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샘 김윤희 전무·리하우스 사업본부장

다시, 집을 향한 관심

한샘은 국내 리빙 산업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다. 디자이너 출신으로 임원의 자리까지 오른 한샘 김윤희 리하우스 사업본부장에게 국내 리빙 시장의 현주소를 물었다.

한샘 김윤희 전무·리하우스 사업본부장

1970년 국내 최초로 입식 부엌 가구를 도입하며 출발한 한샘은 홈 인테리어와 홈 퍼니싱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리빙 시장을 개척하며 시장을 견인한 것이다. 하지만 50여 년이 흐른 지금 한샘은 기로에 놓였다. 시장에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했고, 해외 가구 브랜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안목이 높아진 소비층의 니즈를 따라잡아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매출 견인을 위해 주력했던 저가 라인은 브랜드 인지도 차원에서 자충수가 된 상황. 그사이 대주주가 바뀌는 등 회사 내부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잇따랐다. 변화의 파고에서 한샘은 체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2022년 홈퍼니싱 사업본부장에 이어 최근 리하우스 사업본부장을 새롭게 맡은 김윤희 전무는 그 변화의 선봉에 서 있다. 디자이너 출신으로 한샘의 주요 사업을 맡은 그를 만나 국내 리빙 시장과 한샘의 변화에 관해 물었다.

24.07.02 월간디자인 2945 SRGB 1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생활미술학을 공부하고 카이스트 경영대학 변화혁신관리과정과 연세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한샘에 입사해 R&D본부장, 홈퍼니싱 사업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11월부터 리하우스 사업본부를 이끌고 있다.

디자이너 출신 임원

키친바흐 햅틱오크
키친 바흐 햅틱 오크. 키친바흐는 주방 가구 브랜드로 한샘이 50여 년간 쌓아온 노하우가 집약되어 있다. 김윤희 전무는 이 프리미엄 주방 가구 라인의 디자인을 진두지휘했다.
디자이너로 시작해 이제 사업을 총괄하는 입장이 됐습니다. 이에 따른 부담은 없나요?

오랫동안 한샘의 R&D본부장으로 일하다 지난해 하반기까지 홈퍼니싱 사업본부장을 맡았는데, 리하우스를 맡기 전 홈퍼니싱 비즈니스를 경험한 게 저에겐 행운이었습니다. 비즈니스 책임자로서 소프트 랜딩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할까요? 홈퍼니싱은 상품-영업-마케팅이 좀 더 직접적으로 얼라인되어 있어 R&D본부장 출신으로서 상황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게 상대적으로 용이했습니다. 반면 리모델링은 소비자가 공사를 결정하고 시공이 완료되기까지 평균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변수가 너무 많고요. 홈퍼니싱 사업본부장으로서 적응기를 가진 덕분에 현재 사업도 이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디자이너가 자기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숫자를 들여다보거나 매출을 관리할 일이 드물잖아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에서 숫자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재무제표를 보면서도 영업에 특화된 기성 전문가들과 다른 방식으로 투자 대비 지출에 대한 문제점이나 수익률 등에 대한 개선점을 찾게 되는 거죠. 리하우스를 맡은 지 이제 겨우 반년 정도 지났기 때문에 성과를 운운하기에는 이르지만 경험 많은 영업실장들과 머리를 맞대고 리하우스를 이끌고 있습니다.

1995년에 정식 입사해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는, 일명 ‘원 클럽 플레이어’입니다.

1994년 7월 대학생 인턴으로 들어와 이듬해 입사했습니다. 1995년은 1970년 주방 가구로 출발한 한샘이 1990년대 초반부터 준비했던 일반 가구 사업을 시장에 공개한 첫해이기도 하죠. 개발팀 막내로 시작해 상품을 디스플레이하는 전시팀으로 자리를 옮겼고 전시팀장을 맡으며 2000년대 초반 회사의 해외 진출을 지원 사격했습니다. 그때 제 주요 업무는 B2B를 위한 쇼룸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보스턴, 도쿄와 오사카 등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고급 주방 가구를 표방하며 전개한 키친바흐의 개발팀장을 거쳐 R&D본부장까지 맡았습니다.

