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가지 콘텐츠를 큐레이션한 미래형 플래그십 스토어, 더현대 서울

더현대 서울은 백 가지 잡화가 아닌 ‘백 가지 콘텐츠를 큐레이션한 미래형 플래그십 스토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백 가지 콘텐츠를 큐레이션한 미래형 플래그십 스토어, 더현대 서울
5층에 위치한 사운즈 포레스트. 이너 존과 아우터 존을 7개의 브리지로 연결한 공간 구조가 한눈에 보인다. ©Hyundai Department Store / Photography : Kyungsub Shin

백화점이라는 명칭은 ‘백 가지 잡화가 모여 있는 점포’라는 데서 유래했다. 패션부터 식품, 리빙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군을 구비한 백화점은 쇼핑 천국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이제는 양보다 질로 승부하는 시대다. 이것저것 많이 모아놓는 것보다 최신 트렌드에 부합하는 맞춤형 콘텐츠 큐레이션이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지난 2월 26일 여의도에 오픈한 더현대 서울은 약 8만 9100㎡에 달하는 서울 최대 규모의 백화점으로 매장 공간의 절반만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최신 트렌드를 보여주는 브랜드로만 선별한 것. 나머지 절반은 실내 조경과 고객 편의 공간으로 구성했다. 이곳 또한 음악, 식물 수종, 집기, 프로그램을 세심하게 큐레이션한 결과물로 채웠다. 따라서 더현대 서울은 백 가지 잡화가 아닌 ‘백 가지 콘텐츠를 큐레이션한 미래형 플래그십 스토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미래를 향한 울림Sound of the Future’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고자 단단히 벼른 모습이다. ‘혁신적인 공간 설계’, ‘세계적 콘텐츠 큐레이션’, ‘미래형 테크놀로지’라는 세 가지 콘셉트를 중심으로 브랜드 전략을 짠 더현대 서울은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요소로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독보적인 스케일과 디자인을 앞세운 스펙터클한 공간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5층의 실내 정원 ‘사운즈 포레스트’가 대표적인 예다. 더현대 서울은 높이 23m, 면적 3300㎡에 이르는 거대한 실내 정원을 조성했다. 이 아이디어는 유리 천장 마감을 영리하게 활용해 자연 채광을 극대화했기에 실현될 수 있었다. 50여 그루의 나무와 10여 종의 초화류를 식재하고 광장에는 파고라와 화분 100여 개를 배치해 아늑한 온실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6층과 연결되는 그린 컬러 돔 구조물은 파리 그랑팔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운즈 포레스트라는 명칭에 걸맞게 요일이나 날씨 등 상황별 분위기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도 특징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3층에서 1층으로 떨어지는 12m 높이의 인공 폭포 ‘워터폴 가든’ 역시 놀라운 광경을 연출한다. 워터폴 가든은 2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구조물의 부드러운 곡선이 높이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을 중화시킨다. 워터폴 가든에 인접한 2층부터 4층에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F&B 브랜드를 입점시켜 물소리를 들으면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워터폴 가든과 F&B 브랜드가 위치한 보이드 공간에는 자연 채광이 천장부터 1층까지 이어지도록 세심하게 설계했다. 몰 구조의 특성상 연속적으로 매장이 펼쳐지는 수평적 공간 경험이 주는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조성한 보이드 공간은 개방감을 주는 동시에 다른 매장이 눈에 더 잘 들어오게끔 한다. 한편 각 층별 공간은 세계적인 공간 디자인 회사들과 협업했다. 워터폴 가든을 비롯해 2~4층 이너 존은 버디필렉Burdifilek이 설계했으며, 1층 메인 공간은 CMK, 2~4층 아우터 존과 5층은 칼리슨 RTKL, 6층 다이닝 존과 지하 1층 와인 웍스는 시나토Sinato가 디자인했다. 한국 파트너로는 사운즈 포레스트에 참여한 디자인 알레와 함께 지하 1층은 계선, 지하 2층은 비트윈 스페이스가 맡았고 VIP 라운지는 라보토리가 설계했다. 현대백화점 인테리어팀은 다양한 디자인 회사가 참여한 공간이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전체를 디렉팅하는 역할을 했다. 한편 1층에서 5월 23일까지 만나볼 수 있는 스튜디오 스와인Studio Swine의 ‘스프링 포레스트Spring Forest’는 2018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선보여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전시 공간에 쉴 새 없이 핑크빛 안개 방울을 뿜어내는 나무 형상의 구조물은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테크놀로지와 예술을 결합해 동심을 자극하는 이곳의 체험형 전시는 최신 기술과 감성을 아우르는 더현대 서울의 지향점과도 닮아 있다.

