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예술의 공생, 이리스 반 헤르펜의 하이브리드 쇼
이리스 반 헤르펜이 패션과 예술을 융합하며 오트 쿠튀르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파리 오트쿠튀르 주간에 이리스 반 헤르펜Iris van Herpen은 ‘하이브리드 쇼-아트 인스털레이션’이라고 적힌 초대장을 배포했다. 좌석 번호도 적혀 있지 않은 패션쇼 초대장을 들고 현장에 도착한 관객들의 눈앞에 펼쳐진 건 공중에 떠 있듯 연출한 ‘살아있는’ 조각품이었다. 허락된 관람 시간은 총 45분. 그 시간 동안 관객들은 자유롭게 전시장을 거닐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리스 반 헤르펜은 프런트 로에 담긴 암묵적인 차별과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런웨이의 관행에 의문을 품었다. 오트 쿠튀르 룩을 만드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만큼 참석자가 이러한 노력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쇼의 속도 또한 늦출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런웨이가 아닌 전시 형식을 차용한 것은 관람객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디자이너는 이번 쇼가 패션과 예술이 공생할 수 있음을 알리는 기회로 작용하길 바란다는 뜻도 전했다.
실제 모델에 직접 드레이핑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한 오트 쿠튀르 의상 5벌과 명주 그물 천에 3D 프린팅과 실크 폴딩 기술 등이 적용된 신개념 패브릭 4점의 대형 작품을 전시했고, 모델들은 주어진 시간 동안 관람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교감했다. 이런 퍼포먼스에 대한 이리스 반 헤르펜의 설명은 퍽 철학적이다. 공중 부양하듯 벽에 연결된 단상에 올라가 마치 다른 생명체처럼 연기하는 모델이 관람객에게 스스로를 이해하는, 일종의 자기 실현의 마중물로 작동하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 이리스 반 헤르펜은 이번 패션쇼를 이렇게 자평했다. “(이번 쇼를) 누군가는 오트 쿠튀르, 누군가는 예술이라고 평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이것은 그저 하나의 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