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뒤카스가 당신에게 바치는 왕의 만찬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건축가 장 누벨이나 디자이너 필립 스탁, 작가 르 클레지오Le Clézio 같은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다. 먹는 경험을 정교하게 디자인해 프랑스의 미식 전통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셰프로, 그는 친환경 활동에 앞장서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건축가 장 누벨이나 디자이너 필립 스탁, 작가 르 클레지오Le Clézio 같은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다. 먹는 경험을 정교하게 디자인해 프랑스의 미식 전통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셰프로, 그는 친환경 활동에 앞장서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를 세상에 드러낸 최근 행보는 베르사유 궁전 내에 위치한 레스토랑 ‘오레Ore’에서 ‘왕의 식사’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것으로 다큐멘터리 〈알랭 뒤카스의 위대한 여정〉을 보면 이를 준비한 일련의 과정이 2년에 가까운 시간으로 펼쳐진다. 오레는 레스토랑 출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서는 순간까지 현대식 왕의 만찬을 체험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디자인한 곳이다. 파리에서 열린 ‘라 리스타La Lista 2017’에서 알랭 뒤카스는 셰프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셰프는 ‘미래에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선택하고 어떻게 먹을까’와 같은 음식의 소비 형태를 이끌고 나아가 음식 문화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 셰프의 이름으로 알랭 뒤카스가 보여주는 전 지구적인 발걸음 뒤로 우리의 허기를 품격 있게 채워줄 왕의 만찬이 있다.
베르사유 궁전 내 현대식 프렌치 레스토랑
루이 14세 동상을 지나면 나타나는 쿠르 도뇌르라 불리는, 베르사유 궁전 입구의 광장은 늘 인파로 북적인다. 광장 끝에는 거대한 황금 울타리가 쳐져 있다. 그 너머가 바로크 궁전 건축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베르사유 궁전이다. 태양왕이라 불리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제군주가 남긴 화려하고 웅장한 놀이터다. 이제는 20유로만 내면 누구든 관람할 수 있는 장소가 됐지만 그럼에도 이 궁전으로 들어가는 길은 쉽지 않다. 넓은 광장을 ㄹ자 형태로 가득 메운,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입장객 때문이다. 광장 한편에 위치한 파빌리온 뒤푸르Pavillon Dufour는 2년 전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레노베이션한 건물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위해 베르사유 궁전 내 호텔 사업자 공모전을 열었고, 프랑스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20여 개 업체가 참여했다. 그리고 레스토랑을 포함한 호텔 운영권은 알랭 뒤카스에게 돌아갔다. 현대식 프렌치 카페이자 오트 퀴진 레스토랑인 ‘오레’는 왕의 입을 뜻하는 라틴어다. 비유적으로 입안의 즐거움을 의미한다. 다큐멘터리 〈알랭 뒤카스의 위대한 여정〉의 첫 장면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국가 귀빈 만찬으로 시작된다. 2143개의 창문, 1252개의 벽난로, 67개의 층계를 포함해_수많은 벽화와 천장화, 형형색색의 커튼과 장식, 바닥의 대리석 타일 하나까지도 오랜 역사를 품은 이곳에서 왕과 귀족의 식사처럼 최상의 식재료로 화려한 프랑스 요리를 구현하는 역할을 알랭 뒤카스가 맡았다. 300년 전 베르사유 궁전 살롱에서 왕과 귀족이 즐기던 만찬을 현대의 세련된 감각으로 풀어내는 것이 레스토랑 오레의 미션이었다. 이를 위해 베르사유 궁전의 큐레이터들이 연구한 역사적인 메뉴와 의상, 인테리어를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현대적인 인테리어와 식기, 유니폼, 음식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완성된 오레는 알랭 뒤카스의 상징이기도 한 금빛 테이블과 은색 커트러리가 사람들의 웃음소리, 정갈한 서비스와 어우러지는 곳으로, 낮과 밤 풍경이 매우 다르다. 시간에 따라 운영 방식이 바뀌는데 낮에는 프랑스의 전통 요리를 가볍고 빠르게 즐길 수 있도록 플레이트 요리와 디저트를 선보이고, 궁전 관광이 끝나는 저녁 시간에는 예약제로 운영하는 오트 퀴진 레스토랑으로 거듭난다. 1693년에 프랑수아 마시알로François Massialot가 발표한 미식 문화 책 〈왕실과 부르주아의 요리Le Cuisinier Royal et Bourgeois〉에 나오는 식사 순서에 따라 메뉴를 준비하고, 당시 왕실 메뉴에서 발견한 요리의 식재료를 사용하기도 한다. 채소의 경우 콜리플라워, 아티초크, 완두콩 등을 자주 사용하고 18세기 중반부터 왕실 메뉴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는 굴 요리를 재해석한 요리도 있다. 본래 식사 초반에 서비스하는 오유oille(프랑스식 수프)는 주로 고기를 사용하지만 이곳에서는 좀 더 가벼운 맛을 위해 야채 오유를 선보인다. 오레 방문자는 레스토랑 내 출입구를 통해 베르사유 궁전에 들어갈 수 있는 특전도 있다. 음식을 먹는 것뿐 아니라 출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서는 순간까지 ‘왕의 식사’를 체험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우) 〈알랭 뒤카스의 위대한 여정〉 스틸컷.
