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락타트, 철학은 어떻게 ‘힙’한 패션 브랜드가 되었나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과 같은 옷

책과 철학을 좋아해 스스로 성공한 ‘덕후’라고 말하는 트락타트의 석관동 사무실을 찾았다. 철학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디자인하는 트락타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트락타트, 철학은 어떻게 ‘힙’한 패션 브랜드가 되었나

철학은 삶의 무기도 되고, 패션도 된다. 트락타트는 언뜻 개성 강한 요즘 세대의 패션 브랜드처럼 보인다. 눈으로 레이저를 쏘는 프란츠 카프카의 얼굴과 대면하면, 아마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그마한 궁금증과 함께 이들의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 파도처럼 덮쳐오는 철학가들을 마주하게 된다. 트락타트는 대학교에서 함께 교지를 만들고 철학 강독을 하며 휴일이면 빈티지 숍을 구경하던 남아름, 이재영, 조수근, 세 사람이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이다. 발터 벤야민이 제안한 철학적 글쓰기 형식인 ‘트락타트(Traktat)’를 앞세워 2022년 브랜드를 시작했으며, 지난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문학동네와 협업한 세계문학전집 대표 작가의 티셔츠로 화제가 되었다.

Interview

남아름, 이재영, 조수근 트락타트

철학과 철학가로 엮은 옷

트락타트는 어떤 브랜드인가?

남아름 트락타트는 “책과 같은 옷을 만듭니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읽는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들고 있는 패션 브랜드이다. 나와 재영은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정치철학을 전공했고, 수근은 러시아어 문학과를 나와 기자로 일했다. 이렇게 3명이 현재 트락타트를 운영한다. 우리가 읽고 쓰는 것을 직업으로 했다 보니 읽는 사람들을 위한 한 권의 ‘양장본 같은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재영 ‘트락타트(Traktat)’는 독일어로 논문이라는 뜻인데, 우리는 발터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가져왔다. 트락타트는 여러 인용과 메모로 이루어진 철학적 에세이의 형식으로, 쉽게 이야기해 별개의 이야기들이 모여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트락타트를 브랜드 이름으로 삼은 것은 각각의 옷이 하나의 이야기고, 그것들이 모였을 때 성좌적 배열(각 요소가 별자리처럼 배치되어 파악되는 것이며 〈독일 비애극의 원천〉의 서술구조를 의미하기도 한다)을 이루길 바랐다. 한마디로, 철학적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었다. (웃음)

칼 마르크스 투어 티셔츠
그 ‘뭔가’가 왜 옷이었나? 패션에도 관심이 있었나?

조수근 우리 세 사람 다 옷을 좋아했다. 휴일에 동묘 등지의 빈티지 숍에 가서 옷 구경하는 게 주된 콘텐츠였다.

남아름 시간 연대기로 정리해 보면 우리 셋이 세미나를 하고 〈독일 비애극의 원천〉 원전 강독을 할 때 내가 벤야민 티셔츠를 만들었었다. 우리 모두 그 티셔츠를 애정 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두 사람은 대학원을 갔다가 트락타트를 먼저 시작하고, 한 사람은 기자 생활을 하다 합류한 것이다.

조수근 우리 옷이 책과 관련이 많다. 아름이 교지 편집 디자인을 도맡아 했는데, 그러면서 디자인 실력이 많이 늘었다.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벤야민 티셔츠도 디자인하게 됐던 것 같다.

제품 기획, 디자인부터 생산, 판매까지 모든 영역을 총괄하고 있다. 각각 조금 더 특화된 분야가 있는지 궁금하다. 아름 대표님이 모든 디자인을 담당하는 것은 알고 있다.

이재영 패턴을 만들고 생산하고 기타 잡일을 한다.

조수근 일단 직함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데, 시즌에 따라 방향성을 제안하고 실루엣이나 소재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낸다. 근본적으로 트락타트는 패션 브랜드이기 때문에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부분도 많이 신경 쓰려고 한다.

트락타트 스태프 해링턴 자켓 블루블랙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과 같은 옷을 만든다.” 여기에서 묻고 싶은 게 많다. 트락타트 웹사이트 소개에도 적혀 있는 문장인데, 처음부터 특정 대상을 염두에 두고 브랜드를 시작한 것일까?

