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디자이너의 LTE급 성장 이광호

가구 디자이너, 산업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미감이 한층 엄격해진 시대, 전시를 중심으로 갈고 닦아온 그의 예술적 감각이 꽃을 피우고 있다. 성수동 작업실에서 ‘광호 리Kwangho Lee’라는 이름으로 국제 무대에서 활약한 결정적 순간들에 대해 들었다.

아날로그 디자이너의 LTE급 성장 이광호
성수동에 위치한 이광호의 오피스, KLO(kwangho lee office). 1층에는 인턴 5명이 상주하는 작업실, 2층에는 응접실과 개인 사무실이 위치해 있다. 무화과, 블루베리, 알로카시아 등의 식물과 최근작이 어우러진 작업실에서 이광호를 만났다.

첫 전시가 월간 <디자인>에서 주최하는 서울디자인 페스티벌이었다고 들었다. 2007년 12월에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그 전에 홈 데코 전시 등에 참여했지만 제대로 나의 부스를 꾸려 작업을 선보인 것은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 처음이다. 당시 <디자인붐Designboom>이나 <디진Dezeen> 같은 해외 디자인 사이트에 작업을 보내는 게 유행이었다. 봉규 형(BKID의 송봉규) 같은 이들이 코치해줘서 전시 장면을 촬영해 담당 에디터에게 메일로 보냈다. <디진>과 <디자인붐>에 연달아 소개되었고, 그 기사를 보고 몬트리올에 있는 커미세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지 않고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겠다는 결심을 한 후 이광호 역시 어느 정도 막막함을 느꼈을 것이다. 단, 그 시간이 길지 않았다. 2007년 2월에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이광호는 그해 겨울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이듬해 몬트리올 커미세어Commissaires 갤러리에서 해외 첫 개인전을 치렀고, 2009년에는 펜디가 밀라노에서 진행한 <크래프트 펑크Craft Punk> 전시에 참여하며 국제 무대에서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이광호는 “2000년대 후반에 불었던 아트 퍼니처의 열풍 속에서 운이 좋았다”라고 말하지만, 이후 10년간의 행보를 보면 겸손한 말이다. 어제보다 오늘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지 못하면 금세 잊히는 것이 이 세계의 냉정한 섭리가 아닌가. 그의 전속 갤러리는 뉴욕에 위치한 살롱 94 디자인Salon 94 Design으로, 가구를 구입하고 싶다면 갤러리로 연락해야 한다. 고로 이광호는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작품 가격이 형성된 새로운 유형의 디자이너인 셈이다. 앤트러사이트 연희점을 시작으로 아모레퍼시픽 사옥 내 카페 두 군데를 작업한 이광호는 최근 공간 디자인으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가구 디자이너, 산업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미감이 한층 엄격해진 시대, 전시를 중심으로 갈고 닦아온 그의 예술적 감각이 꽃을 피우고 있다. 성수동 작업실에서 ‘광호 리Kwangho Lee’라는 이름으로 국제 무대에서 활약한 결정적 순간들에 대해 들었다.

©Rohspace104
오설록 티하우스 신용산점. 이광호와 남궁교, 오현진의 프로젝트팀, NOL에서 공간 디자인을 진행했다. 녹차밭을 형상화한 매듭 시리즈를 천정과 기둥에 설치했다.
이광호를 처음으로 발탁해 해외에 소개한 갤러리스트였겠다.

그렇다.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며 아직까지 좋은 인연으로 지낸다. 작업실에 있는 이 사진은 갤러리 대표였던 피에르 랄라메이로, 한국에 왔을 때 물나무사진관에서 함께 찍은 것이다. 감이 매우 좋았던 갤러리스트였던 게, 당시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았던 5.5 디자이너스나 마르텐 바스Maarten Baas 등이 그곳에서 개인전을 하고 유명해진 케이스다. 불어인 커미세어의 뜻은 커미션commission으로, 상업 갤러리에서 작품 제작비를 지원해주고 신작을 주문하는 일이 흔치 않은데 이곳은 커미션 작업을 원칙으로 하는 갤러리다. 대학생 때부터 막연하게 커미세어 같은 곳과 일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연락이 와서 어리둥절한 채로 몬트리올에 갔다.

