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솔루션 대표 우병일
모델솔루션 우병일 대표는 회사의 미래에 대한 구상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움직일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담은 밑그림을 들고 찾아오면 시제품이 아닌 완성품을 쥐고 나갈 수 있는 회사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전례 없는 사업 모델이다.
전문 디자이너, 그리고 아이디어는 충만하지만 실제 제품으로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창업자들에게 모델솔루션은 꽤 믿음직한 파트너다. “아이디어를 담은 밑그림을 들고 찾아오면 완성품을 쥐고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라고 말하는 우병일 모델솔루션 대표는 시제품 제작에서 완성품 양산까지 아우르는 디자인 플랫폼 기업을 꿈꾸고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모델솔루션의 명성은 이미 자자하다. 유영규 클라우드앤코 대표가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던 시절, 성공적으로 론칭한 홀로렌즈의 시제품 개발을 진행한 곳이 바로 모델솔루션이다. 비싼 항공 운임과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서울을 오간 것은 ‘하이 피델리티high fidelity 목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이 서울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영규가 시제품에 ‘하이 피델리티’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만큼 최고의 품질로 승부해야 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원음을 충실하게 재현한다는 의미의 ‘하이파이 hi-fi’는 하이 피델리티의 줄임말이다). 고가의 3D 장비로도 재현하지 못하는 장인들의 세계가 존재한다. 삼성이나 MS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신제품을 세상에 내보일 때 시제품은 양산 제품보다 품질이 더 뛰어나야 한다. 정교하게 만든 최종 목업의 품질을 보고 각 부서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모델솔루션은 1993년 한국 목업 제작의 메카로 불리는 가산동디지털단지 일대에서 작은 회사로 시작했다. 이후 직원 220여명, 420여 개의 글로벌 고객사를 보유한 기업으로 성장했고 2018년에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인수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 있다. 모델솔루션 우병일 대표는 회사의 미래에 대한 구상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움직일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담은 밑그림을 들고 찾아오면 시제품이 아닌 완성품을 쥐고 나갈 수 있는 회사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전례 없는 사업 모델이다. 시스템을 탄탄하게 구축한 후 모기업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파급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애플폰을 만들기만 하던 폭스콘Foxconn이 전기차 브랜드를 만든 것처럼 모델솔루션이 향후 무엇을 만들어낼지 아무도 모른다.
삼성전자, 구글, MS, 그리고 실리콘밸리 내 첨단 기술 기업들을 협력사로 두고 있다. 비결은 무엇인가?
고사양의 3D 프린터로도 구현할 수 없는 정교한 품질을 구현해낼 수 있는 파트별 기술자들이 가장 큰 자산이다. 디자인 과정에서 설계가 완료된 후 실제 크기와 형태로 제품을 제작하는 목업은 외형의 느낌을 보기 위한 디자인 목업, 여기에서 더 나아가 내부 설계까지 마쳐 실제로 움직임이 가능한 워킹 목업이 있다. 이를 통해 컴퓨터 화면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결과물의 형태와 느낌, 재질을 검증할 수 있다. 3D 프린터로 제작 공정에 혁신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전문 기술의 정교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이 피델리티 목업 시장이 존재한다.
요즘 제품 디자인에서 컬러, 머터리얼, 피니싱을 아우르는 CMF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기술력은 상향 평준화된 지 오래다. 그렇기에 색감이나 재질, 마감에서 제품의 완성도가 결정되고 이것이 이른바 ‘감성 디자인’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CMF가 제품의 품격을 결정짓는 디자인의 핵심 요소가 된 것이다. 기능적인 만족감을 넘어서 다양한 감각을 충족시키는 디자인이 각광받고 있어 디자이너에게 CMF 선택의 통찰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회사 내부에 CMF 라이브러리를 두고 있다. 규모가 큰 회사의 경우 CMF 팀이 따로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결국 담당 디자이너가 일일이 실험해봐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이럴 때 모델솔루션의 CMF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면 테스트 제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요즘에는 기업에서 친환경 소재의 포장재나 제품 용기로 바꾸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사옥 이전을 하면 더 크고 전문적인 CMF 라이브러리를 구축할 생각이다.
모델솔루션 8층 사옥 전체에서 시제품 제작을 위한 공정이 원스톱으로 이뤄진다고 들었다.
모델솔루션을 설립한 전 대표가 비즈니스 모델을 매우 잘 만들었다. 내수 시장만으로는 안 되니 일찌감치 미국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경쟁력을 키운 것이다. 미국에도 훌륭한 회사가 많은데 먼 한국 땅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프로젝트마다 다르지만 미국 회사가 보통 프로젝트당 개발 기간을 한 달 정도 잡는다면 우리는 ‘7일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프로젝트를 의뢰한 후 내 집으로 7일 만에 제품을 배송받을 수 있도록 정확하고 빠르게 제작한다. 여기에서 끝나면 빠르고 저렴한 서비스에 지나지 않지만 높은 품질 또한 유지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가 한국테크놀로지그룹Hankook Technology Group으로 바뀌면서 한국타이어와 관련된 여러 기업을 아우르는 대규모 리브랜딩을 진행했다. 지주사를 비롯한 모든 계열사 이름에 ‘Hankook’을 명시했는데, 모델솔루션만 이름을 바꾸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타이어라는 특정 소비재 제조업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다양한 신규 사업을 진행하려는 움직임으로 그룹의 미션을 재정립했다. ‘Future Innovated, Innovation Realized’를 기조로, 혁신적인 미래는 혁신을 실현함으로써 이루어진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계열사들의 이름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모델솔루션만 그대로 둔 것은 한국의 디자이너들이나 세계 협력사들과의 오랜 관계 속에서 믿음이 두텁게 쌓였다고 판단해서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모델솔루션을 인수한 배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규모와 상관없이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한 분야에서 독보적이면서 글로벌 수준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느냐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모델솔루션의 독보적인 기술에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자산을 더한다면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또한 모델솔루션에서 하는 일은 미래에 출시할 제품의 시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스마트폰 이후에 폴더블폰, 그 이후에는 어떤 제품이 나올까? 보통 제품이 3~4년의 선 제작 기간을 거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시간만큼 앞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파악한 경향을 이야기해준다면?