이재영 처음 시작할 때는 대상이 그냥 우리였다. ‘안 팔려도 좋다, 평생 입을 티셔츠를 한 번에 산다면 이 정도 가격일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만들었거든. ‘우리’는 책을 좋아하고 대학원에서 노동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필요했던 건 공부를 위한 작업복이다. 대학원 생활을 하며 이렇게 공부를 노동처럼 하려면 정말로 편안하고 기능성 있는 작업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땀 흘리며 활동하는 건 아니지만, 공부가 그에 못지않은 강렬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남아름 도서관, 서재, 연구실에서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을 위한 옷, 긴 시간 앉아 있는 사람을 위한 옷. 그러니까 ‘책상 노동자’로서 제대로 된 작업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옷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옷을 입을 사람으로서 ‘독자’를 생각한다. 실루엣, 재질, 색채에 있어서 책을 읽는 활동을 하는 사람에 집중해 디자인하고, 읽는 행위는 성별에 무관하기 때문에 트락타트는 젠더프리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지닌다.

사실 트락타트의 그래픽 티셔츠가 너무 인상적이라 실루엣이나 구조의 디테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입었을 때의 불편함을 반영해 바꾼 것은 무엇인가?

이재영 나는 팔꿈치로 책상을 쳐서 ‘찡’ 하고 전기가 오를 때가 많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 팔꿈치 부분에 천을 한 겹 덧댔다. 또 일반적인 루즈핏에 비해 상의 기장이 짧다. 매일 앉아 있으면 밑단이 심하게 구겨져서 총장을 조금 줄였다. 우리 옷은 진짜 앉았을 때 예쁘다.

남아름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은 ‘유틸리티(Utility)’다. 패션에서 유틸리티란 말 그대로 실용적인 기능을 중심으로 장식을 배제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을 말한다. 우리 또한 활동을 제한하는 실루엣, 낭비적인 주름 등을 배제하고 단순한 디자인과 뛰어난 기능성, 직관적인 주머니, 활동성을 강조한 편안한 실루엣을 지향한다. 티셔츠와 롱슬리브, 스웨트 셔츠, 후드티 등 상의류의 앞면 프린팅과 비교적 짧은 기장감도 마찬가지고.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트락타트를 입나? 읽는 사람, 노동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은 너무 한정적일 것 같다.

이재영 정확하게 우리가 생각했던 분들이 많이 구매해 주신다.

조수근 최근에는 인지도가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연이 확장되는 것 같다.

이재영 슈프림(Supreme), 팔라스(Palace) 같은 브랜드는 스케이트 보더를 위한 건데 멋있으니까 모두가 입는다. 멋있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생각보다 우리 옷을 입고 공부하면 멋있다. (웃음) 최근에 이런 구매평이 올라왔다. “저는 카프카를 하나도 모르는데 이 티셔츠를 입고 카프카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보면서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책과 같은 옷’은 어떤 의미인가?

이재영 교지를 만들던 우리가 옷을 만드는 과정에 뛰어들어 보니, 이 둘이 거의 흡사했다. 표지를 디자인하는 것, 종이 고르는 것과 원단 고르는 것, 바인딩과 봉제, 그리고 쇄를 거듭한다는 개념도. 옷도 150장, 200장씩 만들고 책처럼 증쇄할 수 있다. 책과 같은 옷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책은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몇 안 되는 오브제다. 역사적으로는 2~3천 년간 지속되었고, 앞으로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완성된 형태의 사물이다. 나는 완성된 걸 쫓아가고 싶다. 그만큼 대단하고 완벽한 게 있는데 따라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라벨 디자인
옷의 디테일에도 책의 요소가 녹아 있다.

남아름 옷의 기본 DNA를 책과 융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처음 라벨 디자인을 시작했다. 모든 책에는 도서 정보가 적힌 페이지가 있다. 언제, 누가 출판했는지, 지은이와 엮은이까지 전부 다 적는다. 옷에서는 이것이 라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판과 쇄, 날짜를 넣었다. 케어라벨 같은 경우에는 ‘Ex-libris(책의 소장자라는 의미)를 넣었고, 목 뒤쪽 부분에 책 표지에 출판사를 넣는 것처럼 자수로 로고를 새겼다.

이재영 책은 꽂아만 놓아도 예쁘다. 그 책을 꺼내서 읽을 때의 느낌이 또 다르고. 옷장에 많은 옷이 있을 텐데, 그중 우리 옷을 꺼내 입었을 때 책처럼 무언가 읽는 경험을 주고 싶기도 했다.