2000년대 후반 ‘아트 퍼니처’라 불리는 디자인을 찾는 수요가 많아졌고 이를 다루는 갤러리도 많이 생겼다. 전선, 호스, 나일론 등의 선을 꼬아 만든 조명, 의자 등의 초기 작업이 이 흐름과 잘 맞았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재료 중 선을 먼저 선택해 작업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한국도 마찬가지고 세계적으로도 당시 아트 퍼니처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사옥의 특별한 공간에 둘 벤치를 주문하거나 개인 컬렉터가 자신의 서재에 놓을 캐비닛을 의뢰하기도 했다. 런 흐름이 최근에는 공간 전체로 확장되는 느낌이다. 가구와 조명, 창, 천장에 이르기까지 공간이 하나의 일체화된 작품처럼 보이길 원한다. 기성 제품을 매치하여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만을 위해 특별하게 가구를 맞춤 제작하는 것도 요구 중 하나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에 공간이 결국 완성형이라 볼 수 있으니까.

아모레퍼시픽 사옥 1층에 놓인 긴 대형 벤치도 작업의 고단함이 꽤 느껴지는 집착Obsession 시리즈인데, 사옥 내 오설록 티하우스에서 그보다 더 큰 집착이 느껴지는 작업을 했다.

제주도 차밭을 천장에 펼쳐보자는 생각이 첫 번째였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작업량을 소화했다. 10명의 인턴들과 함께 하나의 장소를 단기 임대해 꼬박 네 달간 모여 앉아 꼬는 작업을 했다. 매듭 시리즈나 집착 시리즈나 기법이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재료를 다루더라도 어떤 공간에 어떻게 놓일지를 고민하며 가장 어울리는 형태를 찾아나가고 내겐 그 과정이 가장 흥미롭다. 프리미엄 티룸인 ‘오설록 1979’ 매장은 녹차밭을 개간하기 시작한 1979년에 방점을 찍고, 역사성과 멋을 극대화한 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Yohan Ji105
이광호는 2009년부터 적동 혹은 나무 표면에 칠보 소재를 적용하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2018 디자인마이애미에서 선보인 ‘강의 형상 Shape of a River’ 시리즈 중 캐비닛.
아모레퍼시픽 사옥 내 동시 오픈한 오설록 카페의 공간 디자인을 모두 진행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 중 규모 면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였고, 실험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여지도 컸기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모레퍼시픽 사옥 내 프로젝트를 크게 세 가지 진행했는데 각각을 추진한 사업 팀이 회사 내에서 모두 달랐다. 서로 디자이너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채 진행한 것으로 알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우리 팀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티룸 ‘오설록 1979’에서는 돌의 물성 중에서도 무게감을 원 없이 표현할 수 있어 좋았다. 재료를 찾기 위해 중국을 오가고, 재료를 공수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일까지 과정 하나하나가 매우 기억에 남는다.

중국에 재료를 구하러 간 이야기를 좀 더 들려달라.

사용했던 ‘인도블랙’이라는 돌은 인도에서 나는 화강암이다. 한국에서는 ‘까마귀 오’ 자를 써서 오석이라 부른다. 규모나 시간을 고려해봤을 때 한국에서 공수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어서 중국에 다녀왔다. 돌 산업이 발달하여 세상의 모든 돌이 모여있다는 지역이 있는데, 규모가 경기도보다 더 커서 한 공장에서 다른 공장으로 이동할 때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다. 오석으로 만드는 육중한 키친 테이블을 현장에서 완성할 수 없으니,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이미지와 최대한 가깝게 나오도록 현장을 조율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중간에서 작업하시는 분들을 믿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좀 더 절실하게 요구해야 할 때도 있고. 설치되는 순간까지 마음을 졸였는데 이 모든 협업 과정에서 배운 것이 크다.

