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스튜디오 이달우 대표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와 아트 디렉터를 거쳐 올해의 멘토로 돌아온 이달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동심을 닮은 친절하고 따뜻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마음 스튜디오 이달우 대표는 보기와 달리 산전수전 다 겪은 내공 있는 디자이너다.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숨가쁘게 활동한 게 어느덧 2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은 디자인을 통해 세상에 좋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믿는 한결같은 마음 덕분이다. 2009년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로 시작해 아트 디렉터를 거쳐 올해의 멘토로 돌아온 이달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신사옥 입주를 축하한다. 사옥을 짓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고 들었다.
건축 설계만 2년을 했다. 그간 작업한 시안을 모아보니 30개 남짓 되더라. 그래픽 디자이너의 시선이 묻어나는 건물을 만들고 싶어 외관상 모든 비주얼 요소를 정사각 비율로 통일했다. 이사를 결심한 건 스튜디오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였다. 마음 스튜디오는 공간팀과 그래픽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 팀이 서로 떨어진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그동안 의견의 합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새 보금자리에서 구성원 모두가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어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옥을 지었다. 이번 이사로 마음 스튜디오의 두 번째 챕터를 맞이하는 기분이다.
마음 스튜디오의 시작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파브리카 커뮤니케이션 센터 워크숍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이탈리아 트레비소에 위치한 파브리카 커뮤니케이션 센터에서 매년 전 세계 젊은 디자이너들을 교육하고 후원하는 워크숍을 개최하는데, 한국 학생을 몇 명 뽑는다길래 지원했다가 운 좋게 참여하게 되었다. 디자인을 통해 세상과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고, 그곳에서의 경험이 뇌리에 깊게 박혀 디자이너로서 가치관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워크숍에서 배운 걸 하루 빨리 실천하고 싶어 귀국 후 신예 디자이너의 등용문인 서울디자인페스티벌(SDF)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때 선보인 게 ‘마음 티백’이었다. 티백을 건네는 작은 행위가 사랑하는 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였는데, 마음 티백이 예기치 않게 유명해지면서 얼마 뒤 설립한 스튜디오 이름도 자연스럽게 마음 스튜디오가 됐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다.
그렇게 말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스튜디오 초창기에 일이 들어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겸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피죤의 전략팀장으로 영입되어 1년 정도 일했는데, 그때 나이가 고작 스물여덟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높은 직책을 맡다 보니 회사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고, 일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제품을 준비했는데 결국 하나도 출시된 게 없었다. 방황하던 찰나에 쌈지로부터 자사 브랜드 ‘딸기’의 디렉터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주 3일만 출근하고 스튜디오 운영을 병행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웃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3000m2가 넘는 공간에 딸기 키즈 뮤지엄을 만드는 일을 맡았는데, 주위 사람들을 붙잡고 배워가며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으로 해냈다.
회사 생활을 하며 힘든 점도 많았지만 그때 경험이 큰 자양분이 됐다. 한번은 딸기 키즈 뮤지엄을 방문한 한 소아과 원장님이 내 이름을 겨우 찾아내 연락을 해온 적이 있다. 어린이 공간에 대한 이해가 있는 디자이너가 꼭 자신의 소아과를 설계해줬으면 좋겠다며 프로젝트를 의뢰했는데, 일에 쏟은 노력을 보상받는 같아 뿌듯했다. 그렇게 차츰차츰 마음 스튜디오로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하우스에서 알게 모르게 쌓인 것들이 있었기에 디자이너로서 홀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실제로 포트폴리오에 유독 어린이 관련 프로젝트가 눈에 띈다.
어린이 프로젝트를 활발히 진행할 당시는 나 역시 한창 자녀를 키우던 때였다. 부모로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공간에 자연스럽게 투영하며 즐겁게 작업했다. 한때는 내 눈에 좋아 보이는 걸 아이들도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공간을 채우는 데 열중한 적도 있었는데, 그 역시 어른의 사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 때는 꼭 여백을 남겨둔다. 콘텐츠를 과하게 채우기보다는 아이가 움직이고 활동하며 빈 공간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하는 편이다. 솔직히 어린이 프로젝트만큼 어려운 게 없다. 안전에 관해 신경 써야 할 점이 많고 점검과 검사 과정도 까다롭다. 그렇다 보니 어린이 공간에 기성 가구나 제품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이런 절차에 익숙해져 놀이기구나 가구도 직접 제작하곤 한다. 이젠 오히려 리테일 공간을 만들 때 제약 조건이 너무 없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웃음)
사실 어린이 프로젝트에서 상업 프로젝트로 넘어가기까지 허들이 꽤 높았다. 딱히 어린이 공간 전문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포트폴리오가 쌓이면서 오히려 업의 외연이 좁아지는 걸 경험했다. 늘 새로운 일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모나미 콘셉트 스토어 작업이 화제가 된 뒤부터는 다양한 곳에서 작업 의뢰가 들어와 이제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일한다.
다양한 분야를 오가면서도 스튜디오의 색깔을 뚜렷하게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디자이너에게 개성이나 스타일은 한계의 다른 말인 것 같다.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결과물의 실루엣이 자꾸만 동그래진다. 그렇다 보니 트렌디한 미감이 필요한 일에는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로서는 명백한 한계라고 본다. 그 스타일을 넘어서기 위해 스스로 채찍질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강박을 내려놓고 마음 스튜디오의 정체성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너나없이 트렌드를 따라갈 이유도 없거니와 그런 식으로는 모두가 성공할 수도 없다.
나는 시대감보다 스토리가 드러나는 디자인이 좋다. 물론 매체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시장이 움직이니 일정 부분 그에 발맞춰 가야 하는 지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디자인을 통해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게 내겐 가장 중요하다. 모든 프로젝트를 한 줄의 카피에서 시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짧은 한 문장으로 정의하고 나서 시작하면 디자인이 쉽고 직관적으로 풀릴 때가 많다. 누구에게나 쉽고 친절한 디자인이어야 그 안의 주제도 명쾌하게 전달될 수 있다.
행사에 참가한 신예 디자이너로 시작해 2016년에는 아트 디렉터를 맡았고, 올해는 멘토로서 다시 한번 SDF에 참가한다. 곧 만나게 될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미리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트 디렉터로 선정되었을 때보다 이번이 좀 더 기쁘다. 멘토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디자이너로서 잘 영글었다고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올해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젊은 디자이너들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그들의 아이디어와 생각을 직접 듣고 조언도 해주며 공감과 응원의 말을 건네고 싶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닐 거다.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은 디자이너로서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는 방법을 배우는 자리다. 제대로 성장하려면 무너지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 철저히 깨질 준비를 마친 젊은 디자이너라면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만나자.(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