24 S/S ‘In Search Of…’ 컬렉션 북룩 (룩북이 아니라 북룩이다.)
트락타트는 시즌제로 제품을 전개한다. 그 방식과 제품 라인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달라.

조수근 일 년을 S/S, F/W 두 시즌으로 나눠서 진행하고, 시즌별 주제가 있다. 이번 24 S/S 시즌을 예로 들면 ‘In Search Of…’가 주제였다.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탐구심, 상상력, 호기심을 옷에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 출시한 옷에 도전이 많다. 크롭 티셔츠, 프린팅 재킷과 청바지도. 이렇게 옷이 제작되면 룩북 촬영을 하고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다. 시각적 요소도 중요하기 때문에 스타일링과 로케이션, 촬영, 편집에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할애한다. 룩북 이외에 스냅샷도 많이 찍는다. 그리고 라인은 티셔츠를 분류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재영 우리가 2~3년차에 접어들면서 실력이 늘고 생산할 수 있는 범위 자체가 넓어졌다. 기존에 제작한 옷들이 징검다리가 돼서 그 옷과 어울리는 옷들도 계속 만들고 있고, 주제를 정할 때 이전 시즌의 옷과 주제를 염두에 두고 정한다.

발터 벤야민 티셔츠
트락타트의 첫 디자인인 발터 벤야민 티셔츠가 여전히 가장 인상적이다. 사상가의 초상으로 티셔츠를 만들고 눈에 붉은빛까지 더한 이유가 궁금하다.

남아름 일단 내가 어려운 이론서를 읽을 때 작가의 얼굴을 찾아보는 습관이 있었다. 얼굴을 보면서 그 사람은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 만나서 대화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며 친밀해지려고 노력했다.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작가들의 눈빛은 정말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벤야민의 티셔츠는 진지하게 철학 공부를 시작했던 시절, 벤야민을 더 잘 읽기 위해 만든 것이다. 글을 읽을수록 그의 시선과 글이 비춘 세계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세계는 진창의 폐허라, 사실 그의 눈빛은 피눈물 같은 것이었다. 처음 눈에 새빨간 빛을 올린 이유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이재영 지금의 레이저는 보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된 것도 있다. 그러니까 충격을 주고 싶었다. 카프카가 만약 이 시대에 살아나면 레이저를 뿜었을 것이다, 이 상황을 뒤엎고 싶었을 것이다, 니체가 한국에 오면 고질라가 됐을 것이다. 이런 충격을 주고자 했던 마음이 크다.

레이저와 같은 그래픽 요소가 들어가면서 유쾌해진 면이 있다. 처음 담고자 했던 메시지가 희석되거나 사람들이 장난처럼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없었나?

이재영 그걸 의도해서 나온 것이 등판에는 절대 프린팅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등판에만 철학자가 있었으면 그런 비판을 받았을 것 같다. 하지만 옷을 입은 사람의 얼굴과 함께 프린팅을 보게 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절대 우습지 않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 발터 벤야민 행택
그래픽 디자인의 티셔츠에 들어갈 인물을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트락타트의 정체성 같은 인물이 있다면?

남아름 우리는 교과서와 전공책에 박제된 인물들과 오래된 미술 작품들을 동시대적이고 생동감 있는 티셔츠 그래픽으로 불러오고 있다. 트락타트의 그래픽 디자인은 단순히 트렌드만 반영한, 멋있는 그래픽만은 아니다. 작가와 작품을 고심해 선정할 뿐만 아니라 충분한 연구를 거쳐 과거의 이미지들을 현재적 디자인으로 디자인해 생명력을 더한다. 특히 인물들의 초상을 이용한 그래픽은 인물들을 우상화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인다. 또한 입는 사람들에게는 순간순간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제작한다.

이재영 트락타트 행택을 보여주고 싶다. 첫 번째가 프란츠 카프카 행택이었고, 그다음 바뀐 게 발터 벤야민 행택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정체성은 카프카와 벤야민이다. 그리고 잘 모르는 작가를 단순히 유명하고 인기 있다는 이유로 선정하진 않는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디자인하면 100% 티가 난다. 그래서 가끔 구매평이나 DM으로 누구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읽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시간이 걸린다.