전시 기획, 공간 디자인 등 매우 다양한 작업을 하는데 평소에 아이디어 수집을 어떻게 하는가?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내가 만약 이 신발 브랜드와 공간을 만든다면 어떻게 할까?’ ‘캠퍼와 하이메 아욘은 이렇게 했는데 나는 어떻게 할까?’ ‘글라스 이탈리아와 넨도는 이렇게 작업했는데 나는 어떻게 할까?’ 평소에 구상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 제안해야 할 상황이 생길 때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오설록 1979에서 구상한 메인 컨셉도 이전부터 상상하고 준비했던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거대한 돌로만 이루어진 공간이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으로 석공 선생님과도 평소에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돌 종류에 관한 스터디도 많이 했었다. 생각보다 빨리 실현된 것이고,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았다.

힙합 듀오 XXX의 ‘Second Language’ 앨범을 위한 협업 작품 중 사무직을 위한 의자. 바이올렛 실크 3D 프린팅, 495×330×685mm, 2019.
웹사이트에 작업의 드로잉 과정을 계속 올리고 있다.

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올려왔다. 나의 사고 과정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장치이고 처음 아이디어와 최종 결과가 어떻게 다른지도 확인할 수 있어 꼭 필요한 일이다.

공간 작업을 할 때 NOL이라는 프로젝트 팀으로 활동한다.

내가 건축 전공은 아니기 때문에 뜻이 맞는 이들을 찾았고, 앤트러사이트 연희점을 시작으로 오설록 티하우스 신용산점과 오설록 1979를 함께 작업했다.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아르Arr의 공동 대표인 남궁교와 오현진, 그리고 나까지 각자 성의 이니셜을 조합해서 만든 이름이다. 콘셉트부터 시작해 전체 공간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는 그룹 NOL로 진행하고, 공간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가구 작업이나 설치만을 할 때는 우리 오피스 내에서 소화한다. 오설록 카페 이후 또 다른 공간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 7월 말쯤 오픈할 것이다.

앤트러사이트 연희점은 명암 대비를 극단으로 실험한 느낌이다. 초등학교 건너편에 위치한 간판도 없는 건물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새로운 트렌드를 보여주는 공간 디자인 중 최전선에 카페가 있다는 생각을 요즘 종종 한다. 다른 디자이너들의 좋은 작업도 많이 나오고 있어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우리 팀이 공간 작업을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메인 소재의 선택이다. 돌이라고 하면, 이것이 공간에 놓였을 때 주변 환경과 어떤 드라마틱한 풍경을 만들어낼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소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공간에서의 경험이 극과 극이다. 나는 낮 시간에는 주로 작업실 아니면 을지로에 있는데 세상의 모든 재료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지루한 합판처럼 보이는 게 다른 날에는 놀랄 만한 재료가 되기도 한다. 재료를 채집하는 일만큼 내게 즐거운 일은 없다.

무엇이든 직접 손으로 만들어본 사람은 그 즐거움을 잊지 못한다고 들었다.

맞다.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는데, 집 근처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 같은 걸 주워서 끊임없이 생활용품을 만드는 분이었다. 매일 보는 재료를 다르게 볼 때 매일 보는 사물 역시 바뀔 수 있다. 지금까지 대리석, 구리, 에나멜, 강철, 전선을 이용한 작업을 했는데 아직까지 못 다뤄본 재료가 너무 많다.

