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의 본능을 자극한 피사체, 해외 사진집 신간 4
당신의 피사체는 무엇인가요?
사진가는 서릿발 같은 눈빛으로 피사체를 찾는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건드리고 지나간 피사체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순간, 사진가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평생 이들을 쫓게 될 것이라는걸. 예술가의 맹목적인 집착은 한편의 아름다운 서사를 완성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지금 영감이 필요한 당신을 위해, 관찰자와 수집가의 시선으로 한 가지 피사체의 다양한 면면을 담아낸 해외 사진집 신간 네 권을 소개한다.
《KIOSK》
저자 : David Navarro & Martyna Sobecka
출판사 : Zupagrafika
류블랴나에서 바르샤바, 베오그라드에서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150개가 넘는 키오스크가 등장하는 이 사진집은 20세기 말 중부 및 동유럽의 사회 정치적 변화를 목격했던 모더니스트 부스에 대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록물을 담았다. 두 작가의 지난 10년간 여정이 이 사진집에 담겨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대량 생산된 모듈형 키오스크는 슬로베니아 건축가 사샤 J. 마흐티그(Saša J. Mächtig)가 설계한 대표적인 K67과 폴란드 카미, 소련의 ‘바티스카페’ 등이 있다. 데이비드 나바로와 마르티나 소베카는 구 동구권 및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를 돌아다니며 번화한 도시 광장부터 사회주의 시대의 주택 단지까지 다양한 곳에서 낡은 키오스크를 포착했다. 두 명의 사진가가 포착한 키오스크는 핫도그와 폴란드식 자피에칸카, 농장 달걀과 로티세리 치킨 판매점, 장례식 꽃집, 신문 가판대, 주차장 부스, 환전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모더니즘 색상을 입은 키오스크는 한때 생생하고 톡톡 튀는 선명한 색상을 자랑했지만, 오늘날 극히 일부만이 여전히 영업 중이며 대부분은 버려지거나 도시 풍경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중이다. 이 독특한 컬렉션의 사진은 출판사 주파그라피카의 창립자인 데이비드 나바로와 마르티나 소베카가 지난 10년간 촬영한 아카이브로, 도시 탐험가인 마시에즈 차르네츠키의 서문과 건축사학자 안나 시머의 에세이가 함께 수록되어 이동식 구조물의 역사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바닷바람에 색이 바랜 철제 패널, 얼마나 오랜 시간 한곳에 자리했는지 사람들이 오고 간 낙서 흔적, 쓰임을 잃고 방치돼 검은 먼지가 수북이 쌓인 장면들…. 도시 문화 번성의 도구이자 사람들의 편리함을 도맡았던 오래되고 낡은 키오스크는 두 작가에게 애처롭고 씁쓸한 피사체였다.
《Windows》
저자 : Patrick Pound
출판사 : Perimeter Editions
창문은 공간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작은 통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삶에서는 연결과 소통, 개방성과 자유, 경계와 보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창문이라는 장치를 통해 캐릭터의 내면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연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낭만적인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며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창문의 의미가 쓰이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호주 예술가 패트릭 파운드는 지난 30년 동안 버려진 사진 도서관과 신문 및 영화 자료실에서 주인을 잃은 아마추어 스냅사진, 인화된 사진 등 수많은 이미지를 수집했다. 그가 7만 장에 달하는 자신의 사진 컬렉션 안에서 ‘윈도우’라는 카테고리를 뽑아 창문이 등장하는 사진들을 퍼즐 조각처럼 맞춰가며 한 권의 사진집 《Windows》를 출간했다.
파운드는 창문과 그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주로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시선의 이미지만을 모았다는 점과 행복한 가족의 모습,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 등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모두 한 권의 책 안에 담겼다는 점이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며 우리는 타인의 사진과 타인의 창문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Mapplethorpe Flora : The Complete Flowers》
저자 : Robert Mapplethorpe
출판사 : Phaidon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작품 세계로 이름을 떨친 20세기 포토그래퍼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1973년부터 1989년까지 그는 폴라로이드부터 흑백사진을 거쳐 컬러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진 프로세스를 사용해 꽃에 대한 특별한 헌신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사진에 국한된 고유의 점주를 벗어나 아방가르드 미술가들과 동등하게 경쟁한 최초의 사진작가 중 한 명이자 성별, 욕망의 경계를 넘나들며 디자이너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에로틱한 이미지와 포르노, 고전적인 아름다움 사이를 횡단하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동을 불러일으킨 남성과 여성의 누드 사진들. 그 와중에도 로버트는 특유의 섬세한 꽃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장미, 난초, 금어초, 데이지, 튤립 등 흔한 꽃과 희귀한 꽃을 세심하게 구도로 포착하여 클래식하고 친숙한 꽃에 대한 인식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마치 사람의 신체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꽃대의 질서정연한 선, 표면의 질감을 극대화해 보여주고 있다. 이 사진들을 한데 모아 영국 출판사 파이돈(Phaidon)에서 2016년 《Mapplethorpe Flora : The Complete Flowers》을 한차례 출간하였고, 올해 5월 개정판으로 새롭게 재출간 소식을 전했다.
《The Italian Interiors of Elsa Peretti》
저자 : Estelle Hanania
출판사 : Apartamento
엘사 페레티(Elsa Peretti)는 티파니 앤 코(Tiffany & Co.)의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약하기 전 이탈리아에서 뉴욕과 바르셀로나에서 패션모델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티파니 앤 코 전 회장 겸 CEO였던 마이클 코왈스키(Michael Kowalski)가 “그녀가 티파니의 일원이 되던 날을 기점으로, 티파니는 디자인 혁신 역사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평할 정도로 그녀의 디자인은 감각적이고 센세이션 했으며 그 덕분에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동요하게 했다.
그런 그녀는 화려한 도시 뉴욕과 잘 어울리는 듯했지만, 알고 보면 그녀의 정체성이 향하는 곳은 바로 이탈리아였다. 그녀는 이탈리아 피렌체 태생으로 철저히 이탈리아인이었던 것. 스페인 출판사 아파르타멘토는 철저히 엘사 페레티의 이탈리아 집과 인테리어에만 전념한 최초의 책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공간을 엿볼 수 있는 사진집을 기획했다.
사진가 에스텔라 한나니아(Estelle Hanania)는 엘사의 이탈리아식 인테리어로 완성된 로마 아파트와 토스카나 에르콜레 타워 두 집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특히 로마 아파트 사진은 2021년 그녀가 생을 마감한 후 매각되기 바로 전날 촬영되어 영원히 다신 만날 수 없는 엘사의 흔적을 쫓은 사진이자 그녀가 예술적 감성을 자신의 공간에 어떻게 녹여냈는지 담아낸 마지막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