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진

방법을 연구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오혜진

방법을 연구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2010년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부를, 2020년 서울시립대학교 공공시각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4년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오와이이를 운영하며 편집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출판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부터 자체적으로 진행한 도큐먼트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현재 도큐먼트 프레스를 운영하며 여러 가지 매체를 변주해 디자인한 제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다루는 재료는 주로 글과 이미지다. 이것을 지면에 어떻게 잘 배치하느냐가 그들의 일이다. 하지만 그래픽 디자이너 오혜진은 여기서 더 나아가 스스로 일러스트레이션을 활용한 이미지를 생산하며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있다. 그의 디자인에서 글과 이미지가 유기적 관계를 맺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최근 음악가 박다함을 위해 디자인한 ‘페이퍼 믹스’의 포스터를 보면 ‘그림인가, 그래픽인가’라는 궁금증과 함께 무엇이 텍스트이고 무엇이 이미지인지 분리가 어렵다. 리소 인쇄 방식을 이용한 그래픽 디자인 달력을 통해서는 그를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하나의 직업으로 규정짓기 더 어려워진다.
그러던 그가 최근 대학 졸업 후 약 10년 만에 대학원 진학과 함께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무엇을 그리는 것이 아닌 ‘콘텐츠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릴 것인가’라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그의 고민은 디자인학 석사 학위 논문 ‘백지에서 시작할 수는 없잖아요’에 잘 드러나 있다. “어느 순간 나는 고양이나 식물, 얼굴, 과일과 같이 이름이 있는 ‘무엇’만을 그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름 없는 ‘무엇’을 그리면 보는 이가 그 이름을 알아차리려 하기보다는 어떻게 그려졌는가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름 없는 ‘무엇’은 어떻게 그릴 수 있는 것일까? ‘그리는 방법 자체를 주제로 삼을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다.” 이후 이미지로 먼저 접근하던 방식과 달리 한 가지 스타일에 고착되지 않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결과물로 그가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이너로 참여한 〈틱-톡Tic-Tock〉은 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처한 상태에 주목해보자는 주제의 전시다. 제목 ‘틱-톡’은 스스로 조절할 수 없게 근육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틱tic 장애와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 틱톡tick-tock을 합친 단어다. 여기서 오혜진은 그래픽 디자인에서 가독성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삶을 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전시 정보를 제공하는 텍스트 위에 점자 형식의 서체로 제목을 군데군데 넣어 조판을 교란시키는 방식으로 주제를 시각화했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열린 〈내 나니 여자라,〉 전시 아이덴티티 역시 전시의 모티브가 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과 전시에 참여한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고서 분위기의 전시 제목과 현대미술품이 상충된 상황을 시각적으로 풀어내야 했는데, 제목은 서체 디자이너 김슬기의 달슬체(조선 여성들의 손편지 글씨체)를 사용해 ‘태어나 보니 여자이더라(내 나니 여자라)’라는 한 섞인 어조를 표현했고 블랭크blank를 이용해 현대미술 작가들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오혜진의 진가는 자체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더욱 발휘된다. 그는 스튜디오 오와이이를 설립하기 전인 2011년부터 평소 그려둔 드로잉을 모아 책을 만들기 위한 ‘도큐먼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개인 프로젝트가 점차 협업 프로젝트가 되고 사진, 글,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작업물로 발전해 2014년에는 구슬모아당구장 선정 작가가 되어 개인전 〈Walk in The DOCUMENT〉를 열었다. 2018년 도큐먼트 프레스로 자체 발행한 〈도구로서의 이미지〉 또한 그의 능동적 성격을 보여준다. 자신이 평소 궁금해하던 ‘이미지를 생산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업 과정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고자 해외 디자이너를 포함한 그래픽 디자이너 6명을 직접 인터뷰한 것이다. 그 밖에도 자신의 그래픽 작업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매체를 변주한 제품을 선보이며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결과물로 보여준다. 일러스트레이션을 비롯해 타이포그래피, 출판물, 웹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신만의 디자인 방법과 도구를 발전시켜나가는 오혜진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 박은영 객원 기자 담당 김민정 기자

페이퍼믹스_한솔제지가지(2020). 음악가 박다함의 믹스 테이프를 위한 포스터 디자인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사진가, 음악가 등 4팀의 작업자가 공장을 방문해 그곳에서 수집한 단어와 장면 등을 바탕으로 아트 워크를 진행한 프로젝트다. 공장에서 산발적으로 보이는 장면을 수집해 가공한다는 측면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모아 재가공해 메인 그래픽 디자인 요소로 활용했으며, 공장에서 본 여러 서체를 모티브로 타이틀을 디자인했다. 기획은 코우너스가 했다.

젊은 건축가: 질색 불만 그리고 일상〉(2019). 2019년 젊은 건축가 상을 수상한 3팀의 에세이와 작품을 소개하는 출판물이다. 팀의 대표 건축물 도면에서 따온 도형의 형태에 형압 후가공을 적용했다. 건축물에서 중요한 정확한 규격과 도면 등의 요소를 모티브로 했으며 표지와 하단에 쓰인 영문의 메인 서체는 모든 글리프의 너비가 동일한 모노 타이프를 사용했다.

‘백지에서 시작할 수는 없잖아요’(2020). 디자인학 석사 학위 논문 배포용으로 만든 출판물. 연구작이었던 ‘A4 드로잉’에 관한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아보고 작품 설명을 담은 내용으로, 판형을 A4 크기로 정한 환경적 요인부터 그리드 설정, 획을 그은 방법, 각 점의 모양, 색상 선택의 과정과 같이 작업을 진행한 타임라인을 따라 모든 요소를 상세히 기록했다.

〈틱-톡〉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2019). 전시 정보 위에 점자 형식의 서체로 제목을 군데군데 넣어 조판을 교란시키는 방식으로 전시 주제를 시각화했다.

〈도구로서의 이미지〉
(2018). 이미지를 생산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업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고 싶어 직접 디자이너를 섭외하고 인터뷰해 책으로 엮었다. 네이치 프라Nejc Prah, 우에다 타다시Tadashi Ueda, 루디 게지Rudy Guedj, 유명상 등 총 6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내 나니 여자라,〉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2020). 〈한중록〉에서 발췌한 조선 여성으로서의 한스러움과 전시에 참여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 이미지가 절충될 수 있도록 달슬체와 블랭크를 활용해 전시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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