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그래픽의 부상

한국 디자인계에서 하나의 기조로 자리 잡은 레트로풍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레트로 스타일은 여러 세대의 디자이너와 디자인 회사의 손길을 거치며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됐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레트로풍의 키치적 표현을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삼았고 기업들 역시 레트로를 앞세운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디자인 저술가 전가경의 글은 그래픽 디자인, 특히 타이포그래피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레트로의 흐름을 짚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레트로 그래픽의 부상

2000년대 중반 들어 고개를 들기 시작한 레트로풍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디자인은 이제 한국 디자인계에서 하나의 기조로 완전히 자리 잡은 모습이다. 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2000년대 말 붕가붕가레코드의 수석 디자이너 김기조가 선보인 레터링 작업(비록 이를 온전히 레트로로 보긴 어렵지만)은 당시 젊은 그래픽 디자이너들 사이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수공업 소형 음반사를 지향하던 붕가붕가레코드는 크래프트지에 레터링을 입힌 라벨지를 부착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1970년대 말 폴라 셰어Paula Scher의 CBS 레코드의 아트 디렉터 시절을 연상시킨다. 제한된 예산에서 효과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던 폴라 셰어의 상황이 2000년대 말 국내 인디 음반사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젊은 타이포그래퍼들을 중심으로 그 옛날 도안사나 소위 간판장이의 글자를 모방한 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기도 했다.1) 이후 그래픽 디자인계에서 레트로 스타일은 여러 세대의 디자이너와 디자인 회사의 손길을 거치며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됐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레트로풍의 키치적 표현을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삼았고 기업들 역시 레트로를 앞세운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디자인 저술가 전가경의 글은 그래픽 디자인, 특히 타이포그래피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레트로의 흐름을 짚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혹은 북한 서체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 나오기도 했다.

역사 속 타이포그래피의 복고 현상

좁게는 타이포그래피, 넓게는 그래픽 디자인에서 ‘옛 제도나 모양, 정치, 사상, 풍습 따위로 다시 돌아감’을 뜻하는 ‘복고’는 낯선 게 아니다.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현재는 언제나 참고된 과거의 일부이거나 변형이다. 18세기 서양에선 손글씨를 참고한 타이포그래피가 발전했다. 캐슬론, 바스커빌이 대표적이다. 이후 19세기의 보도니와 디도는 바스커빌을 기초로 획 대비가 강한 서체로 태어났다. 엘런 럽튼Ellen Lupton의 말대로 이 흐름은 ‘캘리그래피로부터 떨어져서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비전을 열어준’ 사건이었다. 윌리엄 모리스 또한 산업혁명에 반대하며 과거의 공예 정신을 상기시키는 복고를 감행했고 에드워드 존스턴Edward Johnston이 다시 이 정신을 이어받아 더 오래된 과거인 중세 시대를 글자로 소환했다. 물론 전통에 대한 참고가 항상 지배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파울 레너, 헤르베르트 바이어, 얀 치홀트 등 20세기 초반의 타이포그래피 개혁자들은 반역사주의적 태도를 취했다. 전통주의와 개혁주의의 노선이 공존했고 타이포그래피에서 전통으로의 회귀나 복고주의적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5세기 훈민정음 창제 이후 전개된 한국의 타이포그래피도 예외일 순 없다. 탈네모꼴이 전위적 한글을 대표한다면, 본문용 서체로 군림하고 있는 명조체는 붓글씨를 기반으로 한다. 과거는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인용 혹은 반동의 대상이자, 근미래의 방향 전환을 위한 판단 기준이다. 몇 가지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난 몇 년간의 타이포그래피 혹은 그래픽 디자인의 특정 흐름을 ‘복고’ 혹은 ‘레트로’라고 뭉뚱그린다. 개화기나 일제강점기 혹은 1970~1980년대를 상기시키는 굵은 획의 정방형 글자, 그리고 이와 결탁한 ‘00상점’, ‘00여관’, ‘00당’ 등의 네이밍은 특정 시대를 적극 소환한다는 측면에서 복고이다. 몇 년째 디자인·미술 분야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독차지하고 있는 손글씨 및 캘리그래피 교본들 또한 이러한 복고 열기와 무관하지 않다. 최소한 지금 이 시점에서의 복고는 디지털 시대 이전의 아날로그 감성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현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과연 섬세한지 물어본다면 대답은 부정에 가깝다. 일단 ‘복고’라는 항목에 넣을 수 있는 타이포그래피 아이템을 열거해보자. 크게는 레터링과 폰트로 구분할 수 있다. 한글 레터링의 전성기는 1980년대였다. 급변하는 사회상을 글자로 담아내기에 당시 사용했던 납활자와 사진식자는 한정적이었다. 당시 잡지사나 신문사 일을 하던 수많은 익명의 디자이너들은 좀 더 풍부한 표정의 글자를 표현하고자 직접 글자를 도안했다. 1950~1960년대 한글 레터링의 특징이 정제되지 않은 날카로움이라면, 1970년대 후반부터 전개된 글자 도안은 ‘작도’에 힘입어 보다 현대적 풍채를 지니게 된다. 당시 레터링은 일종의 반동이었다. 글자라는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김진평, 이상철, 서시철 등의 디자이너는 레터링으로 글자를 제작했다. 한글 레터링의 전성기는 글자 자원의 고갈 앞에서 디자이너들이 개척해나가야 했던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의 지평이다. 물론 독재 정권이라는 정치적 배경만큼이나 당대 레터링이 담아낸 메시지 또한 상하 위계질서의 조형적 상징이긴 했다.

