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가르시아
자국 밖에서는 ‘부티크 호텔 인테리어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디자이너 자크 가르시아. 하지만 정작 프랑스에서는 아무런 부연 설명도 따르지 않는다. 그의 이름이 곧 하나의 브랜드요 아이콘이자 프랑스 문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자국 밖에서는 ‘부티크 호텔 인테리어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디자이너 자크 가르시아. 하지만 정작 프랑스에서는 아무런 부연 설명도 따르지 않는다. 그의 이름이 곧 하나의 브랜드요 아이콘이자 프랑스 문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출신 이민자 아버지와 프랑스 중부에서 와인 농장을 하던 집안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크 가르시아는 대학 졸업 후 몽파르나스 타워 Tour Montparnasse의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다. 이전에도 차곡차곡 좋은 커리어를 쌓은 가르시아였지만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필리프 기부르제Philippe Guibourge´와의 우연한 만남이 그의 인생을 더욱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기부르제는 가르시아에게 지금 사는 집을 팔아 멋진 곳을 구해서 최고로 아름답게 집을 꾸며 클라이언트를 초대하라고 조언했는데, 디자이너의 집을 셀프 프로모션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매우 참신한 시도였다. 이에 가르시아는 마레 지구에 근사한 저택을 구입해 그동안 자신이 꿈꿔온 디자인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그 결과는 어마어마한 성공으로 돌아왔다. 파리의 명물 코스테Costes 호텔과 뉴욕의 노매드Nomad 호텔 등 이른바 고급 부티크 호텔들이 그의 손을 통해 탄생했다. 가르시아는 자신의 디자인에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를 접목시켜 독창적인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는 한편, 풍부한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베르사유 궁전이나 루브르 박물관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공간을 재정비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프랑스 고유의 풍성한 문화를 자양분 삼아 뉴욕, 마라케시, 런던, 서울 등으로 진출한 그는 글로벌 럭셔리 스타일의 대가로 자리 잡게 된다.
부티크 호텔 인테리어의 대가로 불리고 있다. 일반 호텔과 다른 부티크 호텔만의 매력이 있다면?
나는 ‘부티크 호텔’이라는 명칭이 없던 시절부터 이미 호텔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가 호텔 문을 도심과 사람들을 향해 열어두는 것이었다.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즉 로비가 레스토랑이 되어 호텔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식사하러 올 수 있는 곳, 관광객과 주민이 만날 수 있는 곳이 내가 생각하는 부티크 호텔의 출발점이다. 현지인과 이방인이 섞여 발산하는 에너지는 언제나 유쾌하고 매력적이다.
16~17세기 화려했던 프랑스 문화의 정수를 디자인에 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문화culture는 곧 농업agriculture과 같다(영어 culture는 ‘경작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colere의 과거분사 cult에서 유래했다). 즉 농사처럼 문화도 재배하고 경작해 배양해야 한다. 나는 프랑스인으로서 우리 문화를 배양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자연스레 내 디자인의 초석이 됐다.
미국의 노매드 호텔, 모로코의 셀만Selman 호텔 등을 보면 18세기 프랑스 스타일에 각 국가의 색깔이 더해져 있다. 프랑스 스타일과 그 나라 고유의 지역성을 중첩시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패션 디자이너 갈리아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가 만든 모든 컬렉션은 ‘갈리아노’ 컬렉션으로 불린다. 그가 아시아에서 영감을 받아 옷을 만들어도 여전히 갈리아노의 옷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할 때는 현지에서 영감을 받긴 하지만 나의 뿌리를 배제할 순 없다. 그건(프랑스 스타일을 배제하는 건) 마치 나에게 산소를 뺏는 것과 같다.
파리에서 태어나 평생 파리서에만 살았다. 그리고 파리의 수많은 호텔, 레스토랑이 당신의 손에서 탄생됐다. 파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나?
나에게 로마가 불멸의 도시라고 한다면 파리는 깨우침의 도시이다.