키친바흐 페닉스
키친 바흐 페닉스.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브랜드

한샘 송파점 2
한샘 송파점. ‘집에서 삶으로’라는 콘셉트로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보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상하게 만드는 ‘삶’에 초점을 맞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디자인 협업 아키모스피어(대표 박경식)
국내 리빙 시장이 여러모로 미숙했던 시절에 한샘에 합류한 셈이군요. 한샘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대학 시절 선배나 동기들은 주로 제품 디자인을 하고 싶어 했어요. 아니면 운송 디자인 같은 스케일 큰 작업을 꿈꿨죠. 반면 저는 공간이나 환경을 조성하는 데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샘 인턴십 코스에서 참가자들에게 원룸을 디자인하는 미션이 떨어졌어요. 그때 직감했죠. ‘바로 여기다.’(웃음) 게다가 인턴십을 마칠 무렵 창업주께서 모든 인턴과 함께 건축 기행을 떠났어요. 지방의 오래된 사찰 등을 돌며 전통 건축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우리가 한샘의 디자이너 인턴 1기였기 때문에 더 관심과 애정을 쏟았던 것 같아요.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한 창업주는 공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침대가 아닌 침실을, 소파가 아닌 거실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게다가 한샘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도전을 하는 회사였습니다. 주방 가구에서 일반 가구로, 다시 건자재 사업과 리모델링 비즈니스로,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도 늘 이전과 다른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이런 점이 저에게 자극과 영감을 준 것 같습니다. 그 미션을 하나둘 수행하다 보니 롱런하게 됐고요.

사업 확장 배경에는 달라진 시대상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주방 가구 사업이 한창이던 1970~1980년대는 신축 아파트들이 막 들어서던 때였어요. 1988년에 준공한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가 대표적이죠. 이때 새로운 공간에 맞는 부엌 가구로 시장을 선점한 것입니다. 이윽고 1995년 일반 가구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는데, IMF 외환 위기가 B2B에 주력하던 한샘이 B2C로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소 건설사들이 문을 닫고 대기업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대기업 건설사들이 최저 입찰 시스템을 도입한 영향입니다. 당시 건설사 못지않게 중소 가구 회사도 여럿 도산했는데 한샘이 잇달아 히트 상품을 내며 그 빈자리를 채워갔습니다. 2000년대 들어 바닥, 마루, 벽지, 창호 등 건자재 아이템 판매를 시작한 데 이어 2018년 리모델링 사업을 본격화했죠. 기존 아파트들이 노후화되면서 리모델링 시장이 활성화되는 시대의 흐름에 합리적으로 대처한 것입니다.

사업 확장에 따라 경쟁사도 매번 바뀌었겠군요.

부엌 사업을 시작했을 때 한샘의 경쟁사는 오리표 싱크, 백곰표 싱크, 거북표 싱크 등 싱크대 회사였고, 1990년대부터는 보루네오, 리바트, 일룸 등 가구 전문 중소기업이 경쟁사였습니다. 건자재에 손을 대면서부터는 LX하우시스(당시 LG하우시스)나 KCC 같은 대기업 계열사와 경쟁해야 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리모델링 사업을 하는 지금이 가장 난도가 높고 민감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인테리어를 업으로 하는 2만 개가 넘는 회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셈이니까요. 게다가 이들과는 경쟁 구도뿐 아니라 적절한 협력 체계도 유지해야 하므로 극복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200812 0017 copy
210817 0028 copy 2
2020 F/W 트렌드 발표회(위)와 2021 F/W 트렌드 발표 기간에 맞춰 연출한 공간. R&D본부장 시절 김윤희 전무는 ‘홈택트 라이프’, ‘리빙 온 네이처Living on Nature’ 등 주제에 맞는 공간을 선보였다.
그런 중요한 책임을 김윤희 전무께 맡긴 이유가 있겠죠?

홈퍼니싱 사업본부를 맡았을 때 다양한 체질 개선을 시도했던 것을 경영진이 눈여겨보았던 것 같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원자잿값 폭등, 금리 인상 등 악재가 겹치며 아직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말이죠.

김윤희 전무 개인뿐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죠. 개인적으로 한샘 송파점에서 처음 변화의 징후를 감지했습니다.

회사 매각 이후 당시 경영진과 쇼룸 디자인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습니다. 세대가 바뀌고 새로운 플레이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게다가 온라인 유통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점에서 더 이상 변화를 미룰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한샘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엄마가 쓰는 가구 브랜드’라는 노화된 인상을 탈피할 묘수가 필요했습니다. 과거에 가구는 혼수의 개념이 강했습니다. 시어머니의 취향이 가구 선택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죠. 하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중요시합니다. 제품뿐 아니라 제품을 보여주는 방식도 달라져야 했죠. 그 출발점으로 삼은 게 바로 송파점입니다.

