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센터, 베르크 로스터스 디자인 1.0에서 2.0까지 ①

1970~1980년대 말 산업디자인에서 영감 받아 완성된 베르크 로스터스 디자인과 브랜딩

서비스센터와 베르크로스터스의 첫 만남부터 리뉴얼을 거쳐 베르크 2.0으로 완성되기까지의 디자인&브랜딩 스토리.

서비스센터, 베르크 로스터스 디자인 1.0에서 2.0까지 ①

2018년 5월 부산 전포동 거리에 문을 연 커피 로스터리 ‘베르크 로스터스Werk Roasters’. 베르크 로스터스(이하 베르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가지 수식어가 있다. 부산. 힙. 독보적. 고퀄리티. 감각적인. 이 수식어들은 베르크를 휘감고 있는 정체성이자 이미지다. 베르크가 이렇게 고유한 우위를 선점한 단단한 커피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서비스센터 전수민 디렉터의 단단한 브랜딩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카페가 많은 전포동 골목에서 살아남기 위해 베르크가 갖춰야 할 요소로 높은 품질의 맛은 물론, 독보적인 디자인과 브랜딩의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처음부터 강조했다. 전포동 뿐 아니라 이제는 지역을 대표하는 중견 커피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현 시점에 최근 3개월 간 재정비 기간을 가지고 돌아왔다. 베르크 1.0에서 두터운 팬덤을 쌓아왔다면 이제는 ‘굳히기’를 할 때가 온 것. 브랜드에서 기업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발걸음 베르크 2.0에는 서비스센터 디자이너 크루 4인이 모두 함께 했다. 전수민, 고혁준, 배재희, 윤산희 디자이너와 함께 나눈 베르크 디자인 1.0에서 2.0까지의 이야기.

*베르크 로스터스를 처음 오픈한 2018년 5월이래 2021년 12월까지의 베르크를 베르크 1.0으로,

리뉴얼 기간 동안 브랜드 정비 후 재오픈한 2022년 3월부터 현재시점까지의 베르크를 베르크 2.0으로 칭한다.

독보적인 디자인과 브랜딩이 필요하다

(왼쪽부터) 윤산희, 전수민, 배재희, 고혁준 디렉터 |사진 제공 : 서비스센터 photo by SUMAN CHUN

베르크 로스터스(이하 베르크)와의 인연은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전수민 부산에서 버거샵 프로젝트를 막 마무리하던 참이었어요. 버거샵 대표님이 베르크 송찬희 대표님을 소개해주시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죠. 네 명의 바리스타가 모여 커피 로스터스를 준비하고 있는데 같이 기획해서 브랜드를 시작하고 싶다며 브랜딩을 의뢰 주셨어요. 사석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좋은 분들인데 저희의 도움이 필요 하다는 게 느껴져서 기꺼이 참여를 결정하게 됐죠. 당시 상황을 들어보니 베르크의 예산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터라 제가 받아야 할 작업비까지 보태서 모두 공간 디자이너님께 드릴 수 있도록 했고 저는 작업비를 일절 받지 않고 진행을 했어요.

베르크 프로젝트에서 서비스센터가 맡아 진행했던 작업의 범위는요?

전수민 베르크 1.0과 베르크 2.0의 프로젝트 전체 디렉팅 및 브랜딩 디자인을 진행했어요. 브랜드 전략 설계와 고객 경험 설계부터 시작해 유니폼, 패키지 디자인까지요. 베르크 1.0 때는 공간 음악 큐레이션까지 서비스센터가 맡아 진행했습니다.

사진 제공 : 서비스센터, 베르크 로스터스

부산에 위치한 베르크라는 신생 커피 브랜드 프로젝트를 맡는 것이 확정되고 구체적인 기획 및 브랜딩을 그려 나가기에 앞서 해당 프로젝트의 방향성 혹은 중요하게 가져가야 할 가치로 고려한 부분이 있다면요?

