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회사가 아니라 크리에이티비티 솔루션 기업이다

제일 기획은 어떻게 창의적인 기업이 되었나

아이디어로 세상을 움직이는 회사 제일기획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CI 디자인 시스템을 리뉴얼했다.

광고 회사가 아니라 크리에이티비티 솔루션 기업이다

1973년에 창립해 올해 40주년을 맞은 제일기획의 역사는 국내 광고 시장의 역사와 흐름을 대변하는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1987년 국내 광고 회사 최초로 클리오 광고제에서 본상, 1991년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당시 칸 국제광고제)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한국의 크리에이티비티 능력을 해외에 처음 알린 홍보대사라 할 수 있다. 지금껏 다양한 행보를 보여준 제일기획이 최근 몇 년간 폭발적 성장을 이뤘다. 올해 초 40주년의 새로운 비전을 담아 선보인 CI 디자인 시스템과 칸 라이언즈에서 보여준 성과를 통해 창의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제일기획의 노하우를 살펴봤다.


임직원의 자부심 높인 제일기획의 CI 디자인 시스템

기업 아이덴티티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이런 변화는 기업이 발전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고객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각적 소통 방법 중 하나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광고 회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제일기획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CI 디자인 시스템을 리뉴얼했다. 로고를 비롯해 외부에선 눈에 띄지 않지만 임직원들이 사용하는 액세서리까지 바꿔 CI 디자인 시스템을 정리한 것.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걸음을 맞추려면 회사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도 당연히 변화해야 한다는 임직원들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축적해온 장점은 그대로 유지하되 새롭게 변화하자는 말이다.

제일기획의 CI 디자인 시스템 리뉴얼을 이끈 하종주 CD는 “제일기획은 명실공히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제 해외에서는 굳이 제일기획을 소개하지 않아도 어떤 회사인지 다 알 정도다. 이러한 제일기획의 자신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CI에서 설명적이라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없애고 ‘Cheil’이라는 단어가 좀 더 명확하게 보이도록 디자인했다”라고 CI 디자인 시스템 리뉴얼 배경을 설명했다. 리뉴얼의 원칙은 명확했다. ‘Fresh(신선한)’, ‘Contemporary(현대적인)’, ‘Confident (자신감 있는)’, ‘Bold(대담한)’, ‘Simple (단순한)’. 흰색과 검은색의 무채색을 중심으로 장식이 될 만한 요소는 모두 없앴다.

“새로운 음식을 담으려면 그릇을 비워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무색 무취의 그릇이 디자인 콘셉트다. 그 그릇은 곧 제일기획 임직원들을 상징한다. 크리에이티브한 집단은 카멜레온처럼 어떤 색으로든 변화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컬러나 형태를 제시할 경우 그것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싶었다고. 그렇다고 표현이나 컬러를 두려워하는 건 아니다. 표현할 땐 과감하게 한다. 형광 주황, 형광 녹색, 형광 핑크 등의 색을 담은 명함이 그러한 예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제일기획의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색을 선택할 수 있게 명함을 만들었다. 원하면 모든 색을 다 담을 수도 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 명함 덕분에 처음 만난 미팅 장소에서 분위기를 유연하게 이끌게 됐다고 한다. 상대방에게 다양한 색의 명함을 보여주며 “원하는 색을 선택하세요”라는 대화로 미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카드 지갑 목걸이, 파우치, 가방 등 임직원들을 위해 만든 액세서리도 눈에 띈다. 임직원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디자인한 결과다. 여기에 웹사이트와 모바일, 우편 봉투, 쇼핑백, 노트 등 제일기획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끔하게 정리했다. 사실 물건 하나하나를 보면 무엇이 제일기획만의 색인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디자인 시스템을 늘어놓고 보면 ‘아! 이런 게 제일기획의 분위기구나’하고 알게 된다. 놓치기 쉬운 사소한 부분의 레이아웃과 질감 등이 모여 제일기획만의 룩 앤드 필(look & feel)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시장과 소비자를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실전 솔루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가치 있는 생활 방식과 문화를 제안하겠다’는 제일기획의 새로운 비전이 잘 녹아든 CI 디자인 시스템이다. ‘아이디어를 향한 열정(Passion for Ideas)’에서 ‘아이디어로 세상을 움직이다(Ideas that Move)’로 바꾼 제일기획의 슬로건이 말해주듯 열정을 담은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제일기획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Interview 