알레고리커 북클럽 티셔츠의 정체가 궁금하다. 진짜 북클럽을 운영하는 줄 알았다.

이재영 꿈꾸고 있다. 아마 겨울부터 하게 될 것 같다.

웹사이트와 로고 및 심볼 디자인

트락타트 웹사이트
웹사이트 디자인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다. 카테고리 분류나 주제 등 책으로부터 뻗어 나간 세계관을 충실히 구현했다.

남아름 사실상 형식과 내용이 동떨어질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용적인 것을 형식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게 할까 항상 고민하고,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트락타트의 모토 중 하나가 ‘당신의 도서관이 되겠다’이다. 그래서 해외 도서관 웹사이트를 스무 개 정도 봤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온라인으로 어떻게 옮길까 하는 고민에서 서지 정보를 담았다.

소위 ‘세기말 감성’이라고 하는 1990년대 말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조수근 정확히 세기말 감성은 아니다.

남아름 그런데 세기말 감성이라는 게, 일단 우리가 보는 세계에 아직 전쟁과 기아가 있다. 그런 면에서 세기말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용적으로, 내가 만드는 그래픽이 기술 친화적인 방식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요즘엔 3D 그래픽이 유행인데 우리는, 특히 옷에 넣는 그래픽에는 그런 기술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술 긍정을 하지 않거든. 오히려 오래된 방식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좀 더 빈티지한 감성이 나오는 것 같다.

트락타트 로고
로고와 심볼은 어떻게 디자인했나?

남아름 처음에는 성좌적 배열, 우리가 벤야민 철학에서 배운 것들을 직접적으로 구현해 보고자 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웃음) 그래서 로고 타이포그래피 같은 경우에는, 저기 서가에도 책이 있는데 독일의 출판사 주어캄프(Suhrkamp)가 사용한 폰트를 사용했다. 주어캄프는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의 출판사다. 철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책들만 출판한다. 디자인적으로 폰트만큼은 정말 투자를 많이 하는데, 폰트로 이 감수성을 어떻게 전달할까, 진지하고도 무거운 주제를 명확하고 가독성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이 디자인이 나왔다.

이재영 투어 티셔츠 같은 경우에는 텍스트가 많다. 그럼 폰트를 고르는데 열흘이 넘게 걸린다. 내가 보기엔 똑같은데, 아름은 요리할 때 소금과 설탕을 구분하듯 폰트를 본다.

남아름 대부분의 폰트에는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과정이 있다. 그걸 보면서 적용하려고 한다.

눈이 그려진 심볼에는 어떤 의미를 담았나?

남아름 야코프 뵈메는 알레고리를 구사한 사람이고, ‘분위기론’으로 현대 미학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뵈메의 지각학에서 중요한 것은 메타적인 인지이다. 뵈메는 이를 통해 인간의 신체성과 감성을 회복하려 한다. 눈은 관찰의 의미이고, 그래픽 자체는 뵈메의 일러스트에 등장하는 제3의 눈, 외부에 있는 눈이다.

이재영 그리고 펼친 책 두 권을 합쳐서 책을 관통하는 창문을 하나 뚫어 놓았다. 눈, 책, 창문, 별, 많은 것들이 집약되어 있다.

철학을 디자인에 녹이는 게 흥미롭다. 물론 웹사이트와 SNS의 글들을 보며 철학과 철학자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긴 했지만. (웃음)

조수근 브랜드가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 좋은 방식 중 하나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이 신비주의로 많이 구현되는 것 같다. 텍스트로 설명하기보다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텍스트를 많이 쓴다. 옷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보통의 방식은 아니지만, 정보를 주지 않음으로써 무지가 생겨나고 거기에서 신비주의가 탄생하는 방식은 지양한다. 우리가 철학자의 생일을 챙기고 릴스를 만드는 것은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위트를 더하고 고객분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수단으로 선택한 거다. 그걸 보시면서 공감도 하고 많이 좋아해 주신다.

책으로 연결된 협업

트락타트 X 문학동네 협업 티셔츠
올해 서울국저도서전에서 문학동네와 함께 만든 투어 티셔츠가 화제였다. 그전에 지난해 예스24와의 협업이 있었다. 당시 만들었던 북슬리브와 엽서에 대해 먼저 이야기 나누고 싶다.

