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혁신상 현대카드
제품과 공간의 범주까지 카드 디자인을 확장한 현대카드의 최근 프로젝트를 통해 앞으로의 브랜딩을 가늠해본다.
브랜딩을 향한 현대카드의 과감한 행보
이제 카드는 단순히 금융 상품이 아니다. 현대카드는 제품과 공간의 범주까지 카드 디자인을 확장했다. 현대카드의 최근 프로젝트를 통해 앞으로의 브랜딩을 가늠해본다.
현대카드의 철학과 페르소나를 응집한 공간
현대카드에게 공간은 브랜드가 한발 더 나아가도록 돕는 넉넉한 거름이자 토양이다. 지난 9월 출시한 책 〈더 웨이 위 빌드〉는 현대카드의 공간 아카이브를 기록한 결과물로 기업의 사사社史 성격을 지니는데도 품귀 현상이 벌어져 브랜딩 역량과 파급력을 입증했다. 완성도 높은 공간 프로젝트는 금융계는 물론 건축과 디자인계에도 귀감이 된다.
Interview
안성민 현대카드 디자인랩 실장
“트렌드는 끊임없이 바뀌고 그것을 소개하는 채널도 계속해서 변화하지만
우리는 소비의 큰 축이 어디서 형성되는지 항상 파악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지난해부터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난 디자인으로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다.
2019년 현대카드 다빈치모텔에서 정태영 부회장님의 탈미니멀리즘 선언이 있었다. 미니멀리즘은 굉장히 까다로운 디자인이지만 비겁하고 안일한 디자인의 도피처이기도 하다. 카피당하기도 쉽고 자칫 변별력이 없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과 헤어지는 게 정답만은 아니다. 이후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찾아야 했는데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이론을 제시한 로버트 벤투리로부터 단서를 얻었다. 모던 건축을 벗어던지고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로 자신만의 독특한 결과물을 구축한 그가 했던 말 “Less is a Bore”는 정형화된 아이덴티티에서 벗어나 풍부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디자인랩의 뜻과 맞닿아 있었다.
디자인 방향성이 바뀐 이후 처음 출시한 카드는 디지털 러버다. 기존과 달리 카드 하나에 콘셉트가 4개였다. 단일 상품이지만 다양한 디자인 선택권을 주었고 이 형식은 PLCC까지 연결되었다. 이전의 현대카드가 다소 일방향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태도를 취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채널에서 수시로 소통하는 환경에 맞춰 대중의 기호를 존중한다.
PLCC를 연이어 출시하며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린 행보는 사뭇 공격적이었다. 타 브랜드를 디자인하며 막막함과 어려움도 느꼈을 텐데.
세상 그렇게 힘든 일이 없었다.(웃음) 카드가 10개면 10개 다 제각각 다른 이유로 어려웠다. PLCC는 타 브랜드의 ‘A to Z’를 파악해 스스로 미처 몰랐거나 알더라도 여건상 시도하지 못한 것, 혹은 마음으로만 갈망해오던 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두 회사의 공통분모도 중요하지만 서로 다른 면모와 장점을 이끌어낼 수 있을 때 시너지가 극대화된다. ‘1+1=2’가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도출해야만 했는데 디자인랩에서는 마치 ‘1+1=바나나’라는 뜬금없는 공식처럼 완전히 색다른 결과물을 탄생시키고자 했다.
최근 카드 시장의 지상 과제는 MZ세대를 선점하는 것이다. 젊은 층을 공략하고자 시도한 변화가 있다면?
MZ세대의 기준이 사회생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젊은 소비층이라면 그들은 늘 우리의 타깃이었다. 카드에 따라 페르소나가 다르지만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젊고 감각적이고 안목 있는 30대다. 그래서 MZ세대의 등장이 우리에게는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트렌드는 끊임없이 바뀌고 그것을 소개하는 채널도 계속해서 변화하지만 우리는 소비의 큰 축이 어디서 형성되는지 항상 파악하고 있다. 물론 소비자들은 최근 현대카드의 이미지를 조금 새롭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 방식과 프로세스는 예전부터 고수해오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하나부터 열까지 좀 더 철두철미하게 점검한다고는 할 수 있겠다.
현대카드 디자인랩만의 차별화된 디자인 프로세스는 무엇인가?