하종주 제일기획 BE 크리에이티브 2팀 CD
“제일기획의 자신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CI 디자인 시스템을 리뉴얼하며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임직원들이 정말 즐겁게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특정한 디자인이 더해지면 호불호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디자인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기보다 제일기획의 기존 아이덴티티를 말끔히 청소했다고 보면 된다. 대신 디테일을 챙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예를 들어 점심시간에 밖에 나갈 때 주로 사원증과 신용카드 정도만 들고 나가는 것을 보고 카드 지갑 목걸이를 만든다거나, 쇼핑백의 재질을 고르는 데 신경 쓰는 등 금방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을 디자인하는 데 신경 썼다.

디테일에 대한 중요성은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숙지하는 부분이다.

지각은 하지만 환경이 도와주지 않을 때가 많다. 해외, 국내 크리에이티브 회사를 경험하며 느낀 점인데, 국내 기업은 충분히 생각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짧은 시간과 적은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차마 디테일까지 신경 쓰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디테일과 멋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디자이너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지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다.

새로 바뀐 CI가 클라이언트 관리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브랜딩은 브랜드와 고객이 첫 번째로 만나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이다. 새로 바뀐 CI는 클라이언트에게 제일기획의 자신감과 전문성을 대변할 것이다. 이는 제일기획의 비즈니스 신뢰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요즘 주목하고 있는 CI 디자인 경향을 말해달라. CI 디자인이 로고 중심에서 시스템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더불어 정직하고 담백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요즘은 트렌드가 될 만한 요소를 사용하지 않는 게 트렌드인 것 같다.

CI 디자인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CI 디자인의 변화는 광고 커뮤니케이션의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전통 매체가 주류를 이루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다양해졌다. 다양한 채널을 아우르려면 로고에 집중하기 보다 어떤 매체든 적용시킬 수 있는 ‘CI 디자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로고를 가려도 소비자가 어떤 브랜드인지 알아보게 만드는 룩 앤드 필이 중요하다. 따라서 앞으로 컬러, 서체, 레이아웃 등의 디자인 시스템이 강조될 것이다.

브랜드 익스피리언스 크리에이티브 2팀 (Brand Experience Creative Team 2)은 어떤 일을 하나?

제일기획 하면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는 광고 회사라는 인식이 강하다. 디자인도 기업 광고의 해결책 중 하나다. 우리는 주로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래픽 디자인을 비롯해 제품 디자인, 공간 디자인 등 디자인을 통해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한다.

세계에서 인정받은 제일기획의 크리에이티비티

매년 6월 셋째 주가 되면 프랑스 칸에서는 세계 광고인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이하 칸 라이언즈)이 열린다. 1953년 창설해 올해 60주년을 맞은 역사 깊은 행사이자 향후 트렌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또한 전 세계 크리에이티비티 관련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회사를 알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뜻깊은 행사에 몇 해 전부터 눈에 띄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회사가 있다. 바로 한국 크리에이티비티의 위력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제일기획이다. 2011년 미디어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홈플러스 지하철 가상 매장, 2012년 다이렉트 부문 금상과 미디어 부문 은상 등을 받은 이마트 써니 세일, 프로모 & 액티베이션 부문 금상을 받은 삼성전자 인사이트, 그리고 올해 티타늄 & 통합 부문에서 티타늄을 받은 삼성생명 ‘생명의 다리’ 캠페인 등으로 칸 라이언즈를 휩쓸었다.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은 제일기획이 최근 들어 폭발력을 갖게 된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2013 칸 라이언즈에서 제일기획의 세미나 연사로 나선 김홍탁 마스터는 “이 모든 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제일기획은 박수만 치는 관객이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은 해외에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는 무림의 고수가 되었다. 이 배경에는 제일기획만의 기업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선제안 시스템’과 ‘캐주얼한 분위기’를 성공 요인으로 손꼽았다. 대부분의 광고인들은 주어진 업무 외에 창의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갈망이 있는데, 이것을 회사 프로젝트를 통해 풀 수 있도록 한 게 선제안 시스템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2000년대 중·후반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 이 문화는 파트너십이 좋은 사람들끼리 모여 팀을 꾸려서 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을 거쳐 나온 캠페인들이 최근 칸 라이언즈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예를 들어 삼성생명 ‘생명의 다리’도 그렇다. 어느 날 대화 도중 갑자기 나온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디에서 제일 많이 자살하는 줄 아냐’는 질문에 관심을 갖고 살펴 보니 마포대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는 곳임에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고. ‘자살로 문제가 되는 장소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해결하고 바꿔보자’며 시작한 이 프로젝트에서는 먼저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죽기 직전 누군가에게 전화나 메시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즉 자살은 우발적인 행동일 뿐 누군가와 소통을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살을 하기 위해 마포대교를 찾은 사람에게 친구가 옆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듯 다리 난간에 “노래방 가고 싶다”, “세월 참 빠르다”, “무슨 고민 있어?” 등의 글귀를 쓰고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작은 불빛이 켜지게 했다. ‘자살을 방지하자’는 메시지가 생명 관련 기업과 잘 맞겠다 싶어 삼성생명에 제안했고 지난해 가을 ‘생명의 다리’가 설치됐다.

