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옷 사러 오픈런? 세계를 홀린 K패션 열풍
이런 날도 온다. 지금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힙 스타일의 바로미터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날도 온다. 지금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힙 스타일의 바로미터로 떠오르고 있다. 감개무량하다. 이국 땅에서 불모지를 일구듯 외롭게 활약했던 국내 1세대 디자이너 우영미, 송지오, 준지의 이름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 진출 활로를 닦아온 그들의 고된 여정이 마침내 보상받는 것만 같아 덩달아 들뜬다. 명품관에 밀려 줄곧 찬밥 신세였던 백화점 영패션 코너와 내셔널 브랜드들, ‘고급 보세’로 취급받기 일쑤였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또 어떤가. 해외 브랜드들의 독식과 잇따른 경기 침체 등 다양한 이유로 암흑기를 보내온 K패션에 드디어 해뜰날이 찾아왔다.
K 패션은 지금!
분명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시작은 K팝과 K스타 등 한류 덕분이었지만 반짝 특수에 그치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제니가 입은 스커트, 한소희의 카디건, BTS가 좋아하는 브랜드 등 내가 좋아하는 한국 스타의 K패션은 관심을 넘어 구매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합리적인 가격과 세련된 디자인, 희소성 그리고 메이드 인 코리아의 믿을 수 있는 품질이 그 이유로 꼽힌다. 때마침 너도나도 똑 같은 명품 브랜드에 질려 있던 터라 시기적인 운도 따랐다. 국내 멋쟁이 MZ들도 가성비에 접근성까지 좋은 국내 브랜드로 눈을 돌리면서 이런 상승세는 가파르게 치솟았고, 안팎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K브랜드들은 기다렸다는 듯 기량을 펼쳐냈다.
그 첫 신화는 브랜드 마뗑킴이 썼다. 2020년 연매출 50억원에서 2022년 연매출 500억원으로, 2년만에 매출이 무려 열 배로 뛰었다. 작은 회사에서 출발한 토종 한국 브랜드가 보여준 쾌거는 다른 브랜드에게는 귀감과 희망을, 침체된 내수시장에는 활기를 선물했다. 더불어 마르디 메크르디, 민주킴, 이미스 등 선두 브랜드들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김해김, 아더에러, 앤더슨벨 등 해외에서 더 인기인 브랜드들도 금의환향하면서 K패션 곳곳에 청신호가 켜졌다.
사진 출처 @mardi_mercredi_official, @matinkim_magazine
사진 출처@maison_kimhekim, @adsb_anderssonbell
이러한 K패션의 기세를 껑충 끌어올린 건 대형 유통사들의 전략적인 지지였다.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의류 회사, 백화점, 패션 플랫폼 등 유명 기업들은 본격적인 중소형 브랜드 유치와 투자에 나섰고, 이는 K패션의 체계적인 성장과 글로벌 팬덤화을 부추기는 분수령이 되었다. 비용과 리스크에 약한 중소형 브랜드들을 안정적인 유통망을, 동시에 패션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게 되면서 시너지효과가 폭발했다. 그 결과 최근 2년사이 K패션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신진 브랜드를 과감히 품은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2021년 개점한 후로 200개가 넘는 영브랜드들을 소개한 현대백화점 더현대서울은 국내외 MZ들의 새로운 패션 성지로 급부상하며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도 재미난 K패션 팝업스토어로 MZ들을 불러모으고 있고,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를 다양하게 쇼핑할 수 있는 패션 플랫폼 W컨셉트, 하고, 29CM, 에이블리 등 온라인 숍들도 전에 없던 약진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러한 건설적인 공생은 K패션의 저변도 넓히고 있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 등지로 퍼지고 있는 인기는 해외 진입장벽을 확 낮추는 계기가 되었고, 전문 유통사들이 든든한 수출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진출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은 요즘 K패션의 새로운 장으로 주목받는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일본 MZ들의 마음을 제대로 홀리면서 젝시믹스, 안다르 등 애슬레저 브랜드부터 바잘, 이터널유 등 소규모 액세서리 브랜드까지 다양하게 진출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팝업스토어로 첫 선을 보인 후 단독 매장 오픈에 이르기까지 규모도 점점 커지는 추세다. 이런 상승세는 일본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태국, 대만, 인도네시아, 호주 등 이웃나라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어 K패션의 달라진 위상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비로소 K패션의 2막이 올랐다. 1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국내 1세대 디자이너들은 고맙게도 여전히 건재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K패션의 산역사이자 하이엔드 브랜드로서 당당히 빛나고 있는 그들이 있어 2막은 더욱 희망차다. 다음은 과연 누가 이끌 것인가. ‘한류’라는 완장을 떼고도 굳건할 차세대 주역들은 또 어떤 신나는 이야기들을 써내려 갈까. 지금 기억해야 할 K브랜드 열개를 선별했다. 저마다 매력도 각양각색이다. 앞으로 K패션의 자부심이 될 이름들이다.