조수근 예스24는 딱 작년 이맘때쯤 제안을 받았다. 골자는 노벨문학상 기획전용 굿즈를 만드는 것이었다. 예스24 측에서 제시한 것은 키링과 책갈피 같은 것들이었는데, 첫 협업이다 보니 우리 색깔을 좀 더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특색 있는 아이템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정된 예산 내에서 실용성과 소구력을 갖춘 물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생을 굉장히 많이 했다. (웃음)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버튼다운 셔츠에서 영감받은 ‘북셔츠’이다. 책을 위한 옷을 만든 거다.

문학동네와 협업은 얼마 정도 준비했나?

남아름 두 달 정도 준비했다. 문학동네 측에서는 문학동네시인선이나 세계문학전집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 했고, 우리가 세계문학전집의 저자들로 만드는 투어 티셔츠를 제안했다. 사실 우리도 문학가가 등장하는 투어 티셔츠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트락타트는 철학자들을 다루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미뤄두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가 와서 문학가도 다루게 되었다.

톨스토이,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조지 오웰, 4명의 저자는 어떻게 선정했는지 궁금하다.

남아름 문학동네 측이 원하는 인기 작가들과 우리가 잘 아는 작가들의 교집합 중 저작권에 문제가 없고 뚜렷한 사진이 있는 사람들로 추려졌다. 최종적으로 6명을 제안했고, 그중 4명이 선택됐다. 후보 중에는 레이먼드 카버도 있었다. 사실 출판사들과 협업하면 좋지 않을까 늘 생각했는데, 진짜 하게 되어서 좋았다.

서점과 출판사 외에 함께 협업하고 싶은 브랜드가 있을까?

조수근 나는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우리 3명이 모든 걸 다 진행하다 보니 타 브랜드의 의사 결정 과정이나 어떤 문화권에 따른 디자인 감성, 제작 과정을 보고 싶다. 브랜드 자체는 오래전부터 빈티지 컬렉팅을 해오고 있는 나의 취향이 반영됐다.

​일단 ‘필슨(filson)’은 유서 깊은 헌팅웨어 브랜드다. 실제 필드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든다. 미국 산림 경비용 옷을 외주로 제작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용자 중심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필슨이 이에 가장 충실한 브랜드다. 타깃층은 대척점에 있지만, 그래서 더 재밌고 잘 맞을 수 있지 않을까. 한국 브랜드 중에서는 VDR의 오랜 팬이다. ‘Permanent Clothing’을 모토로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든다. 여기도 밀리터리와 헌팅 장르 기반인데, 실제로 튼튼한 옷을 만든다. 이들과 실용성과 내구성을 모두 갖춘 하드 커버 같은 헌팅 재킷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슈프림. 한국에서는 트락타트의 프린팅 감성과 유사한 곳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2010년대 슈프림 프린팅이 ‘골 때리는’ 위트를 담은 게 많았다. 폰트도 잘 쓰고, 충격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데 또 멋지다는 느낌이 들어서 슈프림과 협업을 해보고 싶다.

철학으로부터 배운 것

트락타트 사무실의 작은 서가
철학과 비즈니스 현장을 연결 짓는 책이 많은데, 실제로 철학을 공부한 것이 브랜드를 운영하는 데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 궁금하다.

이재영 철학이라는 건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방법론이다. 특히 서양 철학이 그렇다. 방법론이라는 건 뒤따라갈 수 있다는 뜻이다. 단계적이고 내재적인 논리가 있고, 그 논리에 따라 도달할 수 있는 목표점이 있거든. 그러니까 레고 조립서 같은 거다. 조립서를 보면 완성품에 도달하게 되는 거지. 나는 모순을 다루는 방법을 철학을 공부하면서 배웠다. 내가 주로 공부한 철학이 변증법 철학이다. 쉽게 모순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거다. 보통은 이율배반이라고 해서 모순은 피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근데 공부를 해보니까 모순이라는 건 내재적인 거고, 무조건 있을 수밖에 없는 거고, 그 모순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문제가 완전히 뒤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모순이 도대체 브랜드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어보면, 엄청나게 상관있다. (웃음) 지금도 매일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가 트락타트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결정이 다 모순덩어리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말하자면, 첫째 철학자와 철학을 이용해서 패션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금 없이 시작했다. 그러니까 돈 없이 패션을 하겠다는 것도 모순이다. 타깃으로 생각했던 대상이 옷을 별로 안 좋아하는 분들이라는 것도. 만약 철학 공부를 안 했으면, 이 일을 안 했을 거다.

