냈다. 나이키 HR팀에서 온 전화를 받았는데, 당시만 해도 내가 영어에 능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비참한 마음이 되어 밴쿠버로 어학연수를 갔다. HR팀의 ‘올리비아 리’라고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는데, 면접을 보고 최종 오퍼를 받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응원해준 사람이다. 하루 동안 면접을 보는데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디렉터 등 각각의 면접자에게 보여줄 포트폴리오를 다른 구성으로 준비했고 봉투까지 디자인해서 나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패키지처럼 만들어 갔다. 포트폴리오에는 허와 실이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첫인상과 같은 것으로 실력과 감각이 한 번에 드러난다.

나이키의 핵심 제품 중 하나인 트라이엑스 타이밍의 제품 디자인에 참여했지만, 나이키에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았다.

1년 정도 지나다 보니 너무 편하달까. 점심때는 다들 캠퍼스에서 여유롭게 조깅하고, 금요일만 되어도 일찍 퇴근해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스포츠 활동을 하느라 출근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때와 업무 강도가 너무 달랐다. 오죽했으면 당시 뒷마당에 데크를 직접 만들고 땅을 일궈 잔디를 깔며 잠시 농부 생활을 하기도 했다.(웃음) 이런 삶이 내게 맞는 걸까, 한쪽에서 안달이 나는 기분이었다. 만약 50세 정도였다면 그 생활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치열하게 배우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고. 때마침 LG전자 디자인연구소에서 최초로 해외 인력을 뽑는다는 오퍼를 받고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됐다.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하며 디자인 수장의 위치까지 올라갈 수도 있었을 텐데 삼성전자, 나이키, LG, 아이리버, MS까지 끊임없이 직장을 옮긴 이유가 궁금하다. 

지위에 대한 욕심은 없었던 것 같고, 나는 좋은 디자인의 제품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크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제품을 흔히 자식과 같은 존재라 표현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제품을 내놓는 것이 어떤 일인지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어서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양산 과정의 어려움이나 타이트한 마감 시간 등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디자이너로서의 에너지를 최고치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담배와 같은 유해한 품목은 디자인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에 내놓는 제품들이 하나하나 나의 포트폴리오가 되고, 좋은 디자인은 좋은 사람과 연결시킨다는 것을 믿고 경험해왔다. 언젠가 말했듯 죽을 때까지 디자인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클라우드앤코 사업은 디자인 컨설팅과 디자인 파트너십, 크게 두 방향이다. 기술력은 좋지만 디자인 역량이 부족한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는 디자인 파트너십의 관계가 궁금하다. 

기존 컨설팅만으로는 경영 전체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 파트너십을 갖고 간다는 것은 컨설팅을 넘어 우리가 주도적으로 전체 개발 과정과 경영에까지 깊이 기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점자 스마트워치 ‘닷워치’가 대표적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많은 시각장애인과 인터뷰를 했는데, 점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줄 수 있는 디자인을 원했다. 점자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이미지를 측은함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점자 매뉴얼로 바꾸어보자 생각했다. 점자 본연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아름다운 패턴과 조형 요소가 가능하다는 것. 매뉴얼을 받아 본 사람들이 점자 매뉴얼이 아니라 아름다운 아트북처럼 느끼길 바랐다.

월드 클락 
뉴욕 쿠퍼휴잇 디자인 뮤지엄에 영구 소장된 시계로, 시계를 살짝 굴리면 24개 도시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클라우드앤코의 구성원이 7명이라 들었다. 스타트업을 비롯해 많은 기업이 찾아와도 그중 10% 정도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는가? 

스타트업을 기준으로 이야기한다면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디자인 언어가 성립되지 않은 곳, 그리고 오너가 디자인 리스펙트에 대한 마인드가 있는 회사라면 기꺼이 함께하려 한다. 좋은 기술과 좋은 디자인 마인드를 가진 스타트업과 함께하는 건 서로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어 성공률이 높다.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에 빠르고 직관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다. 반면 스타트업의 특성상 낮은 하드웨어 수준을 단기간에 대기업 못지않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엄청난 자본과 인력이 요구된다. 스튜디오 규모의 클라우드앤코가 이를 할 수 있는 것은 축적된 지식과 네트워크, 경험을 통해 시행 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라 겐야와 수년째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당신의 멘토로 꼽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에 본 하라 겐야의 지평선 시리즈 광고는 놀라웠다. 지평선은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지만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이 있는 장소라는, 미니멀한 형태를 넘어 거기에 철학을 더하지 않았나. 그 후로 지인을 통해 아이리버에서 디자인한 도미노 컬렉션을 전달할 기회가 있었는데 미드타운에서 잠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원래 10분가량 만날 예정이었는데, 다음 미팅을 취소한 덕분에 3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후에 무인양품, 아크레이Arkray 프로젝트를 함께 했고 지금까지도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하라 겐야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시작했지만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디렉터다. 나는 디자인을 할 때 항상 이 정도면 하라 겐야가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를 생각한다.  그는 삶 자체가 ‘디자이너의 일’에 맞춰져 있다고 할 정도로 어떤 젊은 디자이너보다 열정이 넘친다.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정이 맞아 함께 식사한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저녁 식사 중 피곤함을 못 이기고 조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하루에 얼마만큼의 스케줄을 소화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좋은 멘토가 있어서 본인도 좋은 멘토가 되려는 의지가 생기는 건가? 클라우드앤코는 멘토링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회사라 들었다. 