디자인 마이애미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이광호의 전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보인다. 지난해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강의 형상 Shape of a River’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전부터 진행한 에나멜 코퍼 시리즈에서 한 단계 나아간 작업이다. 끊임없이 색과 모양을 바꾸는 강물의 변화에서 따온 이름으로 의자, 사이드 테이블, 캐비닛, 램프 등 25점을 선보였다. 사실 2009년부터 칠보를 금속이나 나무 표면에 덧입히는 작업을 실험하고 있다. 가마의 각기 다른 온도에 따른 달라지는 색과 질감, 형태를 만들어보고 있다. *칠보 공예는 금속에 여러 색의 유리 가루를 입혀 가마의 고열에서 구워내는 기법이다. 금속이나 사기 그릇 표면에 유리 가루를 입혀 구우면 유약이 녹아 금속에 붙으면서 그릇이 윤기가 나고 녹이 슬지 않는다.

‘15세기의 기법으로 현대적인 미감의 아트피스를 창조했다’는 내용의 호평 기사가 여러 해외 매체에 실렸다. 작업실에서 실제 모습을 보니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더 좋다.

국내에서는 공예 기법을 약간 고루하게 여기는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다. 마이애미에서는 체리 나무 위에 유리 가루를 녹여 가마에서 구워낸 작품과 가공하지 않은 적동 작업 두 가지를 모두 선보였다. 가공하지 않은 작업은 칠보의 전 단계라 할 수 있는데 이런 느낌도 좋아서 하나의 시리즈로 제작 중이다. 처음에는 적동 작업을 두고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자꾸 보고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요즘엔 많이 좋아해준다. 주위에서 작업을 의뢰하는 사람도 많고. 금속 표면의 무늬를 내기 위해 일부러 강하게 열을 강해 착색 효과를 유도했다.

스티로폼, 적동, 대리석, 나무 등 다양한 소재로 작업했지만, 그래도 이광호 하면 선을 꼬는 초기 방식의 작업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10년 전부터 시작한 적동 작업을 외국에서는 제때에 소개할 기회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그 기회를 놓쳤을 뿐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매듭이나 집착 시리즈를 의뢰하는 이들이 있으면 기쁘게 작업한다. 재료가 무궁무진하고 다르게 해볼 여지가 아직 많다. 최근에 유명 아이돌의 멤버 한 명이 작업실에 찾아와 조명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같이 컬러도 고르고 형태도 제안하여 작업하기도 했다. 13m 길이의 조명으로, 제주도에 오픈한 카페에 설치했다.

지난 2월 말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열린 <Second Language> 전시에서 XXX의 노래 제목을 작품명으로 삼아 흑단과 대리석, 구리 등의 소재를 사용해 3D 프린터로 출력했다. 힙합 듀오의 앨범과 매칭한 3D 프린팅 가구를 보고 이광호의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3D 프린팅에 대한 호기심이 항상 있었는데 XXX와의 협업 전시 기회가 생겼다. 디지털 음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디지털 데이터를 이용한 작업을 하고 싶었다. 다만 기존 작업에서의 아이덴티티를 버리지 않기 위해 꼬임 패턴을 사용했고, 그 패턴과 짜여진 것의 굵기는 3D 프린팅이 아니면 구현해내지 못할 방법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손으로는 만들 수 없는 두꺼운 굵기의 매듭을 제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광호가 실력을 쌓는 데 중요한 플랫폼이 ‘전시’였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디자인 갤러리와 연결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시를 준비할 일이 많았다. 조그만 의자 하나를 출품하더라도 불특정 다수가 보러 오는 장소에 내 작업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갤러리가 있는 상태에서 작가로 참여하는 것과 내가 기획을 맡는 것은 또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지금의 트렌드를 잘 읽어내고 보여주려면 공부가 많이 필요하고.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노루그룹과 선보인 전시가 좋은 경험이었다.

