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이 다른 천재 디자이너, 제시카 월시 (Jessica Walsh)
2012년 스테판 사그마이스터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의 공동 대표직에 올라 디자인계의 주목을 받은 이가 있었다. 바로 제시카 월시다. 천재는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낸다고 했다. 사실 그녀는 불과 11살에 코딩과 웹 디자인을 하는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어린이용 무료 그래픽 템플릿을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월시의 능력을 알아본 애플이 2008년 대학을 갓 졸업한 그녀에게 연봉 1억 원 이상의 액수를...
2012년 스테판 사그마이스터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의 공동 대표직에 올라 디자인계의 주목을 받은 이가 있었다. 바로 제시카 월시다. 천재는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낸다고 했다. 사실 그녀는 불과 11살에 코딩과 웹 디자인을 하는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어린이용 무료 그래픽 템플릿을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월시의 능력을 알아본 애플이 2008년 대학을 갓 졸업한 그녀에게 연봉 1억 원 이상의 액수를 제시하며 스카우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월시는 과감하게 애플의 제안을 뿌리치고 팬타그램의 파트너인 폴라 셰어Paula Scher의 스튜디오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프린트〉 매거진을 거쳐 2010년 사그마이스터 스튜디오에 합류했는데, 이 순간이 월시의 커리어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그마이스터는 당시 아무도 채용할 계획이 없었지만 그녀를 본 순간 곧바로 마음을 바꿨다고 회고했다. 입사 후 월시가 맡은 프로젝트는 리바이스를 위한 키네틱 간판과 중동 럭셔리 백화점 아이존Aizone의 리브랜딩이었다. 두 프로젝트를 모두 성공적으로 이끈 그녀는 2년 만에 공동 대표로 초고속 승진하게 된다. 당시 나이는 만 25세. 2012년 사그마이스터 & 월시 스튜디오로 새 출발을 알리는 뉴스는 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우리는 디자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겁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첨부된 두 사람의 나체 사진 때문이었다. 이는 1999년 발표한 사그마이스터의 대표작, 온몸에 글씨를 새긴 나체 사진이 인쇄된 AIGA 포스터에 대한 오마주였다. 2013년 두 사람은 독일 유대인박물관에서 〈여섯 가지 것들: 사그마이스터와 월시Six Things: Sagmeister & Walsh〉 전시를 기획했다. 행복을 만들어내는 여섯 가지 것들을 탐험하기 위한 인터랙티브 작품과 5개의 짧은 영상이 전시장에 설치되었다. 전시의 성공으로 2014년 사그마이스터 & 월시 스튜디오는 유대인박물관의 로고 리뉴얼을 포함한 그래픽 아이덴티티 작업까지 맡게 되었다. 새롭게 탄생한 로고 사인물은 대니얼 리버스킨드가 건축한 유대인박물관과 멋지게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월시는 사그마이스터로부터 독립하여 오랜 꿈이었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월시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그녀는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디자인 전공자의 70%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11%, 스튜디오 오너는 0.1%에 불과한 기형적인 디자인 생태계를 꼬집으며, 여성 디자이너이자 대표로서 업계의 롤 모델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런 월시에게 벤치마킹할 여성 리더이자 멘토는 첫 직장에서 만난 폴라 셰어다. 인턴 시절 〈프린트〉 아트 디렉터 자리에 추천서를 써주기도 했던 셰어는 월시에게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월시는 사그마이스터라는 거물급 디자이너에게 가려져 공동 대표임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스튜디오 이름에서 ‘사그마이스터’를 빼고 ‘&월시’라는 이름을 그대로 살린 이유는 앞으로 협업하는 디자이너나 클라이언트 누구나 &월시의 앞자리에 올 수 있다고 강조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문장 부호 ‘&’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 디자인의 주안점이었다. 장장 두 달 동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를 디자인하기 위해 1230장의 시안이 그려졌다. 그 결과 우아한 곡선을 가진 시각적 임팩트를 주는 로고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신생 스튜디오라면 험난한 그래픽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겠지만 &월시 스튜디오는 출발선이 다르다. 오픈한 지 이제 겨우 일 년 남짓 흘렀지만 전 세계 힙한 브랜드에서 함께 일하기 위해 줄 서 있기 때문이다. 글 서민경 기자
1986년생으로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월시 스튜디오 대표. 2008년 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 그래픽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팬타그램 파트너인 폴라 셰어의 스튜디오에서 인턴을 했다. 이후 〈프린트〉 아트 디렉터로 일하면서 〈뉴욕 타임스〉 매거진을 비롯해 여러 매체의 디자인에 참여했다. 2010년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의 스튜디오에 합류했고, 불과 2년 만에 공동 대표가 되었다. 〈포브스〉가 2015년 발표한 ‘30세 이하의 아트 & 스타일 부문 30인’에 들기도 했다. 2019년 사그마이스터로부터 독립해 &월시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andwalsh.com
&월시(Walsh) 브랜딩 ·디지털 디자인, 2019
새로운 스튜디오의 시작을 알리며 문장 부호 ‘&’를 브랜딩 전반에 활용했다. 그 결과 50여 가지 스타일의 ‘&’ 로고가 만들어졌다. 영상에서 이 로고는 월시의 얼굴 위를 기어다니고, 연기를 내뿜고, 크롬처럼 번쩍이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월시 스튜디오에 있어 ‘&’는 가장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로, 앞으로도 작업 콘셉트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재구성될 것이다.
펫 플레이트(Pet Plate, 2018)
고급 사료 컴퍼니 펫 플레이트의 리브랜딩 프로젝트다. 강렬하고 펑키한 타입페 이스와 활기찬 톤의 광고 문구가 일러스트와 잘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했다.
노 필터(No Filter, 2018)
일종의 포토그래피 시리즈로 프로젝트 풀 네임은 ‘미안해. 나는 필터가 없어Sorry I Have No Filter’이다. 사진 속 ‘용서는 과대평가됐다. 나는 분노를 사랑한다!’, 혹은 ‘나는 엉망진창 모순덩어리’라는 문구는 월시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에서 비롯됐다. 냉소적이면서 유머러스 한 내용을 담고 있는 타이포그래피를 사진 속에서 감각적으로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