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세의 앙팡 테리블〈마틴 마르지엘라〉전
익명, 취약성, 변형, 신체 부위, 머리카락 같은 다양한 주제 및 재료로 완성한 회화, 조각, 설치, 콜라주, 영화 등을 선보였고 전시장에 상주하는 퍼포머들이 움직이는 조각품이 되어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인비지블invisible 패션 디자이너로 1990년대와 2000년대 패션계를 호령했던 마틴 마르지엘라. 2009년 돌연 은퇴를 선언한 후 12년 만에 64세의 나이로 복귀를 선언했다. 그런데 그의 복귀 무대가 좀 특이하다. 마르지엘라가 선택한 장소는 런웨이가 아니라 미술관이었다. ‘신진 아티스트’라는 꼬리표까지 달고.(‘거장’으로 데뷔하는 예술가가 과연 몇이나 될까?) 지난 10월 20일부터 2022년 1월 2일까지 파리의 현대미술 갤러리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Lafayette Anticipations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 열린다. 늘 비밀스럽게 자신을 감추고 ‘가시성’을 테마로 작업하길 좋아하는 그만의 스타일은 이번 전시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작가와의 인터뷰나 촬영이 금지된 것은 물론 작품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사전 노출하지 않았다. 오프닝 하루 전날까지도 외부에 공개된 사진은 고작 데오도란트가 프린트된 포스터 한 장뿐이었으니 기대를 넘어 약이 오를 지경이었다. 전시 오픈 당일 관람객들이 느낀 감정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 즐거움과 불편함의 혼재였다. 이는 마치 1990년대 파격으로 점철된 마틴 마르지엘라의 패션쇼를 보는 듯했다. 마르지엘라는 미로를 방불케 하는 비상구를 통해 본전시에 도달하게끔 동선을 설계했는데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디자인한 변형 가능한 모듈형 건물의 장점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기욤 우제Guillaume Houzé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 관장은 오프닝 당일 이를 두고 마르지엘라의 두뇌 속을 걷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황당한 즐거움’은 본전시까지 이어졌다. 익명, 취약성, 변형, 신체 부위, 머리카락 같은 다양한 주제 및 재료로 완성한 회화, 조각, 설치, 콜라주, 영화 등을 선보였고 전시장에 상주하는 퍼포머들이 움직이는 조각품이 되어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물건이나 일상에 우리가 미처 인식할 새도 없이 새로운 관심과 새로운 존엄성이 자리 잡는 것. 오랫동안 마르지엘라를 괴롭혀온 개념이었는데 이런 질문과 사념에서 파생된 결과물이 이번 전시를 설명한다. 전시 포스터에 사용한 데오도란트 이미지도 그중 하나다. 일상의 오브제 중 하나지만 인체를 인공 향으로 더 ‘바람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체의 산업화를 실현시키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20여 점의 작품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실제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는 5개의 두상을 나란히 배치한 작품 ‘바니타스Vanitas’다.
미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머리카락은 그의 창작 세계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죽음과 허영심의 헛됨을 환기시킨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한 장르에서 이름을 따온 ‘바니타스’는 삶의 여러 단계에 있는 여성을 묘사한 것이다. 5개의 두상을 덮고 있는 머리카락은 금빛, 페이크 브라운, 회색 등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버스 정류장의 차가운 금속에 가짜 모피를 씌워 따뜻하고 친근한 장소로 탈바꿈시킨 작품, 신체의 어느 부분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상상력을 동원하게 만드는 토르소 시리즈, 그리고 초현실적으로 확대된 거대한 빨간 손톱 조각과 유명인의 사진을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으로 묘사한 잡지 표지 등을 만날 수 있다. 때로는 웃기고 한편으로는 우울하기도 하면서, 가끔은 당혹스럽고 실망스럽지만 종국에는 ‘마르지엘라답다’라는 표현으로 결론이 난다. 이번 전시는 마냥 즐거운 이른바 ‘블록버스터 전시’와는 선을 긋는다. 패션 디자이너 시절, 급진적인 의상과 패션쇼가 그랬듯 이번 전시 역시 안전함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관람해야 한다. 그는 일반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모호함 속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고 ‘여전히’ 역설하고 있다.
lafayetteanticipations.com
마리아 레베카 라막슈바델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 전시 디렉터
“ 마르지엘라는 작품이 완벽히 걸렸을 때와 걸리기 전 사이의 순간을 즐기기를 바랐다.”
마르지엘라가 패션계가 아닌 미술계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패션계의 문제는 디자이너에게 창조하는 능력 외에 판매 능력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패션 디자이너였을 때 판매에 초점을 두고 작업하지 않았다. 자신의 철학과 신념대로 작업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협상이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 역시 일반적으로 매우 어렵고 다루기 꺼려하는 주제다. 일종의 터부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니 관객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미술계는 이런 불편한 작품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이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창작 활동에 대한 무한 자유)’를 제안해 마르지엘라는 무척 행복해했다. 패션계에서 남아 있던 갈증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2년이라는 꽤 긴 준비 기간을 거쳤다.
사실 코로나19로 두 번이나 오프닝 날짜가 연기되었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마무리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기성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전시를 위한 신작을 하나부터 열까지 창조해야 했던 데다 공간 디자인에도 참여했기에 작업량이 상당했다. 게다가 마르지엘라는 이 건물 지하 작업실에서 직접 수작업으로 작품을 만들었으며 리서치 과정과 새로운 테크닉을 적용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전시장 디자인이 특이하다. 작품명이 인쇄된 구겨진 흰색 종이가 벽에 붙은 것을 보고 전시 준비가 끝나지 않은 건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마르지엘라가 직접 다 준비한 것이다.
깨끗하고 예쁘게 보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일부러 종이를 구겨 벽에 붙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시의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스스로 준비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의도였다. 전시를 보면서 완성 여부에 의심이 들었다면 작가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마르지엘라는 작품이 완벽히 걸렸을 때와 걸리기 전 사이의 순간을 즐기기를 바랐다.
글 양윤정 통신원 담당 최명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