문제나 목표를 정확하게 파악하거나 설정한 뒤 디자인한다. 물론 어느 디자인 조직이나 이런 프로세스를 밟겠지만, 우리는 이를 굉장히 구체적인 언어로 정의한다. 카드 색상만 보더라도 인플루언서를 위한 것인지, 크리에이터를 위한 것인지, 비주류 마니아를 위한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어디에 붙여놓아도 말이 될 법한 모호한 표현은 지양한다. 현대카드를 보고 도발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다. 사실 브랜드는 무형에 가깝지 않나. 그것을 유형의 결과물로 표현한 BI 디자인을 브랜드라고 할 순 없다.
그보다는 어떤 어투로 이야기하는지, 누구와 관계를 맺는지 머릿속에 한눈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넘어 행동과 태도를 포괄하는데 우리의 강점은 이것을 동일한 어투로 일관성 있게, 그리고 치밀하게 지속한다는 것이다.
류수진 현대카드 브랜드본부 본부장
“카드 하나를 출시할 때마다 기획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본부 전체가 하나의 팀처럼 움직인다. 상품 론칭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를 만드는 셈이다.”
올해 현대카드의 가장 주요한 전략은 무엇이었나?
내부에서 본업과 비본업이라 일컫는 영역이 있다. 카드사로서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가 본업이라면 컬처, 라이프스타일로 대변되는 활동은 비본업인 셈이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본업에 집중해 디자인과 브랜딩 역량을 발휘하고자 했다. 빅 브랜드와 협업한 PLCC를 계기로 그 힘을 더 증폭할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탈미니멀리즘 이후 진일보한 변화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또 브랜드 자산을 돌아보며 그것을 정비하고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현대카드 다이브, 〈더 웨이 위 빌드〉 등 브랜딩 영역에 따라 이를 담는 그릇은 다르지만 데이터베이스를 쌓는 작업에 힘쓰고자 했으며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축적된 브랜드 헤리티지는 결국 그 자체로 하나의 알고리즘이자 플랫폼이 되어 강력한 존재감과 파급력을 지닐 것이다.
MX 부스트 출시와 동시에 MX 부슷템을 선보였을 때 디자인과 브랜딩 역량이 회사 전체에 포진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MX 부스트는 카드 플레이트를 사용할 때뿐 아니라 먹고 입고 공간을 경험하며 오감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브랜드다. 카드 사용자만 경험할 수 있었던 현대카드 디자인을 누구나 체험 가능한 제품과 공간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제 카드 하나를 출시할 때마다 디자인과 브랜딩 역량이 총체적으로 투입된다. 상품 론칭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거의 브랜드 하나를 만드는 셈이다. 지난해 이를 시험해봤다면 올해는 물이 올랐다고 할 수 있다.(웃음) 그동안 본업과 비본업으로 브랜딩 영역을 구분하며 세상이 이원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정제된 디자인에 갇혀 있기도 했는데, 브랜드가 변화를 맞이하는 시점과 동시에 이런 갈급함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최근 구성원 모두가 합의한 성공 프로젝트를 하나 꼽는다면?
멀티 플레이트 디자인과 충실한 본업에 대한 니즈가 내부적으로 있었는데 탈미니멀리즘을 시작으로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출발선에 대한항공카드가 있었다. 정통성이 있는 국적기인 만큼 브랜드를 다양하게 변주해 현대카드 방식대로 페르소나를 입히는 일은 그야말로 도전에 가까웠지만 다행히 멀티 플레이트 디자인도, 광고도 모두 반응이 좋았다. 이 성공의 경험 덕분에 PLCC 후속작도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브랜드의 개별 프로젝트가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사례는 많지만 기업 차원에서 상을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현대카드에게 이번 기업가치혁신상은 어떤 의미인가?
현대카드 브랜드본부에서 17년을 일했는데 작년과 올해 가장 많은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상품 하나를 준비할 때마다 우리는 기획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본부 전체가 하나의 팀처럼 움직여야 한다. 특히 20종이 넘는 카드를 출시하는 동안 각 상품마다 평균 5개의 플레이트를 만들었기 때문에 디자인 르네상스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은 처음이기도 하고 노고를 인정받은 것 같아 의미가 정말 남다르다. 현대카드의 브랜딩이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정태영 부회장님은 “그래도 본업에서 역량을 발휘할 때 가장 파워풀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결실을 가장 잘 보여준 한 해였다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