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 파악이 가능한 투명 마스크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의 아이스피어

앤트 팜Ant Farm은 1960년대 아방가르드 아키텍처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건축 집단 중 하나다. 칩 로드Chip Lord와 더그 미켈스Doug Michels가 샌프란시스코에 결성한 앤트 팜은 당시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묘사되는 브루탈리즘 건축과 반대로 깃털처럼 가벼운 건축을 지향했다. 한번 지으면 100년을 버티는 건축물 대신 공기를 불어넣으면 부풀어오르는 임시 구조물을 짓고, 선언문을 발표하고, 이를 비디오에 담았다. 당시 경직된 이탈리아...

신원 파악이 가능한 투명 마스크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의 아이스피어
©Marco Barotti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 1999년부터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 집단이다. 마르코 카네바치Marco Canevacci, 양예나Yena Young가 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40여 명의 멤버가 프로젝트별로 참여한다. 현재 전시 공간 피크닉에서 진행 중인 〈명상〉전에서도 이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plastiquefantastique. de

앤트 팜Ant Farm은 1960년대 아방가르드 아키텍처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건축 집단 중 하나다. 칩 로드Chip Lord와 더그 미켈스Doug Michels가 샌프란시스코에 결성한 앤트 팜은 당시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묘사되는 브루탈리즘 건축과 반대로 깃털처럼 가벼운 건축을 지향했다. 한번 지으면 100년을 버티는 건축물 대신 공기를 불어넣으면 부풀어오르는 임시 구조물을 짓고, 선언문을 발표하고, 이를 비디오에 담았다. 당시 경직된 이탈리아 건축계에 경종을 올린 슈퍼 스튜디오Super Studio, 야자수와 작은 해변을 갖춘 공기 주입식 주택을 선보인 하우스루커Haus-Rucker Co도 1960년대 아방가르드 아키텍처를 대표한다. 이들은 전문가가 아닌 누구라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건축물을 지향했고 매뉴얼을 제작해 사용법을 일반인에게 알렸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유토피아적 상상이 대부분이었지만 후대에 미친 영향은 크다.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파리 퐁피두 센터는 슈퍼 스튜디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부터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 집단,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Plastique Fantastique는 최근 사회적 거리 두기와 관련한 퍼포먼스를 진행했는데 프로젝트의 방식과 지향점에서 1960년대 아방가르드 아키텍처를 이끈 건축 집단과 유사한 점이 많다. 엉뚱한 상상으로 현실을 기묘하게 비틀고 미래를 바라본다는 점과 전달하는 주제는 묵직하지만 표현 방식은 유머러스하다. 지난 5월 초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는 자신들의 유튜브 계정에 영상 하나를 업로드했다. 제목은 ‘베를린 웨딩Berlin Wedding’으로 공상 과학 만화에 나올 법한 투명한 플라스틱 모자를 쓴 두 남녀가 지하철과 전화박스 등 베를린의 공공 시설을 오가는 영상이다. 4월 27일을 기점으로 베를린에서는 대중교통 이용 시 입과 코를 가리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는 이 제도가 시행되기 하루 전날인 4월 26일에 이 영상을 촬영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마스크 쓰기를 권장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저항도 크다. 사회적·문화적 이유가 다양하지만 베를린 시민들은 마스크 착용자는 신원 파악이 어렵다는 점을 들어 반발했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는 얼굴이 훤히 드러나는 투명한 페이스 실드를 만들어 오픈소스로 제작법을 공개하고, 도시를 활보하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Marco Barotti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 1999년부터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 집단이다. 마르코 카네바치Marco Canevacci, 양예나Yena Young가 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40여 명의 멤버가 프로젝트별로 참여한다. 현재 전시 공간 피크닉에서 진행 중인 〈명상〉전에서도 이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plastiquefantastique. de

mini interview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
양예나
공동 디렉터

자체 제작한 페이스 실드를 착용하고 베를린 공공 시설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아키그램, 앤트 팜 등 1960년대에 가상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건축 집단의 활동을 오마주한 프로젝트다. 그들은 투명하고 가볍고 이동성이 좋은 임시 구조물로 공공장소에 활력을 불어넣고 창작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켰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가 지향하는 바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투명한 페이스 실드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공공장소에서 많은 사람과 마주쳤고, 이것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2020년 4월 27일부터 베를린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입과 코를 가리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에 대한 저항이 여전히 크다. 마스크 쓰는 행위 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무엇보다 마스크를 쓰면 상대방의 신원을 알아볼 수 없다는 점을 꺼려한다. 두 달 전과 비교하면 길거리에서 더 이상 마스크 쓴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지는 않지만 여전히 거리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투명한 마스크를 만들어 ‘아이스피어iSphere’라 이름 붙였다.

페이스 실드를 누구나 제작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바이러스는 매우 평등하다. 성별과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지위를 가리지 않는다. 해결 방안 역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찾아가야 한다. 제작법은 매우 간단하다. 투명한 반구형 플라스틱 2개를 붙이고, 머리 크기에 맞게 구멍을 내어 잘라낸다. 제작 매뉴얼을 따라 하면 30분 정도 시간이 걸리고 재료비는 24유로가 든다. 사회적 퍼포먼스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코로나19 사태라는 상황 때문에 기능성과 실용성을 묻는 사람도 많다. 일종의 테크 아이템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 아이디어를 기본으로 기능성을 더해 제품화할 수 있을 것이다. 차양이나 내장 마이크, 스피커, 인공호흡기 등의 아이템을 추가할 수도 있다.

글 김만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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