입사 면접할 때 디자이너로서의 인생 계획을 꼭 물어본다. 물론 그 계획이 바뀔 수 있지만 그 꿈을 함께 고민하며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이 회사를 위해 헌신한 디자이너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성장한 디자이너가 내게 상처를 준 적도 많았다. 한때는 이런 멘토링 방식을 포기하려 한 적도 있었지만 마음을 다시 고쳐먹었다.(웃음) 지금은 면접을 볼 때 실력보다 인성이나 태도에 더 무게를 둔다. 모든 일이 그러하지만 지속적으로 인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세상에 완벽한 상황은 없다. 모든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열정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디자이너로서 열정이 있고 태도가 좋은 사람이라면 3~4년간 치열하게 일하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 된다. 그 뒤에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에서 벗어나 스스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처음에 누구를 만나고, 어떤 곳에서 일하는지가 중요하다. 초창기에 틀을 잡을 때는 실력자를 찾아 제대로 배우라 말하고 싶다.

디자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나쁜’ 클라이언트와는 일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독립 스튜디오를 이끄는 디자이너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조언은 마시모 비넬리Massimo Vignelli가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한 조언이다. 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디자이너로서의 생각과 삶에 감동받았다. 독립 스튜디오는 디자인을 통해 세상과 교류한다. 그 수준이 높아질수록 좋은 클라이언트와 인연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또 좋은 디자인이 나오게 되고 인정을 받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스튜디오에서 소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 양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악순환의 시작이 될 수 있는 나쁜 클라이언트와는 일하지 않는 것을 권한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때도 있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더 큰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 

디자이너로서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는가? 

아주아주 많아 최근 일들만 이야기하자면, 일본과 교류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전통을 잇는 작은 기업이나 가업을 잇는 이들의 훌륭한 제품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을 보고 감동하고 전의를 불태우기도 한다. 한국에서 전통 가업을 잇는 기업가와 하고 있는 일들이 있는데, 복순도가 대표와 함께 시작한 일도 그 중 하나다. 또 가죽 제조 회사와 함께 미니멀리스트를 위해 만든 지갑은 디자인과 품질에서 인정을 받아 긴자 마쓰야 백화점 입점을 앞두고 있다. 플라스틱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공 공간에 들어가는 새로운 개념의 음수대를 국내 기업과 함께 만들고 있다. 아트 비엔날레 기간에 함께 열리는 ‘베니스 디자인’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문경시의 청년 창업 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로, 젊은 사업가와 함께 세계에 내보여도 손색없을 만한 특산품 브랜드를 개발하는 일도 진행중이다.

<재팬 크리에이티브>전, 2012  
‘심플 비전’을 주제로 열린 협업 전시에서 유영규는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미호야 유리와 협업, 자기 부상 기술로 공중에 떠 있는 유리 조명을 선보였다.

유영규가 추천하는 한국의 우수 제조 기업

에스코넥
휴대폰, 노트북·내외장재 금속 부품을 다루는 곳으로 닷 스마트워치의 외장재를 생산했다. 알루미늄이 낼 수 있는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마감을 완성해준 세계적인 수준의 회사다. s-connect.co.kr  대표 박순관 

모델솔루션
금형, 사출, 플라스틱 성형 제품을 주로 작업하고 해외의 글로벌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다. 닷 스마트워치 및 엑스박스, 홀로렌즈의 하이 피델리티High Fidelity 목업을 제작한 바 있다. model-solution.com  대표 우병일

애니모드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디자인실 이상민 팀장의 소개로 뉴욕 오프닝 세리머니 제품인 스마트폰 케이스를 제작한 곳이다. 몽블랑, 삼성 모바일폰 액세서리 등을 만든 곳으로 향후 여러 제품을 협업할 계획을 갖고 있다. anymode.com  대표 박수근

디자이너가 말하는 유영규의 디자인

하라 겐야
NDC 대표, 무인양품 아트 디렉터
“유영규와 처음 만난 곳은 도쿄 미드타운에 있는 토라야 카페였다. 그는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는 새로운 유형의 디자이너로 매우 투명한 느낌의 디자인을 한다. 유영규는 국적이나 개인만의 특징을 드러내지 않으며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고품질의 디자인을 탄생시킨다. 일류가 선보일 수 있는 재능이라 여긴다. 그의 부인 또한 놀랍도록 훌륭한 파트너로, 유영규가 하는 디자인의 일부라는 느낌을 받았다. 환경과 주변 사람들이야말로 디자인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황성걸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학과장
“머리, 마음, 그리고 손이 동체(同體)인 디자이너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를 ‘감각적’이라 표현하나 오랜 시간 지켜보면 이 셋이 하나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자인 파트너십을 함께 할 때 상대를 택할 때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영민하게 잘 택해왔고 그것이 유영규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세월이 가도 뒷짐 지고 디자인을 논하기보다 디자인 결과물을 꾸준히 만들어낼 사람이다. 얼마 안가 50세가 되는데 디자인 이야기만 하면 아직도 눈을 반짝이며 떠드는 수다쟁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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