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룸 프레스의 사운드 시리즈 oooe
창작자가 말하고 사운드 아티스트가 디자인한 1시간 30분짜리 책. 사운드 시리즈 oooe 1권 〈질문하고 정의하기: 김선오와 〈자살〉 그리고 한 편의 시를 쓰는 법〉이 지난 7월 공개됐다.
책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워크룸 프레스가 말과 소리로 이루어진 ‘책’을 펴냈다. 워크룸 프레스의 사운드 시리즈 oooe는 창작자와 음악가가 ‘지은이’와 ‘디자이너’로서 쓰고 디자인한다. 복합시간적 미디어 이용이 늘어나면서 듣는 콘텐츠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oooe는 책의 구성 요소와 디자인 구조를 소리로 충실히 구현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사운드 시리즈 oooe를 기획, 제작하고 있는 워크룸 프레스의 이동휘 편집자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참고로 이 인터뷰를 읽을 땐 볼륨을 높일 것을 권한다. 글에 포함된 영상에는 최근 공개된 사운드 시리즈 oooe 1권 〈질문하고 정의하기: 김선오와 〈자살〉 그리고 한 편의 시를 쓰는 법〉에서 발췌한 소리들이 담겼다.
Interview
이동휘 워크룸 프레스 편집자
곁에 두기만 해도 마음이 풍족해지는 아름다운 워크룸 프레스의 책만큼 인상적인 사운드 시리즈인데요. 먼저 워크룸 프레스가 사운드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2024년 초 워크룸 프레스 편집부에서 한 해 일정을 계획하다가, 올해는 새로운 일을 벌려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왠지 시각 매체 이외의 매체를 가지고 작업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소리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뒤에 라디오, 오디오북, 팟캐스트 등 여러 가지 방식을 검토했는데, 내용과 형식을 조금씩 정리해 가면서 ‘소리로 만든 책’이라는 콘셉트를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oooe’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oooe는 ‘workroom press(워크룸 프레스)’에서 모음에 해당하는 알파벳(‘o’, ‘oo’, ‘e’)를 순서대로 모아 붙인 문자열입니다. 모음은 소리를 발생시켜 주는 음운입니다. 그래서 oooe라는 이름에는 워크룸 프레스가 소리로 만든 작업물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oooe 1–6권의 지은이와 디자이너의 목록은 지난 6월 25일에, 1권은 7월 16일에 공개되었습니다.
oooe는 2024년 7월부터 한 달에 한 권씩 온라인으로 공개됩니다. 리뉴얼된 워크룸 프레스 웹사이트에서 유료로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를 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oooe 1권 〈질문하고 정의하기: 김선오와 〈자살〉 그리고 한 편의 시를 쓰는 법〉이 공개되었고, 2–6권이 제작 중입니다. 12월에 공개될 6권 이후에도 꾸준히 발간할 예정입니다.
‘지은이’로 참여하는 6명의 창작자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요?
가급적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창작자, 그러면서도 제가 생각하기에 독자들께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분들을 모시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인(김선오), 비평가(신예슬), 만화가(하양지), 건축가(이윤석), 그림책 작가(최민지), 패션 디자이너(서혜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창작자분들께 출연 요청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전 권의 디자이너로 사운드 아티스트 임희주 작가님이 참여했습니다. 임희주 작가님과 함께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2023년, ‘모래들과 파도들’이라는 사운드 게임의 작업 과정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임희주 작가님은 (아티스트 듀오 다이애나 밴드와 함께) 사운드 게임을 만드셨고, 저는 글을 보탰습니다. 이때 소리와 소음을 매체로 삼는 사운드 장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소리와 소음들이 감상의 대상, 즐거움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oooe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oooe가 사운드 장르와 어떻게든 연관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내용적으로 사운드 장르를 소개해 볼까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사운드를 형식에 사용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소리와 소음에 대한 임희주 작가님의 애정과 열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역할로 작가님을 곧장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에 맞춰 표지와 내지를 디자인하듯 사운드를 디자인했어요.
oooe의 가장 큰 특징이자 차별점이 바로 사운드 디자인입니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디자인한 소리죠. 임희주 작가님 말씀으로는 녹음된 원고를 받아 “그 자리에 같이 있어보는 것처럼 가만히 듣기도 하고, 끼어들어 보기도 하고, 말대답도 해 보고, 갑자기 외쳐 보기도”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셨다고 합니다. oooe를 들어 보시면, 말과 소리를 ‘듣는다’는 당연하고도 익숙한 일이 문득 새롭고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1권을 들으며 2장 ‘김선오의 워크룸’이 워크룸 프레스 편집자와의 대담으로 진행되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지은이인 김선오 시인님이 팟캐스트의 호스트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1시간 30여 분의 러닝타임을 지닌 oooe를 구상하면서는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큰 틀에서는 oooe도 책의 구조를 띠고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책의 구성 요소를 차용하여, 일러두기, 표제지, 저자 소개, 본문, 판권 등의 항목으로 oooe의 전체를 구성했습니다.