오프닝 키 비주얼 그래픽을 더현대 서울 건물 외벽에 적용한 모습. 플로어 가이드와 테이스티 가이드에도 동일한 그래픽 요소를 적용해 통일성을 주었다.

김도윤 팀장
현대백화점 인테리어팀
“더현대 서울은 기획 단계부터 단순히 여러 브랜드가 모여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백화점을 지양했다. 더현대 서울만의 취향을 보여주고자 기존의 어떤 백화점보다 당사에서 직접 디자인한 공간을 많이 할애했다. 국내외 여러 설계사와 협업하며 공간 디렉팅을 주도하고 동시에 인하우스 디자인 비중을 늘려 각각의 개성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공간으로 완성하는 데 집중했다.”

더현대 서울은 기획 단계부터 국내가 아닌 세계 유수의 백화점과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름을 ‘현대백화점 여의도점’이 아닌 ‘더현대 서울’로 정한 것도 글로벌 도시 서울을 상징하는 백화점으로 포지셔닝해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를 위해 전방위적인 비주얼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먼저 현대백화점 브랜드전략팀은 더현대 로고를 리뉴얼하고 ‘서울’을 추가해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를 위한 맞춤형 로고를 디자인했다. 그리고 현대백화점 디자인팀은 디자이너 듀오 홍은주, 김형재와 협업해 미래 세대의 다양성과 다채로운 모습을 포용하는 콘셉트의 오프닝 키 비주얼을 완성했다. 건축에서 모티브를 딴 이 그래픽 디자인 요소는 건물 외관의 슈퍼 그래픽을 비롯해 플로어 가이드, 쇼핑백, 크레디트 카드, 모션 그래픽 영상, 웹사이트 등에 적용해 더현대 서울의 그랜드 오픈을 강력하게 인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웹사이트는 점포 운영 시간이나 층별 매장 안내 같은 단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서 MZ세대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온라인 채널로 자리 잡았다.

박이랑 팀장
현대백화점 브랜드전략팀
“백화점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해 새롭게 브랜드 이미지를 견인하는 점포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다. 광고와 각종 비주얼 속 브랜드 이미지, 매장 공간을 둘러볼 때 흘러나오는 음악, 사운드, 빛 등 공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더현대 서울이 지향하는 가치를 전달하고자 했다.”

정의정 팀장
현대백화점 디자인팀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키워드를 우선적으로 잡고 디자이너들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그 후 작업 내용을 바탕으로 매체와 여러 상황을 고려해 적합한 그래픽 시스템을 도출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거쳤다. 실력 있는 여러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글로벌 뉴 스탠더드’를 지향하는 더현대 서울만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완성되었다.”