전수민 우선 커피 브랜드인 만큼, ‘커피’가 본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이건 당연한 얘기겠죠. 저 역시 브랜딩을 하는 사람으로서 베르크가 커피를 잘 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오롯이 기획과 브랜딩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모두가 알다시피 요즘 ‘잘하는’ 커피 브랜드는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오롯이 ‘커피’ 하나만으로 이 치열한 커피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건 쉽지 않죠. 그만큼 맛은 기본이고 눈에 띄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베르크의 경우 전위적 콘셉트를 차용하고 임팩트 있는 비주얼 아이덴티티로 소비자들에게 이미지를 각인 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제공 : 서비스센터, 베르크 로스터스

서비스센터는 공간 기획뿐 아니라 고객 경험까지도 설계하죠.

전수민 파격적인 콘셉트와 디자인으로 브랜드를 각인 시키기 이전에 커피 브랜드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커피’라는 핵심 가치에요. ‘커피에 대한 전문성’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당연한 것이었죠. 우리가 소위 말하는 ‘힙함’에 그런 것들이 가려지는 것은 당연히 원하지 않았고요. 파격적인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운 베르크에서는 필히 주문 받는 직원이 과할 정도로 친절하게 커피에 대한 설명을 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손님 한 명에게 쓰는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고요. 베르크는 커피 한 잔 더 파는 게 중요한 브랜드가 아니라 원두를 팔아야 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품질 좋은 커피와 긍정적 경험을 통해 원두 소비로 이어질 수 있게끔 하는 데에 더 큰 심혈을 기울였어요. 따라서 빠르고 효율적인 응대는 베르크에게 중요하지 않은 거죠.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주문을 받는 사람과 커피를 제조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만 베르크의 경우, 주문을 받은 직원이 커피도 직접 만들어 직접 전달할 수 있도록 했고요. ‘커피’와 ‘커피에 대한 전문성’을 이 동선에서 고객들이 경험하기를 바랐습니다.

서비스센터 크루들의 모습 |사진 제공 : 서비스센터

예전 ‘오!크리에이터’ 인터뷰에서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언급한 적 있어요. 베르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전수민 지난 5년간 베르크와 함께 하며 수많은 어플리케이션과 디자인을 제안하고 결과물로 선보여왔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은 저희의 디자인에 관해 단 한번도 터치하지 않았어요. 디자인에 빠진 정보가 있다거나, 수정되어야 하는 오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요. 반대로 저희 역시나 베르크가 갖고 있는 커피에 대한 전문성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고요. 이 부분에 대해 저희는 상호 간 두터운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2021년 베르크와의 미팅 자료를 살펴보다 고혁준 디자이너가 베르크 팀에게 건넨 한마디가 인상적이었어요. “브랜드가 가진 색깔이 지루해진다는 느낌이 들 때 브랜드는 빠른 속도로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 그냥 그저 그런 브랜드로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라는 말이었는데요. 브랜드에 정체기가 온 구간은 어떻게 캐치할 수 있을까요? 자연스레 느껴지는 구간이 있는 걸까요?

고혁준 업의 본질에 집중하지 못할 때 그런 인상들을 주기 쉬운 것 같아요. 고객과 브랜드의 접점이 다양해질수록 창업자들은 고객이 주는 다양한 신호들을 잘못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커피 브랜드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커피가 맛없는 브랜드는 좋은 브랜드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본질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경험, 그리고 부수적인 요소들과의 위계를 나누고 브랜드를 바라보지 않으면 자칫 ‘다른 요소들 덕분에 우리가 잘 되고 있는 건가?’ 하는 착각에 빠질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 상품, 이벤트, 콜라보레이션을 마구 쏟아내게 되죠. 뚜렷한 명분없이 불특정다수를 향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급급해서 접점 늘리기에만 집중하면 자연스레 브랜드의 주축과도 같은 모멘텀이 죽는 거죠.

그래서일까요? 베르크 1.0을 선보인지 3년만에 베르크 2.0 작업에 돌입했죠. 베르크 2.0을 준비하면서는 어떤 목표를 세워두고 리뉴얼 작업에 들어갔나요?