〈알랭 뒤카스의 위대한 여정〉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인 ‘까다로움aspérité’은 알랭 뒤카스의 왕국을 실현시킨 핵심 키워드다.
탁월한 사업가이자 사회운동가
알랭 뒤카스는 1956년 프랑스 남서부 랑드 지방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영향으로 버터와 고기로 대변되는 무겁고 느끼한 프랑스 북부 요리와 달리 지중해 스타일의 프로방스 요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16살에 레스토랑에서 견습을 시작한 그는 1984년 라 테라스La Terrasse 총괄 셰프로 일하며 미슐랭 2스타를 받았다. 그해 알랭 뒤카스는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이자 전환점을 맞았다. 새 레스토랑 부지를 알아보기 위해 파이퍼 아즈텍 항공기를 타고 가던 중 알프스산맥에서 비행기가 추락한 것이다. 결국 동승자는 모두 사망했고 유일한 생존자가 알랭 뒤카스였다. 15번의 수술과 1년간의 입원 생활 후 그는 삶을 이전보다 더 강렬하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후 모나코의 수도 몬테카를로를 대표하는 ‘호텔 드 파리’에 레스토랑 ‘루이 15세’를 열고 오픈 33개월 만에 미슐랭 3스타를 얻었다. 루이 15세는 신선한 식재료와 자연적인 풍미를 강조한 그의 지중해식 음식이 시작된 곳으로 자연의 식재료를 최대한 살린 왕의 식사는 이때부터 그의 오트 퀴진 을 보여주는 콘셉트가 됐다. 파리의 유서 깊은 호텔인 플라자 아테네의 3스타 레스토랑도 그가 운영하는데, 이곳은 그의 변화한 요리 철학이 고스란히 투영된 장소다. 알랭 뒤카스는 2014년부터 플라자 아테네에서 ‘자연스러운 요리naturalness cuisine’를 더 강조하기 시작했다. 육류를 줄이고 생선과 채소, 곡물 위주의 요리를 선보이겠다는 것으로, 지금까지 오트 퀴진의 주인공 역할을 해온 육류 위주의 프렌치 요리에서 이는 혁명과도 같은 선언이었다. “더 건강하고 더 자연적으로 먹는다는 것은 이제 오트 퀴진 영역에서도 구현되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먹거리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건강을 위해서도 자연스럽고 가벼운 요리가 필요합니다. 꾸밈이 없고 그저 자연스러운 요리. 상당히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그게 바로 아테네 플라자에 있는 것이죠.” 음식물 쓰레기를 먹인 돼지를 식재료로 사용하거나 식당에서 쓰고 남은 식재료를 이용해 노숙자나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 또한 그가 생각하는 자연스러움의 일환이다.
알랭 뒤카스의 태양
알랭 뒤카스는 2년 전 세상을 떠난 조엘 로부숑과 함께 프랑스 오트 퀴진의 양대 산맥이었다. 조엘 로부숑은 생전에 31개의 별을 얻은 미슐랭 스타 최다 보유 셰프였지만 비즈니스 규모와 수익 면에서 알랭 뒤카스를 넘어선 적은 없었다. 사람들이 추앙하던 고든 램지도 별이 반토막 나고 제이미 올리버가 수익 악화로 매장을 폐업하는 등 몰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알랭 뒤카스의 제국은 여전히 영역을 확장 중이다. 불과 몇 달 전에 싱가포르와 방콕에 새로운 레스토랑을 열었고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커피에 집중한 전문적인 카페와 초콜릿 공방, 컨설팅 회사, 출판사,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거느리는 직원만 해도 2000여 명이다. 하지만 파리의 상류층은 돈이나 권력을 과시하는 것을 꺼린다.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라며 자신의 철학이나 가치, 명예, 아니면 정치나 사회, 문화에 더 큰 관심을 둔다.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는 알랭 뒤카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보여주려는 것과 그의 사업적 성공은 두 가지에 기반한다. 셰프는 주방에서 요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레스토랑의 모든 흐름과 구조를 꿰뚫어야 한다는 디렉터로서의 직업관과, 레스토랑은 고객에게 음식을 서비스하는 곳만이 아니라 레스토랑이 위치한 장소와 도시, 사람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이러한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조력자가 필요했다. 자신의 생각과 디테일, 그리고 이상을 구현해주는 사람들. 결과적으로 그가 조엘 로부숑이나 고든 램지와 달랐던 건 자신이 보여주려는 것을 완벽하게 실행할 수 있는,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체계화되고 조직화된 팀을 꾸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알랭 뒤카스의 위대한 여정〉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인 ‘까다로움aspérité’은 그가 어떻게 이상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었는지, 그 한 끗 차이를 보여주는 행동 강령과 같다. 의역하면 ‘한 방’으로 옮길 수 있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탐구하며, 최고가 되고 싶은 욕구를 통해 발현되는 남들과 다른 ‘한 방’이다. 그 한 방은 오트 퀴진부터 비스트로, 캐주얼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인 ‘글로컬’을 통해 어느 나라, 어느 문화든지 빠르고 깊게 뿌리내린다. 알랭 뒤카스가 셰프를 넘어서는 셰프인 이유다. 작고한 프랑스 요리비평가 장클로드 르베Jean- Claude Lebe가 20년 전 알랭 뒤카스를 표현한 말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알랭 뒤카스의 태양은 지지 않는다.”
글 안상호(푸드 칼럼니스트) 담당 김만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