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사유가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2023 젊은건축가상 심사평
2008년 처음 도입된 젊은 건축가상은 영화계와 비교하자면, ‘신인상’과 비슷하다. 올해는 46개 팀이 지원했고 1차 서류 심사를 통해 8팀을 최종 후보에 올렸다. 심사위원들과 8팀이 함께 나눈 공개심사 내용을 본다면, 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는 이들인지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매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한다. 이 상은 건축물이나 설계안을 심사하는 다른 건축가상과 다르게 건축가 개인에게 수상한다. 사람을 뽑는 일은 설계안을 심사하는 일과 다르게 고려할 게 더 많다. 그간 작업해온 여러 건축물들을 살피고, 어떤 태도로 건축가라는 직업을 바라보고 행하는지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민아 건축가는 심사 총평을 통해 그 어려움을 일부 표현했다.
“자신의 면허로 준공된 작품이 있는, 기준 연령에 해당하는 자에게 수여하는 상이지만 심사 과정에서 더 알아버린 건축가, 이른바 사람의 종합적 역량과 서사에 의해 심사위원들은 심사숙고에 빠졌다. 우리가 ‘건축가’로 정해 놓은 심사 대상의 총체에 그들이 편집해 보여주는 이미지, 텍스트 너머 건축가의 정신도 포함된다면 그건 감히 기성 건축가가 어떻게 짐작하겠냐마는 심사위원들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려고도 애썼다.”
2008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다
‘젊은건축가상’을 처음 도입한 것은 2008년이다. 첫해에는 김동진(로건축사사사무소), 신승수(오즈 건축사사무소), 임도균, 조준호(건축사사무소 루연), 유석연(경간도시디자인건축사사무소), 김정주, 윤웅원(제공건축) 건축가 등 5개 팀이 수상했다. 올해 16회를 맞기까지 그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한 건축가들은 현재 한국 건축계에서 대들보 같은 존재로 활약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건축가상 주인공은 누구인가. 2023년 젊은 건축가상의 수상자로 김영수(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 김진휴, 남호진(건축사사무소 김남), 서자민(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등 3개 팀, 4명이 선정됐다.
젊은 건축가상은 영화계와 비교하자면, ‘신인상’과 비슷하다. 평생 한 번만 받을 수 있고 못 받아도 어쩔 수 없지만 수상하면 영광스러운 상이다. 올해 도전했지만 안되면 상을 받을 때까지 몇 년간 도전해도 무방하다. 올해는 46개 팀이 지원했고 1차 서류 심사를 통해 8팀을 최종 후보에 올렸다. 최종 후보에 오른 8팀은 심사위원과 관객이 참석한 상태에서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각 후보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발표한 후 이를 두고 심사위원들의 코멘트와 질문이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이 공개심사 영상은 젊은 건축가상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 이를 본다면, 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는 이들인지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순도 높은 건축가 집단의 등장
이민아 심사위원장은 올해 지원자의 공통 특징으로 “아직은 건축설계만이 가장 재미있는 순도(?) 높은 건축가 집단의 등장”을 꼽았다. 건축뿐 아니라 도시, 설치, 전시, 출판, 가구 등 건축 밖으로 시선을 확장한 건축가들이 다수 등장했던 시기와 달리 올해는 건축 설계 자체에 집중한 건축가들이 많았다는 평이다. 또 작업을 서술하는 면에서도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거창하고 모호한 관념론이 아니라, 건축주를 어떻게 만나 어떤 각별한 과정을 거쳤는지를 소박한 문체로 길게 나열하는 설명 방식”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결점이 드러났는데, ‘필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텍스트가 비문일 경우 보여주는 것 전반에서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건축설계와 글쓰기는 주제, 구조, 공간, 디테일을 다 갖추고 있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고, 특히 건축가를 선정하는 상이라 사유가 언어로 옮겨지는 단계에 개인적으로 큰 관심을 두었다.” 건축가상에 도전하는 건축가(혹은 좀 더 다양한 설계를 해보고 싶은 건축가) 라면, 이 부분을 눈여겨보는 것이 좋겠다. 사유를 언어로 옮기는 단계 또한 건축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 평가한 것이다. 자신의 작업을 글로 잘 표현하고, 나아가 이를 유창한 말로 대중과 소통한다면 건축가로서 좀 더 많은 설계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2023 젊은건축가상 심사평
이민아 심사위원장을 중심으로 건축가 김동진, 양수인, 이규상, 정웅식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공개된 심사평 중에서 양수인 심사위원, 이민아 심사위원장의 평을 중심으로 각 후보 작업을 소개한다. 양수인 심사위원은 1차 심사를 하며 자연스레 지원자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별로 눈에 띄는 팀을 찾았다고 밝혔다.