영국, 모로코, 미국, 싱가포르, 최근에는 한국까지 진출했다. 가르시아 스타일의 호텔 디자인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보증수표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당신의 디자인이 이토록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텔 디자인이 나의 천직이라 말하고 싶진 않다. 문화에 기반을 둔 디자인이 나의 천직이며 호텔 프로젝트를 맡은 건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공간은 유쾌하고 빛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으며 신비롭고 환상적이고 모호하면서 관능미가 느껴진다. 그건 내가 남들과 같지 않다는 의미다. 그런 이유로 클라이언트가 나를 찾는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진행한 레스케이프 호텔도 적잖은 화제를 낳았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궁금하고 신세계와의 협업 과정도 알고 싶다.
스타일이 확립된 이후 내 디자인의 영감의 원천은 언제나 동일하다. 프랑스의 귀족 문화다. 그 외의 것은 생각할 수 없으며, 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장소만 바뀔 뿐이라고 스스로 되뇌는 편이다. 레스케이프 호텔 프로젝트를 하며 느낀 점은 한국인들이 매우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일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진행한 첫 번째 프로젝트인 만큼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따로 공부를 했을 것 같다. 당신이 생각하는 서울의 이미지가 궁금하다.
이전부터 아시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인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서울은 다른 곳에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모던함과 유적이 공존하는 도시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옛 건물,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게 무척 즐거웠다.
호텔 오픈 후 일견에서는 레스케이프 호텔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한 것 같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혹자는 호텔 코스테와 느낌이 너무 비슷하다고도 이야기한다. 이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신세계가 내게 의뢰한 것은 그들이 호텔 코스테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코스테 스타일을 만든 사람인데 코스테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면 샤넬 매장에 가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50년 전 코코 샤넬의 디자인을 팔고 있으니까! 가르시아 스타일이 창조되었고 그 동일한 원본을 두고 여러 변주가 가능하다. 레스케이프가 코스테와 너무 비슷하다는 지적은 틀렸다. 레스케이프는 코스테에 비해 훨씬 아시아적이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 푸케Fouquet’s** 는 프랑스의 영화인과 정치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다. 자신이 디자인한 장소가 트렌드세터뿐 아니라 지식인들에게도 사랑받는 장소가 된 것에 대해 느끼는 기분이 궁금하다.
전설적인 명소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은 매우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파리의 3대 명소가 모두 내 손을 거쳤는데 L호텔L’Hotel, 라뒤레Ladure´e 샹젤리제점, 푸케가 그것이다. L호텔은 오스카 와일드가 머물렀던 곳으로 죽은 오스카 와일드를 살려놓았다고 해도 될 만큼 망가진 건물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라뒤레 샹젤리제점은 녹색 철제 파사드가 파리의 상징과도 같은 만큼 부담이 컸다. 1899년에 문을 연 푸케는 파리의 유적지로 지정된 곳인데 과거의 화려했던 명성을 되살리고 싶었다. 1950년대 목조각 장식과 사진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리뉴얼을 진행했는데 지식인과 영화인들의 터전이었던 식당의 품격이 리뉴얼을 통해 재발견되었다고 본다.
귀족 문화가 디자인의 배경인 만큼 프랑스 왕실과 귀족의 역사에 대해 당신보다 더 잘 아는 디자이너도 없을 것이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디자이너에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디자이너는 현대성과 역사성이라는 상반된 이중성을 모두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곧 문화에 대한 이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10년 동안 베르사유궁을 재정비하는 프로젝트와 루브르 박물관의 17~18세기 장식미술을 전시하는 36개 방을 재정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런 역사적인 장소와 관련된 일을 하는 한편 라스베이거스의 (모던한 디자인의) 윈Wynn 호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이런 행보가 역설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나의 별명 또한 이런 이중성에 기인한다.
70세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비결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려달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실 나는 여러 번 직업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장식가였다가 예술 애호가가 되었다가 다시 장식가가 되었고 그다음에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장식가가 되어 지금도 공공장소를 꾸미고 있다. 일직선이 아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여정이었지만 꽤 근사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다면, 내일이 바로 내 최고의 프로젝트라 답하고 싶다.
인터뷰 양윤정 해외 통신원 / 편집 최명환 기자 / 디자인 정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