CH 1985 입구 안내

감각적인 네이밍과 색깔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층별 구성도 기존 백화점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해외 명품과 화장품 브랜드 등이 입점한 1층 ‘익스클루시브 레이블Exclusive Label’로 시작해 전문 식당가와 문화센터 등이 위치한 6층 ‘다이닝 & 아트Dining & Art’까지 특정 상품군이 어느 층에 입점해 있는지를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하면서도 직관적으로 각 층별 성격을 유추할 수 있도록 했다. 여성 패션과 남성 패션을 층별로 구분하던 데서 탈피해 이를 한 층에 모으고 요즘 트렌드인 젠더리스 패션까지 포용한 3층 ‘어바웃 패션About Fashion’에서는 달라진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다. 지하 1층의 식품관을 ‘테이스티 서울 마켓’으로 브랜딩한 점도 눈에 띈다. 현대백화점 디자인팀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스와 협업해 건강한 삶과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새로운 식문화를 제안하는 공간으로 디자인을 전개했다. 그 결과 보라색과 주황색 라인이 가로세로로 교차하면서 바구니가 연상되는 패턴과 획 대비가 도드라지는 타이포그래피를 매치한 감각적인 로고가 탄생했다. 이를 바탕으로 개발한 그래픽 시스템을 테이스티 서울 마켓 공간에 적용하면서 캐주얼하고 생동감 넘치는 마켓의 이미지가 느껴지도록 했다. 한편 고객 편의 시설인 백화점 문화센터도 ‘CH 1985’라는 네이밍과 함께 한 차원 업그레이드했다. CH는 ‘컬처 하우스Culture House’를 뜻하고, 숫자 1985는 현대백화점이 국내 최초의 문화센터를 오픈한 해를 의미한다(당시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이 개장했다). 즉 현대백화점만의 헤리티지를 계승한 셈이다. 여기에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부티크 컬처 살롱으로 CH 1985를 차별화하기 위한 수준 높은 프로그램 기획과 디자인을 더했다. BI와 애플리케이션 디자인을 맡은 유명상 디자이너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연결되면서 차곡차곡 경험이 쌓이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주목해 12각 방사형의 그래픽 모티브와 이를 발전시킨 로고를 제안했다. 여기에 공간과 가구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전산시스템이 가세해 방사형의 모듈형 사이니지와 집기를 제작해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살렸다. 이 집기 주변으로 플랜트 큐레이션을 맡은 피에스원에서 식물을 배치해 개성 있는 공간으로 완성했다. 이곳에서는 각종 웰니스 프로그램과 파인 다이닝 클래스, 원데이 클래스, 취향 커뮤니티 기반의 다양한 토크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현대백화점 아동관 브랜드인 ‘쁘띠 플래닛Petit Planet’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더현대 서울 공간 곳곳에 녹여 가족 친화적인 요소를 강조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크리에이터이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쁘띠 플래닛 브랜딩은 현대백화점 디자인팀과 스튜디오 FNT에서 맡았다. 우주 혹은 외계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쁘띠 플래닛 캐릭터는 어린이를 인종과 성별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경험의 주체로 바라보고자 하는 시각을 담았다. 또 기본 형태 요소인 도형과의 조합을 통해 여러 층위의 스토리를 다양하게 구성하고자 했다. 키즈 콘텐츠 토털 숍 ‘스튜디오 쁘띠’ 외에도 서비스 시설, 주요 스폿마다 쁘띠 플래닛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키치팝에서 공간 연출을 진행했다.

첨단 테크놀로지가 적용된 무인 매장으로 화제를 모은 6층 언커먼스토어. ©Hyundai Department Store / Photography : Kyungsub Shin

현대백화점 인테리어팀이 스튜디오 쁘띠에 설치한 가구 디자이너 미키야 고바야시의 시소와 크래들은 브랜딩을 강조하는 동시에 아이들에게 새로운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스튜디오 쁘띠가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라면 ‘언커먼스토어Uncommon Store’는 어른을 위한 놀이터다. 아마존 웹 서비스(AWS) 기반의 응용 기술과 인공지능, 머신러닝 등 자체 연구를 통해 혁신적인 테크놀로지로 구현한 무인 매장으로 더현대 서울에서 자신 있게 추천하는 곳이기도 하다. QR코드를 찍고 입장하면 수백 개의 센서가 움직임을 분석해 매장에서 집어든 상품을 나갈 때 자동으로 결제해준다. 현대백화점 뉴비즈팀에서 큐레이션한 이곳은 MZ세대가 좋아하는 나이스웨더, 제로퍼제로의 상품으로 채워져 있으며, 현대백화점 캐릭터 ‘흰디’ PB 상품도 만날 수 있다. 언커먼스토어 공간을 디자인한 아키모스피어는 미래지향적인 콘셉트를 살리면서도 오프라인 쇼핑이 줄 수 있는 경험의 가치를 동시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 밖에 각 층별로 입점 브랜드들이 앞세운 흥미로운 콘텐츠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더현대 서울이 단순히 쇼핑을 위한 공간 이상으로 지금 서울에서 가장 힙한 트렌드와 문화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에는 잘 큐레이션된 브랜드와 더불어 더현대 서울의 기획자와 디자이너, 그리고 협업에 참여한 수많은 외부 디자이너들이 있다.
글 서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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