K패션의 새 이름 10
글로니 Glowny
최근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브랜드다. 2020년 론칭해 단 4년만에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며 화제의 이름이 되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발굴하고, ‘제니 스커트’ ‘뉴진스 스커트’ 등 K스타들의 선택으로 그야말로 ‘떡상’했다. 괜히 인기일 리 없다. 깅엄 체크, 꽃무늬, 아일렛, 티어드 디자인 등 글로니는 요즘 MZ들이 딱 좋아할만한 걸코어 무드로 시선을 홀린다.
김해김 Kimhekim
파리에서부터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온 디자이너 김인태가 2014년 론칭한 브랜드다. 2019년에는 파리의상조합에 국내 최연소 정회원으로 이름을 올리며 파리 패션위크에 데뷔했다. 인상적인 브랜드명부터 리본, 진주, 오간자 등 아이덴티티가 뚜렷한 디자인까지 한번 들여다보면 자꾸 생각나는 마성의 브랜드다. 그의 시적인 컬렉션은 시즌을 더할수록 화제인데, 최근에는 2024 FW 쇼에서 선보인 아식스와의 협업 스니커즈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또한 가수 카디비가 뮤직비디오에서 입은 이른바 ‘머리카락 드레스’가 김해김 작품인 게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마뗑킴 Maintain Kim
K패션 2막의 주역이다. 2015년 블로그 마켓을 시작으로 5년만에 연매출 50억원에 달하는 인기 브랜드가 된 마뗑킴은 팬덤이 대단했다. 2021년 패션 전문 투자사인 하고하우스의 투자를 받으면서 대형 브랜드로 급성장했고, 2022년 연매출 500억원의 신화를 쓰며 K패션 선두자리를 꿰찼다. 작년 10월 마뗑킴의 본주인인 김다인 대표가 사임하면서 인기가 주춤하나 했지만, 하고하우스는 영민한 전략으로 빈자리를 메웠다. 톱 모델 공효진을 내세운 하이엔드 라인, 킴마틴을 새롭게 선보이며 공격적인 마케팅과 해외 진출에 속도를 올렸다. 그 결과 연매출 1000억원 달성을 목전에 둔 독보적인 K브랜드가 되었다.