모순을 다루는 구체적인 방법도 있나?

이재영 우리는 결정 내릴 때 커다란 전지를 꺼내 놓고 우리가 갖고 있는 모순을 다 적는다. 최근에 써 놓은 것도 찾아보면 있을 텐데, 이런 거다. 우리는 공간이 없다, 근데 막상 만들어 보니 보관할 데가 없다. 지금 돈이 1천만 원밖에 없는데, 제작하려는 옷 원단 가격만 1천만 원이다. 이런 식으로 다 적어놓고, 그 현상 안에서 한 번 움직여 보는 거다. 모순 자체를 어떻게든 굴려보려고 한다. 그러면서 길이 생긴다. 생각보다 간결해지고.

남아름 덧붙여서 보통 비즈니스를 하면 규칙이나 체계를 만들라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체계를 만들 생각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성문화된 것들을 지양한다. 이것도 모순이다. (웃음) 내가 철학에서 배운 거는 현상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물론 그걸 완전 획득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그 배움 안에서 결정을 내렸다.

트락타트의 라벨 디자인
3년차 브랜드로서 계속 모순을 돌파해 나가고자 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오나?

남아름 우리가 이 업을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이게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우리 지향 중 하나가 사람들을 계몽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현대시를 전공했는데, 현대시에서 중요한 게 사물적인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다. 이게 내가 이미지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사물적인 것 중에서도 옷은 정말 특별한 사물이다. 그러니까 어떤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그 역할이 된다. 경비원 옷을 입으면 사람들이 그 사람을 경비원으로 인식한다. 그런 면에서 옷 자체가 지닌 영향력이나 가능성은 이미 확실한 거다. 그러니까 옷이라는 사물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책과 접목해 책이 인간의 지성에 작용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옷이 인간의 지성에 작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거다. 그래서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좀 많이 팔아보고 싶다. 여기서 의미하는 판매는 많은 사람이 입는다는 것이고, 개인이 입었을 때 주변 사람한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계속하고 싶은 것 같다.

트락타트는 읽는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든다
앞서 프란츠 카프카 티셔츠를 입고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사람에게 작품을 하나 추천한다면?

이재영 무조건 〈심판〉*을 읽어야 한다. 느낌이 완전 다르다.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서부터 빨려 들어간다.

남아름 단편 중에는 〈유형지에서〉. 너무 괴롭지만, 〈유형지에서〉를 추천한다.

​*국내 출판사에서는 〈소송〉으로 출간되었다.

가까운 계획이나 목표를 말해달라.

조수근 정말 초단기적으로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F/W가 무사히 나오는 거다. 아마 셋 다 염원처럼 바라는 게 아닐까.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오프라인 편집숍에서 트락타트를 만날 수 있게 하는 거다. 화면으로 보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데, 실물로 봤을 때 훨씬 예쁜 옷이라고 생각하거든.

이재영 올해 독서 모임을 훌륭하게 해내고 싶은 계획이 있고, 중장기적 목표로는 사업적으로 좀 더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싶다.

남아름 여기가 사실 쇼룸 겸 스튜디오이다. 잘 정리해서 손님들이 제대로 옷을 보고 고를 수 있게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사무실 방문 수령을 진행하고 있기도 한데, 근처에 사는 분들 외에는 못 오고 있다. 주말을 할애할 생각도 있어서, 더 많은 분을 직접 보고 대접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질문하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남아름 사전 질문지를 받고, 질문과 상관없이 계속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옷이나 그래픽을 디자인할 때 뭘 떠올리나 생각해 보니 나는 입는 사람과 옷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고민하는 것 같다. 이것이 요즘 같은 상품 세계에서의 핵심 같은데, 여기서 내가 주도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옷은 확실히 강하기 때문에 그런 주도적 마인드 아니면 소비를 못 한다. 장악해야 한다. (웃음)

​가끔 카프카 티셔츠를 검색해 보면, 너무 갖고 싶은데 어떻게 입을지 상상이 안 된다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께 도전을 해보시고, 직접적으로 옷과 다른 관계를 맺어 보시라 권하고 싶다. 입어보면 아는데, 자꾸 주변에서 옷에 대해 질문하거든. 근데 그때 “그냥 멋있어서 샀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런 새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는 걸 즐겨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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