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훈 파인우드리빙 대표
가구 디자이너의 비즈니스 파트너
복합 문화 공간 무브먼트랩을 운영하며 국내 리빙 브랜드를 집결시킨 파인우드리빙 고지훈 대표는 "숫자 안에 답이 있다"라고 말한다.
디자이너의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자처하는 고지훈 대표는 복합 문화 공간 무브먼트랩을 오픈하며 국내 리빙 브랜드를 한데 모아놓은 색다른 공간 운영 방식과 서비스, 새로운 판매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리빙 토양이 비옥해지는 데 힘쓰고 있는 그를 통해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비즈니스 감각이란 무엇인지 들어봤다.
경찰, 경영 관련 일을 하다 가구 브랜드에 관심을 갖고 가구 디자이너들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 과정이 흥미롭다. 사업 아이템을 선정할 당시 GDP 규모 대비 가구 소비량을 확인했고, 여기서 성장 가능성을 엿봤다고 들었다.
2016년 경영 자문 일을 하다 우연히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를 눈여겨봤다. 그 안에서 성장하는 인디 브랜드들을 살펴보니 디자이너의 힘이 브랜드의 주요 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당시 톱다운 방식으로 리빙 시장을 살펴봤을 때 리빙 시장에는 비브랜드 시장의 브랜드화라는 큰 변화와 GDP 규모 대비 홈퍼니싱 시장의 커다란 성장이 예상되었고, 여기서 패션과 유사하게 리빙 신에서도 인디 브랜드의 성장 기회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당시 리빙 신에서 디자이너의 동력 중심으로 브랜드를 움직이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알아봤고, 2016년 우연하게 오블리크테이블과 인연이 되어 현재까지 여러 디자이너 브랜드와 함께하고 있다.
함께하는 브랜드의 선정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기준은 사람, 즉 브랜드의 대표이자 디자이너다. 잭슨카멜레온, 무니토 등은 지금은 어엿하게 자리 잡은 브랜드로 성장해 있지만 우리가 손잡을 때만 해도 1~3명이 모여 시작한 작은 브랜드였다. 그러니 당시 브랜드 가치를 중점적으로 봤다고 하기에는 어렵고 ‘이들이 얼마나 가구와 브랜드에 진심이냐’를 면밀히 살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디자인과 브랜딩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면 충분히 초기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했다. 리빙 시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도 미쳐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잭슨카멜레온, 무니토 등의 브랜드 투자자이자 파인우드리빙의 대표이며 무브먼트랩을 운영하고 있다. 파인우드리빙의 역할과 브랜드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달라.
관계로 치면 파인우드리빙이 모회사, 잭슨카멜레온, 무니토, 오블리크테이블 등이 자회사 또는 사업부라고 보면 된다. 역할 관점에서는 파인우드리빙은 디자이너들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디자인과 브랜딩 영역을 제외한 회사 운영과 관련한 전반적인 것을 지원한다. 이는 유통, 재무・회계, 고객 상담, SCM 등 브랜드가 유지되고 성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특히 유통 관점에서는 리빙 편집숍 무브먼트랩을 열었고, 현재 직영점 네 곳(한남동, 노량진, 경기도 의왕, 부산 해운대)과 백화점 매장 여섯 곳(더현대 서울, 신세계 센텀시티 등)을 운영한다.
디자이너가 경영까지 도맡아 했을 때 장단점은 무엇인가?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디자이너가 대표를 맡아 경영까지 하는 경우 모든 제품을 내 자식처럼 생각하고 제품과 개발 중심으로 팀을 이끈다는 것이 장점이고 이것이 어떻게 보면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브랜드가 제품 중심으로 몰입한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고 이는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회사 전체 운영 관점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제품을 과감하게 단종하거나 효율화해야 할 때가 있는데 디자이너가 경영할 경우 이 부분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데에서는 단점이 될 수 있다. 제삼자 입장에서 비즈니스 중심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지원하는 것이 파인우드리빙이 하는 역할 중 하나다.
고지훈 대표와 함께하는 디자이너들이 입을 모아 말하더라. 그는 ‘숫자 안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고.
최대한 브랜드에 대한 지표들을 정량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제품의 단종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현재 매출과 더불어 견적 문의 수나 소셜 미디어의 반응처럼 미래 매출을 예상할 수 있는 지표, 재고 회전율/투하 자본 대비 이익률 등을 종합해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이러한 지표를 최대한 많이 살피고 이를 기반으로 브랜드 대표와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모든 것을 숫자로 치환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제품이 브랜드 안에서 지닌 가치, 선행 크리에이티브 같은 제품의 기획 등은 정량화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기에 많은 리빙 브랜드가 수혜를 입었다고 표현하던데, 파인우드리빙은 어땠나?
그 시기에 호황이었던 게 사실이긴 하나 파인우드리빙은 내부 사정으로 2022년 상반기부터는 수혜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 팬데믹 시기에 업계 전체가 너무 빠르게 성장했고, 이로 인해 이후 시장이 역성장하며 업계 전체가 진통을 겪은 면도 있다. 다만 2023년 4사분기부터 시장이 바닥을 다지고 반등하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팬데믹 이전 시기와 유사하게 다시 시장 전체가 조금씩 우상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회사 차원에서는 특히 프리미엄 리빙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파인우드리빙이 정의한 프리미엄 리빙이란 무엇인가?
해당 동일 업계 내에서 얼마의 마크업markup(이윤)을 책정할 수 있는지에 따라 프리미엄 여부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즉 브랜딩과 제품 역량을 통해 얼마의 마크업을 책정했을 때까지 잘 판매할 수 있는지가 해당 브랜드의 프리미엄 여부를 증명하는 정량적 기준이다. 내부적으로 마크업은 물류비용이 높은, 큰 가구를 수출할 수 있는 역량으로 연결되기에 깊이 고민 중이다.