1 규격화 이전의 상태
‘젊은’을 벗어난다는 것은 노련해진다는 의미다. 숙련되어 효율화된 소위 기성 건축가가 안정되게 사무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규격화(라고 쓰고 보수화라고 읽는다) 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어떤 지원자들에게는 아직 자신만의 규격이 정립되어 있지 않기에 자연스레 새롭고 신선한 해법을 탐구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젊은 건축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2. 일관성 있는 방향
몇 개의 작업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지원자가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를 심사하는 것이기에 발표장에서 보이는 포트폴리오 이전의 작업도 꼼꼼히 찾아보았다. 다양한 건축 및 대중매체, 사무실의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발표된 작업을 살펴보았을 때, 일관성 있는 건축관을 갖고 작업을 하며, 수년간 지속 가능하게 사무실을 운영해오고 있는 팀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기에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3. 완성도 높은 결과물
‘젊은’이라는 가산점을 주고 평가하지 않더라도 작업과정과 결과물의 완성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팀은 특별히 다른 기준이 필요치 않았다.
서자민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모 따 기 99 ARCHIVED MASS ORDINARY LIBRARY TIME WALK 돌집 2016 재.해.석 2019 여차창고 PROPOSAL
서자민은 2017년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고, 대표 건축가로 건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연세대학교 건축학과와 UPENN 건축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및 원오원아키텍스에서 실무를 쌓았다. 대한민국 건축사이고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설계 스튜디오를 맡고 있으며, 2023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였다. 아지트스튜디오의 건축은 좋은 질문을 만드는 것과 상황에 대한 고유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건축가 허근일은 객원 파트너로 작업과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타 수상자에 비해 지금까지 실현한 건축물의 양이나 개별 작업의 완성도는 조금 부족할 수 있지만, 서자민 건축가가 작업 및 공개심사에서 보여준 자신감과 패기, 건축을 대하는 진중하면서도 유연한 자세, 명확하고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이 상을 통해 발굴하고자 하는 젊은건축가의 모습을 가장 정확히 보여준다. 앞으로의 성장이 가장 기대되는 수상자이다.
양수인
문제적 도시 현상을 설계 의도를 생성하는 결정적 단서로 단호하게 포섭한다. 그리고 곧장, 너무 ‘기본적’이라 질문을 게을리해왔던 문제들, 덩어리, 구축, 비움, 양감, 질감, 형태들의 개념을 향해 즐겁게 공격하며 설계로 이행한다. 심사위원 보기에 즐겁고 과감한 결정일 테고, 정작 서자민 본인에게는 유희도 시도도 아닌, 기본의 기본에 천착하는 내면의 본능적 씨름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질문에 대한 명료한 입장을 제시하는 작업 과정은 젊은 건축가의 고유한 내러티브를 넘어 기성 건축계의 어쩌면 빈궁한 담론에 반한 원초적 물음을 던진다. 특유한 조형성을 못생김의 미학으로 언어화하여 집착을 덜어내는 태도는 건축가 내면에서 충돌하는 논리와 형체의 간극을 보여준다. 건축가의 직관적인 미감이 건축물 형태에 마지막으로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고 어쩌면 소위 완성도라 일컫는 지점을 끝내는 무기가 될 텐데, 미학적 측면엔 초연했다는 발언은 아쉽다. 어떤 면에서 가장 감각적인 화면의 포트폴리오를 제출한 지원자로 젊은 건축가에게 시대가 기대하는 덕목에 이 또한 결코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민아
김진휴 남호진 건축사사무소 김남
건축사사무소 김남은 김진휴와 남호진이 운영하는 설계사무소입니다.