구글이나 아마존, 애플 같은 IT 공룡 회사에서 구글 글라스나 스마트워치 같은 하드웨어 제품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한때 MS의 홀로렌즈 같은 웨어러블 기기를 여러 곳에서 개발했지만 어느 한순간 사그라들었다. 당시에는 시대를 앞서간 면이 있었다. 최근 5세대 이동통신(5G) 시장이 본격화되면서 이를 활용한 기기 시장이 다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가상현실을 볼 수 있는 기기가 개발되었다고 해도 데이터를 처리할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VR 고글을 끼고 다른 도시에서 쇼핑을 즐기고 갤러리의 전시를 보러 갈 수 있고, 자동차와 집을 원격으로 연결하는 경험 등 많은 것이 가능하다. 특히 5G를 이용한 인공지능 기술은 다가올 미래 사회에서 큰 변화를 이끌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4차산업혁명은 소프트웨어 싸움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이를 생활에서 구현해줄 다양한 하드웨어 제품이 필요하다. 모델솔루션에서 앞으로 할 일과 연관되어 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에서 30년을 일한 후 지난해부터 모델솔루션 대표로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일을 맡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한국타이어에 입사해 처음에 R&D센터에서 시작했고 이후 네덜란드에서 구주 마케팅, 한국에 돌아와서는 네빌 브로디가 작업한 한국타이어 BI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글로벌 마케팅과 세일즈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미주 마케팅, 캐나다에서 법인장, 중국에서 중국지역본부장을 지낸 후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해외에서 산 시간이 13년 정도 되는데, 회사 차원에서는 엔지니어 베이스이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영 감각을 갖춘 사람을 필요로 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이제 자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더 큰 모델로 나아갈 시점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설렌다. 한평생 타이어만 바라보며 살았고 그렇게 나의 ‘일’이 끝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새로운 일을 만나게 되었으니까. 보통 회사 규모를 키우려면 코어를 확장시키는 일에서 시작하는데, 모델솔루션은 좀 다르다.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장인 집단이라는 코어는 그대로 둔 채 촘촘하게 다른 일과 연결시키는 일이라고 할까.
앞으로 모델솔루션의 발전 방향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모든 임직원의 프로 의식이 매우 높다. 사원에서 부장까지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생각을 갖고 일하기에 장인과 다를 바 없다. 지금도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이를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하는 지점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니 내 역할은 물꼬를 트는 것이다. 보통은 디자이너가 시제품을 제작할 회사를 택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시제품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디자이너를 택하고 제조사와 연결시켜 제품을 양산해내는 프로세스까지 확장한다는 것이 기본 구상이다. 디자인 스케치에서 제작까지 원스톱 솔루션으로 진행하는 회사가 새롭게 생겨나고 있지만 주요 기술은 보유하지 않은 채 연결하는 매니징 역할이 대부분이다. 모델솔루션이 가진 중간 단계의 기술력을 핵심으로 삼으면 전례 없던 사업 모델이 생길 수 있다.
폭스콘처럼 제작사에서 기업으로 진화하는 사례를 요즘 종종 볼 수 있다.
전자 계통의 디바이스를 전문적으로 양산해온 대만의 폭스콘, 미국의 자빌Jabil 같은 회사는 제조만 하는 EMS(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s) 방식에서 최근 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애플 스마트폰을 만들던 폭스콘이 자체적으로 설계와 개발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되었고 결국 디자인에서 제작까지 직접 진행한다. 공장에서 기업으로 진화한 사례라고 할까. 우리는 공장과 기획 단계의 디자인을 엮는 중간자라는 점에서 좀 다르지만 앞으로 가야 할 방향과 비슷하다.
디자이너와 제작사를 양쪽에서 컨트롤하는 일이 될 것 같다.
한국에는 좋은 디자이너가 많다. 클라우드앤코의 유영규 대표, BKID의 송봉규 대표는 예전부터 우리와 함께 일해온 디자이너들이다. 이렇게 우수한 디자이너와 디자인 시장을 키워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 생각한다. 이들과 함께 최고의 디자인을 뽑아내고 모델솔루션의 기술로 최고 품질의 시제품을 만들어낸다. 제품 양산 전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인프라 또한 모두 보유하고 있다. 제품의 개발 콘셉트에 따라 제작하는 공장 또한 선택할 수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 메이드 인 아메리카, 메이드 인 차이나처럼. 어느 곳에서 진행을 하든 중요한 것은 품질 관리 측면이며 이 또한 모델솔루션이 갖고 있는 노하우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