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향기를 품은 ‘비누’ 천사들을 만나다

신미경 작가의 개인전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

30여 년간 비누를 조각의 재료로 사용해 온 신경미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한 새로운 시리즈, 100여 점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

빛과 향기를 품은 ‘비누’ 천사들을 만나다

인간은 늘 신에 대해 궁금해하며 그들과 대화하기를 원했다. 신의 메신저이자 신과 인간의 중재자인 천사가 여러 문화에 존재하는 까닭이다. 천사는 명화에서부터 영화와 드라마까지, 오랜 시간 예술적·문화적 상상을 통해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서 우리의 인식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존재 또한 천사일 것이다. 새로운 천사를 발견하게 되는 전시가, 지금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 전시 전경,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4, 사진: 소농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비누로 제시한 공감각적 천사

신미경 작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30여 년간 비누를 조각의 재료로 사용해 왔다. 일상품인 비누의 물질적 속성을 작품의 주제와 연결함으로써 사라지는 것과 존재하는 것의 접점의 이야기를 미술로 풀어내는 작업을 한다. 작가는 우연히 ‘엔젤’이라는 이름의 향을 접하면서 ‘천사’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존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 사이에 있는 대상’ 중 하나로 천사를 주목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체가 없는 천사. 작가는 천사가 지닌 의미를 눈여겨봤다. 천상과 지상, 삶과 죽음, 육체와 영혼 사이를 오가는 환상의 영역에 있는 존재로서 천사를, 비누의 물질적 속성과 연결해 은유적으로 제시하고자 한 것. 작가가 재료로 사용해 온 비누의 물질적 속성은 이러하다. 투명함과 불투명함을 오간다. 닳아 없어진다. 향기를 지니고 있다. 이런 비누의 특성이 중간적 존재인 천사를 빛, 향기 등 공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엔젤 시리즈 DR’, 2024, 비누, 안료, 향유, 66×35×25cm, 사진: 소농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새로운 시리즈와 100여 점의 신작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에서는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한 새로운 시리즈, 100여 점의 신작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엔젤 시리즈’는 우리가 주변에서 보았던 천사상과 닮아 있다. 작가는 전형적인 천사의 모습을 한 조각들을 수집해 이 시리즈의 원전으로 삼았다. 고전적 형태의 조각상부터 대량 생산된 기념품까지, 여러 경로로 수집한 과거의 천사상을 가져와 비누라는 재료로 현재에 새롭게 시각화해 보여준다. 다양한 색깔과 재질의 비누로 탄생한 천사들. ‘엔젤 시리즈’는 날개 달린 아기 천사와 고대 신화, 기독교 미술의 여러 천사 도상을 차용한 듯한 부조 조각들로 구성되었다.

‘엔젤 시리즈 B’, 2024, 비누, 향유, 116×70×50cm, 사진: 소농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엔젤 시리즈 R’, 2006, 비누, 향유, 30×39.5×6cm, 사진: 소농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엔젤 시리즈 J’, 2024, 비누, 향유, 47×7×5.5cm, 사진: 소농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라지 페인팅 시리즈’, 2024, 비누, 안료, 향유, 프레임, 205×160×5cm, 사진: 소농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끓여서 녹인 비누를 틀에 부어 섞어 나가며 굳힌 ‘페인팅 시리즈’는 우연히 형성되는 이미지와 향기를 통해 우리 인식 속에 존재하지만 실은 부재하는 천사의 신비로움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평면 회화 작품처럼 느껴지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굵직한 두께감과 향기가 느껴진다. ‘세 천사: 향유 드로잉 시리즈’는 세 종류의 엔젤 향유로 천사를 표현한 드로잉 작업이다. 종이 위에 향유를 붓고, 향유가 퍼지는 모양을 따라 수채 연필로 색칠하며 추상적인 형상의 천사를 표현했다. 새로운 시리즈의 제작 과정을 담아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어린이갤러리 2에서 볼 수 있으니 놓치지 말 것.

참여 전시 공간이 된 화장실

‘엔젤 시리즈 C’, 2024, 비누, 안료, 향유, 58×15×15cm, 사진: 소농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익숙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비누 천사들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웠을 터, 어린이갤러리 1과 어린이갤러리 2 사이에 위치한 남녀 화장실에서 눈으로만 경험했던 작품을 자유롭게 만질 수 있다. 작가가 2004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인 ‘화장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화장실 프로젝트는 작품을 화장실에 두어 비누로 사용하게 한 후 닳은 조각을 다시 작품으로 전시하는 프로젝트이다. 작품과 일용품 사이를 오가는 조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직접 참여해보자.

아이들과 함께하면 더 좋다

‘세 천사 향유 드로잉 시리즈’, 2024, 종이에 향유, 수채 색연필, 19x19cm, 사진: 소농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어린이갤러리에서 진행되는 만큼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다. ‘세 천사: 향유 드로잉 시리즈’가 전시되는 어린이갤러리 2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향기로 그린 천사’ 드로잉 활동 공간이 마련되었다. 엔젤 향유와 색연필을 사용해 나만의 천사를 자유롭게 그리며, 보이지 않는 존재를 상상하고 표현한다. 신미경 작가와 함께 비누 위에 상감 방식으로 천사의 날갯짓을 표현해 보는 어린이 대상 워크숍도 전시 기간 중 진행된다.

‘엔젤 시리즈 RF’, 2024, 비누, 안료, 향유, 프레임, 30×30×8cm, 사진: 소농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페인팅 시리즈’, 2024, 비누, 안료, 향유, 프레임, 70×70×5cm, 사진: 소농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빛과 향기로 구현된 천사들은 세대를 초월해 흥미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는 2025년 5월 5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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