고혁준 ‘살아남은 브랜드’로서 본질에 집중하자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베르크WERK는 독일어로 ‘WORK’이고, 크라프트베르크에 영감을 받았고, 현학적인 인상을 준다는 등 기존에 베르크가 살아남기 위해 고객들에게 ‘남들과 다름’을 각인시키기 위해 설치한 장치들을 걷어내는 것이 첫번째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순수하게 커피 브랜드이자 로스터리로서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낼 수 있고, 얼마나 대량생산 해낼 수 있는지, 어디까지 확장하고 거대해지고 싶은지 ‘브랜드’에서 ‘기업’으로의 변화하는 과정과 야망을 브랜드 언어에 녹여내고 싶었고요. 마침 베르크 팀도 4명에서 10명 이상의 조직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흔쾌히 공감해주었다고 생각해요.

시각 언어를 변화시킨 베르크 2.0

베르크 2.0에서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패키지 디자인과 공간의 동선 변경입니다. 패키지 이야기를 먼저 나눠 볼까요?

고혁준 패키지 디자인에서의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변수’를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기존에 원두를 구매하면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 중 정말 필요한 요소만 남기기 위한 선별 과정이 있었어요. 특히나 베르크는 패키지에 색상과 폰트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브랜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더 작은 요소들까지도 정제해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베르크 1.0은 일종의 개념미술처럼 ‘새로운 브랜드로서의 선언’처럼 패키지를 사용했기에 ‘중앙 정렬과 대문자만 사용할 것’과 같은 룰이 존재했어요. 하지만 베르크 2.0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하게 ‘좌측 정렬과 첫 글자만 대문자로 사용할 것’으로 룰이 바뀝니다. 원두 이름, 원산지, 테이스트 노트 등과 같은 정보를 모듈처럼 구분했을 때 글자만으로도 충분히 영역이 구분되는 효과를 기대한 결정이었죠. 그리고 베르크 2.0에서는 무엇보다 규격화와 대량생산을 가능케하는 디자인 리뉴얼도 중요했는데요. 베르크는 구성원들이 원두 패키징을 직접 하기 때문에 기존에 부수적인 리플렛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패키징은 포장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다소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었죠. 이러한 부수적인 요소를 모두 걷어버리고 정말 필요한 결정체만 남기는 작업을 통해 포장 시간을 대폭 단축하고 종이 등의 자원도 절약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Heller boxes ⓒVignelli Center for Design Studies
미국국립공원관리공단을 위한 유니그리드 시스템(Unigrid System), 1977 ⓒVignelli Center for Design Studies

특히 베르크 2.0에서는 1970~1980년대 말 당시 산업디자인의 무드를 최대한 담아내고자 했다고요. 디자인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반영되었나요?

고혁준 제 개인적으로는 의도적으로라도 디자인에 헬베티카Helvetica 서체를 안 쓰려고 하는 편이지만 베르크의 경우 헬베티카를 써서 디자인해보자는 스스로의 제약을 걸어본 케이스에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셜한 서체를 활용해 베르크에 ‘대량생산’과 ‘효율화’라는 확장 정책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1970~1980년대 말 산업디자인을 떠올리면 저는 가장 먼저 놀Knoll, 헬러Heller 같은 브랜드와 이탈리아 디자이너 마시모 비넬리Masimo Vinelli가 떠올라요. 아마도 베르크의 상징이 붉은 색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이들을 좋은 레퍼런스로 삼은 이유는 불필요한 그래픽이나 장식적인 장치를 개발하기 보다, 범용적이고 오해의 여지없이 전달되는 텍스트 자체를 최고의 소통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접근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산업화와 직결되는 시설인 공장에서도 경고 등의 중요 메시지를 전달할 때에는 아이코노그래피보다 명확한 문자를 통해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고요. 따라서 베르크 1.0에서는 ‘묘사’, ‘암시’에 중점을 두었다면 베르크 2.0에서는 ‘전달’에 포커스를 두는 방향으로 시각 언어가 변화한 셈이죠.

그 예로 어떤 디자인이 있을까요?