230331 200 1
한샘 송파점. 입구에 카페 진정성을 입점시켰다.
아키모스피어를 디자인 파트너로 삼은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물론 훌륭한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많지만 새로운 관점으로 공간을 해석할 외부 파트너가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습니다. 송파점은 전통적인 매장의 입지 조건으로 봤을 때 다소 불리했습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도 아니고, 지하에 위치한 공간이죠. 워크인으로 들어오는 입지는 분명 아닙니다. 꼭 방문해야 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 입구에 쇼룸이 아닌 카페 진정성을 입점시키고, 기존 매장의 공식을 탈피해 테마별로 공간을 구성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어요.

HANSSEM Final image Songpa 3
한샘 송파점은 고객의 여정 속에서 한샘 제품이 ‘설핏설핏’, ‘어롱어롱’ 비치는 인상을 받도록 설계했다. 판매에 주력하는 공간이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 브랜드를 새롭게 어필할 수 있는 매장을 연출한 셈이다. ©최용준
HANSSEM Final image Songpa 8
©최용준
HANSSEM Final image Songpa 2
©최용준
한샘 송파점에 이어 스타필드 수원점도 협업을 선택했습니다.

스타필드 수원점의 경우 비트윈스페이스와 컬래버레이션했습니다. 보통 한샘 매장은 수천 평에 이르는 데 비해 스타필드 매장은 400평(약 1320㎡)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력한 것은 작지만 알찬, 매력적인 사용자 경험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비트윈스페이스와는 현재 논현동 매장 리뉴얼도 함께 구상 중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두 공간이 신규 매장인 반면 논현점은 운영 중인 공간을 리뉴얼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층별로 순차적으로 공사할 예정이죠. 매장이 위치한 논현동 가구 거리가 예전만큼 활기를 띠고 있지 않은데 이번 리뉴얼을 계기로 다시금 많은 소비자들이 찾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샘 스타필드 수원점 1
포레스트 갤러리를 콘셉트로 연출한 한샘 스타필드 수원점. 리뉴얼한 로고를 최초 적용한 오프라인 매장이기도 하다. 디자인 협업 비트윈스페이스(대표 오환우·김정곤)
한샘 스타필드 수원점 3
스타필드 수원점은 새롭게 리뉴얼한 BI를 처음 적용한 매장이기도 합니다. 파오스가 1992년에 디자인한 기존 아이덴티티가 워낙 상징적이라 사실 소식을 듣고 꽤 놀랐습니다.

브랜드 리뉴얼은 제가 이끈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결은 앞서 말한 송파점과 유사합니다.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인상을 주는 게 중요했죠. 사실 엄청나게 고민했습니다. 자칫 리뉴얼이 브랜드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변화의 명분이 충분했습니다. 한샘은 지난 30여 년간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는데 이 과정에서 비주얼 아이덴티티가 난립하게 되었어요. 게다가 오프라인 매장에 특화된 기존 BI의 크리에이티브 블록은 모바일 등 디지털 환경에선 인지 측면에서 다소 불리했어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존의 삼원색과 기본 구성을 유지하되 블록 수를 줄이고 가시성을 높였죠. 결국 모든 것이 새로운 소비자에게 접근하기 위한 전략으로 수렴되어야 합니다.

한샘 사진자료1 2 한샘 새로운 브랜드 로고서브
한샘 사진자료4 2 사내 임직원용 웰컴키트열었을 때
한샘 사진자료5 한샘 제품 카탈로그
한샘의 새로운 아이덴티티. 프로젝트 디렉팅 한샘 마케팅 본부 디자인 CFC(대표 전채리)

K-리빙의 기로와 한샘의 향방

부엌 유로900
한샘키친 유로 900 캔버스
국내 리빙 산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죠. 시장이 성장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그사이 많은 리빙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도전과 실패를 거듭했죠.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이나 특징과도 관련이 있다고 봐요. 산업을 일군 기성세대의 주 무대는 집 밖이었죠. 집보다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자기 공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어요. 주로 옷이나 액세서리 등 밖에서 남들에게 보이는 부분에 더 투자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반면 일터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개인과 가족의 공간을 중요하게 여긴 유럽에서는 인테리어, 가구, 소품 산업이 자연스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제가 미국 근무를 하면서 현지의 유명 소품 매장을 열심히 들여다봤는데, 그곳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아이템이 뭔지 아세요? 바로 초입니다. 꼭 큰돈을 쓰지 않아도 향초 하나, 화병 하나로 세심하게 공간을 가꾸고 연출하는 문화가 삶 속 아주 깊숙이 자리매김하고 있단 뜻이죠.