또한 본문의 경우, 1장 ‘o+e’, 2장 ‘워크룸’, 3장 ‘제안들’, 4장 ‘사용중’으로 잡았습니다. 본문에서 지은이가 최대한 자신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구조와 규칙이 너무 복잡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oooe에서는 지은이가 최소한의 제약 안에서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자신이 품고 있는 일곱 개의 리스트, 한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 자신이 제안하고 싶은 것,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실용 지식 등)를 펼치게 됩니다.
앞서 말씀 주셨던 것처럼 oooe는 워크룸 프레스 웹사이트에서 스트리밍할 수 있는데, 재생 플레이어가 친절한 형태는 아니에요. 내가 지금 어느 시간대를 듣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원하는 지점으로 되감거나 빨리 감기를 할 수도 없죠. 재생 플레이어의 디자인에도 어떠한 의도가 담긴 걸까요?
친절함과 아름다움은 종종 반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거나 편의를 위한 기능을 추가하다 보면 미적 기준이 후순위로 밀려나곤 하죠. 워크룸 프레스 웹사이트와 사운드 플레이어는 이상적인 디자인을 가장 우선순위로 둔 결과물입니다.
웹사이트의 소개글을 보면 oooe를 “새로운 형태의 ‘책’”이라고 정의합니다. 물성을 지닌 책을 만드는 것과 말과 소리로 지은 책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같고 또 다른가요?
제가 이해하기로 종이책을 만들 때 출판사에서 하는 일은, 순서와 규칙에 맞추어 내용을 배열하는 첫 단계와, 배열된 내용이 잘 도드라지도록 강조하는 두 번째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이 두 개의 단계는 각각 편집과 디자인에 해당합니다. 편집과 디자인의 단계를 거친다는 점에서, oooe의 제작 절차는 종이책의 경우와 같습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oooe의 편집과 디자인은 어떻게 읽힐지가 아니라 어떻게 들릴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또 다른 차이는, 원고 작성 즉 녹음 이후에는 편집할 수 있는 정도가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oooe 제작 시 녹음 이전의 기획 단계에서 많은 것을 작가님과 함께 결정하려고 합니다.
덧붙여서, 소리로 지은 책의 장점은 재고가 쌓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반면 제 생각에 독자가 SNS에 책 읽은 티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큰 단점입니다. 한 독자분이 oooe 1권의 독후감을 음성으로 올려 주신 것을 보았는데, 이 지면을 빌려 그분께 잘 들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획 및 제작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oooe 1권 이전에 여러 편의 파일럿 에피소드를 제작했습니다. 이름은 물론 목차나 구성도 지금과 많이 달랐죠. 그때는 외부 작가를 섭외하지 않고 워크룸 구성원분들을 동원해서 직접 만들려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쥐어짠 내용을 휴대폰으로 녹음하고, 직접 잘라 붙여서 열심히 파일럿 에피소드를 만들었어요. 사무실에 함께 모여 피드백을 나누는 자리가 몇 차례 있었고, 편집자와 디자이너분들이 열심히 듣고 냉정한 평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몇 차례의 무겁고 난감하던 공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진땀을 여러 차례 흘려야 했지만, 그 덕분에 많은 개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보통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는 다른 일을 하며 듣는데, oooe는 소음처럼 느껴지는 소리가 오히려 목소리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분들이 언제 oooe를 들으면 좋을까요? 혹은 ‘어떻게 들으시라’는 제안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와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니 기쁩니다. 저도 언뜻 소음이 목소리를 가릴 것 같지만 사실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oooe는 눈과 손을 쉬게 하면서도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반복 작업으로 눈과 손이 바쁜 디자이너, 자야 하는데 잠에 들기 싫어서 자꾸 무얼 보거나 읽게 되는 사람들,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싶은 매장 사장님, 그 외에 어떤 이유로든 종이책을 읽기 애매한 상황에 있는 분들이나 심지어 종이책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들으실 땐 꼭 크게, 소음과 침묵까지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세요.