고혁준 이를 반영한 예로 플레이버 노트 디자인이 그렇습니다. 기호식품으로 분류되는 커피 원두 정보를 조금이라도 오차라도 느껴질 수 있는 픽토그램, 아이코노그래피로 표기하는 대신 텍스트로 명료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어요. 베르크 1.0 때 픽토그램으로 플레이버 노트를 표기했을 때 실제로 저희가 전하고자 한 원두의 맛을 잘못 이해한 고객도 있었어요. 예컨대 플레이버 노트에 바나나, 사과, 초콜릿이 표기되더라도 그것은 원두의 맛과 풍미를 묘사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것이 실제로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플레이버 노트를 다시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플레이버에 대한 묘사’보다는 ‘노트’ 그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플레이버 노트의 역할은 원두의 맛을 더 디테일하게 감상하기 위한 가이드에 불과하니까요.

배재희 플레이버 노트에 기재된 ‘Black’과 ‘White’는 블랙커피와 화이트커피를 의미해요. 보통 아메리카노나 브루잉과 같이 깔끔하게 물로만 내린 원액 기반의 커피를 블랙커피라고 하잖아요. 반대로 우유를 넣은 커피를 화이트 커피라고 하고요. 각기 다른 제조법을 사용했을 때의 커피 맛을 직관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정보에요. 각각의 풍미가 어떨지 미리 캐치할 수 있도록 안내해드리고자 했어요.

또한 브라운Braun 제품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패키지 디자인과 사이니지 곳곳에 화살표를 활용한 모습도 흥미로웠어요.

배재희 브라운의 제품설명서나 브로셔를 보면 불필요한 픽토그램을 지양하고, 정보의 위계나 역할을 선을 통해 구분하는 특성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하고 명료함만을 남긴 디자인에 주목했죠. 시각적인 장치를 빌려오기보다는 그들이 디자인하는 원칙이나 접근 방식 자체에 영감을 받았던 것 같아요. 사이니지 디자인의 경우 윤산희 디자이너가 도맡아 진행했는데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일곱가지 원칙*’을 함께 참고해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예를 들어 공항의 경우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누구든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보편적 디자인을 사용해야 하잖아요. 잘못 해석되어도 안 되고요. 그러한 것처럼 이번 베르크 2.0에서는 쇼룸의 입구와 출구가 따로 있고 2층으로 이동해야 하는 동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고객의 시야에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화살표를 통해 별도 안내 없이도 동선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했어요.

*유니버설 디자인 7가지 원칙 : 미국의 건축가이자 교수 로널드 메이스Ronald Mace에 의해 탄생한 용어로, ‘모든 사람들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또는 ‘범용 디자인’이라 불린다. 다음 7가지 원칙을 정립했다. 공평한 사용(Equitable Use), 사용상의 융통성(Flexibility in Use), 간단하고 직관적인 사용(Simple & Intuitive),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정보(Perceptible information), 오류에 대한 포용성(Tolerance for Error), 적은 물리적 노력(Low physical effort), 접근과 사용을 위한 크기와 공간(Size and space for apporach &use).

고혁준 마리 노이라트Marie Neurath의 아이소타이프*도 활용해보려 했었어요. 패키지 디자인에서는 직관적인 전달을 위해 아이코노그래피 등의 수단을 배제했지만, 공간 내에서는 역설적으로 ‘무언가 숨겨져 있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했어요. 마리 노이라트의 아이소타이프는 정보를 단순히 숫자나 글자로만 전달할 경우 그것이 지니는 함의를 과소평가하거나, 감성적으로 와닿기 어렵다는 점에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 것이거든요. 저희는 아이소타이프의 이러한 면모를 공간에 자연스레 녹여냈죠.