2018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서 살롱 94 디자인이 선보인 이광호의 신작 ‘Shape of a River’ 시리즈. 살롱 94 디자인은 이광호와 맥스 램, 릭 오웬스 등의 작가들이 소속된 갤러리로 올해 프리즈 아트페어, 디자인 마이애미/바젤 페어에 참가할 예정이다. ©Yohan Ji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디렉팅을 맡은 우주의 시간과 해수의 주기적인 흐름인 조류를 형상화한 <Tide>전이 현지에서 화제였다. 노루그룹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

2017년 트렌드 세미나를 통해 처음 인연이 닿았고, 이후로 전시나 행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하고 있다. 산호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3D 조각품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방 & 쇠데르스트룀Wang & So¨derstro¨m과 함께 전시를 만들었다. 모두가 관심을 가진 디자이너보다는 숨겨진 디자이너를 찾아 동반 성장하는 협업이 노루그룹과 맞는 방식이라는 것이 내부적으로 공유되어 있다.

뉴욕과 벨기에, 일본에 이광호의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를 두고 있다. 해외 갤러리와의 계약 관계가 궁금하다.

작품이 판매되었을 때 수익 구조를 어떤 비율로 나눈다 정도의 서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뭘 지켜야 한다’는 룰이 담긴 계약을 따로 맺지 않는다. 작가 대우에 대한 조건이 비슷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갤러리들 사이에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디자인 페어에 나가면 작가들끼리 갤러리 이야기를 나누고, 갤러리스트들은 모여 작가 이야기를 나눈다. 서양 문화는 사교 문화 그 자체로, 날씨 하나로도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 옛날에 도자기 팔던 때의 보부상들과 지금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스트들이 다를 것 하나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작가와 갤러리 사이에 형성되는 신뢰와 평판이 중요하다.

필드에서 오래 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실력과 인성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전속 작가로 있는 뉴욕 살롱 94 디자인 갤러리에 실력 좋은 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맥스 램Max Lamb, 릭 오웬스Rick Owens, 잭 크레이그Jack Craig, 토머스 바저Thomas Barger 등이 전속인데 갤러리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지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토머스 바저의 경우 오는 7월에 서플라이 서울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전형적이지 않은 형태로 재료를 다루는 작가라 국내에 소개하면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014년부터 ‘서플라이 서울’을 운영하고 있다.

다행히 기존보다 좀 더 큰 공간을 렌트해서 제대로 된 전시를 해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궁금한 디자이너나 작가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 만든 공간이고 서로의 작업을 통해 많은 영감을 주고받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운이 아주 좋았던 상황이지만, 보통 디자이너들이 스스로의 작업을 보여줄 공간이 한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내 경험을 비추어보면 전시를 실제로 해보고 무대에 서봐야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마흔이 넘으면 시골에서 작업하며 생활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상상하는 집을 짓고 그곳에서 작업하는 생활을 꿈꾼 적이 있었다. 집의 문고리부터 숟가락까지 내가 만든 집에서 가족과 도란도란 살면서 가끔 친구들도 머물다 갈 수 있는. 하지만 금새 깨달았다. 현실적으로 아이들 교육도 중요하고, 나 스스로도 한창 활발하게 일해야 할 시기에 외부와 단절하는 것 자체가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행위 자체가 오버가 아닌가. 내가 그럴 수준이 아니다. 20년, 아니 30년도 더 걸릴 거 같다.

작업면에서 롤모델이 있는가?

누구 한 명을 꼽기는 힘들다. 단, 이것 하나는 있다. 한 분야에서 꾸준히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것을 마음 깊이 느낀다. 쉽지 않은 고비가 정말 많다. 전시를 앞두고, 설치를 앞두고 어느 때나 긴장해야 한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하니 매 순간이 살얼음판이다. 최선을 다하고 쏟아냈는데 작년보다 못한 것 같다는 소리를 듣지 않아야 하니까, 멈출 수도 없는 것이고.

가족과 친구들이 작업의 원천이 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아내와는 학생 때부터 연애했고, 졸업 후 작업하며 살겠다고 했을 때 무한 신뢰를 보내준 사람이니 지금 생각해도 매우 고맙다. 아이들이 생긴 후로 개인적으로 하는 취미 생활 같은 건 거의 없고 주말에는 육아에 전념한다. 평일에는 작업실에서 주로 일하고, 마감 작업이 없을 때는 가능하면 6시에 퇴근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의 일상이다. 아이들과 부대끼고 투닥거려도 지금이 행복한 시간이라 느낀다. 10년 후에는 나의 개인 시간이 지금보다는 더 많이 생기겠지만 그때 그렇게 짜릿할까 싶다.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지도 않을 것 같고.