2019년 12월 온·오프라인 리빙 편집숍 겸 복합 문화 공간 무브먼트랩을 오픈했다.
가구를 잘 보여주려면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시 소규모이던 개별 브랜드들이 마음에 드는 공간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들을 한데 모아 근사하게 보여줄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무브먼트랩을 마련했다. 브랜드 노출 관점에서도 편집숍 형태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리빙이 지닌 ‘일시적 고관여’의 한계와 리빙 쇼룸 방문 시 느끼는 ‘지루하다’는 인상도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패션쇼처럼 6개월마다 한 번씩 쇼룸이 바뀌는 콘셉트와 멤버십을 중심으로 공간을 기획·발전시켰다. 가구를 사지 않아도 공간에 관심이 있고 본인의 취향을 찾고 싶다면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다. 그렇게 처음 문을 연 곳이 부산점이다.
부산 해운대를 시작으로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등에 무브먼트랩 쇼룸을 열었다. 지역 선정 기준이 궁금하다.
서울과 경기권 빼고 우리 제품의 가장 큰 매출을 차지하는 지역이 부산이었다. 상대적으로 고정비 부담도 덜해 실험적으로 공간을 운영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의왕은 브랜딩에 적합한 공간을 찾다 건물을 착공하기 전부터 건물주와 협업을 시작해 발견한 곳이다. 가구 소비자들은 충동 구매형이기보다 오랜 시간 시장조사를 통한 목적 구매형이기에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 자리잡기보다 제품의 매력이 돋보일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의왕이 이 기준에 부합하는 공간이었다. 한남동은 원래 세컨드 마켓을 위해 선택한 지역이다. 해외 브랜드와 해외 빈티지 중심으로 매장이 형성된 한남동에 우리 브랜드의 중고 제품 중심으로 매장을 운영하면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해외 빈티지 제품은 시간이 흘러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있지 않나. 브랜딩의 정점은 감가상각되지 않는 리빙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고, 세컨드 마켓을 잘 형성해놓는 것이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물류 운영의 최적화를 위해 세컨드 마켓의 거점을 노량진으로 옮겼다.
국내 브랜드를 모아놓은 세컨드 마켓이 생경하면서도 신선했다. 실제 고객 반응은 어떤가?
기존 고객들은 본인이 구매한 제품을 중고로 재판매할 수 있는 채널이 생겼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신규 고객들은 우리 브랜드의 리퍼브 제품, 중고 제품을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채널에 관심을 갖는다. 세컨드 마켓을 노량진 매장으로 옮긴 이후 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연회비 12만 원인 무브먼트랩 멤버십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가구는 일시적 고관여 제품이다. 결혼, 이사, 공간 리모델링 같은 큰 이벤트가 없으면 평소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품군이다. 재구매 주기가 길고, 브랜드의 로열티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 시장의 특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멤버십 서비스를 시작했다. 멤버십 회원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는 연간 갱신이 필요한 유료 회원인 클럽무브먼트 기준으로 6700여 명이 가입되어 있다. 구매 주기가 긴 리빙 영역에 브랜드 로열티를 확보하고, 평소에도 리빙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멤버십 서비스를 통해 좋은 공간과 우리 제품을 자연스럽게 경험한다면, 언젠가 공간을 바꾸고 가구 구입을 해야 할 때 우리 브랜드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러한 공간 경험에 대한 서비스를 좀 더 확장해나가고자 무브먼트스테이(숙박) 서비스를 시작했고, 우리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호텔, 카페와도 제휴를 확장하고 있다. 좋은 공간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 자연스럽게 우리 브랜드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다양한 국내 리빙 브랜드들이 입점된 무브먼트랩만의 마케팅 방법은?
대적으로 온라인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고가 제품의 비중이 높지만 온라인에서 충분히 제품을 소개하고 이해시키도록 노력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 연결점을 만들되, 온라인이 최초의 제품 탐험 창구가 되도록 하고 있다. 제품 구매만 하러 오는 매장이 아니라, 편하게 방문해 둘러볼 수 있는 쇼룸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전시를 열고 카페 기능을 겸한 공간을 만드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올해 10월 무브먼트랩에서 진행할 열 번째 시즌 전시를 기획 중이며, 9월에 EQL 성수공간에서 진행하는 팝업, 양조장과의 전통주 컬래버레이션 등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리빙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고객과의 공간 경험을 확대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롤 모델이 있나?
늘 다양한 회사를 벤치마킹하고 공부한다. LVMH 그룹의 운영 방식과 행보도 눈여겨본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가방 브랜드 로우로우를 좋아하고 그들의 제품과 기획을 자주 들여다본다. 요즘 리빙 신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브랜드 중 하나는 펜디 까사다. 펜디 까사를 소유하고 있는 플로스 B&B 이탈리아 그룹의 제품 개발 및 운영 방식을 추후 무브먼트랩에 적용해 보고 싶다. 부동산 개발 및 공간 사업과의 연계, 로고 플레이 등은 평소 관심 있는 주제이기에 펜디 까사가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나가는지 궁금하다.
파인우드리빙이 그리고 있는 청사진이 궁금하다.
가구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디자이너가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이 되면 좋겠다. 이는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무브먼트랩은 국내에서 넥스트 프리미엄 리빙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해외에 수출하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다.
마지막으로, 리빙 시장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
소비자 안목이 높아졌다는 점은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 브랜드의 철학, 가구의 소재・형태・디테일 등을 살피는 눈이 이전보다 높아졌다. K-콘텐츠의 영향으로 수출 기회가 조금씩 열리는 것 또한 긍정적 현상이다. 조만간 일본에 처음으로 유의미한 수출을 할 예정인데, 규모를 떠나서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