국내 리빙 시장의 성장이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인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는 뜻도 되겠네요? 솔직히 저는 인스타그램, 오늘의집 같은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도 시장의 성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팬데믹의 영향도 있죠. 화상회의가 빈번해지면서 개인 공간이 노출되는 일이 많아졌으니까요. 예전에는 고급 호텔에서나 누릴 수 있었던 좋은 디자인을 합리적인 가격대의 스테이나 부티크 호텔 등에서 경험하게 되면서 소비자의 안목이 높아지기도 했고요.

스타일에디션 컴포트내추럴수정
한샘 리하우스 스타일 에디션 컴포트 내추럴. 디자인 협업 WGNB(대표 백종환)
이유가 어찌 되었든 엔데믹을 겪으며 한국의 리빙 시장은 예전보다 확실히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성장과 별개로 리빙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과연 우리다움을 찾았는지는 미지수입니다.

10여 년 전 북유럽 가구 열풍부터 오늘날 미드센추리모던까지 유행의 흐름을 보면 확실히 안타까운 부분이 있죠. 물론 대중의 판단은 언제나 존중해야 하고, 저 역시 클래식한 디자인을 좋아하긴 하지만요. 솔직히 한국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한샘도 마찬가지라 딱히 할 말이 없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시장의 규모와 비례하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해마다 수조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전자 산업과는 경우가 다르단 말이죠. 한편으로 ‘진짜 한국다움이란 무엇인가?’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합니다. 꼭 조선 시대의 무언가를 계승해야만 한국다운 디자인일까요? 그렇지 않죠. 오히려 지금 한국의 현실, 이를테면 맞벌이 부부가 일상이 된 가정의 생활 공간에 맞는 디자인을 찾는 게 진짜 우리다움을 찾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팬데믹은 그런 면에서 우리의 생활 공간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비로소 사람들은 지금 한국인의 주거 환경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꼭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집에 머물며 일하고 공부하면서 오래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좋은 의자가 필요하다는 걸 학습한 것이죠.

그렇다면 시장의 미래는 밝다고 전망해도 될까요?

글쎄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드네요. 제가 리하우스 사업본부를 맡으면서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저렴하게 시공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소득이 안정적인 의뢰인조차도 말이죠. 물론 이해는 합니다. 워낙 그동안 불투명하고 정보가 비대칭인 시장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리모델링이라는 게 한번 해놓으면 5년에서 10년은 유지하는 거잖아요. 무조건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환경을 입체적으로 고려해 자신에게 맞는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인식이 조금 더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가파르던 국내 리빙 시장의 성장 곡선이 엔데믹 이후 다소 둔화한 느낌입니다. 한샘도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지 않나요?

이럴 때일수록 잘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샘은 영역을 확장하는 한편 그레이드를 세분화했습니다. 그런데 판매에만 주력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저가 라인의 매출을 올리는 데에 급급했던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한샘을 저가 가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졌습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한샘이 자체 생산하는 제품은 품질 유지에 힘을 쏟습니다. 엄청난 단계의 제품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시중에 출시할 수 있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가 라인 중 일부 제품은 아웃소싱할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경기가 안 좋아지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매출 견인을 위해 더 저가 라인에 몰입한 경향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부정적인 소비자 경험이 축적되었습니다. 브랜드의 선망성을 상실한 것이죠.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제가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연 매출이 몇백억에 불과했던 회사가 이제는 1조 9000억 원을 상회하는데 브랜드에 대한 인식은 악화되었으니 말이죠. 그래도 최근 전사 차원에서 ‘더 이상 악수를 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전 한샘의 장점, 즉 합리적인 가격대와 좋은 품질의 브랜드라는 명성을 되찾고자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사업본부장으로서 향후 리하우스사업본부를 어떻게 이끌 계획인가요?

역시 ‘잘하는 것에 집중하자’로 귀결될 것 같아요. 저는 오랫동안 고객의 니즈를 연구해온 디자이너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또 한 가지 애쓰고 있는 것은 품질의 균일화입니다. 한샘 리하우스는 전국에 걸쳐 영업과 시공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간에 수준 격차가 있다 보니 고객의 만족도도 천차만별입니다. 이것을 편차 없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 또한 제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4호(2024.08)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AD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