인터뷰를 하고 보니, 이광호의 꿈은 70세까지 나를 확장하고 실험해보고 싶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직 못 다룬 재료가 많고, 시도할 형태도 많아 나이가 들기 전에 빨리빨리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조금 편해진 것이 어떤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또 내게 집중해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이광호를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초점이 온전히 내게 맞춰져 있다. 오프닝 파티 같은 곳을 가야할 때도 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매우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작업에 집중하게 된 후부터는 잘 안 다니게 되었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가능한 한 계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인터뷰 전은경 편집장 정리 김만나 기자 사진 한도희(얼리 스프링)

이광호 1981년생. 2007년에 홍익대학교 금속조형학과를 졸업한 이후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2016년 브뤼셀 빅터 헌트Victor Hunt 갤러리에서 경력 10년을 기념하는 전시 <10 Years>를 진행했고, 서울 성수동에서 KLO를 운영하며 가구, 공간 디자인, 설치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홍콩 M+ 뮤지엄, 몬트리올 파인 아트 뮤지엄, 샌프란시스코 모던 아트 뮤지엄, 대구미술관 등에서 이광호의 작품을 컬렉션했다. kwangholee.com

이광호의 든든한 협업자, 을지로 일대의 제작소
대덕메탈
적동, 황동 등 비철 금속 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을지로3가역 6번 출구 근처에 있다.
02-2274-2323, daeduckmetal.com
우진정밀
다양한 금속 부속품을 밀링 선반을 이용하여 가공할 수 있는 곳으로, 을지로4가역 근처에 있다.
02-2279-4539
광도케이블
다양한 굵기의 전선을 대량으로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10년 넘게 이광호가 찾는 단골 가게다. 세운상가 근처에 있다.
02-2265-1004

김성곤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거친듯 하지만 섬세하고, 꾸준히 물성을 실험하는 작가다.”
스튜디오는 작가의 모든 것이 느껴지는 곳이다. 작가의 디자인 세계 혹은 그의 관심사, 그의 지나온 시간 등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작가의 공간 속 사물은 새롭게 보인다. 다들 작품을 쉽게 평가하고, 쉽게 실행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작업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기 힘들 것이다. 이광호의 작업이 그렇다. 거친 듯하지만 섬세하고, 꾸준히 물성에 대해 실험하고, 조형으로 표현해낸다. 재료가 끈이 되었든 대리석 혹은 금속, 스티로폼, 나무가 되었든 그는 기본적인 물성에 대해 계속 실험한다. 그것을 뜨개질하든, 잘라내든, 붙여내든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모습이 멋지다. 무덤덤함 속에 나타나는 이광호의 조형. 때로는 거칠고 투박해 보여도 섬세함이 느껴지고,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이지영
인엔디자인웍스 대표
“단단한 기획력으로 글로벌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좋은 디자인 가구를 오랜 시간 인엔을 통해 소개해왔다.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디자이너들을 찾기 위해 매년 밀라노며 파리며 해외 디자인 페어에서 발품 파는 일이 익숙했던 시절, 나는 10년 전쯤 서미앤투스 갤러리에서 이광호의 가구를 처음 접했다. 신선하고, 아름답고, 만듦새가 훌륭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이광호가 짜임으로 완성하는 옵세션 시리즈의 매력에 빠져 있다. 이광호는 재료를 실험하고 제작 방식에 몰두하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기 위해 끝없이 도전한다. 여기에 단단한 기획 능력을 갖추고 있어 글로벌 무대에서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이광호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작업을 보여주는 일로 자신의 현재를 말하는 작가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작품 세계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응원한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