21세기형 레트로

레터링의 새로운 부활은 2008년 김기조가 진행한 인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 레터링 작업과 결부된다. 복고적 성향이 강한 ‘장기하와 얼굴들’에 어울리는 글자로 김기조는 1970~1980년대를 연상시키는 레터링을 디자인했다. 이후 그는 자기 주도적 차원의 문장형 레터링을 선보이며 한글 레터링 작업을 전개했다. 많은 이들은 그의 타이포그래피를 ‘복고’ 혹은 ‘레트로’와 연결시켰고 유사한 작업이 성행했다. 그러나 이는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음악 밴드와의 협업으로 인한 일종의 착시 현상이었다.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음악 신이 레트로 열풍을 앓고 있을 때였다. 김기조는 복고적 음악에 어울리는 타이포그래피로 화답했다. 막상 그가 선보인 자기 주도적 레터링은 반복고적이었다.

김기조 타이포그래피의 묘미는 조형적 복고성 이면에 담아낸 메시지의 반전 효과에 있다. 조형적으로는 복고적 형식을 차용했으나, 88만 원 세대의 시니시즘(냉소주의)이 유쾌하게 반영된 새로운 레터링이었다. 거기에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없었다. 문제는 이에 대한 수용과 분석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식 출시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양장점의 펜바탕체에 대해서도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펜바탕체를 복고의 범주에 넣기엔 무리가 따르는데, 기존 붓글씨 기반의 본문용 서체 환경을 넘어 펜 기반의 본문용 서체를 개발했다는 배경 때문이다. 펜바탕체는 분명 손글씨 및 캘리그래피 교본 그리고 컬러링북의 요란스러운 인기를 연상시키는 아날로그의 기운이 물씬 풍기지만, 필기구의 다양성 측면에서 본문용 폰트를 평가할 때 ‘복고’라는 이름으로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반면 표면적으로는 과거의 레터링 조형을 취하고 있지만 특정 시대를 노골적으로 소환하는 폰트 회사들의 다양한 복고 폰트가 있다. 산돌은 2014년 격동고딕체, 단팥빵체, 광야체를 시작으로 2015년 개화체, 별표고무체, 격동굴림체, 국대떡볶이체, 2016년 격동명조체, 크림빵체, 시네마극장체, 그리고 2017년에는 로타리체, 프레스체, 청류체 등 다양한 복고 폰트를 야심 차게 내놓았다. 각 서체는 특정 시대를 명료하게 소환한다. 배달의민족에서 무료 배포하는 한나체와 도현체도 이 흐름에 가세한다. 네이밍도 특정 시대를 연상케 하는 데 한몫한다. 미쓰리체, 장미다방체, 옛날목욕탕체 등으로 목록이 이어진다. 이는 전형적 복고이다.

섬세한 집도가 필요한 복고 현상

‘복고’라는 용어로 눈에 드러나는 현상을 기술하기 이전에 과거를 인용, 차용, 소환하는 방식의 다양성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이 현상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한글 서예의 전통을 이어온 손멋글씨 혹은 캘리그래피가 복고로 지칭될 수 있는 문화 현상에서 누락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복고라는 이름하에 호출되는 특정 과거와 조형이 있음을 반증한다. 해외에서 ‘레트로 타이포그래피’가 보다 광범위한 시대에 걸쳐 논의된다는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 전 세계적 레트로 현상을 팝 음악 신에 한정 지어 논한 사이먼 레이놀즈의 표현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복고는 ‘보존주의 운동’ 혹은 ‘고풍 조작 운동’인가? 이에 열광하는 자는 ‘과거주의자’인가? 이에 열광하지 않는 자는 그럼 ‘미래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는가? 복고의 윤곽을 성급하게 그리기 이전에 현상을 기술할 수 있는 섬세한 용어들이 나와줘야 할 것이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77호(2018.03)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