최근 3년간 제일기획이 칸 라이언즈에서 선보인 캠페인을 본 해외 크리에이터들은 입을 모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Never seen before)”라고 할 만큼 표현의 새로움을 넘은 창조물을 보여줬다. 제일기획은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는 ‘선제안 시스템’을 앞으로 더욱 강화해 서로 다른 팀끼리도 유연하게 조직을 만들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Interview

김홍탁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이노베이션 그룹장
“선제안 시스템과 캐주얼한 분위기가 제일기획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올해 제일기획은 삼성생명 ‘생명의 다리’ 캠페인으로 9개의 본상을 수상하는 등 총 21개의 본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을 경신했다. 

2011년에는 프로젝트 하나로 대상 1개, 금상 4개를 받았고 2012년에는 프로젝트 5개가 골고루 수상했다. 이런 결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칸 라이언즈에서 10년 넘게 축적해온 것이 이제야 ‘빵’ 하고 터지고 있다. 중국, 인도, 미국, 영국, 독일, 싱가포르, 브라질 등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제일기획의 37개 해외 네트워크를 모두 합하면 그 실적은 배가된다. 제일기획에서 인수한 미국 디지털 광고 회사 더 바바리안 그룹의 신더(Cinder)가 이노베이션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제일기획 독일 법인에서 집행한 ‘강제 결혼으로부터의 자유(Free the Forced)’가 모바일 부문에서 금상과 은상 1개씩, PR 부문 동상 3개, 미디어 부문 동상 1개 등을 받았다.

2013 칸 라이언즈 세미나에 연사로 참여했다.

제일기획은 2008년부터 꾸준히 칸 라이언즈 세미나에 연사로 참석해왔다. 칸 라이언즈의 세미나는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크리에이티비티 행사이다 보니 영향력 있는 기업과 크리에이터들이 대거 참석한다. 따라서 칸 라이언즈 측에서는 ‘자신들의 세미나에 오르는 건 곧 그 회사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미나 발표 신청을 했다고 모두 발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칸 라이언즈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제시한 발표 주제가 영향력 있다고 인정받은 회사만 발표할 수 있다.

칸 라이언즈 세미나에서 발표한 주제가 궁금하다.

발표 주제는 ‘마인드 셰어(Mind Share)를 넘어 라이프 셰어(Life Share)를 하라’이다. 전통 매체를 이용하는 방식을 마인드 셰어라 하고 브랜드가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을 라이프 셰어라고 한다. 전통 매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소비자와 대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세뇌시킬 뿐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 참여와 공유를 통한 경험 마케팅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하고 브랜드를 경험하며 현장에서 느낀 브랜드의 가치를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 즉 만나고, 놀고, 퍼뜨리게 만들어야 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크리에이티비티의 트렌드가 궁금하다.

