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제너레이션의 놀이터를 디자인한 하이메 아욘 현대백화점 YP HAUS
‘Young VIP’라는 의미가 담긴 클럽 YP는 1983년생 이하 고객을 대상으로 한 현대백화점의 VIP 제도. YP 하우스는 이들을 위한 멤버십 라운지다.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이 지난 10월 서울을 방문했다. 올해 열린 스페인 디자인 어워드(Premio Nacional de Diseño)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직후이자 마요르카에서 개최한 그의 회화 전시에서 모든 작품이 팔린 뒤였다. ‘지금 꼭 알아두어야 할 디자이너 100인’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는 그는 이제 산업 디자인 영역을 넘어 크리에이터, 아티스트로 활동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한국에도 그의 손길을 거친 공간들이 있는데 현대어린이책미술관MOKA의 ‘모카 가든’과 최근 공개한 현대백화점 VIP 라운지 ‘YP 하우스’다. ‘Young VIP’라는 의미가 담긴 클럽 YP는 1983년생 이하 고객을 대상으로 한 현대백화점의 VIP 제도. YP 하우스는 이들을 위한 멤버십 라운지다. 하이메 아욘은 더현대 서울과 현대백화점 판교점 두 곳의 YP 하우스를 디자인했는데, 조명부터 테이블, 의자는 물론 문손잡이까지 공을 들였다. 전체적으로 디자이너 특유의 채도 높은 컬러를 사용하고, 각진 곳이 전혀 없이 유선형으로 이루어진 공간과 하이메 아욘의 상상 속 동물로 만든 조형물은 지극히 그다운 연출이다. 두 곳의 YP 하우스는 개성이 각기 다르지만 같은 조형 언어를 공유한다. 그리고 이곳은 그 자체로 백화점의 타깃의 변화를 보여준다. 2030세대가 럭셔리 브랜드 매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유통업계 전반에서 알려진 사실이다. 과거의 명품 소비가 기성세대의 경제력을 상징했다면 현재는 취향을 적극 드러내는 MZ세대의 셀프 브랜딩의 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등장한 YP 하우스는 업계 최초로 2030세대 전용 VIP 멤버십을 도입하며, 트렌드의 중심을 놓치지 않겠다는 현대백화점의 야심이 담긴 프로젝트다. 청소년 시절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그라피티에 푹 빠졌으며 패션과 공간, 현대 예술 사이를 오가며 거침없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하이메 아욘이야말로 클럽 YP로 표상되는 ‘영 제너레이션’의 삶을 먼저 살아본 디자이너라 할 수 있다. 고상함이 떠오르기 마련인 백화점 라운지를 MZ세대의 플레이 그라운드로 바꿔놓은 그를 만나보았다.
하이메 아욘
“25년간 축적해온 나의 디자인 방식이 분위기로 드러나는 것이다.”
디자이너와 예술가로 살고 있는데, 이 둘 사이에 경계를 짓는 편인가?
흔히 디자인을 기능과 결부 짓는 방식이 경계를 만들어낸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나의 창작 과정에서는 디자인이든 예술 작품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회화(painting)는 절대 디자인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뭐가 나올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처음 맡게 되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무엇인가?
‘백화점 라운지라니!’(웃음) 병원이나 공항 라운지 디자인도 지루한데 백화점은 더 지루하게 들리지 않나.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재밌는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즐거웠다. 이곳에 방문한 사람이 공간은 물론 자기 자신도 유니크하다고 느끼게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 기성 가구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를 모두 디자인했다. 번거로웠지만 세상에 없는 공간을 만들려면 당연하다. 원래 편리하게 일하는 것을 꺼리는 편이고 인생의 아름다움은 가보지 않은 길, 해결하기 어려운 것에 있다고 믿는다.
YP 하우스의 더현대 서울과 판교점을 동시에 디자인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더현대 서울은 공간 전체가 전체적으로 둥글기 때문에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판교점의 경우 하나의 공간이지만 구역별로 다른 컬러와 패턴, 소재를 혼합해 다양한 레이어가 교차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연출 방식은 달라도 이 공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화자는 결국 크리에이터인 나다. 25년간 축적해온 나의 디자인 방식이 분위기로 드러나는 것이다. 손잡이부터 조명, 표면, 패턴, 조각, 컬러 조합에 이르는 작은 디테일이 이런 분위기를 형성한다.
처음부터 젊은 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설계했나?
스페인에 오래된 댄스 클럽이 있는데, 그곳 주인은 나이 든 사람을 위한 곳이라고 우기지만 스니커즈 신은 청년이 훨씬 많이 온다. 다시 말해 만든 사람이 기대하는 것과 실제 사용하는 사람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영 & 올드’를 나눌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다만 YP 하우스는 한국인의 오픈 마인드, 컬러풀한 패션과 잘 어울리는 곳이긴 하다.
이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올 때마다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를, 동시에 편안함을 느끼기를.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디자인했다. YP 하우스를 디자인하며 내가 즐거웠던 만큼 고객들도 이 공간을 즐겼으면 한다.
글 박슬기 기자 공간 사진 신경섭 인물 사진 유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