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후의 삶을 생각한 파리의 도시 디자인
‘지속가능’한 올림픽은 가능할까?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가능성은 올림픽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핵심적인 키워드가 됐다. 올림픽 이후의 도시를 생각한 파리 올림픽의 디자인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축제가 끝나고, 전세계에서 모여든 선수들과 관중이 다 떠난 후에도 축제의 현장이었던 건물들은 그 자리에 남는다. 아마도 다시는 같은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 이 시설들에 적절한 쓰임새를 찾아주는 것은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제적인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한 도시들이 필수적으로 안아야 할 숙제다. 많은 도시에서 경기장들이 방치된 채 폐허가 되거나 아예 철거되는 운명을 맞고, 환경 파괴 문제가 지적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가능성은 올림픽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핵심적인 키워드가 됐다.
2024 파리 올림픽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림픽을 파리의 일부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건축 과정에서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것은 물론, 새로운 시설들을 장기적인 환경 플랜에 따라 배치하여, 대회가 끝난 후에도 올림픽 관련 시설들이 파리 사람들의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주로 미술관으로 사용되어 온 그랑 팔레(Grand Palais)는 올림픽 기간 동안 경기장으로 사용된 후, 이를 계기로 이후로는 더 다양하고 새로운 공공 용도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수중 경기들이 열릴 아쿠아틱스 센터는 파리에서도 시민들이 사용할 스포츠 인프라가 부족한 생드니 지역에 건설해, 이후에는 지역사회에서 수영 수업 및 레저 시설로 활용될 수 있게 했다. 이렇듯 올림픽 이후의 도시를 생각한 파리 올림픽의 디자인 사례 몇 가지를 모아봤다.
그 어떤 구조로도 바꿀 수 있는 선수촌 아파트
참가 선수들과 관계자 등이 머물 숙소는 센생드니, 생투앙 쉬르센, 릴생드니 등 파리 시내 몇 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그중 센생드니 지역에 새로 지은 아파트 건물 3개동은 올림픽이 끝난 후 공공주택과 민간주택 및 오피스 시설로 전환할 방침이다. 파리 시는 이 신축 건물들을 중심으로 인구가 유입되고 상권 역시 발전하여 파리 시내에서는 비교적 높은 이 지역의 실업률 개선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프랑스의 건축 스튜디오 브레낙 앤 곤잘레스 에 어소시에(Brenac & Gonzalez et Associés)가 아파트 내부 설계를, 도미니크 페로 아키텍처(Dominique Perrault Architecture)가 조경 등을 비롯한 외부 플랜을 주도했다. 각각 ‘플롯 1(Plot 1), ‘플롯 5(Plot 5)’, ‘플롯 8(Plot 8)’으로 불리는 이 아파트 건물들은 모든 방이 베란다를 갖추고 있어 외부와 연결된다. 세 건물 중 가장 큰 ‘플롯 1’은 센 강이 내려다보이는 훌륭한 전망을 갖고 있다. 진하고 감각적인 색감의 테라코타 외벽이 인상적인 ‘플롯 5’와 이에 대비되는 눈부신 화이트톤의 ‘플롯 8’은 가운데로 공공 공원과 정원이 내려다보인다. 용도 변경 과정에서 다양한 수요에 반응할 수 있도록, 아파트는 구조 변경이 쉬운 격자형 구조로 지어졌다. 활용성 높은 흰 벽과 어두운 카페트로 마감했고, 올림픽 기간 동안 사용할 2인용 침실들은 간이 벽을 세워 구분했다. 이외에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내부 온도를 쉽게 유지할 수 있도록 단열을 강화하고, 공기 순환이 용이한 구조의 복도를 갖춘 것도 특징이다. 패럴림픽까지 모두 마무리되고나면 준비 과정을 거쳐 2025년부터 실제 입주를 시작하는 것이 목표다.
펜싱과 태권도 경기장이 될 그랑 팔레
파리의 상징적인 건물 중 한 곳인 그랑 팔레는 2024 파리 올림픽의 펜싱과 태권도 경기장으로 변신한다. 1900년 만국박람회를 열기 위해 지은 이곳은 최근에는 주로 아트 갤러리로 사용되어왔으며, 부분적으로 비공개 상태로 운영되기도 했다. 파리 시는 올림픽을 앞두고 이곳을 개조하면서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미학적으로는 20세기 초의 외관을 복원하고, 기능적으로는 올림픽이 끝난 후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완전히 공공 용도의 건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역사적인 건물인 만큼 시민들의 접근성을 더욱 높여 도시의 상징으로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오) 이미지|Le Grand Palais 인스타그램
서로 분리되어 있던 그랑 팔레 내부의 세 공간은 본 경기장이 될 주요 공간을 중심으로 다시 연결되었다. 화려한 발코니는 복원되어 관중석의 일부가 됐다. 정원에는 새로운 식물과 나무를 6만 그루 가량 심고, 곡선형 산책로를 조성해 인근의 샹젤리제 등 도시 경관과 어울리는 공간이 되고자 했다. 그랑 팔레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역할을 맡은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 샤티용 아키텍츠(Chatillon Architectes)는 만국박람회 개최 당시의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 그랑 팔레와 관련된 수천 개의 문서와 기록들을 조사했다고 말한다. 최초의 설계 의도를 파악하고 원래의 구조를 최대한 복원하기 위해서였다. 스튜디오는 “건물과 도시를 다시 연결하여, 실용적이면서 다시 대중이 진정으로 즐기고 탐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소개한다.
350개의 지속가능한 가로등
파리 시는 수중 경기가 열릴 아쿠아 센터와 일부 선수촌 시설들이 들어설 생드니 지역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이곳에 350개의 새 가로등을 설치했다. 미니멀한 직선 형태가 눈에 띄는 이 가로등은 이런 목표에 따라 재료는 물론, 앞으로의 운영 방식까지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디자인됐다.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 올림픽에 비해 탄소배출량을 47% 줄이겠다는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목표에 부합한다.
제작 과정에서는 지역 내에서 철거된 가로등 기둥과 건축 현장 폐기 자재들을 재사용했다. 조명 역시 에너지 효율적인 LED를 채택했다. 전통적인 형태의 가로등은 전구의 옆이나 위로 빛을 내뿜어 주변 건물에는 빛 공해를 만들고, 정작 도로는 충분히 밝히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납작하고 평평한 형태의 조명은 기능성을 극대화해 이런 부분을 보완한다. 유지 및 관리가 쉬운 것도 장점이다. 가로등을 디자인한 프랑스의 디자인 스튜디오(Studio 5.5)는 이 가로등을 ‘미래의 미학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대표하는 디자인’이라고 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