제작년 ‘칸 국제 광고제’에서 ‘광고’라는 단어를 빼고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을 정식 명칭으로 개명한 것처럼 요즘 광고계에서는 광고라는 말 대신 ‘플랫폼’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플랫폼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툴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각각의 툴은 원형으로 자리하고 확장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프로젝트는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든 것이며, 이는 관광 자원이나 교육 자원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덴마크에 가면 인어공주 동상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처럼 말이다. 이유는 그 플랫폼 안에 스토리텔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다리’도 의미 있는 관광 자원, 교육 자원으로 확장되었으면 좋겠다.

칸 라이언즈에서 그랑프리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불과 4~5년 전만 해도 해외에 나가 제일기획에 다닌다고 하면 어떤 회사인지 한참을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그들이 먼저 알고 물어온다. 올해 칸 라이언즈에서 만난 크리에이터들은 날 보면 딱 세 가지를 물어봤다. “South Korea?”, “Cheil?”, “Bridge of Life?” 칸 라이언즈는 단순한 페스티벌이 아니라 회사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의 장이며 향후 새로운 트렌드가 형성되는 곳이다. 이곳에 한번 이름을 올리면 그 파급력은 굉장하다. 이제는 미국, 독일, 덴마크, 브라질 등 해외에서 알아서 우리에게 정보 공유의 프리젠테이션을 해달라고 연락이 온다. 해외 디자인이나 광고를 보며 감탄하던 한국이 이제는 우리의 지식과 정보를 다른 나라 크리에이터들에게 나눠주고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는 게 뿌듯하다.

제일기획을 벤치마킹하고 싶어 하는 광고 회사에 주로 어떤 조언을 해주나?

전통 매체에 기대기보다 통합 캠페인을 해야 한다. 소비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퍼뜨리게 하라. 소비자가 스스로 퍼뜨리려면 가치가 있거나 정말 재밌어야 한다. 이게 지금 광고계의 공식이다. 여기서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인터랙션을 더 재밌고 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기술이 사람들을 어떻게 현장으로 끌어들이고 가치를 만들어내게 도와주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광고 회사로 성장하는 데에는 제일기획만의 기업 문화가 한몫했을 것 같다.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항상 선제안을 한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광고 회사에 기대는 것은 전통 매체를 활용한 캠페인이다. 칸 라이언즈 세미나에서도 말했듯이 전통 매체를 통한 광고는 마인드 셰어는 이룰 수 있지만 브랜드가 처한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문제점을 찾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하는 것이 선제안이다. 2012년 칸 라이언즈 다이렉트 부문에서 동상을 받은 CJ의 ‘미네워터 바코드롭’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예전에는 아프리카를 돕자고 TV 광고를 했을 테지만 그것은 인식만 제고시킬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네워터 바코드롭’은 미네워터를 살 때 기존의 바코드를 찍은 뒤 기부 바코드를 한 번 더 찍으면 소비자 100원, 제조사인 CJ 100원, 유통사 100원이 모여 총 300원이 유니세프를 거쳐 아프리카 식수 정화에 쓰이게 된다. 이런 아이디어는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것을 가만히 기다리기보다 먼저 문제점을 찾아 진단하고 예상 결과까지 통계하고 분석해 제안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제일기획에만 존재하는 ‘마스터’라는 직위가 독특하다.

현재 제일기획에는 나를 포함해 5명의 마스터가 있다. 마스터는 현업에 있는 전문 임원을 가리킨다. 늘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야 하는 광고 회사의 특성상 관리직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겼다. ‘마스터’가 명예로움을 상징하는 만큼 회사 내부에서도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크리에이티비티 관련 분야에서는 백발이 성성해도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는 크리에이터에 대한 로망이 있다.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관리자가 될 것을 요구하지만 크리에이티비티는 현장 경험이 무척 중요하다. ‘마스터’라는 직위가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제일기획의 마스터 제도란?
제일기획의 마스터 제도는 최고 인재에 대한 보상과 예우를 위해 2002년에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광고·마케팅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마스터로 선임한다. 마스터 선임 조건은 부장급 중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과 업적을 보유한 자라고 내부에서 인정한 사람이다. 현재 (이름의 가나다 순)김재산 스페이스 마케팅 부문 마스터, 김주호 프로모션 부문 마스터, 김홍탁 크리에이티브 부문 마스터, 지현탁 광고 기획 부문 마스터, 최재영 광고 기획 부문 마스터 총 5명이 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23호(2013.09)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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