김진휴와 남호진은 각각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및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 후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스위스의 Herzog & de Meuron를 비롯한 여러 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수련한 뒤, 건축사사무소 김남을 운영하고 있다. 삶의 이야기가 담긴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고자 한다.
어떤 것들은 한참 보아야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데, 김남이 걸어온 건축의 길이 그러하다. 김남의 건물에 녹아 있는 사용자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는 때로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섬세한 재료의 사용이나 합리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구조적 해법은 화려한 외관보다 알아채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아름다움이라 부르는, 단순한 예쁨을 넘어서는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의 건축에는 연륜에서 나오는 깊이와는 다른 젊은 깊이가 있다.
양수인
건축에서의 아름다움을 심사에서 질문했고 답을 들었다. 이 일이 벌어진 것만으로 두 사람 건축은 의미 있다. 추천 아닌 자천으로 참가하는 상의 성격상 고도의 자기 예찬 전략이 필수라면 두 사람은 별로 신경을 못 쓴 듯 도리어 모두가 회피하는 건축의 아름다움을 읊었다. 아름다움이 좁은 문을 통과하는 적확한 구조와 치밀한 기술적 해결, 엄격한 시각적 완성도에 의지하는 개념임을 환기시키면서도 표피적이고 관성적인 결정은 끼어들 틈 없음을 강조한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정의하고 치열하게 구조화하여 시공자의 수고, 사용자의 기쁨, 건축가 스스로의 검열이 동반될 때 비로소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에 당도했음을 성찰하는 태도로 ‘결국 건축가는 무엇에 헌신하는 사람인가’의 질문을 강력히 던지고 있다. 두 사람의 건축은 인간과 주변을 사색하는 일에서 시작하여, ‘아름다움’ 보다 실은 훨씬 어려운 ‘윤리적’ 건축의 실천을 위해 부단히 노력 중임을 목격했다.
이민아
김영수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
인하대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프랑스 건축사회 11th 쟝 프루베 & 김중업 Scholarship 선발되었다. ㈜해안건축, ㈜원오원아키텍츠, 파리 DPA(Dominique Perrault Architecture) 등에서 다양한 규모에 프로젝트로 실무를 쌓았다. 현재 모어레스건축사사무소 대표이며 인하대학교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모어레스건축사사무소의 작업은 급변하는 현시대에 명상적인 태도로 공간을 바라보며 실용적인 건축 속에서도 무용한 가치와 낭만이 깃든 경험의 공간을 찾아가고 있다.
젊은 건축가 다운 에너지와 집요한 태도뿐 아니라 계획 및 실현에 있어서 높은 완성도의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건축적인 방법론 뿐 아니라 앞으로 건축가로서의 성장에 있어서도 자신의 강점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방향성이 엿보이는 바, 지속 가능한 건축사무소를 만들어가고 양질의 작업을 계속해서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양수인
재료 본연의 성질, 건축 요소의 자리, 사물과 공간의 관계 등 건축 본질에 대한 집요한 탐색과 사유 과정이 건축가 개인의 지적 감수성 intellectual sensitivity에서 비롯된 태도를 넘어 젊은 건축가 상의 당대성과 미래적 역할에 방향타가 될 만한 유의미한 모습으로 전달됐다. 심사를 하면서 과연 이들에게 건축이 고통스럽지 않고 즐겁다면 지속 가능한 내적 영역이 강건하게 있는가를 추측해 보았고, 대표적으로 김영수가 그랬다. 엄격하게 조정한 공간의 형태, 재료의 두께, 빛의 강도를 현장에서 섬세하게 통솔하여 완성도 높은 건축물로 실현해가는 과정 속에 건축가 특유의 오기와 환희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비평이 즐겁고 균형 있게 자리 잡혀 있음이 엿보였다. 특별히 ‘단면적 공간’을 지극히 신중히 해결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난 것은 본질론에서 이미 멀리 떠나있는 채, 건축의 힘듦에 대한 궁색한 핑계거리들로 보호받고 싶어 했던 기성 건축가로서 행운이다. 심사위원들은 전원 일치로 김영수를 올해의 주목할 건축가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