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놓고 즐기는 프리미엄 차의 세계 델픽 유수진
영국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한 유수진 대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차 문화를 알리는 프리미엄 티 브랜드 델픽을 운영한다.
영국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한 유수진 대표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차 문화를 알리는 프리미엄 티 브랜드 델픽을 운영한다. 아담한 가게들이 여유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계동 길 한편에 마련한 쇼룸은 델픽의 브랜드 방향성을 알리고 고객과 소통하는 티 하우스다. 이곳에서는 델픽의 다양한 블렌딩 티를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십 명의 한국 공예 작가가 만든 다구를 직접 보고 구입할 수 있다. 공예품을 앞에 두고 가격을 물을까 말까 머뭇거렸던 기억은 이제 그만. 친절히 안내하는 공예품 구입 가이드 리플릿에서 차 문화와 공예가 사람들에게 어렵지 않게 다가가길 바란다는 유수진 대표의 진실된 마음이 느껴진다. delphic.kr
영국 유학 후 프리미엄 티 브랜드 델픽을 론칭했다.
어릴 때부터 차를 즐기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유학 시절에는 영국 특유의 문화로 인해 더욱 차를 즐기게 됐다. 용돈을 모아 차나 그릇을 사고 소소하게 부엌을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한국에 돌아와 오랜 시간 계획했던 예술 공간 ‘뮤지엄 헤드’를 준비하던 중 내가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취미인 ‘차’가 좋은 매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차와 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한 것이다. 뮤지엄 헤드가 비영리 공간이다 보니 티 브랜드의 쇼룸을 함께 구성해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기도 했다.
델픽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델픽은 고대 그리스인이 고민을 마주했을 때 찾던 신전의 이름이다. 신의 메시지를 통해 고민을 해결해나갔듯이 차를 통해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삶의 균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동서양의 문화나 다도의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차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매장 건물은 어릴 적 살았던 집을 개조한 것이라고.
건축 설계는 사무소 효자동에서 맡았다. 추억이 담긴 옛 주택인 점에 주목해 기존 공간이 지닌 아름다움과 특징을 최대한 살리면서 새로운 인상을 주도록 했다. 남겨진 벽체와 천장은 건물의 기억을 담고 있으면서도 브랜드의 따뜻한 인상을 표현하는 요소가 된다. 오프라인 쇼룸은 경험을 극대화하고 브랜드 색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힘이 있다. 따라서 공간을 디자인할 때 단순한 티 브랜드가 아니라 문화와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여유로운 공간과 동선을 확보한 것은 이 때문이다. 2~3층에 위치한 티 바와 야외 테라스 공간에서 편안하게 차를 즐길 수 있다.
온ㆍ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차뿐만 아니라 다구를 함께 소개한다.
보통 차 도구나 공예 분야는 작가에 대한 정보나 가격을 알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공예품을 취급하는 곳에 가면 가격을 묻기도 어렵고 주눅이 들기도 하지 않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공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공예 작가들과 협업해 델픽의 시그너처 차 도구를 기획하기도 하고, 브랜드와 잘 어울리는 작품을 큐레이션해 판매했다. 시그너처 다구 라인은 차와 디저트용 도자기와 커트러리로 구성했다. 기획할 때 공예품에 대한 문턱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가격과 소재, 디자인을 고민했다. 여러 번의 조율과 샘플링 작업 끝에 인기가 좋은 지금의 제품이 탄생하게 됐다.
시그너처 티와 프리미엄 티 제품은 어떻게 다른가?
시그너처 라인은 델픽이 개발한 블렌딩 티로 델픽에서만 맛볼 수 있다. 블렌딩 티는 다양한 종류의 찻잎을 기호에 맞게 섞어 균일화하고, 차 이외의 재료를 첨가해 복합적인 맛과 향을 지닌 차로 만든 것이다. 세계 각지의 우수한 재료를 엄선하고 양질의 찻잎과 꽃, 과일, 허브 등을 배합하는 과정을 수차례 거듭해 가장 조화로운 향미를 가진 제품을 개발했다. 한편 프리미엄 티는 블렌딩이 되지 않은 차다. 한 차밭에서 같은 시기에 수확한 찻잎으로 만든 차를 단일 다원의 차(single estate tea)라고 하는데, 단일 다원의 차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생산하고 수확 기간이 짧으며 그중에서도 향미가 뛰어난 차를 선별해 유통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매우 적다. 우리는 세계 각지의 전통 있는 전문 다원에서 독자적인 기술로 관리한 최고급 티를 소개한다.
차의 맛과 향을 떠올리게 하는 네이밍과 패키지 디자인은 어떻게 완성했나?
시그너처 티를 개발할 때는 차향을 먼저 구상하고 이미지화하는 순서로 작업한다. 떠오르는 차의 맛과 향을 감각적으로 구체화한 것이 패키지 디자인이다. 예를 들어 ‘샹그릴라Shangri-la’의 경우 미지의 숲속으로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는 모습과 그때 맡게 되는 향을 떠올렸다. 차 이름은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지상 낙원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국적인 에너지가 가득하고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 효과는 전혀 인공 향을 더하지 않은 디카페인 원료와도 연결된다. 재료를 표현한 일러스트레이션과 녹색의 패키지는 이러한 이미지를 시각화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차인데 출시 전에는 특유의 재료 때문에 인기가 없을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의외로 이 차를 가장 즐기는 마니아층이 있더라.
순수 미술을 공부했던 것이 차 브랜드를 이끄는 데도 영향을 미치는가?
그렇다. 원래 차뿐만 아니라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고 좋아해서 배우러 다닌 적도 많다. 미술을 공부할 때도 주변에 요리 잘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맛이나 향을 기획하고 감각적으로 밸런스를 맞춰나가는 과정이 미술 작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디자인과 브랜딩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프리미엄 티 브랜드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유명한 티 브랜드들은 제각기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포트넘앤메이슨이나 트와이닝같이 아주 오래된 브랜드도 있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 중 10년 남짓 짧은 역사를 가진 브랜드도 많다. 쿠스미 티는 망해가던 회사를 러시아 자본가가 매입해 리브랜딩한 것이고, 싱가포르의 TWG는 2007년에 설립한 비교적 신생 티 브랜드다. 프리미엄 티는 기본적으로 차의 퀄리티와 맛이 중요하다. 좋은 찻잎과 균형 잡힌 블렌딩이 핵심이다. 또 오래된 전통에 기댄 브랜딩과 신규 업체라 할지라도 일관된 브랜딩으로 좋은 인상을 주는 곳이 눈에 띈다.
차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깊은 역사를 가진 차는 종류도 많고 문화도 다양하다. 전통과 격식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를 즐기는 데 그것이 필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명 작가의 공예품과 함께 차를 즐겨도 되고 집에 있는 오래된 컵에 마셔도 상관없다. 개인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차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델픽을 어떤 브랜드로 기억하기를 바라나?
편안하게 차를 즐기는 자리에서, 나아가 식탁 위 풍경이나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떠올릴 만한 브랜드가 되고 싶다.
글 이솔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