*아이소타이프 : 일정한 사상을 나타내기 위해 문자와 숫자를 사용하는 대신에 상징적 도형이나 정해진 기호를 조합시켜 보다 시각적·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방식

베르크2.0 버전으로 리뉴얼 된 오리지널베르크 패키지 | 사진 제공 : 서비스센터, 베르크 로스터스

제품을 하나 하나 살펴보다 보니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어요. 콜드브루는 eiskaffee(독일어)로 표기를 하였는데 드립백 5개입에는 dripbag(영어), 드립백 10개입에는 instantkaffee(영어+독어), 캡슐커피에는 capsulekaffee(영어+독어)로 표기가 되어있더군요. 제품마다 독어와 영어를 혼재해 기재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전수민​ 소비자들이 상품명을 읽을 때 직관적으로 어떤 상품인지 이해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어요. 예컨대 드립백은 독어로 번역하면 tropfbeutel, 인스턴트는 sofortig라서 상품을 이해하는 데 어렵지만, 커피는 kaffee로 표기되기 때문에 의미가 유추되죠. 독어로 읽어도 우리가 의미를 추측할 수 있는 단어들은 독어로 표기했습니다.

Measurement Room: No Vantage Point, 2019–2020 ⓒMel Bochner

오리지널베르크 패키지 박스 상단에 삽입된 |ㅡ5eaㅡ|ㅡ5eaㅡ|ㅡ5eaㅡ|디자인은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나요?

전수민 몇년 전에 뉴욕 근교 도시 비컨Beacon에 위치한 미술관 ‘디아 비컨Dia Beacon*’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멜 보크너Mel Bochner의 <Measurement Room> 작품을 만났어요. 각 측량선의 길이와 위치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고, 미술에서 수학적 개념을 적용한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인데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에요. 저희는 각 측량선으로 길이를 표기하는 대신, 정확하게 안에 몇개의 제품이 들었는지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개수를 표기했어요.

*디아 비컨 : 뉴욕 맨해튼에서 허드슨 강변을 따라 기차로 1시간 반 가량 이동하면 도달하는 미술관. 2003년에 개관한 미술관으로 1920년대 인쇄 공장을 재생하며 탄생한 공간이다. 디아재단이 1960년대부터 모아온 현대미술 소장 작품을 토대로 특별기획전과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다양한 디자인 제안을 거쳐 최종 선택된 프리미엄 라인 패키지 디자인.
‘블랙레터’ 서체는 탈락되었지만 해당 서체에서 영감을 받아 프리미엄 라인을 ‘블랙레터’라인으로 네이밍했다.
ⓒ서비스센터
베르크 로스터스 공식 홈페이지의 블랙레터 라인 설명 문구

베르크 2.0을 위한 디자인제안서 중 블랙레터 패키지 디자인이 눈에 띄었어요. 블랙레터 디자인에는 어떤 스토리가 담겨있나요?

고혁준 베르크가 취급하는 싱글 오리진 원두는 종류가 아주 다양한데 그중에는 희소성이 있는 단가가 높은 원두도 있었죠. 그런 것들은 자연스레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데 이 아이들을 계속해서 ‘싱글오리진’이라는 그룹에 묶어 두는 것이 아쉬웠어요. 그들만의 개성이 있는데 말이죠. 또는 같은 싱글오리진 원두인데 왜 이 아이만 비싼지 자칫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요. 그래서 개성있고 희소성이 있는 스페셜한 원두를 ‘블랙레터’라인으로 정리하고, 디자인은 블랙레터라는 독일의 궁서체 폰트를 사용해보려 했죠. 블랙레터는 중세시대를 상징하는 서체이면서 곧 독일을 상징하는 서체라서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폰트에요. 일반적으로 누가 진지해지면 ‘왜 갑자기 궁서체냐’라고 하기도 하잖아요. 베르크가 조금 더 진지하게 만들어 소개하는 원두라는 의미도 담고자 했던 거죠. 디자인 과정에서 사업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하며 상품 군을 분리하고 강조하는 것 또한 그 자체로 상품에 대한 ‘브랜딩’이기 때문에 흥미로웠어요. 블랙레터 서체를 활용한 그래픽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그 전략 자체는 유효했죠.

▼ 기사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부산 베르크 로스터스, 디자인 1.0에서 2.0까지 by 서비스센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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