마르디 메크르디 Mardi Mercredi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마르디 메크르디를 떠올리면 유명 시구절이 생각난다. 브랜드 시그니처 패턴인 커다랗고 예쁜 꽃이 입는 순간 진짜 꽃이 되어줄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그런 행복한 기운 덕분인지 마르디 메크르디는 2018년 론칭한 후 4년만에 K패션 톱 브랜드 반열에 올라섰다. 최근 김고은, 아이브 안유진을 모델로 내세우며 더욱 유명해졌고,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아동복 라인 ‘레쁘띠’를, 올해는 애슬레저 라인 ‘악티프’를 론칭하는 등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킴 Minju Kim
2014년 LVMH 프라이즈 준우승, 2015년 H&M 디자인 어워드 수상, 2020년 넷플릭스 넥스트 인 패션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상복도 실력도 좋은 디자이너 민주킴이 2015년 론칭한 브랜드다. 민주킴은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디자인에 한국적인 감성을 세련되게 풀어내는 남다른 장기가 있는데, 그래서인지 ‘K패션 흥행의 주역’이라는 수식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린다. 최근에는 Z세대를 겨냥한 세컨 브랜드, 파쿠아를 선보이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렉토 Recto
한때 SNS를 뜨겁게 달군 해시태그 ‘#렉쏘공(렉토가 쏘아 올린 작은공)’의 주인공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렉토 2022 FW 룩북에 스타일링한 뉴발란스 574 레거시 스니커즈가 품절 대란을 일으켰고 렉토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구조적인 실루엣, 유연한 스타일링, 유려한 곡선의 시그니처 네크라인 등 요즘식 젠더리스 트렌드를 녹이는 렉토만의 근사함이 뉴발란스의 클래식한 멋을 제대로 빛낸 덕분이었다. 렉토는 디자이너 정지연이 2015년 론칭한 브랜드로, 일년 뒤 제12회 삼성패션디자인펀드 수상자로 선정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아더에러 Adererror
아더에러는 비상함이 넘친다. 2014년 국내를 기반으로 론칭한 후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고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에서는 뒤늦게 화제를 모았다. 초기에는 K브랜드라는 사실조차 몰랐을 만큼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여전히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몇몇 크루들이 함께 선보이는 아더에러는 패션을 기반으로 한 문화 커뮤니케이션 브랜드를 지향한다. 파격적인 광고 비주얼, 강렬한 시그니처 컬러 Z블루, 유쾌하고 독창적인 디자인 등이 아더에러의 색깔을 분명히 한다. 더불어 협업의 귀재다. 메종키츠네, 컨버스, 자라, 뱅앤올룹슨까지 세계적인 브랜드들과 선보인 협업 컬렉션은 아더에러의 이름을 뜨겁게 빛냈다.
앤더슨벨 Andersson Bell
2014년 론칭한 후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대표적인 브랜드다. 맨투맨, 후드티셔츠 등 유니섹스 무드의 아이템들이 초기 앤더슨벨의 기초를 다졌다면 지금은 대비를 살린 예술적 감성이 앤더슨벨의 멋을 사수한다. 예를 들면 최근 헌터와 협업해 선보인 레인부츠, 가방 라인을 새롭게 론칭하며 출시한 화병 모티프의 바소백Baso Bag, 섬세한 패치워크 기법의 옷들이 그렇다. 앤더슨벨은 작년 밀란 맨즈 패션위크 데뷔에 성공했고, 유럽과 미주 시장 매출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등 해외에서 더욱 주목받는 K브랜드로 성장 중이다.
오픈 와이와이 Open YY
동대문 도매 시장에서 시작해 켄달 제너가 즐겨입는 K브랜드로 떠오르기까지 오픈 와이와이(지난해 더오픈 프로덕트에서 오픈 와이와이로 이름을 변경했다)가 가진 재량은 남달랐다. 흔들림 없이 제 길을 가는 두 자매의 특별한 협업이 그 멋의 중추다. 모두가 미니멀리즘을 외칠 때 맥시멀리즘 무드의 스트리트 패션을 꺼내 놓을 줄 아는 용기는 오히려 브랜드의 색을 뚜렷하게 했고, 오픈 와이와이만의 그래픽 패턴과 키치한 감성, 유연한 실루엣의 조화는 국내외 MZ들의 시선을 제대로 붙들었다. 특히 최근 선보인 헬로 키티 컬렉션은 또 한번 오픈 와이와이만의 감성을 입증하며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미스 Emis
그야말로 볼캡 신화다. 아시안 핏에 맞춰 만든 볼캡 시리즈가 한 컬러당 3만개이상 팔렸다. 영문 로고가 쓰인 모자 하나로 뜬 이미스는 에코백까지 연이어 히트를 치며 액세서리 브랜드로서는 보기 드문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2017년 론칭 후 계속된 폭발적인 인기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확대되었고, 한남과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를 비롯해 백화점 입점 매장, 팝업스토어까지 늘 인산인해를 이룰 만큼 독보적인 팬덤을 자랑한다. 올해는 일본에 이어 태국과 중국, 대만 진출도 앞두고 있다. 지난해 펫 라인을 추가해 견주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는 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이미스의 새로운 행보에도 기대가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